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馬)이 있었다. 이 말은 본래 혈통이 좋은 천리마이지만 보통 말과 함께 자랐다. 한 번에 천리를 갈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보통 말만큼도 달릴 수 없었다. 다른 말보다 많이 먹는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항상 먹이가 부족하여 제대로 힘조차 쓸 수 없었다. 사육사는 말들을 돌아보며 불평했다. 어찌하여 이 중에는 천리마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이것은 중국 당나라의 문인 한유(韓愈)의 「잡설(雜說)」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는 글 말미에 ‘참으로 천리마가 없는 것인가? 참으로 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는 우리 교육현장에서도 통하는 질문이다. 진짜로 아이들에게 재능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어른들이 아이들의 재능을 키워주지 못하는 것일까?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내릴 필요가 있다.
교육(敎育)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르치고 기른다는 뜻이다. 여기서 가르치고 기른다는 것은 지식을 전수하는 것뿐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지식을 잘 활용하는 방법, 심성을 올바르게 갖도록 하는 것 등도 포함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의 기본 정신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입시와 성적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인문학과 예체능 교육이 등한시되면서 올바른 인성을 기를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또한, 협동과 화합, 관계능력을 상실하면서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 등이 사회문제로 증폭되고 있다. 학교는 가장 기본이 되는 교육기관이자 교육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 문제는 학교에서부터 해결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학교는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
꿈과 끼를 살려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
학생들은 서로 다른 다양한 재능과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공부의 목적은 모두 명문 대학에 진학하여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학생들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른들의 희망과 사회적 편견이 개입된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학교 수업은 대학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학생들은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어른들의 요구에 맞추기도 버겁다.
학습에 의욕이 없는 무기력한 아이들이 절반이 넘는다는 조사결과가 학교현장에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는 학생들에게 꿈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꿈을 꿀 여유조차 없다. 꿈과 목표가 없으면 자기주도적인 학습과 생활 또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학생들 개개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인 만큼,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 꿈과 재능에 맞는 진로와 직업을 찾아낼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사 개인에게만 맡기기에는 버거운 일이다. 이 때문에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학교의 울타리는 좀 더 넓어져야 한다.
꿈과 끼를 기르고 진로를 찾는 교육에 있어서 필요하다면 지역 사회와 기업, 예술 단체 등의 기관들이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가 함께 제공하는 다양한 체험활동은 교사들로 하여금 교실에서는 알 수 없는, 학생들의 잠재력을 찾아낼 수 있게 하고, 학생들에게는 삶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준다. 학교와 사회 각계각층의 모든 구성원들이 교육에 참여한다면 학생과 교사 모두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것이다. 또한, 사회 각 기관에서는 미래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어 서로 공존하며 보다 더 밝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함에 따라 직업의 세계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른들은 과거 경험에 의한 선입견을 버리고 아이들의 꿈과 끼를 살려주어 미래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토대로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작게 보면 지나친 사교육 의존으로 생기는 문제점과 교실 붕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되고, 크게 보면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가는 학교
정보화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다. 컴퓨터와 휴대폰 등 전자기기의 기술 발전으로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 필요한 정보만 선별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정보 활용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작문이나 프로젝트 과제를 시켜보면,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데 활용하기보다 무분별하게 짜깁기해 놓은 경우가 적지 않다. 토론의 경우, 기존의 견해를 그대로 전달할 뿐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초·중·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은 모두 합쳐도 CD 한 장을 다 못 채운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은 아직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보 활용과 창의력이 중시되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찾아 활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 내는 능력을 기르는 데 보다 더 힘써야 할 것이다. 교육방식이 바뀌면 평가방식 또한 바뀌는 것이 필연적이다. 학교는 얼마나 지식을 축적했는지에 대한 여부보다 지식의 활용 능력과 창의력을 평가하여 새로운 지식의 개념으로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그 지식이 학과 공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또 이를 토대로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 알게 되면 학생들은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고, 학습태도는 더욱 능동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정보와 지식 활용 능력 위주의 공부는 학생들의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지식관의 변화에 발맞춰 학교는 삶에 꼭 필요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면서 더 나아가 스스로 지식을 찾아 활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능을 해야 할 것이다.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학교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지식은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또는 사회활동 등의 경로를 통해 학습하게 될 것이며, 학교는 사회보다 늦게 변하기 때문에 소외되거나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개인의 특성에 맞는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학교교육 외의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학교는 온라인이나 사교육에서 하지 못하는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면서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곳은 학교가 유일하다. 어찌 보면, 이것이 학교가 지금까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겠다. 인문학과 예체능 계열의 과목은 입시에 필요한 성적을 낼 때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인문학은 올바른 심성을 기르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예술과 체육의 경우,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며,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완충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근 일고 있는 인문학 공부 열풍은 답답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근본적인 답을 얻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인문학 토론 모임은 청소년층 사이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삶의 가치나 인생의 목표 등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입시에 대한 압박감을 이겨내는 수단으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인문학은 삶을 성찰하게 하여 인성교육에 효과적인 한편, 다양한 분야와도 연결시킬 수 있다. 남미 빈민촌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 프로젝트는 예체능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절망과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아이들은 오케스트라를 통해 화합과 책임감을 배웠고, 꿈과 삶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인문학과 예체능 교육으로 학생들의 심성을 다스리고 협동심을 기르는 데 성공했다는 사례는 언론 매체에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학교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여 인문학과 예체능 교육을 강화시켜 남과 더불어 살아가며,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예술과 체육을 즐기며 평생 삶의 가치와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학생들이 더욱 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초·중·고 학교교육이 위의 본질에 충실하려면 성공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성적과 성과 위주의 학력관과 입시제도, 학벌중심주의를 타파하여야 한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에는 여러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는 학교와 사회가 교육을 위해 의기투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와 사회가 함께 나서서 학교교육의 목표를 재설정하고, 미래학교의 비전을 공유하며, 참여와 지원 분위기를 확산시킨다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말(馬)의 해이다. 학생들의 재능은 천차만별이고 평가기준도 하나가 아니기에 누가 천리마의 자질을 타고났는지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러나 누구든 잘못된 교육 방식 때문에 그가 가진 능력이 묻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학교교육의 큰 변화가 필요하다. 힘차게 도약하는 말(馬)처럼 우리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