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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3回 全國 漢詩公募展 要綱
올해는 임진왜란 발발 420주년이 되는 임진년(壬辰年)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과 그 기록들이 수호될 수 있었던 배경의 인물과 장소 등의 숨은 역사를 기리기 위해 2012년 제13회 전국한시 공모전의 시제(詩題)를 ‘용굴암(龍窟庵)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으로 정해 선인들의 발자취를 한시로 남기고자 한다. 임진왜란 후 성웅(聖雄)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이는 ‘만약호남이 없었으면 국가도 존속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정읍문화원은 그 배경에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一)과 초토사(招討使) 고경명(高敬命), 모의사(募義士) 김재민(金齋閔) 그리고 정읍의 선비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 등이 있어 우리의 역사가 지켜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번 공모전의 시제(詩題)를 ‘용굴암(龍窟庵)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으로 정했다. 뜻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參與)를 당부 드립니다.
1. 詩題 및 押韻 ○ 詩 題 : ‘용굴암과 조선왕조실록’ ○ 押 韻 : 看, 山, 間, 艱, 閒 2. 願書 提出要領 ○ 願 書 : 井邑文化院 所定樣式(2首 以上일 境遇 複寫 使用 可能) ○ 期 限 : 2012年 7月 31日까지(當日 도착 분까지 有效) ※ 作品解說은 반드시 첨부하시기 바랍니다(未添附時 考選에서 除外함) 3. 考選料 : 1人當 5千원(송금계좌번호 우체국 400853-02-030331 정창환) 4. 施賞 : 壯元 1名 × 1,000,000원 次上 1名 × 500,000원 次下 1名 × 300,000원 優作 12名 × 50,000원 佳作 50명 × 30,000원 相當의 文化商品券 5. 考選 : 斯界 權威者에게 委囑, 嚴正, 考選함 6. 入賞者 發表 : 2012年 8月 中旬(個別通報) 7. 施賞式 日時 : 2012년 11월 中旬, 場所 : 井邑文化院 2層 講堂 8. 詩稿集 發刊 : 運營委員會에서 發刊 및 配付範圍決定 9. ‘용굴암(龍窟庵)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參考事項 : 別紙參照 10. 其他 : 仔細한 事項은 井邑文化院 홈페이지(http://jeongeup.kccf.or.kr/) 또는 電子郵便 chans0007@hanmail.net, 팩스 532 - 8723 로 접수 및 問議. ♧ 주최 : 井 邑 文 化 院 ♧ 주관 : 全國 漢 詩 公 募 展 運 營 委 員 會 580-806 : 全北 井邑市 蓮池洞 252-151 井 邑 文 化 院 ☎ 063) 532 - 0222, 532 - 8723/팩스 063) 532 - 8723 ※ 參考事項: 入賞者 發表 및 施賞式은 本 文化院 事情에 따라 變更될 수 있습니다. ※ 정읍문화원 제5회 전국한문경전성독대회가 6월 9일(토) 개최됩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용굴암(龍窟庵)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이용찬(정읍문화원 사무국장) 현시대는 다민족, 다문화 현상이 어느 때보다 만연한 지구촌 시대다. 따라서 다민족, 다문화 현상에 대한 이질감 해소의 노력도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기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문화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먼저 그 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접근으로 시작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해당 국가의 공식적인 국가 기록은 무엇보다 먼저 설명되어야 할 주요 대상이다.
특히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1973년 12월 31일 국보 제151-1호와 제151-3호 지정에 이어, 1997년 10월 1일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나라 공식 국가기록으로 무엇보다 우선 설명되어야 하는 역사서다. 올해는 임진왜란 발발 420주년이 되는 임진년(壬辰年)이다. 하지만 아직도 임진왜란 초기, 조선왕조실록의 피난처인 용굴암 일대의 사암(寺庵)과 피난의 역사를 기록한 『수직상체일기(守直相遞日記, 또는 임계기사(壬癸記事)』와 피난 당시의 전말을 현장에서 지휘했던 정읍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나 국민적 관심은 모아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유구한 역사는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철저하게 왜곡되거나 소실되어 세계사 속에서 소명될 수 있는 자료가 충분치 못한 나라로 평가됐고 그래서 한국은 자료기근 국가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 다녔다. 하지만 1997년 유네스코는 우리나라의 공식 국가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을 세계기록문화유산 196건 중 하나로 지정했고 세계의 문화계는 그런 한국의 역사자료에 이목을 집중했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봉건사회는 늘 그 나라 역사의 주요 페이지가 되어왔다. 때문에 왕조시대를 거쳐 왔던 모든 나라들은 한국의 조선왕조실록이 사관들에 의해 전대 왕들이 평가된 기록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런 기록문화 유산들이 어떻게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들이 쏟아지게 했다. 그 중에서도 1592 ~1598년까지 2차례에 걸쳐 조선의 강토를 짓밟았던 임진왜란의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의 기적 같은 보존 사례는 모든 질문의 핵심이 되어왔다.
조선왕조실록의 초기 피난 과정에 대한 문헌 기록은 임진왜란 후 200년이 지난 1799년(正祖 23)에 간행된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과 그보다 30년 더 후인 1829년(純祖 29) 역시 비슷한 내용을 다룬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이 남긴 유집『이재유고(頤齋遺稿)』등에서 주요 내용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록들이 사실과는 달리 전란 당시의 전라감사(全羅監事) 이광(李光. 1541~1607)과 경기전(慶基殿) 참봉(參奉) 오희길(吳希吉1556~1623) 등의 관주도로 실록 피난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함으로써 정읍 내장산에서 지켜지고 보존됐던 역사적 사실들이 잊히게 되는 주된 원인이 되어왔다. 『호남절의록』의 조선왕조실록 초기 피란 과정에 대한 설명은 인명편의 내용에 등장한다. 주요 내용은 “윤길(尹趌)과 오희길(吳希吉), 그리고 정읍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 그리고 오희길의 후임인 참봉(參奉) 구정여(具廷呂) 등과 이들과 협력하며 승병(僧兵) 천여 명을 동원해 1차 피난지인 내장산 일대를 지키고 아산까지 험난했던 피난길을 호위(護衛)했던 승병장(僧兵將) 희묵(熙黙) 등의 공이었다.”는 기록이다.
『호남절의록』과 함께 조선왕조실록의 초기 피난과정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는 『이재유고(頤齋遺稿)』의 내용 중 실록 피난 기록은 “옛사람이 책을 감추는 데에는 명산과 고총(古冢)과 복벽(複壁: 겹벽)의 세 가지의 방책이 있었으니 그 일은 비밀리에 처리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가(史家)가 단군으로부터 삼국시대까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이는 반드시 병화로 없어진 것으로써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니, 이광 등도 그렇다 하고 공에게 일도(一道)의 심산험절처(深山險絶處)를 두루 찾으라고 부탁하였다. 또한 안의․손홍록과 함께 무인(武人) 김홍무(金弘武)등을 (중략) 적임자로 삼았다. 아울러 그의 수복(守僕) 한춘(韓春)등과 함께 밤낮으로 돌아다니다 드디어 정읍현(井邑縣) 남쪽 30리 내장산중의 절정에서 찾는 곳이 은적암(隱寂庵 또는 은봉암隱峰庵이라고도 함)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실록의 내장산 피난지형에 대해서는 “은적암이 사다리로 길을 끊었다 이었다 할 수 있으니, 오랜 계책으로는 더욱 좋겠다 하니, 이에 최철견․유인․홍기상․윤길이 함께 다시 가서 살피었다. 용굴대(龍窟臺 : 龍窟庵)에 이르러 보니 은봉암(隱峰庵)은 바라다만 보이고 오를 수는 없어서 오직 윤길만이 올라가 보고 바로 이곳에 옮기기로 의견이 정해졌다.”고 그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이 지점은 최근까지도 기름(油巖)바위가 위치해 있어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험절한 곳이다.
또한 이때 피난됐던 물목(物目)들에 대해서도 “제사에 쓰는 은기(銀器)와 사각(史閣)안에 있는 고려사(高麗史)와 형지안(形址案) 등 여러 서책(書冊)을 50여 우마(牛馬) 바리에 싣고 가는데, 실록을 먼저 용굴암에 안치하고 어진(御眞)을 다음에 봉안(奉安)하였다. 실록은 얼마 후 은적암(銀寂庵, 또는 은봉암(隱峰庵)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더욱 험절(險絶)한 곳을 골라서 비래암(飛來庵)으로 옮기었다. 9월에 용굴암에서 어진을 옮겨 다시 실록과 함께 모시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록과 어진이 지켜졌던 부분에 대해서도 『이재유고』에서는 “안의․송홍록 김홍무 등 3인과 승병장 희묵 등 4~5명과 근읍(近邑)의 무예 있고 날쌘 사람 100여명이 밤낮으로 암자를 떠나지 않고 지켰으며, (중략) 다행히 적이 깊숙이 들어오지 않아 어용과 실록이 함께 온전함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과 『이재유고(頤齋遺稿)』의 기록들은 실록의 초기 피난에 대한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지만 민감한 사안인 이안 날짜나 그 방법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고 『이재유고(頤齋遺稿)』의 기록처럼 “용굴암(龍窟庵)에서는 바라다만 보이고 오를 수는 없어 오직 윤길 만이 올라가 보고 바로 이곳에 옮기기로 의견이 정해졌다.”는 기록은 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실록 보관 터 역시 사적지나 중요한 역사적 장소로는 지정되지 못했다.
조선왕조실록 초기 피난 역사의 주요 일자는 물제(勿齊) 안의(安義)의 현장기록인 『수직상체일기(守直相遞日記)』에서만 이안 일자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 태인의 선비 안의에 대한『호남절의록』의 기록은 “대제학 문공지(大提學 文公止)의 현손(玄孫)으로 일재 이항문하에서(一齋 李恒門下)에서 수업(受業)하여 학식(學識)이 고명(高明)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태인의 선비 손홍록에 대해서도 “자(字)는 경안(景安)이요, 호(號)는 한계(寒溪), 본은 밀성(密城)이니 부제학 비장(副提學比長)의 증손(曾孫)이요, 한림숙로(翰林叔老)의 자(子)로 효우(孝友)가 출천(出天)하고 총혜(聰慧)가 과인(過人)하였으며, 일재 이항 문하에서 수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정읍 선비들이 수호했던 조선왕조실록은 호남상도의 큰 선생으로 실천유학(實踐儒學)의 조종(祖宗)이던 일재(一齋) 이항(李恒)이 공자의 현가불철(絃歌不輟)의 도맥(道脈)으로 재생들에게 태산가(泰山歌)와 자경문(自警文) 그리고 학불식만리자통(學不息萬理自通)의 강마 정신을 충실히 계승, 문(文)과 무(武)와 의(義)를 지도 했기에 국난의 상황에서 오늘 날 국보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항(李恒)선생은 하서(下西) 김인후(金麟厚)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등 당시의 명현들과 도의를 맺었던 당대 우리나라 최고의 거학(巨壑)으로 우국충정을 교육이념으로 세워 문·무를 지도했다. 그가 배출한 후학(後學)들은 임진왜란 당시 호남(湖南)을 지켜냈던 태인(현재의 정읍)의 선비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을 비롯해 김천일(金千鎰), 김재민(金齋閔), 변사정(邊士貞), 기효간(奇孝諫), 김복억(金福億), 박세림(朴世琳) 등 모두 54위의 후학들이며 이들은 대부분은 국난의 상황에서 조선의 안위를 지켰다.
당시 우리나라 연안 모든 해역의 제해권을 장악했던 성웅(聖雄) 이순신(李舜臣) 장군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이것은 ‘만약 호남이 없었으면 국가도 존속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 같은 언급은 1593년 7월 16일 그의 친구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쓴 편지에 수록된 내용이다. 정읍의 초대 현감을 거쳐 전라 좌수사로 부임했던 장군의 그 같은 말은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그나마 조선이 지탱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이 있었기 때문이고, 거기에는 호남의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一)과 초토사(招討使) 고경명(高敬命), 모의사(募義士) 김재민(金齋閔) 그리고 정읍의 선비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 등이 있어 우리의 역사가 지켜질 수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킨 말이다.
이에 정읍문화원은 국보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과 그 기록들을 수호했던 인물과 장소 등의 숨은 역사를 2012년 제13회 전국한시 공모전의 시제(詩題) ‘용굴암(龍窟庵)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으로 내걸어 지역 선인들의 발자취를 한시로 남기고자 한다.
뜻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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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특기사항
1) 응시료(考選料) : 1人當 5千원
2) 지상백일장 : 우편으로 원서 접수(응모)
정읍문화원에서 개최하는 성독대회도 상세한 대회일정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개략을 미리 공지하여 많은 분이 참가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성독을 어디서 공부해야 하는지도 안내하시면 좋겠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 사이트 등. 결례.
3만원을 받기위해서 5천원을 내라는 말씀!!!
감사합니다. 한시 공모전에 많은 참여 부탁드림니다.
참고로 성독대회 요강은 준비중에 있습니다.
선인들의 역사를 재음미해 보는 좋은 장이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