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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이오장>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내는 철학적 사유의 거울
-김해빈 시인의 시집 『욱신거리는 계절』
‘시는 무엇이며 왜 쓰는가’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는 시인은 없다. 물론 각자의 생각을 정립하여 막힘없이 대답하는 시인도 없지 않으나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누구나 동감하는 대답은 아닐 것이다. 시가 무엇이고 시를 왜 쓰느냐는 물음은 어리석은 질문이 분명하다. 시에 정답이 있고 시인에게 목적이 있다면 인간이 추구하는 영원불멸의 이상향에 이미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론과 실천을 구분해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지식이 뛰어난 학자가 반드시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고 도덕을 가르치는 선생이 반드시 윤리적인 사람은 아니듯이 유명한 신학자라고 해서 신심이 깊은 영성가나 성인이 아닐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람은 존재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본능과 욕구가 있어 ‘아는 것은 행하는 것이며 행함이 없는 앎은 앎이 아니다’라는 이론과 실천을 명확히 구분하는 본질적인 이성을 가졌다. 육체적인 충돌과 정신적인 사유를 통하여 사물의 형태와 구성을 찾아내어 이를 언어로 나타낸 것이다. 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언어의 정점이다. 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인간의 본성에서 시작되어 해석하려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주어지지만 근본적인 원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같은 특성을 보인다. 시는 보편적 현상을 각기 다른 대답으로 드러낸다. 시가 무엇이냐는 물음은 곧 같음과 다름에 대한 해답 찾기다. 이렇게 묻고 이해하는 과정의 언어 활력에서 시의 형성은 지속하는 것이며 끝없이 묻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성립된다. 어떻게 질문하고 그에 대해 어떠한 이해의 체계를 제시하는지에 따라 방향이 정해지고 의문에 대한 질문과 대답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김해빈 시인은 이러한 과정에 본능적으로 뛰어들어 모든 사물에 인간이 가진 원형적 질문을 던지고 형성과정의 물질과 질량을 저울질하여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인간이 추구하는 오욕칠정 전부를 한 권의 시집에 담아내었다. 자기 이해에 관계되고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하여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내고, 모든 것은 결정되고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은 언제나 걸어가는 과정만 있다는 철학적 사유의 거울로 비춰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기를 원하고 사물이나 사건을 보면 그 원인과 내용이 어떤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알기를 원한다"라고 했다. 김해빈 시인의 작품은 인간의 알고 싶다는 본성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갖는 삶의 일상에서 이해와 해석의 연속으로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작품마다 하나의 뜻을 내세우지만 연행마다 이미지를 달리하여 결국은 하나로 귀결시키는 현대시의 하이퍼적인 묘수를 보인다. 인간은 아픔의 동물이다. 육체적인 아픔으로 힘들어하고 정신적인 고뇌로 몸부림친다. 그 아픔에는 징조가 있다. 정신적으로는 두통을 육체적으로는 욱신거림으로 아픔의 신호를 보낸다. 이 시집에서 김해빈 시인이 나타내려한 이미지는 아픔의 징조 찾기다. 전체적으로 시의 흐름은 멈춤이 없어 과격과 통념이 충돌한다. 때론 형이상학으로 치달아 어렵고 낯설다. 어렵고 낯설다는 것은 감각적 영역을 넘어서며 지각할 수 없는 것에 접근하고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각적 영역의 하이퍼적인 시 창작이 낯설게 다가와서 신선하다. 따라서 김해빈 시인의 시세계는 삶의 이유와 목적의 질문으로 연속적이다.
1.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한 의문
모든 사람은 삶의 이유와 목적에 의문을 가진다. 사람이 가진 근본적인 질문이나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움이 닥치든가 생활방식에서 이탈된 상황 즉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이나 도저히 받아드릴 수 없는 어려운 일에 직면하면 그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과학적으로 해명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측정하고 관찰하는 행위만 가지고는 사람의 고정된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이러한 문제는 상상력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고 객관적 지식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이해하고 해석하는 시로서만 가능하다. 밖이 아닌 나 자신에서 답을 찾고 사람의 영역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김해빈 시인의 시에서 이런 문제 해결에 대한 능력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바위에 껍질을 벗어두고 환골탈태한 그녀
뉴런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흔적을 남겼다
바위 속 은둔자는 존재 이유를 찾아
라디칼과의 전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비타민 C와 E 베타카로틴과 미량의 원소 셀레니움이 들어있는 항산화 물질 소량의 적포도주와 균형잡힌 식단을 찾아 뛰쳐나왔을까
허물을 벗어던진 그녀
질병과 신경, 세포, 가치관까지도 돌에 새겨놓고 뼈와 근육만 지닌 채 앞만 바라본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변이, 유전, 사고도 없는 양질의 산소만 있는 곳을 기억하며 그 어떤 소란스러움도 지우고 있다
끝없는 공허함 속으로 달려가는 근육의 파편들
피비린내 없는 저 완벽한 구도는
또 하나의 생명이다
「프라스티네이션 3」 -허물벗는 여자- 전문
플라스티내이션이란 사람의 사체에서 수분과 지방을 모두 빼고 실리콘 고무 에폭시나 플라에스테르 등 합성수지를 주입하여 통통한 상태를 유지 사람의 외형과 실핏줄 등을 관찰할 수 있게 만든 인체 해부학적 모형이다. 생명은 없으나 인체의 모든 것을 비춰주고 살아있는 듯 표정까지도 알 수 있게 만든 전시물로 인간이 가진 원형의 모습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보여줘 생명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준다. 신경계를 이루는 구조적 기능적 기본단위가 되는 세포를 낱낱이 드러낸 인체의 표본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일시에 무너트린다. 이렇게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물질형태의 순수한 인간이 어떻게 상상하고 그 상상을 뛰어넘어 새로운 물체와 사상을 구상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화자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와 삶의 목적이 왜 필요한지 고민하고 사람의 탄생과 죽음이 어디로 어떻게 어느 과정을 밟아 가는지에 의문을 두고 허물 벗은 여자의 생체해부 실체와 마주한 순간, 우리가 고민하는 삶의 목적이 해석되었을까.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끝없이 공허함 속으로 달려가는 인간의 허무한 삶, 그것은 생명이 없는 표본에서 또 하나의 생명을 보았기 때문이다. 삶은 영원하지 않지만 생명유지의 염원은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 한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으로 입증된다. 생명이 없는 사람의 표본체가 살아있는 우리에게 주는 것은 진실은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인류의 가치관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작품이다.
러시아워를 피해
지하철역 출구를 빠져나오는
미련한 여자의 입 안은
늘 흙탕물이 고여있다
보스톤 탑 치과
수술대에 누워
보스턴으로 출발하는 여자
프리덤 트레일을 찾아
최대한 입을 벌리고
벌릴 수 없을 만큼 더 크게 벌리고
아 -아-
탑 최고 최고 입니다
아- 아-
탑, 스탑 제발 멈춰줘요
긴장을 풀어요. 입술에 힘을 빼요
샤먼의 주술에 걸려
벌에 쏘인 것처럼 부풀어 오른
볼퉁이 안에
어금니 심은 여자
두 시간 동안 미소를 지워야 한다
누구나 같은 처방전 들고
미소 찾으려 약국으로 간다
딩동 스마트폰에
기장을 외면한 난수표
미소가 오만하다
「미소약국」 전문
인체의 모든 것에는 아픔이 있다. 신경이 연결된 조직마다 통증을 감지하는 선이 뇌의 조종을 받아 각 부분에 가해지는 위해에 아픔으로 방어막을 친다. 그중 치아에서 발생하는 아픔은 공포를 넘어 무한의 암흑으로 빠지게도 한다. 치통은 그만큼 살벌하다. 이 작품은 누구나 겪게 되는 치아치료 과정을 그렸지만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공포에서 삶의 방식을 찾게 되고 그 방향에서 이탈하여 인간이 스스로 외면하고 피하려는 샛길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그렸다. 화자는 자신을 미련하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아픔을 피하지 못한 자책이지만 자유의 길을 마음껏 달리지 못한 현실에 대한 원망이기도 하다. 여기서 보스턴 전쟁박물관을 대입시켜 앞으로 일어날 고통이 곧 전쟁임을 암시하고 있다. 치과의사의 명령으로 크게 벌린 입속으로 시술 기구가 난립하여도 속수무책으로 따라야 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에도 치료에 전념하는 의사의 행위는 간신히 유지한 미소마저 빼앗아간다. 여기까지는 치료의 상황이다. 그러나 마취주사에 볼이 부어올라 저절로 생긴 미소가 상황을 반전시킨다. 결제한 치료비는 스마트폰이 먼저 액수를 확인해주어 아픔보다 부어오른 만큼 흐릿해진 눈자위는 처방전이 난수표로 보일 것이다. 자책과 고통을 체념과 외면으로 역설적이고 재미있게 승화시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다. 인간은 어느 상황에서든 해결책을 찾게 되고 앞뒤의 판단이 맞지 않을 땐 허망함을 가진다. 인간 최고의 장점은 절벽을 만나도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뛰어 넘어버리는 데 있다.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간은 현상을 유지한다. 삶의 이유와 목적이 다시 확인되는 작품이다.
덕양산 성벽 넘어
단풍씨 날개를 돌리며 날아간다
권율의 신호에 발사된
서슬 퍼런 역사가
토성에 기어오르는 왜적을 향해 쏟아진다
성을 쌓던 여인들이
저 남자는 파트너가 자주 바뀐대 하며 수군댄다
그렇게 단풍씨는
어미 단풍나무가 태어난 곳으로 따라 날아갔고
금기의 꽃날에 손이 베인 남자 끌고
눈웃음치며 산성에 오른 여자
행주치마 벗어던진다
귀 큰 남자의 어개 위로
권율의 큰칼이 프로펠러 돌리며
소문이 되어 다시 날아왔다
단풍나무 아래
남자의 어깨에 걸린 낮달이 차갑다
「부메랑」 전문
인간의 삶에서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반드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주는 대로 받고 받는 대로 주게 되는 것은 스스로가 그렇게 정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 속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그 흐름으로 인류는 자연스럽게 믿고 후대에 물려주어 인성을 가르쳤다. 이 작품은 하이퍼 시작법으로 그려진 이미지 조합의 작품이다. 최초의 이미지 발견과 대입으로 역사적인 사실, 억압된 여인들의 해방, 사회 부조리의 고발, 인간 자책의 양심선언, 자연이 주는 교훈 등 사람 사회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하였다. 단풍씨앗은 토끼 귀를 닮은 날개를 달아 씨앗이 멀리 날아갈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러나 의도대로 멀리 날지 못하고 뱅글뱅글 돌다가 제자리에 돌아오기 일쑤다. 이것의 발견이 부메랑이고 행주산성의 피맺힌 역사는 오늘의 정세를 닮아 언제 외적의 침입이 닥칠지 불안하다. 집단사회의 병폐에 몰린 여인들은 남자들의 일탈을 꼬집어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원하며 금기를 깨트린 여자들은 드디어 행주치마를 벗어던지고 자유를 외친다. 귀족이라고 큰소리치며 풍류를 일삼던 남자는 소문의 프로펠러를 멈추지 못하고 제자리에 돌아왔으나 부메랑의 무게에 눌려 넘어졌다가 찌그러진 낮달에 바짝 정신을 차린다는 이미지의 전개가 숨 가쁘게 펼쳐진다. 여러 개의 이미지를 던지고 있으나 결국은 행한 만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교훈적인 철학을 담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시가 상상의 시공간을 폭넓게 넘나들며 텍스트를 잘게 쪼개다가 또 하나의 의미로 연결되는 등 함축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성향을 뚜렷이 띄고 있다. 이렇듯 김해빈 시인의 작품은 인간사회의 불가분의 관계와 부조리의 연속적인 이해와 해석이 대부분 하이퍼적인 전개로 펼쳐진다.
2. 객체적 지식을 풀어내려는 게 아닌, 인간 본성을 비춰내려는 자연적 발성
시인은 사상가가 아니다. 연구실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인간의 생리를 정립하는 학자도 아니다.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는 일에 시비를 걸든가 다루기 힘든 철학적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철학자도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찾아 마주하게 되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생각을 통해 찾아가려는 노력과 인간이 품고 있는 자연 속에 기댄 의문과 고민을 자연과 심리를 통하여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이런 것은 심리학과 심리철학, 역사학과 역사철학, 자연과학과 자연철학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시인은 인간이 품은 모든 의문을 풀어내려는 객체적 지식을 찾는 게 아니라 이해와 해석을 통하여 인간 본성을 비춰내려는 사람이다. 따라서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자연발생적 탄생으로 출발하여 누가 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빛낸다. 김해빈 시인의 시 작업은 여기서 한 치의 비켜남이 없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하나의 길로 고수하며 지구상 어느 곳이든 찾아간다.
아이의 어둠이 멈춘 곳은
산머리 절벽 위였다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던 절벽의 이끼는
백악기에 깨어난 새끼들이었을까
꼿꼿하던 해가 기울면
쉼 없이 질주하는 산양이 되었다
반쪽이 잘린 지구 너머로
어둠 비켜 달렸지만
새끼의 등 덥석 물고 숲을 벗어나갈
아비의 그림자는 없었다
쇠똥구리가 떠나온 강가 모래밭은
빛이 잦아든 어둠의 집
쇠똥 덩어리 굴리며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오래전 그들이 그랬듯이
빛의 새기가 절벽으로 치달아도
밧줄 내려줄 어미의 그림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둠 속의 어둠
해를 삼킨 태풍이 다시 절벽을 친다
부서진 어둠이 굴러내린다
「어둠 지우다」 전문
둥근 지구가 쉬지 않고 돌아가며 그림자를 만들어도 지구상의 모든 것은 인간이 발견한 과학의 원리대로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한 쪽의 아픔이 반대쪽 아픔으로 번져나가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서로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만든 아픔이라 누구를 원망하지 못하고 자학적인 형태로 상처를 낳는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전쟁난민, 시리아와 이라크 등 종교로 인한 인간말살 작업에 피난길에 오른 난민, 그리고 부모들의 학대로 인한 어린이들의 주검 등 우리주변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의 장면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달되고 우리도 같이 그런 장면을 마주한다. 아이가 멈춘 곳은 절벽 위다. 아이의 어깨를 덥석 잡아채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줄 손길은 보이지 않는다. 쇠똥구리와 뒹굴며 살던 초원의 모래밭이 배경으로 비치고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장면이 확대된다. 원시적인 자연의 평화를 모르고 평화를 원하는 인간 군상들의 무관심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해를 삼켜버린 태풍이 절벽을 쳐 언제 무너질 줄 모르는 상황, 인간원형의 물음에 무슨 대답을 하고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까. 화자는 상황을 그대로 던지고 대답을 기다리며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어다 제시할 뿐, 스스로 느끼고 인간의 본성을 찾으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풍기는 작품으로 특성을 살려냈다.
문을 연다
어둡다
갈바람에 곡식이 알차게 영글지만
밤마다 떠도는 개처럼 읍내를 들락거리며 주전부리하는 그 남자
언제나 마네킹 같은 달을 탐닉하며 컹컹거린다
발바닥에 요령소리 나도록 뛰어다녀도
하루의 끼니 꼬박꼬박 챙겨 먹고 칼 출근 칼퇴근으로 현관문 지키더니
쏠쏠히 꿀밤같이 산으로 강으로 굴러다닌다
현관 밖의 남자
혈관에 나로핀을 꽂을까 아니면 미다졸람으로 수면을 유도해 볼까 셈하며 이중의 커튼을 내린다
현관 안의 마이클잭슨
부재중이다
「현관 밖의 남자」 전문
현시대의 남자는 서글프다. 너무 서러워 눈물도 마르고 서 있을 자리를 잃고 방황의 연속이다. 그러나 스스로 만든 길이다. 일을 핑계로 주전부리를 일삼고 있는 남자들의 특성을 비유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주전부리는 먹거리가 아닌 남자의 또 다른 숨겨진 일상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네킹 같은 여자를 향하여 컹컹거리며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이다. 발바닥에 요령소리 나도록 뛰어다닌 고행이 자신만을 위한 일탈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들의 집에는 지켜줘야 할 가족이 있고, 가족을 외면한 남자는 도태되기 마련이고 그것이 남자의 숙명이다 그러나 이 세상 남자들은 항상 일탈을 꿈꾼다. 똑바로 걸으면서 앞을 보지 않는 남자의 속성을 은근한 필치로 나무라는 작품이 유쾌하고 통쾌한 것은 그만큼 남자들의 일탈이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통렬하게 비판하고 과장된 행위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김해빈 시인이 가진 언어의 조탁 능력이다. 어느 작품을 읽더라도 이러한 능력은 섬세하게 발휘되어 거부감 없이 전개된다. 은근슬쩍 나로핀으로 달래고 미다졸람으로 위협할 뿐 남자가 가진 이중 커튼을 열어제치고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반전은 현관 안에는 마이클잭슨이 부재중이라는 것이다. 마이클잭슨 또한 위와 같은 주사액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르렀음을 우회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경쾌한 음악의 신으로 모든 남자의 어깨를 들먹이게 하던 존재인데 그 대상이 없다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인내와 노력으로 자신을 지켜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하는 시적구상이 아닐까.
3. 시는 철저히 인성 안에서 펼쳐지는 사유의 독립성에 있다
시는 고민과 질문의 연속적 과정의 인식론 문제로, 윤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과 질문으로 변형되어 끝없이 펼쳐져왔지만 그 바탕에는 언제나 질문하는 화자와 이해하려는 존재론적 지평이 자리 잡는다. 그런 까닭에 시는 철저히 인성 안에서 펼쳐지는 사유의 독립성 주제로 다뤄진다.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 칸트의 마지막 질문은 "인간은 무엇인가"였다. 시는, “인간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지만 인간이 가져야 할 의문의 연속성을 제시하여 깨닫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로써 표현한 인간적인 질문과 고뇌의 해결은 칸트의 철학에 가깝다. 시가 가진 이해와 해석의 연결고리는 인간이 가진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김해빈 시인은 시야가 넓다. 바라보는 시야뿐만 아니라 느낌의 폭이 넓어 사회의 모든 분야에 문제의 핵심이 뭔지를 제시한다. 그러한 능력이 인간이 가진 이해와 해석의 연결고리를 잡아채어 누구든 알아듣게 섬세하고도 강력한 필치로 조언하고 때론 질타하기도 한다. 그것이 시가 인간 속에서 펼쳐지는 사유의 독립성이다.
지하철역 3번 출구를 빠져나온 직박구리
안중근 공원 동상에 올라앉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브라우닌 M79299 권총을 물고 하얼빈으로 가려는지
빌렘신부 모시고 여순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려는지
터미널 가는 구름다리 위로 날아오른다
명품가방 명품차를 끌며
그렇게 사람들은
명품의 자유를 찾아 날마다 소풍을 간다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
거리는 자유로 한껏 부풀어 있는데
하얼빈과 여순을 다녀와 공항 리무진에서 내린 직박구리
창을 닫은 채
꼬리를 물고 달려가는 자동차와
길 위에 무표정의 사람들 시선을 헤집고
다시 구름다리를 건너온다
어둠이 마지막 기록을 덮어버린 공원벤치 아래
소풍고속터미널 불빛을 비켜 날개 꺾인 직박구리 위로
3월의 빗방울이 소리 없이 떨어진다
「소풍 가는 길」 전문
직박구리는 대표적인 텃새다. 텃새 중에 가장 시끄러운 존재로 너무 짖어댄다 해서 때까치라고 불리는데 크기와 목청에 비해 우물 안 개구리 방 안 퉁소다. 자신들의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직박구리가 구역을 침입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새다. 사람도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존재로 오직 자신밖에 모른다. 김해빈 시인은 직박구리를 통하여 사람의 이기심을 고발한다. 안중근 의사는 민족이 받들어 모시는 애국자로 기꺼이 자신을 바쳐 나라에 헌신한 민족적 영웅으로 모든 국민이 칭송하며 따르는 존재다. 하지만 말 뿐이다. 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세워 우러러본들 무슨 소용인가. 진정한 마음으로 영웅을 따르는 애국적 자세가 되어야 올바른 국민이 아니겠는가. 주변 고급 쇼핑센터에 명품가방이나 좋은 음식을 먹으러 다니면서도 진정으로 우러러볼 민족의 영웅에게는 눈길한번 주지 않는다. 해마다 기일을 정하여 행사하지만 그때뿐이고 사람들은 오직 자신들의 영달과 오락을 위하여 바쁘게 살아간다. 은연중에 흔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던져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시인의 자세는 여러 갈래의 이미지를 생산하여 현실참여적인 한 이미지적인 작품으로 승화했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어둠이 마지막 기록을 덮어버린 공원 벤치아래 3월의 빗방울이 소리 없이 떨어진다는 표현은 마치 안중근 의사가 현신하여 말없이 국민의 행태를 나무라는 듯 가슴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울림을 준다.
골 깊은 지붕 위에 성장점 닫아버린 황룡의 여의주
곳곳으로 소리죽인 삵의 발자국에 놀란 너구리 한 마리
문턱 넘어 흩어지는 빛조각을 삼킨다
옆걸음으로 마장 마술에 몰두하던 명마는 같은 방향으로 자꾸 돌고 높이 곧추세운 모자의 고집이 갈기를 타고 녹아내린다
포식자들은 레일 따라 늦가을 꽃처럼 모가 꺾었고
굶주림의 계절을 스쳐 간 불빛이 모여 광화문은 역류의 윤슬로 붉다
바짝 세운 삵의 비린 발톱들
물음표를 줍고 다니는 아이들과 벽을 빠져나온 어른들의 헛웃음이 도시를 온통 덮었다
연설문 곳곳에 살랑대는 너구리 꼬리
언니 그 꼬리 잘라버려요
한나절이 다 가고 밤이 와도 돌아서지 않는 눈웃음
푸른집 마당 삵의 발자국 위에 대자로 누워버린 흰코끼리
북악을 넘어 화계사에 언제 당도하려는지
화계사 쇠북 아래 뻥 뚫린 구덩이에
꼬리 감춘 너구리 한 마리
「너구리 눈동자」 전문
우리는 역사상 가장 깊은 골의 정치마당을 얼마 전에 넘었다. 현직 대통령이 파면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것이다. 이는 단군 이래 수많은 곡절의 정치사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이다. 한 개인인 대통령의 실패가 아닌 전 국민의 실패이고 세계사에 얼마 되지 않는 오점을 남겼다. 이 작품은 그때의 상황과 인과관계를 은유와 환유로 파헤친 정치참여의 현실고발 시라 하겠다. 이런 사태는 국민이라면 모두가 느끼고 정치에 참여한 대다수의 인물이 오욕과 참회의 이중적인 갈등의 혼란을 가증시켰다. 그러나 어디에도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상징으로 대치하여 황룡의 여의주, 놀란 너구리, 마장마술의 천진난만한 기수, 광화문에 밝힌 역류의 윤슬, 삵의 날카로운 발톱, 너구리의 꼬리 등등 당시상황에 대비되는 상징으로 비유한 작품으로 인도왕실의 상징인 흰코끼리가 누워버린 장면으로 대미를 장식 참회의 장인 화계사의 동종 밑 구덩이에 숨는 것으로 마무리하는데 이런 시적 기교는 시인이라고 모두가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읽어내는 눈과 소리를 놓치지 않는 귀, 보이지 않는 사실을 유추해 내는 기감機感이 발달해야 한다. 한마디로 김해빈 시인의 작품에서는 감각적인 사고와 이성, 선천적으로 주어진 슬기가 엿보인다.
4. 시인의 사고는 멈추지 않는 우주다
시인의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지는 인간적인 물음이다. 과학과 생물학으로 이해하려는 의도는 절대 불가능하다. 인간 중에 시인만의 특성을 구분하려 한다면 시의 존재가치를 잃게 된다. 시는 사물과 사물의 움직임에서 파생된 모든 것을 사유를 통해 이해와 해석의 연속성을 가진다고 정의한다면 시인의 사고는 멈추지 않는 우주다. 김해빈 시인의 시는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제한 없는 특수성을 가진다. 이미지의 다변화를 만들어내는 시 「플라스테이션 1, 2, 3, 4」 「노근리의 봄」 「면사무소」 「좀비 PC」 「고추잠자리」 「붉은 밀담」 「스콜」 「꽃점」 「댄싱 퀸」 「암사동 도토리」 「코리아케라톱스」 「기흉」 등등 작품마다 하이퍼적인 특성이 강하다. 그밖에 보편적인 이미지의 시편들도 사물의 편린이 난무하여 읽는 이에게 긴장의 끈을 조이게 한다. 서로 다른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이 분명하지만 하나의 이미지로 작품을 엮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이런 특수성을 잘 살린 김해빈 시인의 시세계는 독창적인 에너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어 앞으로 어떠한 작품이 발현되어도 독자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