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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그러나 여행지로서의 대마도는 생소한 편이다. 그저 부산에서 낚시꾼들이 자주 다니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마도를 여행하는 한국인의 수가 1년에 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나도 그중 1명의 일반 여행객이 되어 대마도로 떠난다.
대마도에 배를 타고 가려면 이곳 부산 국제여객 터미널을 통하여 가야 한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이 분비기 때문에 시간의 여유를 두고 가는 것이 주차장 등의 이용에 유리하다.
터미널 내에는 은행과 편의점 등이 있어 이곳에서 환전, 로밍 등의 업무를 볼 수 있다.
수속을 기다리며 잠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터미널 2층에 있는 면세점은 공항 면세점보다 규모가 작으며 그냥 슬쩍 구경만 하고 지나간다.
대마도가 가깝지만 그래도 외국이다. 이것이 없으면 출입국을 할 수 없다.
이곳 게이트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오션플라워호를 타기 위해 이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용두산 타워가 또 다른 멋으로...
우리가 타고 갈 오션플라워호...
오션플라워호 내부 모습, 배는 11시 10분에 출발하고 내 자리는 G열 14번...ㅎㅎ
배는 대마도 이즈하라항에 도착했다.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맞겠지. 시계가 없어 알 수 없다.
나를 이곳 이즈하라까지 태워다 준 이놈과 기념사진을 한 방 박고...
아래 사진은 수속을 마치고 아리아케산 등산을 위해 산행지 입구까지 도보로 이동하면서 바라본 이즈하라의 모습이다.
이 하천은 바닷물인데 생각보다 깨끗하였다. 물고기가 다니는 것이 보였으니까.
티아라 쇼핑몰이라는 곳인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고려문과 통신사 비가 있는 이곳을 통하여 산행은 시작되었다.
쓰시마번은 임진왜란 후 조선과의 국교회복을 위해 전력을 다하였고 그 결과 약 200년간(1607~1811) 12회에 걸쳐 통신사 사절이 일본을 방문하였다. 통신사의 방문으로 이루어진 활발한 교류와 우호 관계를 21세기 한일우호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1992년에 이 비를 세웠다고 한다.
같이 간 일행 한 분이 이게 무슨 말이고 하고 묻길래 나는 답을 못했다. 그래서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된다. 아래와 같이...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이란 “나라와 나라사이의 교역은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시작해야한다.” 것으로 아메노모리 호슈가 쓴 “교린제성”(交隣堤醒 : 이웃 나라와의 교제에 있어서 잊어버린 것을 깨우친다.)책의 핵심 내용이다. 아메노모리 호슈(일본어: 雨森芳洲 1668년~1755년)는 에도 시대 일본의 의사이자 주자학 계열의 유학자이다. 한문, 조선어, 중국어에 능통했으며, 조선 무역의 중개 역할을 하던 쓰시마 번에서 외교 담당 문관으로 활약하였다. 일본 최초로 조선어 교과서인 《교린수지》(交隣須知)를 집필하였으며, 전문 통역관으로서 통역양성학교도 설립하였다. 대등한 외교관계를 강조했으며, 양국 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우삼동(雨森東)이라는 조선식 이름을 사용했다. 일본에서도 잊혀져 있던 아메노모리를 재발견한 사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1990년 5월 방일 당시 국회 연설에서 성신외교 정신을 인용하며 한·일 우호를 강조한 것이다.
아리아케산을 오르며 내려다본 이즈하라 전경
이곳 성터를 지나면서 쉼 없이 곧바로 정상으로 향한다. 산의 모습은 내려오면서 카메라에 담기로 하고...
정상에서 인증 샷
정상의 모습은 우리고장 천주산과 비슷...
조망은 별로...
8부 능선 정도 되는 곳에는 동백나무와 비슷한 나무들이 많이 있다.
입구에서 중간 5부 능선까지는 편백 종류의 나무들이 쫘~~악
생명을 다한 고목 ...
전체적으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산행에 문제는 없었다.
산행을 마치고 들린 비극의 여인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조선왕조 고종의 딸 덕혜옹주는 제국주의 일본의 정략에 의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일본의 쓰시마 번주 타케유키 백작과 결혼하여 딸 종혜까지 보았으나 1955년에 파경을 맞았고 1961년에 귀국,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그가 결혼했을 때는 쓰시마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 기념비를 세워주었다.
이곳은 대마도 영주의 성으로 에도시대 때 성은 허물어지고 지금은 복원된 성문만 남아있다.
니폰 사꾸라!!
첫날 산행과 관광은 여기까지 하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마트에 들려 저녁에 먹을 간식거리를 몇 분과 같이 구매 우리나라 E와 홈+ 식품코너와 비슷하였으며 가격대도 한국과 비슷
숙소에 들어와 저녁 식사 때 먹었던 것.
방으로 들어와 마트에서 사온 이놈들을 칼질하여...ㅎㅎ
둘째 날 아침 식사 후 첫 관광지는 가미자카 공원이었다. 해발 385m에 있는 이 공원은 일본을 대표하는 리아스식 해안인 아소만이 눈 아래 펼쳐지며 멀리 규수 본토와 한국의 산들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 날씨가 영 아니다.
아래 사진 이곳은 만제키바시이다. 1900년에 일본 해군이 함대통로로써 인공적으로 땅을 판 해협에 다리를 세웠으며 이는 현재 둘로 나누어진 대마도를 이어주는 교통의 중요 시설이 되었다. 위에서 보는 바닷물은 조류가 빨라 강물 같이 흘러갔으며 밋밋할 뻔했던 그림이 때마침 지나가는 선박이 있어 그런대로 어울리는 그림이...
아래는 에보시타케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소만이다. 육지의 침강으로 생성된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그 굴곡미는 대마도 자연경관의 백미로 일컬어지며 질 좋은 대마도 진주가 여기서 많이 난다고 한다.
에보시타케 전망대 다음으로 간 와타즈신사이다. 이곳은 바다의 신을 모신 해궁으로 용궁 전설이 남아있다. 본전 정면의 다섯 개 도리이중 바다 위에 서 있는 도리이는 조수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뀌어 잔잔한 아소만과 어우러져 신화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데 다행히 우리 탐방 시간 때가 좋아 물에 잠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늦은 점심을 우동과 함께 김밥 2개, 유부초밥 2개, 회 2점, 더 달라고 하면 추가 계산한다는데... 근데 이 양으로 배가 든든하였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곳 한국전망대에서 부산이 보이며 대마도 최북단 가미쓰시마에 있다. 한국의 이미지를 담아 만든 이 전망대는 팔각정 건축물로 서울 파고다공원에 있는 정자를 모델로 전문가를 초빙하여 한국산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선국역관사순난비 1703년 음력 2월 5일 아침, 부산항을 출항한 배 3척이 있었다. 정사 한천석, 부사 박세양을 비롯한 108명의 역관사(통역관) 일행이 탄 사선과 쓰시마번의 책임자 야마가와 사쿠자에몬이 방문을 위해 보내준 자신의 배와 예인선이었다. 출항 당시에는 날씨가 좋아 순풍을 타고 순조롭게 항해를 하고 있었으나 정오가 지난 후 기상이 급변하여 3척 모두 좌초되고 말았다. 사고가 나자 당시 쓰시마번과 마을 사람이 구조와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도착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와니우라 앞바다에서 전원이 사망하는 비참한 해난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로부터 380여 년 뒤인 1991년 3월 20일 한일건립위원회가 이국의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역관사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조난 현장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한국전망대 바로 옆)에 추모비를 세웠다고...
일본의 해변 100선에 선정된 미우다해수욕장을 높은 도로에 내려 바라본 모습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별로...
미우다해수욕장 탐방을 마치고 우리가 타고 다닌 버스는 이곳 히타카쓰항에 우리를 내려주고 돌아갔다.
일본 배 비틀인데 후쿠오카에서 대마도를 경유하여 부산으로 가는 것 같다. 저 배가 떠난 후 4시 30분에 우리는 바다꽃 오션플라워호를 타고 부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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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카~~
멋져요
잘 보고 갑니다.
농어 사시미 칼맛이 최고였습니다 ㅋㅋㅋ 알면 알수록 안타깝고 슬픈 역사를 간직한 섬 대마도, 또 한번 상륙계획을 세워 봅니다...멋진사진들 잘 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언제 이렇게 많이 찍었수? 역시 찍사는 달라 ..요것만 봐도 대마도는 안가도 되겠습니다.
공부한 만큼만 보이는게 역사탐방이라고 하더만 난 당췌 뭔 말인지 모르겠슴다^^
물수리님! 좋은사진, 좋은글 고맙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대마도 두번째 여행!
같은 곳 다른 느낌!!
좋은 분들과 함께한 여행 좋은 추억으로 남깁니다.^^
사진 잘 보고 갑니다.
대마도의 역사탐방과, 사진 잘보고 갑니다.^^
좋은 추억이 돼겠네요....
와우.. 정말 멋지게 잘 담으셨네여..ㅎ
자연을 보호하려는 그네들의 마음이 읽어지는 게,,
자연조건이 그럴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제 마음을 숙연케 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