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ing grace’
유수 설창환
인생을 살아가는 자체가 놀라운 은혜이다. 우주에는 셀 수 없는 별들로 가득하고, 이들은 각자의 존재 이유를 가진 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또한, 그 많은 별 중에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하고, 바로 여기에 내가 살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이 오늘도 질서정연하게 운행되고 있고, 지구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끊임없이 조성되고 있다. 햇빛과 물, 산소 등은 우리 생명의 원천이리라.
오래전, 군 복무 시절, 알파 벙커에 조원들 10여 명이 작전 대기 중이었다. 마침 방공포대 본부 소속 감찰관이 점검차 우리 부대를 방문했다. 부대원들은 잔뜩 긴장하였지만, 나는 제대를 한 달여 남겨 놓은 말년 병장이라 군기가 빠져 조원들을 각자 위치에 배치해 놓고는 긴 의자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후배들이 다급히 깨워서 눈을 떠 보니 바로 앞에 낯선 대령이 서 있지 않은가. 얼마나 놀랐던지 급히 일어난다는 것이 그만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본 대령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우리 포대장을 향하여 이놈을 당장 영창 보내라고 고함친다. 제대를 코앞에 두고 이 무슨 날벼락인가. 영창 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였다. 그런데 우리 포대장의 선처로 나는 무사히 제대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감사하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 중에 ‘놀라운 은혜’라는 곡이 있다. ‘Amazing grace’이다. 이 곡은 노래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곡으로도 인기가 높다. 작사자는 존 뉴턴이며 작곡은 미상이다. 일설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쪽의 민요의 선율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이 곡을 좋아하기에 가끔 노래도 불러 보고 악기로도 연주하곤 한다.
이 곡의 가사를 쓴 뉴턴은 11살 때부터 선원인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으며 특히 흑인들을 수송하는 노예무역에 종사했다. 당시 수송선의 위생 상태는 지극히 열악하여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노예가 되어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뉴턴도 처음에는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였으나, 후에 한 사건을 통해 생각이 바뀌게 된다. 선장이 되고 어느 날 항해 중에 큰 폭풍우를 만나 배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다급한 마음에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 배는 기적적으로 폭풍우를 벗어나 무사히 귀항할 수 있었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날을 두 번째 생일로 여기고 노예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1755년에 성공회 사제가 되었고 얼마 후에 ‘Amazing grace’ 가사를 썼다. 흑인 노예무역에 관여한 모든 죄를 깊이 회개하고, 재산 전부를 자선 단체에 기부하였으며,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이 노래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퍼졌고, 심지어는 인디언들도 애창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문명화된 인디언 부족 중 하나인 체로키 부족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마치 그들의 애국가처럼 말이다. 1838년에 미국은 인디언들을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동부지역에 거주하던 그들을 2,000km나 되는 서부의 오클라호마주로 이주시켰다. 말이 보호이지 감금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이 과정을 ‘눈물의 길’이라 부른다. 15,000여 명이 출발했으나 이동 중에 무려 4,000여 명이나 사망할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힘과 용기를 얻을 에너지가 필요했고 이 노래를 부르며 위로받고 견뎠다.
체로키인의 노래를 들어 보면 그 발음이 우리 말과 매우 유사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이들은 고조선의 후예들이며 부여와 발해가 멸망한 후 많은 유민이 베링해협을 통해 아메리카로 건너갔다고 한다. 결국 그들의 언어는 우리 말이며 그들의 얼굴 모습이나 풍습도 우리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나는 옛날부터 인디언들을 보면 막연히 우리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Amazing grace’는 인디언을 핍박한 미국인들도 많이 부른다. 개인의 취향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에서도 자주 부른다. ‘911테러 기념식’, ‘총기 테러 사건 기념식’ 때에도 어김없이 이 노래를 불렀다. 이보다 훨씬 이전, 미국 남북전쟁 때에도 남북 군인 모두가 이 노래를 군가처럼 애송했고, 흑인 시민운동과 반전 운동 때도 불렀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놀라운 은혜! 얼마나 달콤한 소리인가 나 같은 죄인도 구원해 주셨네.
이전에는 길을 잃었으나 이제는 길을 찾았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으나
이제는 광명을 얻었네” (1절 가사)
돌아보면 나의 삶도 모든 것이 놀라운 은혜이다. 내 힘으로 살아온 것 같지만,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고 특히, 신과 자연의 도움도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지구는 인간의 욕심으로 갈수록 훼손되어, 우리는 코로나 같은 전염병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과 다정한 이웃 그리고 자연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