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등공양과 소신공양
– 금봉암 참선법회(2023.09.23.) 수행기 《5》
10.
절 마당은 어느새 어둠에 묻혔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관세음보살께서 미소 짓는 듯 우는 듯하다. 법당에 관세음보살만을 모신 게 특이하다. 큰스님이 어떤 인연으로 관세음보살상을 얻게 되었고 다른 불상을 새로 모실 형편도 안 되어서 그렇게 됐다.
불단 양쪽 인등들이 환한 빛을 낸다. 환희심이 일어난다. 그러다가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몸이 오싹해진다. 큰스님은 연등을 달지 않았고 천도재를 지내지도 않았다. 복 빌러 오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위해 그냥 복을 빌어주는 스님들. 둘다 착각에 빠졌다고 하셨다. 부처님은 복을 비는 중생에게 복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알고 이해하는 것만이 복을 받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신 큰스님은 신도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할 뿐 다른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
각화사 서암에서 금봉암으로 옮겨오신 이후로 큰스님은 대중 법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대중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달력에는 법문 일정이 빼곡히 적혔다. 법문 사례비만으로도 금봉암을 유지하고 저축도 할 수 있었다.
큰스님 입적 후 금봉암을 꾸려가게 된 우리는 암담했다. 나는 문득 폐사지를 떠올렸다. 전쟁이나 탄압으로 파괴되지 않아도 절이 버려질 수 있다는 망상이 일어났다. 전기세가 가장 큰 부담이었다. 겨울에는 100만원 가깝게 나온다.
금봉암으로 오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겼다.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인등을 달기로 했다. 큰스님 뜻과 다른 결정이다. 큰스님 때를 기억하는 노보살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내가 이런 안내문을 만들었다.
고우 큰스님이 주석하셨고 그 뜻을 이어받은 스님들과 제자들이 수행 정진과 중생제도에 일심전념하고 있는 봉화 금봉암에서 불단 양쪽에 인등공양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인등공양은 부처님 전에 개인 등을 일년 동안 밝힘으로써 각자의 무명 업장을 소멸시키고 부처님 가피가 세상에 가득하게 해줄 것입니다.
인등공양을 받는 주체를 ‘금봉암’으로 했다. 염치가 없어서였다. 인등공양이 공양자의 무명 업장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부처님 가피가 세상에 가득차게도 한다고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했다. 한동안 먹먹했다. 불보살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는 <화엄경> 구절을 보고 겨우 고개를 들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옛 신도들, 새로 수행 인연을 맺게 된 도반들, 나아가 나의 지인, 제자, 친척들에게도 이 문구를 보내며 구원을 기다렸다. 어느덧 500여 개 인등에 불이 다 켜졌다. 오늘따라 너무나 환하게 반짝인다. 그게 공양자들의 눈동자 같다. 공양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앉았거나 일어서 포행하거나 그 눈길을 피할 수 없다.
인등 공양자께 떳떳해지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하나. 더 치열하게 정진해서 저 인등 불빛 못지 않은 빛을 내는 것이다. 공양자의 보시복덕과 수행 동참자들의 선정지혜가 서로 비춰주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늘 밤 우리가 몸을 불태워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방석에 앉아 밤을 지새워본 적이 있는 수행자는 안다. 인등공양에 대한 보답은 소신공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