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053]安分堂선조시 謁陶山(알도산)
원문출처= 安分堂遺集 券之一 詩七言
謁陶山(알도산)- 陶山書院 尙德祠 도산서원 상덕사에 배알하다.
尙德祠= 도산서원 제일 뒤쪽에 있는 상덕사는 이황 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 선조 7년(1574)에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 수리한 것이다.
안분당 鄭師夏
陶山以重退翁居 도산이중퇴옹거
聞已多年見則初 문이다년견즉초
最是箇中奇絶處 최시개중기절처
天淵臺上玩鳶魚 천연대상완연어
퇴계께서 머물러 도산을 중시하니
여러해 들었어도 뵙기는 처음이네
정말로 그중에 빼어 난 자리.
천연대가에서 솔개와 물고기를 완상하네.
字句해설
陶山도산 = 영남 유림(儒林)의 중추, 도산서원(陶山書院)
퇴계의 선비정신 깃든 성리학 교육의 성지
안동지역이 고려 말 조선 초 유학자의 학맥이 이어져
영남지역 사림의 본고장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는
16세기를 거치면서이다. 이 시기는 안동, 예안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당대의 대유(大儒) 퇴계 이황의 학문 활동과 제자 양성,
서원 건립의 노력이 두드러지는 때이기도 하다.
그 문하에서 유성룡(柳成龍), 김성일(金誠一)과 같은 석학들까지 줄줄이 배출됨으로써
이 지역은 조선의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추로지향이란 공자와 맹자의 고향을 의미하는데,
그만큼 이황이 조선 성리학과 사림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급기야 16세기 후반 조선의 정계와 학계를 주도했던 사림들은 대부분
이황의 문하를 출입하다시피 하였다 할 정도가 되었고, 이황이 우거하던 도산서당과
그 일대는 자연스레 많은 유학자들이 모여드는 학문적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황 사후인 1574년(선조 7년)에 그가 머물던 도산서당 뒤로
도산서원이 창건되어 사액되고, 안동의 여강서원에 이황의 위패가 봉안되면서
이 지역은 명실상부하게 조선 시대 영남 유림의 정신적 중추가 되었다.
도산서원이 위치한 지역은, 말년의 이황이 은거하며 제자를 교육하고
그 사후 문도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면서 퇴계학의 본산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황에 대한 이러한 존숭 의식은 지역사회에서뿐 아니라 유림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었으며, 조선 후기의 유림은 도산서원을 한 번쯤은
와 봐야 할 명소로 여기게 되었다.
以重=무겁게 여기면서.
退翁퇴옹= 퇴계 이황.
聞已문이=이미 들었다.
多年다년=여러 해.
見則견즉=보면.
最是최시=가장 좋은.
箇中개중=그중에. 箇=낱 개.
奇絶기절= 매우 신기함. 극히 기이하다.
天淵臺천연대=도산서원 양편 산기슭에는 절벽이 있는데,
퇴계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하여 산책하던 곳이라 한다.
퇴계는 동쪽 절벽을 천연대(天淵臺), 서쪽 절벽을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라 불렀다.
천연대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라는
연비려천 어약우연(鳶飛戾天 漁躍于淵) 구절에서
하늘 ‘천’과 연못‘연’을 따서 지었다.
천광운영대는 주자(朱子)가 지은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시에 나오는
‘하늘과 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감도는구나’ 라는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空排徊)’ 구절에서 이름을 지었다.
두 이름 모두 주변의 절경을 나타내고 퇴계가 말년에
이곳에서 자연의 이치를 벗삼아 학문을 성취하려던 뜻을 담고 있다.
玩= 사랑할 완, 희롱할 완
鳶魚연어= 鳶飛魚躍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오르고, 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르네.
〔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말이 있는데,
《중용장구》 제12장에서 이 시를 인용하여
군자의 도(道)의 용(用)이 상하로 드러난 것으로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