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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3:1-15) 차별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에스더3장 말씀중심으로 <차별화>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차별화’라고 하는 것, 이제는 다분히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들어왔던 그런 단어입니다. 특별히 마케팅에서 차별화라는 말을 아주 강하게 강조합니다. 같은 종류로 분류되는 상품들 중에서 자사의 제품을 차별화시킬 수 없는 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마케팅에서의 차별화의 필요성입니다. '마케팅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잭 트라웃'이라고 하는 사람이 얼마 전 10월에 한국에 나와서 기자회견을 한 인터뷰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 사람이 재미있는 말을 했어요. 자동차의 차별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회사의 제품들의 차별화의 특성을 얘기해 줍니다. 예를 들면 볼보는 안전성이고, 페라리는 속도, 일제 도요다는 신뢰, 벤츠는 엔지니어링이 특색이고, 한국 차의 기아 차는 저렴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현대 차 제너시스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현대 차가 미국에서 제너시스를 출시하면서 기존의 현대 차와는 다른 고급화된 자동차의 브랜드로서 제너시스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트라웃이라는 사람은 실패했다는 것이에요. 도요다가 렉서스를 만들어서 자동차의 고급화를 추진하고 메르세데스 벤츠라든지 BMW를 겨냥해서 판매를 할 때, 도요다는 10마일 내에 도요다와 렉서스 딜러가 함께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대는 제너시스를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되느냐? 현대 차 딜러에게 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한 제너시스가 현대 차와 차별화된 그런 고급화된 차라는 인식을 결코 사람들에게 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합니다. 어쨌든 이 사람은 고객의 마음이 전쟁터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의 뇌리를 전쟁터로 생각하고 그 뇌리에 자사의 제품을 못을 망치로 때려 박듯이 뇌리에 남게 하지 않는 한, 차별화에 실패하고 살아 남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차별화를 positioning이라고 얘기합니다. 고객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positioning. 잭 트라웃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차별화는 마케팅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차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신앙은 곧 죽은 신앙이 돼 버리고 맙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차별화를 통해서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모르드개와 유다민족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 하만이라고 하는 신하가 있는데 페르시아 제국의 제 2인자로 올려놓습니다. 높입니다. 이유는 나오지 않았지만 혁혁한 공로를 세운 것 같습니다. 하만이 전쟁터에서든 하여간 어디서든 무엇에서든 그 공로를 통해서 모든 신하들 위에 하만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만에게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존경과 경의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절하도록 명령을 했는데 모르드개가 이 하만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지 않고 절을 하지 않았던 것이에요. 그래서 같은 궁궐 내 같은 부처에서 일하는 다른 동료들이 모르드개에게 권유합니다. ‘너 그러다가 큰일 난다. 네가 뭔데 하만에게 절하지 않느냐? 무릎을 꿇어라. 왕이 높인 자다. 왕이 높인 자인데 왜 무릎을 꿇지 않느냐?’라고 종용을 할 때, 이때 모르드개가 그동안 계속해서 에스더에게 유다인임을 밝히지 말라고 말해 놓고 자기는 유다인 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섬기는 자다. 그러므로 하만에게 무릎 꿇을 수가 없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모르드개의 거만하게 보이는 이 태도, 거만해서가 아니라 하만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입장에서 하만에게 절을 할 수가 없는 것이 계기가 돼서 하만이 모르드개가 유다인임을 알게 되고, 그리고 모르드개뿐 아니라 유다인 전체를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멸절시키려고 하는 계획을 짜게 됩니다. 이때 왕에게 이야기를 하게 될 때 하는 말이 재미있어요.
8절에 “한 민족이 왕이 다스리는 나라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들이 제국내의 모든 다른 사람 만민과 다른 법률을 지키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왕에게 이익이 될 수 없는 민족이니 멸절시키십시다.”라고 하만이 얘기를 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허락을 하고 조서를 내리고 127도 온 제국 구석구석에 왕의 칙령이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아서 유다인을 멸절시킬 날짜를 정하게 됩니다. 그게 언제입니까? 11개월 뒤가 됩니다. 11개월 뒤에 멸절시키려는 작정을 하게 됩니다.
자,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모든 만민이 지키는 법률과, 다른 법률을 지키고 있는 민족, 차별화된 민족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 차별화 때문에 오히려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가 있어요. 하만은 그냥 상관 아니냐? 상관에게 무릎 꿇고 절하는 것 하라면 하는 거지. 하급관리로서 이건 하극상 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여러분! 그러나 상관에 대한 존경심과, 종교적 의미에서의 우상숭배, 종교적 의미에서의 숭배로서의 절의 이 차이가 뭘까요? 상관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는 것은 마치 운동과 같아요. 테니스 코트장에서 공이 라인 바깥으로 나가면 아웃이다. 서브할 때 공이 라인 바깥으로 나가면 아웃이다. 축구할 때 파울 볼, 공이 바깥으로 나가면 드로우잉 페널티를 얻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 규칙과도 같은 것이에요. 거기에는 숭배라는 마음, 의지하려는 마음 이런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하만에 대한 인사는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르드개가 그걸 거절을 했던 것 같습니다. 모르드개가 만약에 상관에 대해 복종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 관리로서 그 궁궐에서 일을 할 수가 없었겠지요. 직장에서 직장상사에게 복종하는 것은 종교적 숭배와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그냥 스포츠 게임의 규칙과 같은 것이에요. 거기에 뭐 사랑과 숭배의 정신과 의지와 이런 것을 담을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어쨌든 이렇게 거절해서 차별화된 법률, 모든 사람이 다 그 나라에서는 왕이 높이면 무릎 꿇고 절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유독 그것을 거절합니다. 차별화되었습니다. 차별화되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차별화 되어서 멸절의 위기에 치닫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마케팅에서는 차별화 되어야 살아남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차별화 되었다가 망해버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아세요. 기독교 신앙이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리와 다르면, 오늘 본문에서처럼 멸절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멸절의 위기에 직면할 뿐이지 절대 멸절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인의 삶의 원리가 삶의 법률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을 때는, 절대 멸절의 위기에 처하지 않습니다. 차별화되지 않을 때는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독교는 멸절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려요. 기독교가 차별화될 때는 멸절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멸절되지 않고 오히려 강해집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차별화되지 않을 때는 멸절의 위기가 전혀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무도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멸절합니다. 없어져 버리고 말아요.
지금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있게요? 없게요? 있어요.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에서 기독교가 있습니까? 교단 총회장 선거할 때 교회장로 선거할 때 강남의 S교회 장로선거 금품살포로 유명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목사님들이 다른 것이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목회부흥을 사랑합니까? 목회부흥 사랑하는 것과, 재벌총수가 회사가 부흥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다를 게 없어요.
공격받는 것은 지금 여기서 그런 공격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한다든지 그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공격합니까? 교회 간다고 누가 뭐라고 합니까? 아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요. 왜 공격을 받느냐? 교회를 다닌다면서 어쩌면 세상보다 더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격을 받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교회를 다닌다면서 교회가 세상보다 싸움이 더 지독하냐? 세상 사람들보다 더 지독하게 세상에서 성공을 바라고 세상에서 형통을 바라고 있느냐? 욕을 먹는다면 거기서 욕을 먹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욕을 먹는 것은 한심하다고 비웃는 것이지, 정말 하만이 이렇게 악의를 가지고 멸절시키려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랑 똑같네. 뭐, 다른 줄 알았는데?’라는 얘기지요.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 세상 사람들이 꿈꾸는 것, 세상 사람들이 소원하는 것,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차별화된 것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이 차별화의 요체를 본문을 통해 보면 이렇다는 거예요.
차별화됨의 요체가 본문을 통해 보면 뭡니까? 하만에게 절하지 않는 겁니다. 하만이 누구예요? 왕이 높인 자입니다. 왕이 높였다는 얘기는 우리의 삶으로 가지고 오면 무엇을 뜻할까요? 왕의 자리를 이 세상의 가치관에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세상의 가치체계에 의해서 높아진 사람, 그 사람 앞에서 우리 모두가 다 절하고 있는 거예요. 재벌의 총수들 증권회사를 창업해서 얼마 되지 않아 증권가에 혜성처럼 등장하게 되는 미래에셋 우리 다 좋아하지 않습니까? 이게 다 하만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이 높인 자들입니다.
배용준씨가 태왕사신기할 때 출연료가 1회당 2억5천만 원을 받았데요. 2억5천만 원. 제가 그 소리를 듣고 놀라운 게 아니라 가소로운 느낌이 드는 거예요. 배용준씨가 가소로운 게 아니라 돈이 가소로운 거예요. 그 태왕사신기 제가 볼 때는 재미로 봐도 대조영보다 나은 것도 없고 그렇게 굉장한 연기가 돋보인 것도 아니고, 그런데 돈이라고 하는 게 2억5천이 한 회 50분 방영하는 드라마 한 회 출연하는데 2억5천이 그리로 갔다는 겁니다. 그래도 여러분 돈을 좋아할래요? 너무 가소롭지 않아요? 돈이라는 게. ‘어, 돈 없으면 못사는데.’라고 한다면 벌써 하만에게 무릎 꿇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체계가 높인 자들에게 무릎을 꿇는 겁니다. 우리가 언제 돈으로 삽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재벌이 돼야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돼야 됩니까? 하루 사는 동안에 2억5천만 원어치의 하나님을 마음속에 담아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차별화되지 않으면 우리는 죽어 나갑니다.
주기도문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말을 합니다. 이미 성경은 차별화의 원조예요. '거룩하다'는 말 자체가 차별화를 말합니다. 차별화는 구분된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름 말고는 어떤 것도 함께 내 마음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구분돼야 되는 거예요. 차별화돼야 되는 거예요. 내 마음에 하나님이 차별화되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죽는 것이고, 하나님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반복해요. 기독교가 차별화될 때에 다시 말해서 하만과 같은 사람들 앞에서 절대 마음으로 무릎 꿇지 않습니다. 명품으로 갑옷을 입듯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치장을 한 아줌마 앞에서 기가 죽는 이유가 뭡니까? 이게 하만에게 무릎 꿇는 거예요. 그걸 좋아하니까, 그걸 사랑하니까. 창업해서 증권시장에 정말 각광을 받는 그런 사람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유가 뭡니까? 하만에게 무릎 꿇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차별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이 세상에 대해 계속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사건에 대해서 주님의 십자가를 들이대는 겁니다. ‘나는 죽었다. 미래에셋 얘기가 나오면 나는 죽었다.’라고 다 죽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계속 죽으면서 하나님을 차별화해서 마음에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 한 분 계시면 산다. 하나님 한 분 계시면 산다.’라고 하는 이 차별화가 되지 않으면 마음속에 하나님도 들어오고 돈도 들어오고 자식도 들어오고 다 들어와 있어요. 마음 안에서 하나님이 차별화되지 않으면 우린 죽습니다. 기독교인은 죽는 것이고 교회는 죽는 겁니다.
교회가 어떻습니까? 세상과 똑같아져 버렸어요. 이 땅에 기독교가 있습니까? 기독교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 거예요. 여러분 분명히 아세요. 이 말을 해야 됩니다. 해야 돼요. 다른 교회와 이진법 복음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 다른가를 알아야 됩니다. 이 차별화와 비판이 다른 것은 무엇일까요? 숙제로 한 번 내 볼게요. 내가 비판하는 마음을 갖고 다른 교회가 어떻다, 어떻다 하는 것과 나를 차별화 시키는 것, 차별화된 자로서, 돈으로 사는 것 아니고 성공으로 사는 것 아니고 형통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 산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사는 자로서 다른 교회를 바라볼 때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하는가를, 여러분이 한 번 마음속에 대답해 보세요. 차별화는 하나님 한 분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비판이 뭡니까? 다른 사람이 못나고 내가 옳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위에 올라서서 사는 것입니다. 다르잖아요. 다른 사람보다 내가 우월해야 사는 사람이 있어요. 비교해서 내가 더 옳다. 내가 더 진리다. 왜 다른 사람위에 올려놓고 나를 살아가게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지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위를 점해야 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지요.
하만에게 무릎 꿇는 것은 이 세상의 가치관과 가치체계에 의해서 높여진 자들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가소로운 것이에요. 이 세상의 가치라고 하는 것이 가소로운 것이에요. 하만에게 무릎 꿇지 않으면 분명히 차별화돼 보일 겁니다. 세상이 공격할 수 있어요. 세상이 안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아세요? 세상이 처음에 안 받아들일 만큼 차별화돼야 기독교가 확장되어 갑니다. 처음부터 받아들이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면 세상과 다를 게 아무것도 없어요.
요즘 교회에서 그렇게 하잖아요. 세상에서 하는 가요를 불러가면서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전도하면서 점점 더 이끌어 간다고 얘기를 합니다. 천만에 만만에 콩떡 이예요. 반드시 그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한, 교회는 사라지고 복음은 사라지고 차별화는 없어질 것입니다. 대중가요로 점령되어 있는 세상 속에 복음 송, 찬송가 들고 나가는 거예요. '무식하다, 고리타분하다, 한심하다'라는 소리 들으면서. 세련된 게 좋은 건 줄 아십니까? 무식하게 나가요. 차별화되지 않으면 죽는 겁니다.
여러분 한 번 묵상을 해 보실래요? 배용준씨가 한 회 출연료로 2억5천을 받는데요. 저는 밴쿠버 가서 처음으로 단독 목회지에 청빙 받아 가면서 캐나다 달러로 4,100불을 받았습니다. 물론 사택이 있고 여러 가지 다 있어요. 4,100불 받다가 교회를 다시 개척하게 되면서 3,700불로 제가 깎았습니다. 그러다가 부목사님을 행정담당 목사님으로 세우면서 제 월급에서 3,700불에서 3,000불로 깎았어요. 부목사님하고 똑같이 만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선교회에 와서 더 아래가 되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제 뉴스를 보니까 밑에 자막이 나와요. 자막뉴스가 나오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의 대학 졸업자의 초봉 평균이 2,034,000원 이래요. 제가 그 아래로 받고 있습니다. 저 이래봬도 박사예요. 목회경력 2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전도사까지 합치면 30년 가까이 됩니다. 목회경력만. 박사예요. 그럼 나는 뭐예요? 하나님이 인도하신 50년의 생애가 세상의 가치기준으로 보면 저는 뭡니까? 병신이지요. 병신. 세상의 가치기준으로 보면 이런 병신이 어디 있어요. 이 세상 기준으로 보면 사람입니까?
한 번 묵상해 보세요. 배용준씨나 그 드라마, 그 드라마를 보면서 영혼이 구원받는 사람 한 사람이나 있을까요? 그런데 2억5천을 받아요. 저는 아침 내내 일주일에 다섯 번씩, 목요 영성강좌에다가 선데이 스쿨 청소년 영성강좌에 아침 홈 채플, 한 달 내내 이렇게 떠들어도 내게 주어지는 돈은 대학 졸업자 평균도 안 돼요. 그럼 저는 진짜 뭡니까? 이게 바로 하만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 표정관리가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명심하세요. 돈을 얼마를 벌었다? 이렇게 하면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한 번 묵상해 보시지요. 그것 괜찮을 것 같아요. 태 목사의 월급이 올라가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그 모습을 묵상해 보셔도,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을 암시하는 것인가 의미하는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으로 사는 자들, 하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차별화되었기에 공격은 당하지만 절대 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번성해 나갈 것입니다. 아마 지금 전 세계에서 이 경제 공황 속에서 제일 자유로운 사람의 한 사람이 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요.(하하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하만의 득세 앞에서 모르드개가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절개를 지켜 나갑니다. 멸절의 위기가 찾아옵니다만 유대의 승리로 귀결될 것입니다. 하나님!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이 차별화 되어서 모셔 들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세상 마음에 들어오고 싶어 안달하는 돈과 명예와 권력과 형통과 성공 자식과 부모와 아내와 남편 모든 것들에 대해 하나님을 차별화 시켜 마음에 모시게 하여 주시고 오직 그 하나님으로 더불어 살면서 하나님이 이 땅에 나타나는 역사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모두가 다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세상속에서 십자가 복음으로 차별화 되어서 죽기를 각오하는 하늘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 이 큰 복 주심을 찬양합니다. 이 시대의 모르드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