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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지구
UFO는 있는가?
지난 2007년 3월 23일 프랑스의 국립우주센터에서는 50년 동안 비밀로 간직해온 UFO 관련 정보 1600건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그동안 UFO 자료는 어느 나라에서나 인정하지 않거나 비밀로 간주하여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랑스가 관행을 깨고 전격적으로 일반에게 공개한 것이다. “UFO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주 다른 곳에서 비행물체를 타고 지구로 온 외계인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가 있다. 이때에 외계인(外界人)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사람 모습이 아닐 지도 모른다. 외계에서 온 생명체라는 말이 적당할 것이다.
UFO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상한 모양의 비행체 사진을 증거로 제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에 경기도 가평군에서 문화일보 사진기자가 찍은 UFO의 생생한 사진이 공개되어 있다. 그러나 UFO라고 주장하는 사진은 많지만 사진에 찍힌 물체가 실제로 지구에 착륙했거나 파편이라도 남은 흔적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정작 프랑스 국립우주센터의 소장은 지구 외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인간 외에 또 다른 생명체가 지구 밖에 존재한다는 최소한의 증거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증거도 없다”고 애매하게 답변하였다.
2007년 4월 25일에, 지구와 환경이 비슷해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 행성이 유럽남부천문대 연구진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일제히 보도되었다. 지구와 닮은 행성으로서는 최초로 발견된 이 행성은 지구의 5배 정도의 크기이고, 지구에서 2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적색왜성 글리제581의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이다. 과학자들이 이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행성의 평균 기온이 섭씨 0~40도 사이로서, 생명체가 존재하려면 필수적인 물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UFO 문제는 필자도 궁금하여 어느 날 물리학 교수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물리학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지구는 별이 아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만이 별(star)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다. 밤 하늘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6000개이다. 태양계에서는 태양 하나만이 별이다. 지구는 태양을 도는 행성으로서 자체로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우주에서 태양계를 바라보면 태양만 보일 뿐 지구는 보이지도 않는다. 태양계를 벗어나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거리로 4.3광년 떨어져 있다. 1광년이란 빛의 속도로 1년 간 달려가는 거리인데 4.3광년이라면 가장 빠른 우주선으로 가더라도 3만 5000년 걸린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야 100년이고 장수의 대명사인 학은 1000년을 산다고 하지만 과장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86살까지 산 두루미가 있었다고 한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은 지금은 타계한 작가 이청준의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화한 것인데, 원작에서는 비상학(飛上鶴)이 나온다. 비상학을 천년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물리적인 계산으로는 외계의 생명체가 지구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먼 거리를 날아 온 UFO가 지구에 도착하였는데, 지구인이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자마자 순식간에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 만일 UFO가 정말로 있다면 옛날 영화 ET에서처럼 가정집에 침입하여 장난을 치든가, 또는 공상영화에서처럼 공격을 하든가, 뭔가 사고를 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다고 보느냐는 나의 질문에 물리학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태양이 속한 은하계에는 2000억 개의 별들이 있고, 우주에는 그러한 은하계가 1000억 개나 있다. 각각의 별들은 태양처럼 행성들을 거느리고 있을 것이다. 그처럼 수많은 행성들 중에서 지구와 비슷한 환경조건을 가진 행성은 아마도 있을 것이다. 한 두 개가 아니라 아주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행성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물리학적으로는 알 방법이 없다. 설혹 그 행성에서 생명체가 발생하고 진화하여 문명을 이루더라도 너무 멀어서 그들과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도 교신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우주에 2000억 곱하기 1000억 개의 별이 있다는 계산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하자, 물리학자는 말하기를 “우리는 지금부터 1000년 후에 일식과 월식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 것인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천문학자는 일식 현상을 예측하는 계산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우주에 있는 별의 수를 계산하였으므로 믿어주는 것이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겠는가? 못 믿겠다면 할 수 없지만.” 결국 물리학자와의 대화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외계 생명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뿐인 지구
UFO 이야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동식물과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는 오직 하나 뿐이라는 사실이다. ‘하나 뿐인 지구 (Only One Earth)’라는 말은 지구의 환경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1972년 6월 5일 소집된 제1차 UN인간환경회의의 구호이었다. (세계환경의 날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6월 5일로 정하였다.) 이러한 구호를 채택한 이유는, 인류가 환경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지구를 오염시켜 인간이 살 수 없는 상태가 되더라도 다른 행성으로 이사갈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고향이 싫으면 고향을 떠날 수 있고 자기 나라가 싫으면 다른 나라로 이민갈 수 있다. 그러나 지구가 싫다고 또는 지구가 오염되어 못 살겠다고 다른 행성으로 이사갈 수는 없다.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가 오직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지구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소중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하나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나의 어머니가 소중한 것은 오로지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뿐인 외동딸이나 외아들은 얼마나 귀여우며 소중한가! 우리가 휴대폰을 하나 가지고 있을 때에 그 휴대폰은 매우 소중하며 우리는 애지중지 간직한다. 그러나 만일 휴대폰이 2개가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일 때에 가졌던 알뜰살뜰한 정감은 많이 감소될 것이다.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하나뿐인 책가방, 하나뿐인 필통, 하나뿐인 책받침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던가!
요즘 초등학생들은 연필이든 가방이든 우산이든 학교에서 잃어 버려도 찾아가지를 않는다고 한다. 왜 아이들이 변했을까? 학용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나뿐일 때는 소중하였지만 많아지니 애착심이 생길 리 없다. 아이들에게 물건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려면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그저 필요한 물건을 단 하나씩만 사주면 된다.
하나가 있으면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두 개부터는 어찌 보면 욕심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법정(1932-2010) 스님이 말하기를 “하나가 필요한데 두 개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 욕심이다.” 법정 스님의 고백에 의하면 오랫동안 다기 하나를 애지중지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선물이라고 하며 다기 하나를 가져다 주었다. 다기가 2개가 되자 첫 번째 다기에 대한 이전의 알뜰살뜰한 애정이 줄어들더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애국심은 반분되지 않을 수 없으며 조국에 대한 그의 사랑은 엷어질 것이다. 우리가 하나가 아닌 두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1가구 2주택이라고 하여 세금을 많이 물린다.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이유는, 집의 공급은 부족한데 모든 사람이 하나씩 가지기도 전에 일부 사람이 2채 3채의 집을 소유한다면, 집을 못 가지는 사람이 생기고 그들이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삶이야말로 환경주의자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삶’이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만 소유하는 삶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강원도 오대산 어느 산골에서 전기도 없는 오두막집에서 살다가, 관도 없이 수의도 없이 화염 속으로 사라져간 법정 스님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몇몇 생태공동체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삶을 추구한다. 이들은 복잡하고 풍요로운 삶보다는 단순한 삶, 쉽게 말해서 가난한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이 간디(1869-1948)에게 물었다. “인도가 영국처럼 부강해지길 원합니까?” 간디가 대답했다. “그렇게 되려면 지구가 몇 개나 더 있어야 할까요?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단 한 사람의 욕심을 채우기에도 불충분합니다.”
함께 산다
나는 부모님이 낳아 주었고 부모님은 각각 그 위에 부모님이 있고 . . . 이렇게 해서 30세대를 올라가면 현재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데 공헌한 조상들의 수는 2를 30번 곱한 수, 약 10억 명이 된다. 나는 10억 명의 조상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존재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10억 명의 유전자가 나의 유전자 속에 섞여 있으며, 어찌 보면 함께 산다고 볼 수 있다. 놀랄만한 혈연관계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어버이날에 선물로 받은 멋진 휴대폰이 이러한 기능을 가진 물건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 이래로 갈릴레이(1564~1642)와 뉴턴(1643~1727), 그리고 아인슈타인(1879~1955)에 이르는 수많은 과학자들, 그리고 삼성전자연구소 과학자들의 수많은 발견과 발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밖에도 자동차, 비행기, 세탁기 등등 우리가 현재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에서 이러한 과학사적인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다. 엄청난 인과관계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아침에 먹은 쌀밥이 상에 오르기까지 몇 사람이 수고했을까? 시장에 가서 쌀을 사온 아내, 쌀을 판 상인, 쌀을 생산한 농부, 쌀을 운반한 트럭운전사, 그밖에도 트럭의 부품을 만들기 위해서 일한 수많은 국내외 노동자 등등. 지구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으로 간접으로 내가 먹는 쌀밥을 만드는 과정에 필수적으로 얽혀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이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없으면 내가 밥을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엄청난 의존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벼가 자라기 위해서는 햇빛이 비쳐야 하고, 물과 공기가 필요하고, 논흙 속에서 유기물을 분해시켜 양분을 제공하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다 필요한 존재들이다. 호박꽃은 반드시 벌이 수화시켜야 호박이 열리고, 젖소가 먹는 풀이 자라기 위해서도 이러한 물리적인 요소와 미생물들이 필요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몸무게가 3kg이었다는데 지금은 60kg이라면 57kg은 어디서 왔는가? 햇빛과 공기와 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징어 갈치 미역, 그리고 사과와 귤과 배추 등등이 변하여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생물과 미생물은 이 지구에 함께 살면서 서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어느 시인이 말하였다고 한다. “종이 속에는 소나무와 비와 햇빛이 들어 있다.” 그러나 상상력을 더 넓히면 “내가 먹는 밥 속에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생물이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에서의 이러한 인과관계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태학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생태학자가 아니더라도 직관적으로 이러한 인과관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생태적 삶이란?
요즘 유행하는 생태학이라는 단어를 붙인 ‘생태적 삶’이란 어떠한 모습의 삶일까? 쉽게 말하면, 생태적 삶이란 자연과 친하게 지내면서 생태적 원리에 따라 사는 삶이다. 생태적 삶을 살기 위하여 생태학을 연구할 필요는 없다.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생태적 삶을 실천할 수 있다. 매일 매일 보내는 24시간 중에서 자연과 10분 이상 접촉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파트와 자동차, 지하철과 버스, 사무실, 식당, 시장 등에서 하루 종일 자연과 접촉없이 보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연과 접촉한다고 해서 돈이 되지는 않는다. 자연과 접촉하는 일은, 요즘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자가 되기 위한 전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루에 30분이라도 공원을 산책한다면, 당신은 다양한 나무와 풀과 벌레들을 만날 수 있다. 봄이 되면 가지가지마다 좁쌀같은 하얀 꽃이 다닥다닥 피어나는 조팝나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잡초 틈에 끼어 조그만 보라색 꽃을 피운 제비꽃을 발견했을 때에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면서 참 예쁘다고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친구들과 등산하면서 산길을 오르다가 숲속에서 속칭 홀딱새의 독특한 울음소리를 들을 때에 새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집에서 기르는 난초에 정성으로 1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고, 때로는 난과 대화를 하면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터넷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사무실에서 컴퓨터 화면에 따개비처럼 달라붙어 있다. 하루 종일 말하지 않고도 모든 업무를 엑셀과 아래 한글 그리고 e메일로 처리할 수 있다. 나도 요즘에는 강의시간 외에는 대부분 연구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게 된다. 전철에서 보면 젊은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아들 녀석은 저녁밥을 먹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스위치를 켜고는 부모와는 대화 한마디 없이 새벽 한 두시까지 인터넷 세상에 빠져 있다. 주말에 모처럼 산에 가자고 해도 따라 나서지 않는다. 인터넷은 재미있는데 등산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연과 멀어지면서 컴퓨터와 가까워지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대신 컴퓨터를 사랑한다. 이러한 모습은 생태적 삶의 모습이 아니다.
언젠가 독일에서 오래 산 친구를 만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독일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2배 이상 높은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더 검소하고 더 에너지를 절약하고 더 작은 차를 탄다. 또 그들은 명품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고 교육비 부담도 없다는데 그렇게 살면서 남는 돈을 어디에다 쓰는가? 그의 대답인즉 독일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는 부분은 여행과 문화생활이란다. 그들은 일 년 동안 일하여 여름휴가를 준비한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은 긴 여름휴가 동안에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은 돈을 쓴다는 것이다. 또한 독일 사람들은 그림을 감상하거나 음악회에 가서 연주를 듣거나 오페라를 구경하는 등 문화생활에 많은 돈을 아낌없이 쓴다고 한다.
우리처럼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 데에, 큰 차로 바꾸는 데에, 명품을 사는 데에 돈을 많이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음악회나 오페라 입장권이 매우 비싸지만 기꺼이 돈을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사람의 대가를 제외하고는 ‘가난한 예술가’라는 말이 맞지만 독일에서는 예술가가 대부분 소득이 매우 높다고 한다. (나는 공짜표가 아니고 내 돈 내고 예술의 전당 음악회에 가본 적이 없으니 우리나라 예술가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일상생활에서 텃밭을 가꾸거나, 새를 기르거나, 화초를 기르거나, 등산을 가거나, 골프를 치거나, 어떤 형태로든지 자연과 접촉할 때에 우리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알게 되고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매년 체험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변하는 것은 지구가 약간 삐딱하게 기울어져 돌기 때문이라고 과학자는 설명하지만 참으로 기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 봄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데, 눈 사이에서 제일 먼저 머리를 들고 돋아나 재빨리 노란색 꽃을 피우는 복수초를 바라보면 경이롭다. 파아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빨간 고추잠자리가 조그만 나뭇가지 끝에 앉아 있다가 가끔씩 그 커다랗고 둥그런 눈을 갸우뚱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귀여운 느낌이 든다. 하나뿐인 지구에서 소중한 생명을 받아 태어나서, 때로는 우주의 크기를 측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극미한 유전자 지도를 그려가면서 불가사의한 생명 현상을 조금씩 조금씩 밝혀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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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뭐꼬님의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에 나오는 홀딱새는 4음절로 독특하게 우는데, 이름은 검은등뻐꾸기입니다. 홀딱새라는 별명은 그 새의 울음소리가 "홀-딱-벗-고, 뭣-들-하-니"라고 들린다고 해서 붙인 재미있는 이름이지요. 홀딱새는 철새이기 때문에 이른 봄 잠간 나타났다가 남쪽으로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