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바다]
슬픔의 땅, 팔레스타인에는
2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해이고, 하나는 사해입니다.
똑같이 요단강에서 흘러 들어가는 바다(실제로는 호수)인데
갈릴리해는
물이 맑고, 고기도 많으며, 강가엔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사해는
더럽고 바다에 염분이 너무 많아 고기도 살 수 없고, 새들도 오지 않고 어떠한 생물도 살지 않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똑같은 요단강 물줄기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갈릴리 바다와 사해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왜 하나는 생명이 숨쉬는 바다가 되고,
하나는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바다가 되었을까요?
요단강 때문도 아니고
토양 때문도 아니고
기후 때문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습니다.
갈릴리해는
강물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가두어 두지 않습니다.
한 방울이 흘러 들어오면 반드시 한 방울은 흘러 나갑니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반면, 사해는
들어온 강물을 절대 내어놓지 않습니다.
한 방울이라도 들어오면 자신의 것이라고 그것을 가져버리고
한 방울의 물도 내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생명의 바다와 죽은 바다...
받은 만큼 주는 바다와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바다...
사람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해가 될 수도 있고
갈릴리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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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백두산 - 우리는 그 이름만 들어도 신비함과 거룩함을 느끼게 된다.
민족의 영산(靈山) 으로서 우뚝 솟은 백두(白頭)의 그 거룩한 자태는 억만년의 신비와 고요함을 침묵으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백두산을 찾은 것은 지난 1991년 5월이었다. 7월이 되어야 눈이 녹는다 하여 찾는 이도 거의 없는 5월의 백두 모습은, 그야말로 그 웅장함과 순백(純白)함이 나를 저 태고의 고요함으로 이끄는 듯 하였다.
'한량없이 맑고 고요하고 바르고 둥근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인가' 라고 느껴 보기도 했다.
(중략)
백두산은 해발 2,744m. 그 높은 봉우리에는 천지(天池)가 있다. 백두산 천지의 둘레는 12Km, 물 깊이는 무려 312m나 된다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뭄이 드나 물 깊이는 한결같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천지에는 천지폭포(天池瀑布)가 있어 끊임없이 이 폭포를 통해 많은 물을 내려 보내는데도 천지 물은 줄지 않고 항상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점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는 안내자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마음에 붙여 공부해 볼 때 수양하는 우리에게 무언가 깨우쳐 주는 것이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첫째, 착함은 끊임없이 베풀어도 한량없이 샘솟아 난다는 것이다.
이기주의(利己主義)가 극도로 팽배한 오늘날, 사람들은 남에게 주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고, 또 주더라도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계산된 주고받음이 다반사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마음이 없었는지 반성 되어지는 바 많다.
끊임없이 그리고 조건 없이 흘러내려 주는 저 천지의 폭포수처럼. 지성으로 도덕을 받들고, 사해형제를 사랑할 줄 아는 참된 도자(道者)가 되어야 하겠다
둘째, 마음은 끊임 없는 반성을 통해 늘 그 맑음을 간직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고 있다.
천지는 쉼 없이 물을 내보냄으로써 스스로를 항상 맑게 정화하고 있다. 만약 그 물이 항상 고여 있다면 천지는 없어졌거나 아니면 썩은 물, 죽은 물이 되었을 것이다.
천지가 우리 ‘마음’이라면 천지폭포는 우리 ‘마음의 문’이 될 것이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저 콸 콸 콸 넘쳐 나는 물줄기처럼 인간악성(人間 惡性)을 반성청심(反省淸心)하는 수도인(修道人)이 될 것을 다짐해 본다.
(梧泉 졸저/'삼성신경영 전도사, 행복찾기 멘토가 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