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일기 4 – 김제 시골집
나는 지금 미쳤다. 최소한 평상시 제정신이 아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시골집을 사서 이사한다는 일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시골집 매매계약을 하기 위해서 실제로 기차를 타고 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어디를 이동할 때 반드시 내 손에 들려 있어야 되는 필수품은 읽을거리 책 한 권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문학관련 책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열차에 올라 앉는 순간부터 문학책이 아닌 개 기르기 책을 읽고 있다.(<매너 좋고 말 잘 듣는 우리 개 훈련>) 시골로 이사 가서 개 기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 처음 집을 사러 가면서 개 기를 준비부터 한다? 마치 개를 기르려고 귀촌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자연인이다>에 빠진 후, 이어서 거의 한 달 동안은 본업마저 밀쳐두고 시골빈집 구경을 다니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날 ‘어느 편이든 결판을 내야지 이러다가는 일도 생활도 엉망이 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든 하루 이틀 후였던가, 인터넷 부동산에 떠 있는 아래 시골집 사진에 내 시선이 못 박히고 말았다.
그동안 나는 남쪽 바닷가 시골집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다녔다. 그 이유는,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이렇게 백발이 다 된 늙은이가 ‘빗소리 좀 실컷 듣고 싶어서’라는 것이었다.(내가 정말 80 노인일까?)
일기예보에 비 온다는 소식이 나오면 어김없이 남쪽 바닷가 쪽이었다. 어쩌다 부천에도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비구름이 지나가는 정도에 그쳤다. 부천은 참으로 내가 30년 동안 살다 온 LA처럼 죽어라고 비오기를 싫어한다.
그런데 어떻게 남쪽 바닷가가 아닌 김제 평야 한가운데 집을 계약하러 가게 되었는가?
돈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가 구경 다닌 바닷가 빈집들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수리비가 집값보다 더 들게 생긴 집들이었다. 그만하면 괜찮겠다 싶은 집들은 5천만 원 이상 주어야 가능하였다.
그런데 위 사진에 보이는 요렇게 예쁘게 생긴 집이 단돈 2천 8백만 원이란다. 더구나 이 집은 빈집이 아니었다. 현재 주인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그렇다면 이사비용에 최소 수리비까지 계산해도 동원 가능 최대치에 미치지 않을까?
‘어쨌든 빨리 결정을 해야지 일도 안 되고 생활도 안되고……’
나는 내 속의 이런 생각이 마치 지상명령이듯 훌쩍 기차를 타게 된 것이다.
나는 부동산 업자가 안내해 주는 이 집을 보자, ‘이걸로 합시다.’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것이 일주일 전 4월 22의 일이었고, 일주일 후인 오늘 나는 잔금을 치르고 매매계약을 마치기 위해서 가고 있는 중이다. 개 기르기 책을 읽으며! 내 생애에 개 기르기 책을 읽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이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