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창작의 실제 〔시조시인 16인이 말하는 시조작법〕
■ 나의 시조 이렇게 썼다.
13․ <해남에서 온 편지>와 <한국의 가을> / 이지엽
1.
낮은 산들과 구릉, 아슬히 넘어가는 길들, 층층이 구불구불 이어나간 논 다랑이, 그 사이
마치 초록과 대비를 이루듯 점점이 박힌 황토의 짙은 주황 빛깔… 南道는 이런 것들 때
문에 마음마저 풍요롭고 신선하다. 수시로 나서는 답사길이건만 이 다정스러운 것들과의
만남은 늘 내게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광주의 무등산 자락 광주댐을 끼고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면앙정, 송강정도 그 운치가 그만이지만 강진의 다산 초당, 천일
각에서 바라보는 구강포와 그 호젓한 산길을 넘어 백련사와 영랑 생가, 해남 연동의 고
산 유적지 녹우당과 대흥사, 보길도의 세연정과 정도리 검은 돌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의 정겨움과 깊은 맛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아는 것만큼 느낀다고 하던가.
그래서 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답사를 나서면 나는 이들에게 한 가지라도 더 일러주기
위해서 안달이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욕심을 내어 무리하게 일정을 강행하다보면 여
유가 없어지게 되고 호젓한 산행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나 또 너무 느슨하게 부
려두면 아예 놀자판이 되어서 종국에는 어디로 이동하는 것조차 원성(?)을 듣기 십상이
어서 그 적당한 수위를 눈대중하는 것이 기분 좋은 답사의 관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눈대중이 없던 교수 초년병 시절 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강진 곳곳을 들러 해남 송
호리 해수욕장을 지나 우리나라에서는 노을이 가장 빼어나다는 사구미 해안가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학과 학생 중에 수녀가 있었는데 이 학생이 조심스레 다가와서 집이 이 근
처인데 들러가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지나는 길목이어서 그 수녀의 집을 들르기로 하
였다. 그러나 정작 집에 들어서고 보니 가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노모 한 분만 있는 것
이었다. 어떻게나 반갑게 맞이하는지……. 오래된 한옥 건물이었고 뜰에는 나무와 꽃들
이 빼곡하게 마치 하나의 숲을 이루듯이 무성하였는데 푸릇한 기운과 화사한 형형의 색
깔들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토방에 걸터앉아 넋을 잃고 할 말도 잊은 채 물끄러
미 그 풍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밭으로 이어지는 곳에도 진달래
와 철쭉꽃들이 만발했고 그 길은 연하여 밭이 끝나는 구릉까지 연결되고 있지 않은가.
그 길을 우리는 걸어가며 '오메메 이것 쪼간 봐바라' 서로 보라고 야단이며 모두가 들
뜬 아이들처럼 신이나 웃음꽃을 피웠다. 밭이 끝나는 구릉에서 우리는 또한번 그 절묘한
풍광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곳에서 바로 보이는 바다는 쪽빛 그 자체였다. 시린 그
물살이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출렁거렸다. 기어코 마다해도 쌀과 깨 등속을
노모는 주렁주렁 담아 챙겨 주었고, 거기에다 아직 열매가 열지 않는 남천나무 몇 그루
와 동백나무, 상사초를 싣고 우리는 일정 때문에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거기
에서 보낸 시간들은 가슴 속에 한동안 남아 있었다. 전해들은 얘기로는 수녀의 아버지
되는 분이 꽃과 나무를 너무도 좋아해서 집 안팎에 그렇게 갖가지 식물을 심게 되었다
는 것이다. 과일만해도 감, 사과, 귤은 물론 약간의 키위까지 재배하고 있었다. 쪽빛 바
다와 지천으로 널린 꽃들과 주글주글한 노모와의 만남…. 그 감흥이 아물아물 잊혀져갈
무렵 집에와 심은 상사초가 죽어간다 싶더니 어느 날 저녁 금빛 꽃대를 가늘하게 밀어
올리며 피어났다. 그 눈부심이라니. 나를 달뜨게 한 그것도 잠시 망각은 아주 빠른 것이
어서 나는 다시 일상에 쫒기면서 잡지와 작품과 강의에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다음해 화창한 봄날이었다. 출근하여 연구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이제 푸릇푸
릇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교정을 유리창으로 내려다보면서 어느 새 이렇게 환한 봄이
이렇게 곁에 와 있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좀체 연구실에는 나타나지 않던 수녀가 밝게
미소지으며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컵에 포도즙을 한 잔 따라서는 내게 건네며 이
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무이가요. 오늘 아침에 전화를 했는디, 꽃이 활짝 피어서 너무 보기 좋다고 안하요…
한 번 댕겨가라는 것 같은 디…'
수녀는 이 말을 채 맺지 못하고 연구실 밖으로 이내 나가버렸다. 나는 한동안 생각이 정
지된 듯 그대로 앉아있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피어 있
는 꽃들을 혼자 보고 있는 노모의 주름진 얼굴, 그 꽃들의 각양각색 아름다운 모습을 딸
에게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으면 전화를 걸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싸늘한 전율과
안타까움이 머리를 관통하여 발끝까지 싸하니 훑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
던 것이다. 이러한 체험이 결국 <해남에서 온 편지>를 쓰게 만든 동인이 되었지만 정작
작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에는 또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흐르게 되었다. 수녀가 졸업하
고 졸업식 날 나는 전보다 훨씬 더 늙어버린 노모와 기념촬영을 하고 수녀가 서울의 어
느 복지원으로 옮겨간 후 다음 해 봄날 나는 또 망연히 창가에 서서 오는 봄날의 기운
을 느끼면서 노모의 심정이 되어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어 <해남에서 온 편지>
를 쓰게 된 것이다.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깐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만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냐 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란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서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다 제금 나고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해남에서 온 편지>
나는 이 작품을 쓰면서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서사를 가미한 사실성이
었고 다른 하나는 재미성을 가미한 극적 반전이었다. 전자를 위해서 남도 사투리의 질박
한 부분과 사투리로써 정말 묘미 있는 표현들 (그러냐 안, 전디다, 끈하다 등)을 최대한
살려 쓰고자 노력했다. 후자는 구성면인데 시대상황의 재구성(IMF와 오래비의 오지 않
음, 종신서원의 비극적 상황)과 종장의 극적 묘미에 심사숙고하였다. 발표되자 지우인
한양대 정민 교수는 붓글씨로 전문과 함께 그 애틋함을 보태어 적어 보내주었고, 서울대
장경렬 교수는 세미나에서 하이라이트로 이 작품을 올려 복사꽃처럼 환한 봄날의 시조
시대가 오고 있음을 극찬해주었다. 어줍잖게 수상까지 하게 되었으니 나는 그 노모에게
미안하고 김활란 수녀에게도 빚을 진 셈이다. 수상식장에서 홍성란 시인이 이 작품을 낮
은 톤의 차분한 음성으로 낭송을 구성지게 하여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2.
더위가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 초가을 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포스코 신문이었다.
원고청탁 전화인데 추석에 맞추어 나갈 시 한 편을 보내달라는 거였다. 조건이 붙었는데
가급적이면 시는 여섯 줄 이내였으면 하고, 한가위에 어울리는 시면 좋겠다는 거였다.
나는 순간 당혹스러웠다. 두 가지 조건이 까다로웠을 뿐만아니라 그만한 시로는 익히 <
옛 마을 지나며>와 <추석 무렵>이라는 명편의 시가 있기 때문에 그만한 작품이 아니면
같은 소재로 모험을 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최고의 원고료를
주는 곳인데 돈 욕심 반(?) 글 욕심 반으로 하는 데까지 해 보마고 반승낙을 하고 말았
다. 정말 이에 걸맞는 시 한편을 써보리라 작정하고 시간을 틈틈이 쪼개어 한 줄씩이라
도 써야겠다는 의무감에서 매일 출․퇴근길에 한 대목씩을 생각하게 되었다. 맨처음 가
을과 연계되어 떠오른 이미지는 어머니였고 좀 선이 굵지만 크게 생각하여 첫 구절을
'우리 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라고 잡았다. 이어 둘째 줄에는 추석의 보름달
과 대표적 놀이인 강강술래를 연결하여 '가응가응 수월래 보름달은 떠오르고'로 하였으
며 셋째 줄은 '단풍든 마음들 따라 어머니 곁에 모입니다'로 하였다. 그러고 보니 시보
다는 시조가 적합하리라 생각했고 근 스무날 가까이 지나 다음과 같이 두 수의 시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우리 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가응가응 수월래에 보름달은 떠오르고
단풍든 마음들 따라 어머니 곁에 모입니다.
…니가 애썼다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
무릎 꺾인 사랑들이 옹기종기 모닥불 쬡니다.
붉은 감 한 톨에도 천 년, 소슬 바람이 지나갑니다.
둘째 수 초장 그러니까 넷째 행은 어머니가 객지의 아들에게 보내는 위로이고 '무릎 꺾
인 사랑'은 실직이나 실연 등 세상사의 고단함을 암시하는 부분으로 고려해 넣게 되었
다. 마지막 줄은 꽤나 고심을 했는데 아주 작은 것을 통해 아주 큰 것을 보는 이를테면
시적 관찰→거시적 상상력을 가져오는 수법을 활용해 보기로 작정하였다. 사실 한 편의
시에 대한 감동은 미세하고 가늘 한 것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떨림이 기초가 된다. 추상
과 관념은 공허한 것이며 어떠한 시적 감동도 가져오지 못한다. 대표적 가을의 한 형태
를 붉은 감 한 톨에서 우리는 볼 수 있으며 그 곳에는 우리 모두의 지나간 역사, 千年의
세월이 충분히 담길 수도 있는 것이리라. 제목은 사실적 정황이 밑그림을 그리고 있으므
로 <한국의 가을>로 잡았다. 웬만하다 싶어 그냥 보내버릴까 하다, 시 창작 시간에 이
작품을 칠판에 적고 그 동안의 창작 과정을 설명했다. 학생들은 여간 신기해 하는 게 아
니었다. 교수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더구나 처음의 구성 단계부터
한 문장 한 글자씩 고쳐진 과정을 설명하니 피부적으로 와 닿았던 것이리라. 그러면서
표현상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지적해보라고 했더니 '모닥불 쬡니다'라는 부분이 시기상
추석과는 맞지 않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강변을 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일리
가 있어 다시 초고의 작품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다시 시작하였다.
① 조금 더 탄력과 긴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
② 연결을 좀더 자연스럽게 하도록 할 것.
이 두 가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위해 둘째 줄과 넷째 줄
을 수정하기로 하였다. 둘째 줄은 춤추는 동작과 달 떠오르는 장면을 따로 따로 기술하
는 형태였는데 이의 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응가응 수월래에'를 춤추는 동작이 아
닌 달뜨는 장면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서서 보름달을 앞에 배치하여 '보름달
은 가응가응 수월래에 떠오르고'로 하였다. 묘미는 더 살아났으나 걸음이 조금 불완전하
여 '보름달은'을 '강물 끌고 달은'으로 고쳐놓고 보니 더 이미지가 선명해지고 걸음도
더 안정을 찾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들 따라'도 '마음 하나 둘'로 바꾸고 '어머니'의
중복이 마음에 걸려 '단풍이 모이는 곳' 인 동시에 고향을 찾아가는 모든 이의 마음의
고향을 상징하는 단어를 찾아 '어머니 곁에 모입니다'를 '마당 귀로 쌓입니다'로 하였
다. '모닥불 쬡니다'는 학생들의 지적도 지적이지만 결정적으로 다음 행과의 연결도 부
자연스러운 면이 있어 앞, 뒤 각 行이 연결되도록 다시 말해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과
바람이 지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기 위해 몇 날을 고민한 끝에 '물소리
에 귀 맑힙니다'로 고치게 되었다. 맑혀진 귀에 감나무 가지 끝의 바람소리가 어우러지
니 앞뒤의 조응이 일치를 본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감이 왜 '알'이 아니고 '톨'이여야
하는 가에 대한 공격도 있긴 했지만 이 점에 대해 나는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톨'을 '알'로 바꾸어 놓고 율독해 보면 붉은 감 하나의 외로운 이미지나 느낌이
반감되어버리므로 '톨'로 해야할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었고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같은 의견이다. 결국 여섯 줄의 이 시는 한 달이 훨씬 지나서야 다음과 같이 완
성되었다.
우리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강물끌고 달은 가응가응 수월래에 떠오르고
단풍 든 마음 하나 둘 마당귀로 쌓입니다
…아가 힘들지야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
무릎 꺾인 사랑들이 물소리에 귀 맑힙니다
붉은 감 한 톨에도 천 년, 푸른 바람이 지납니다
<이지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