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자료[932]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5언절구題畵(제화)
題畵(제화)
백곡(柏谷)김득신(金得臣)
古木寒煙裏 (고목한연리)
찬 연기 속에 늙은 나무
秋山白雲邊 (추산백운변)
흰 구름 가엔 가을 산.
暮江風浪起 (모강풍랑기)
풍랑 일어나는 저녁 강에
漁子急回船 (어자급회선)
서둘러 뱃머리 돌리는 어부여.
* 漁子 : 어부.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이 있으니 자가 자공(子公)인데,
성품이 어리석고 멍청하였으나 글 읽기만은 좋아하여 밤낮으로
책을 부지런히 읽었다. 무릇 고문은 만 번이 되지 않으면 중지하지 않았는데,
백이전(伯夷傳)을 특히 좋아하여 무려 1억 1만 8천 번을 읽었기 때문에
그의 소재(小齋)를 억만재(億萬齋)라 이름하였으며, 문장으로 이름을 드날렸다.
낙엽진 고목에는 찬 안개가 감돌고 / 古木寒煙裏
쓸쓸한 가을 산에 소나기 흩뿌리네 / 秋山白雨邊
저무는 강물에 풍랑이 일어나니 / 暮江風浪起
어부는 서둘러서 뱃머리를 돌리누나 / 漁子急回船
金得臣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柏谷).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김치(金緻)이며,
어머니는 사천 목씨(泗川睦氏)로 목첨(睦詹)의 딸이고, 부인은 경주 김씨이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노둔한 편이었으나,
아버지의 가르침과 훈도를 받아 서서히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당시 한문사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의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공부할 때에 옛 선현과 문인들이 남겨놓은 글들을 많이 읽는 데 주력하였는데,
그 중 「백이전(伯夷傳)」은 1억 번(현재의 십 만 번에 해당)이나 읽었다고 하여
자기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이름 하였다. 저술이 병자호란 때 많이 타 없어졌으나,
문집인 『백곡집』에는 많은 글들이 전하고 있다.
그 중 시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문보다는 시에 능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오언·칠언절구를 잘 지었다. 「용호(龍湖)」·「구정(龜亭)」·「전가(田家)」 등은
어촌이나 산촌과 농가의 정경을 그림같이 묘사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시를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시를 보는 안목도 높아,
『종남총지(終南叢志)』 같은 시화도 남겼다.
이에는 어무적(魚無迹)·이행(李荇)·정사룡(鄭士龍)·정철(鄭澈)·권필(權韠) 같은
앞 세대 유명시인 등과 남용익(南龍翼)·김석주(金錫胄)·홍만종(洪萬宗) 같은
당대 문사들의 시를 뽑아, 거기에 자기 나름대로의 비평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가전소설 「환백장군전(歡伯將軍傳)」과
「청풍선생전(淸風先生傳)」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