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세이 4>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
심영희
유년시절에는 연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내 고향엔 연꽃이란 자체가 없었다. 중학생이 되어 강릉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연꽃도 보았고 목련꽃도 보았다. 연꽃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효녀 심청이를 떠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에 심청이가 인당수의 연꽃 속에서 환생하는 이야기다. 마음 착한 심청이가 앞 못 보는 아버지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던 인당수의 연꽃 속에서 환생했으니 그 연꽃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꽃이 아니겠는가.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면서도 물에 젖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은 채 깨끗하게 피어난다. 물속을 들여다보면 분명 지저분한 물인데 쏙쏙 얼굴을 내민 연꽃은 정말 아름답다. 꽃봉오리도 사람들의 눈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 하는 이유를 알겠다. 특히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다. 사월초파일이 되면 사찰 경내를 환히 밝히는 연등이 있는가 하면 법당에서도 연꽃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복지관 한지공예 반에 교회 권사 수강생이 있는데 교회에 티슈케이스를 만들어다 놓으려고 하는데 문양을 절대로 연꽃은 주지 말라고 부탁한다.
(22cm X 24cm)
일반적으로 연꽃 하면 불교를 상징하기 때문에 연꽃문양으로 만든 작품을 교회에 갔다 놓기는 싫다는 얘기다.
나는 종교와 상관없이 연꽃을 좋아한다. 하기야 좋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연꽃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꽃도 매력적이지만 잎을 그리는데도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아름답다. 큰 연 잎은 연 밥집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연 밥을 먹을 때는 연 잎 속에 들어있는 내용물도 궁금하지만 찰밥을 정성껏 싸놓은 주인의 솜씨도 엿보게 된다.
그림에서 연근은 잘 그리지 않지만 연근은 마디가 이어져있어 목숨을 잇는다는 수(壽)를 상징한다. 활짝 핀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장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연 밥에 촘촘히 박힌 씨앗은 다남을 상징하며 연꽃의 연은 연이어 태어난다는 연생 연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연생귀자(蓮生貴子) 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30cm X 65cm)
또 연화도 그림에는 대부분 원앙 한 쌍이 그려져 있는데 원앙 암수 한 쌍은 부부금실과 다산을 의미하므로 민화에서는 연꽃과 원앙을 꼭 한 화폭에 같이 그린다.
또 민화에서 연꽃은 행복을 기원하는 길 상의 상징으로 표현하며 궁중에서는 연화도 병풍을 모란도 병풍처럼 잔치용으로 사용했으며 연꽃은 다양한 상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단다.
연화를 그리며 연 잎에 잎맥을 그릴 때 선명하게 살아나는 잎맥은 연근을 손질하여 칼로 저미면 벌집처럼 숭숭 뚫린 구멍의 아름다움과 함께 참으로 절묘하다. 연꽃은 우주를 상징하고 줄기는 그 축을 상징하며, 한번 피었다가 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지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우주에서 연꽃이 나오고 그 연꽃에서 아이가 나왔는데 그 아이가 이집트민족의 시조라 하였다. 더러운 물에서 피어난 연꽃은 부활을 상징한다.
한지공예를 하면서 보아도 문양 중에 연꽃이 많이 있다. 민화와는 좀 다른 형태이지만 여러 가지 문양이 있어 한지공예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민화를 그릴 때 이론 공부도 하며 그 뜻을 알고 그리니 민화 그리기가 더욱 재미있다.
(40cm X 72cm X 2폭)
연화도도 액자를 하기도 하고, 두 폭 가리개를 만들어 첫 개인전을 하고 나서 소월.경암문학예술기념관에 기증을 했다. 평소 문학활동을 하면서 경암 이철호 선생님께 많은 혜택을 받았기에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했다. 문학관 개관식 날 잘 정돈되어 있는 문학관에 내 가리개가 자리잡고 있어 기분도 좋고 그림을 그린 보람도 느꼈다. 연화도와 모란도 가리개 중에서 택일하시라고 했더니 모란도가 아닌 연화도를 선택하셨다. 경암 선생님 역시 불교신자라 연화도를 택하신 것 같다.
우리의 식생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연근, 여름이면 연못을 가득 채운 연잎과 연꽃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환성을 지르며 구경하던 전국의 연꽃들 직접 가본 곳도 여러 곳 있지만 가보지는 못했지만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부여의 연꽃축제장의 연꽃을 보며 황홀경에 빠졌었다. 언젠가는 부여 연꽃 축제장에 한번 가보리라 생각하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니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라도 만족을 하며 앞으로도 연꽃을 많이 그려야 하겠다.
(2019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