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 로스쿨에서 수강할 때의 일이다. 나는 의견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확신이 있어 말하려고 해도 심장이 뛰어서 결국 말하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이미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항상 “Don’t be shy”라고 격려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말 많은 내가 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Shy’가 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용감하게 교수 바로 앞에 앉아 수업을 들었지만, 교실 뒤편에는 젊은 한국인 학생들이 모여 앉아 있고 교수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대체로 동아시아 학생들(중국인, 일본인, 태국인)들도 비슷했다. 미국인 학생들은 교수의 눈을 마주 보면서 유치한 내용도 일단 당당하게 말하고 본다. 물론 반응이 좋지 않으면 멋쩍어 한다. 한국인 교포 학생들은 미국인 학생만큼 말을 잘 하기 때문에, 나의 Shyness는 한국 문화의 문제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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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탐구 과정에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기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幸福)을 철학의 기초로 한 유별한 철학자인데, 그는 국가의 이익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이 소질을 개발하여 행복해지는 것이고, 국가의 의무는 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여건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가가 잘 운영되기 위하여는 무엇이 이익과 정의(Justice)인지를 잘 파악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매개체가 바로 말, 로고스(Logos)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로고스를 잘 구사하는 것은 개인이 행복함과 동시에 국가가 효율적이고 정의롭게 운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하여 우리의 전통 문화에는 개인은 집단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지지 않았고, 주어진 의무와 역할을 수동적으로 잘 하면 그것이 훌륭한 삶이었다. 무엇보다 소질을 개발해서 행복에 도달한다는 생각 자체도 없었다. 개인은 역할만 잘 하면 충분했지 말까지 잘 할 필요도 없었는데, 만일 백성들이 국가 전체의 이익과 빈부 격차와 같은 문제들을 분석한다면 그러한 활동은 역설적으로 체제를 부정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런 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는데, 예를 들어, 내가 법원의 저녁 회식에 빠지겠다고 하자, 주위에서는 잘 숙고해 보라고 말했다. 집단이 수행하는 저녁 회식은 항상 옳은 일이고, 술 마시기 싫어 회식에 불참하겠다는 개인의 의견은 잘못된 것인가? 나와 같이 조직원들이 저녁 회식에 의문을 가지고 따지기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조직에서 저녁 회식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내가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사학은 빈부의 대결, 즉 정의(Justice)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한 국가 안에서 부자와 빈자라는 상호 모순적인 구성원들이 대립하면서 공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대체로 재력과 능력이 있는 도시 엘리트들이 빈민들을 지도했다. 그런데, 아테네에서는 대중들이 민회와 인민법정(배심법정)에서 집단적인 의결로 권력을 장악했기에 민주정체라 불리었고, 리더들은 권력을 가진 다수의 빈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대중연설을 잘 해야 했다. 수사학이 아테네에서 발달한 결정적인 배경이 바로 이런 빈부의 대립이었는데, 결국 민회와 배심법정에서 연설 간의 대결을 통해 빈부의 대립, 즉 정의(Justice)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우리 전통 사회는 계급제 사회였기 때문에 누가 다스리는 것이 타당하고, 누가 더 많은 몫을 가지는 지와 같은 정의(Justice) 문제는 국가의 핵심 의제가 될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우리 민족들은 말로써 정의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식이 별로 없다. 최근 우리 대통령들의 말솜씨 수준을 보거나, 중요한 입법들이 토론보다는 실력 행사로 해결되는 것을 보면, 로고스(말)에 의한 문제 해결 능력은 미미하다.
이익과 정의의 문제에 정통한 지도자들도 시민들과 소통할 능력이 없다면 그는 국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도자들은 시민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어야, 유익하고, 감동적이고, 즐거운 연설로 그들과 소통하여 설득할 수 있다. 지도자들은 평소에 그들의 이익, 가치관, 정의관, 행복관, 습관과 사상, 감정 및 정신적인 결함조차 잘 알고 있어야만, 그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설득할 수 있다. 따라서, 수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청중인 대중들의 심리를 연구하는 것이고, 이로써 수사학은 연설가로 하여금 듣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진 것을 요구한다.
개별 사건만을 다루는 판사가 말하기 기술인 수사학 책을 쓰면서 개인의 행복, 민주정체와 같은 정치 문제, 빈부의 대립, 정의(Justice), 계급 사회와 같은 뜬구름 잡는 인문학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고, 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의 수사학은 이런 문제들을 다루었고, 인민들은 민회와 배심법정에서 이를 들었다. 현재의 시민들도 우리 나라의 법조인들이 인문학 소양을 갖추고 개별 재판을 다루어 줄 것을 기대할 것이다. 나 또한 이런 문제들을 고민한 후 이 책에 고민의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 나라에서 탁월한 연설의 기술을 갖춘다는 것은, 단순히 말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우리 정신에 남은 전통 문화의 어두운 면을 자각하고 극복해야 하며, 현재 자유 민주주의 체제 하의 시민들이 갖추어야 할 상호 평등/존중의 태도를 체득하고, 폭 넓은 인문학적인 소양들을 통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아마추어 수사학자로서 일반인의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쉽게 풀어 서술하려고 노력했고, 이 책의 내용은 전문가들의 책만큼 정교하지는 않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질적인 서양의 스피치 문화에 관하여 많은 통찰력을 얻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고대 그리스인들의 주옥 같은 연설문들을 충분히 소개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지만, 이는 전문 고전 연구가들의 몫이라고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