서울공화국 뜨끔하게 할 '궁리' 갖고 돌아온 문화게릴라
---조송현의 이슈 인물 <2> 이윤택 가마골소극장예술감독
국제신문2012-03-11
- 지방출신 천민이라는 이유로 역사가 외면한 장영실 삶 다뤄
- 이윤택 작품세계의 종결작될 것…소설·뮤지컬 등으로 변주할 계획
- 시인의 자세로 세상을 보고 연출가로서 살아가려고 해
'장영실은 왜 사라졌나'라는 의문에서 출발하는 연극 '궁리'로
또다시 공연계를 달구고 있는 연출가 이윤택 씨가
지난 8일 자신의 예술적 요람인 부산 연제구 거제동 가마골소극장 앞에서 모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강덕철 기자 kangdc@kookje.co.kr
연극에서부터 뮤지컬 TV드라마 영화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공연예술을 아우르는
전방위예술가이자 공연계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문화게릴라 이윤택(60) 가마골소극장예술감독이
'궁리(窮理)'로 또 한번 한국 문화예술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이 감독이 '시골선비 조남명' 이후 10년 만에 쓴 궁리는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의 역사적 '실종'을 다룬 작품이다.
장영실이 세종의 총애를 받다 하루아침에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그가 변방 출신에다 천민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궁리의 해석이다.
이것은 '서울공화국' 시대 지방사람이 홀대받고
못 가진자는 죄인 취급받을 정도로 불평등 구조가 고착된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궁리를 쓰고, 국립극단 공연(4월 25일~)의 연출을 맡고 있는 이 감독을
지난 8일 이윤택 작품 세계의 요람인 부산 연제구 거제동 가마골소극장에서 만났다.
-궁리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 친구 중에 양맹준(부산박물관 관장)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작년 '장영실 기획전'에 저를 초청하더군요.
장영실전을 관람하면서 두 가지 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하나는 조선시대 과학기구가 생각보다 매우 현대적이고 미학적이라는 것이었고,
이렇게 훌륭한 조선시대 과학자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의아해서 양 관장에게 따지듯 물었어요.
"종삼품의 대호군이라는 높은 벼슬을 했다는데 그 사람의 기록이 왜 없냐"고.
"지방천민이니까" 하더군요.
기가 차더군요.
장영실은 그가 발명한 물질(기구)만 남고, 그의 정신과 인간은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래서 부산(당시 동래현) 사람 장영실이란 인간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어떤 점에서 '기념비적인 부산문화콘텐츠',
'이윤택 작품 세계의 종결작'이란 예감을 하는지요?
▶우리는 흔히 진정한 지역성은
가장 지역적이면서 가장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실 나도 평생 그런 지역성 짙은 작품을 찾아다녔는데, 마침내 궁리를 찾은 겁니다.
6개월 전 궁리의 얼개를 부산의 지인들에게 얘기했더니
다들 "절묘하다"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 같다"고 합디다.
서울중심의 기득권 세력이 판치는 오늘날 우리 현실에
꼭 들어맞는 얘기라고 입을 모으더군요.
-궁리의 주인공 장영실이 부산사람인데다
지방과 중앙,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갈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문화게릴라'의 면모를 재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법도 한데요?
▶장영실은 희생됐지만 나는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지요(웃음).
서울에서는 지역성 짙은 작품에 대해
"이런 걸 왜 서울에서 공연하느냐"며 배타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기득권 보호 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 있죠.
문화게릴라란 별칭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1987년 나의 서울 공연에 대해
'객석'이 '무정부주의자의 서울 입성'이라고 표현하면서 붙여졌거든요.
이 말은 내용적으로 전통해석을 전복하거나 뒤틀고 의표를 정확하게 찌른다는 뜻입니다.
제도권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나름의 방식을 추구해 나가는
나의 작업 스타일이 게릴라적인 거 맞습니다.
-궁리는 연극 외 소설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궁리는 '원 소스 멀티 유스'의 모범 사례로 키울 작정입니다.
다시 말해, 연극 외에도 소설 뮤지컬 TV 드라마, 영화로 제작해 널리 보급할 예정입니다.
우선 궁리는 28일부터 국제신문에 '연극소설'이란 새로운 형식으로 선보입니다.
연극 궁리는 오는 4월 24일부터 5월 13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초연한 뒤
대전 안산 고양을 거쳐 7월에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입니다.
이날 이 감독과 인터뷰를 하는 가마골소극장 로비의 벽면에는
지난 25년간의 연희단거리패·가마골소극장의 공연역사가 전시돼 있었다.
작품만 50편이 넘고, 공연횟수는 수천을 헤아린다.
이 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한 '오구' '어머니'를 비롯해 수상작도 수두룩하다.
이 감독은 1986년 대종상에서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로 각본상을 받은 이래
동아연극상 대상 2차례를 비롯해 총 9차례,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연출상 등 큰상을 싹쓸이하다시피해
대한민국 연극계를 평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감독의 많은 작품들에서 하나로 수렴되는 정서적 특징은 무엇인가요?
▶그건 한마디로 신들림입니다.
이윤택 예술의 모든 것은 신들림이라고 하면 돼요.
신들린 행위, 그게 바로 예술행위예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에너지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신들렸다니까 하하하. '죽기 싫어서'라는 게 질문의 답이 되겠네요.
나는 어려서부터 죽음을 의식했어요.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 신들리는 길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신이 들려 죽음의 공포를 잊고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나의 삶이고 나의 예술활동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의형제' 최영철 시인과 김성배 부산문화연구회 대표를 번갈아 보며)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최 시인처럼 세상의 박자를 아예 놓아버리든지,
김 대표처럼 모든 스케줄을 꼼꼼하게 바삐 챙기는 방법이 있어요.
나는 아예 신들려 버린 거지, 하하하.
-이 감독의 예술적 배아가 언제 어떻게 배태됐을까 궁금합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는 날이 드물었고,
어머니도 생계에 바빠 나 혼자 내던져지다시피 했죠.
혼자 있으면 침울해져 밖에 나가 누구와 같이 작란(作亂)하고 싶어 안달이 났죠.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던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 타자지향적(이타적)이고 외향적으로 바뀌었어요.
연출가의 덕목은 자신의 신념보다 타인과 세계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거든요.
-예전 핏발 선 눈에서 내뿜던 '독기'가 많이 엷어진 것 같은데요?
▶독기는 존재감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낄 때 나옵니다.
존재감이 침해당할 때 이를 지키기 위해 방어기제가 발동하는데, 이것이 독기로 표출되는 겁니다.
돈 안 되는 연극으로 존재감을 지키면서 살려니 독기를 내뿜고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상을 많이 탄 것도 쪽팔리지 않으려고 작업에 몰두한 결과일 뿐입니다.
돌이켜 보면 독기는 나와 우리 극단을 지킨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극 연출가 극작가에다 예술감독 영화감독에 시인이기도 한데,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타이틀은 무엇인가요?
▶연출가지요. 나는 연출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명예로운 인간의 존재방식일 뿐 직업이 될 수 없지요.
시인은 세상의 중심(그가 선 곳)에서 인간과 우주 전체를 바라보고
운행을 관찰·관장하는, 예지적 기능을 하는 사람인데,
요즘은 시인들이 다 왜소해지고 평범한 인간들이 돼 버렸어요.
나는 시인의 자세로 세상을 보고, 연출가로서 살아가려 합니다.
-뉴욕대 전문예술대학원 실기전문 과정을 졸업한 큰딸 채경(31) 씨가
가마골소극장을 맡아 가업을 이을 계획이라지요?
▶그렇습니다. 내 인생 최고의 수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집사람도 밀양연극촌자료관장을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들려주시죠.
▶흑룡띠로 올해 환갑입니다.
'60은 인생시작'이다 하지만 그거 다 거짓말이고 위로하자고 하는 소립니다.
나는 다 내려놓았습니다.
늙었음을 인정하고 60세 이후의 인생을 지금부터 시작하려 해요.
우선 저술·교육 작업입니다.
고대 공무도하가부터 우리의 작품을 다시 써 한국공연예술사를 정립하려 합니다.
다음은 가마골소극장, 밀양연극촌, 서울게릴라소극장을 후진에게 잘 물려주는 일입니다.
서울게릴라는 정착됐고,
밀양연극촌은 시민참여 공간이자 문화체험장으로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공공기관(단체)에 이전하려 합니다.
우리 극단의 모체인 가마골소극장은
초연극장·레퍼토리극장이자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이 어우러지는
부산예술의 메카로 키워갈 생각입니다.
가마골소극장은
시인 화가 소설가 음악가 무용가 기자 교수 백수가 어우러지는 '잡종교배'의 장이 될 겁니다.
그래야 부산문화가 풍성해집니다.
# 의형제들이 말하는 이윤택
- 단원들 다그쳐놓고서는 눈 못마주치는 여린 사람
1983년 부산 중구 중앙동 부산데파트의 한 사무실.
당시 부산시보 편집실에 근무하던 소설가 신태범(67) 씨와
새내기 시인이자 부산일보 기자였던 이윤택(60) 가마골소극장 예술감독,
백수이자 시인 지망생이었던 최영철(55·도서출판 도요, 웹진 도요 주간·사진 왼쪽) 씨,
고교 졸업반인 김성배(48·가마골소극장 공동대표·사진 오른쪽) 부산문화연구회 대표 등
네 사람이 모였다.
이들은 출판사를 차려 당시 지방에서 유일한 무크지 '지평'을 발간하는 '역사적인' 작업에 몰두했다. 어느날 이 씨가 느닷없이 중대 제안을 내놓았다.
"동고동락하는 친형제나 다름없는데, 우리 의형제 맺읍시다."
이심전심 모두 손내밀어 맞잡고 다짐한 뒤 광복동으로 내달아
막걸리에 대취하는 것으로 의형제 결연 의식을 마쳤다.
이후 30년 가까이 이들 의형제는 한번도 다투거나 속마음이 상한 적이 없다 한다.
최영철, 이윤택, 김성배
"윤택 형은 가까이서 보면 정이 많고 마음이 매우 여린 사람입니다.
직관에 따라 매섭게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 때문에 강하고 냉정하다는 생각하기 쉬운데
내면은 그렇지 않아요.
단원들을 다그쳐 놓고 나중에 미안해서 눈을 피할 때도 많아요."
셋 째인 최 시인의 말이다.
● 약 력
▶1952년 부산 출생
▶1972년 경남고 졸
▶1979년 '현대시학' 등단, 부산일보 입사
▶1986년 연희단거리패 창단·가마골소극장 개관
▶1991년 '오구' 연출 독일 에센연극제 참가
▶1995년 '문제적 인간, 연산' 동아연극대상, 희곡상, 대산문학상 수상
▶1999년 밀양연극촌 설립
▶2006년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
▶2010년 김해 도요창작스튜디오 설립
▶2009년 부산(거제동) 가마골소극장 개관
▶현 부산 가마골소극장, 서울 게릴라소극장,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예술감독
▶부인 이연순(55) 씨와 2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