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짐을 가지고 켈레티 역에 가서 14시 45분 부다페스트 출발 자그레브행 열차를 탔다.
헝가리 서부의 농촌 모습은 부다페스트와 달리 건물들이 대부분 오래 된 채 새로운 개량 사업이 없었던 것 같다. 표 검사를 하던 차장이 그림으로 돔보바르(Dombovar)에서 카포스바르(Kaposvar)까지는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돔보바르에 도착하니 모두가 짐을 가지고 내려서 버스로 옮겨 타느라 부산했고, 다음 역에서는 다시 짐을 내려 기차를 타느라 애를 썼다. 이 때문에 시간이 30분쯤 늦어졌다. 헝가리 농촌은 야산에 자리 잡고 있고 밭들도 우리나라처럼 곧지 않아 마치 우리 시골을 달리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기차로 바꿔 탈 때, 소동이 벌어졌다. 두 명의 헝가리 여성이 영국에서 여행 온 두 아가씨들의 예약석에 앉아서 뻔뻔함을 드러냈다. 다른 곳의 빈자리가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국경선 근처의 내리는 역에 이르기 까지 굳건하게 남의 자리를 빼앗아 앉아서 뭔가를 서로 애기를 하면서 갔다. 아직까지 좋게 보아왔던 헝가리인들에 대한 모습을 완전히 구겨놓은 사건이 되었다. 이들은 버스에서 옮겨 탄 후에 차장이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그런 짓을 했던 것이다. 국경선 전역에서 그들이 내린 후에 제 자리에 앉은 영국 아가씨들은 그때서야 얼굴색이 피면서 여행을 즐겼다.
자그레브에 도착하니 마리야가 역까지 마중 나와 있다. 우리를 안내해 호텔까지 가서 체크인하고 나니 시간이 꽤 늦어졌다.
En Zagreb, la 1an de aŭgusto, 2016
아침 6시 반 아침밥을 먹었다. 7시 10분이 되자 약속한 대로 마리야가 오고 조금 있으니 방송국에서 왔다. 인터뷰는 7시 40분부터 생방송으로 바로 호텔 앞 길가에서 진행되었다. 국영 1TV 매일 아침에 나가는 “아침 안녕하십니까?”라는 프로다. 서 교수님께서 한국 에스페란토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진호가 에스페란토를 배운 동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8시 반쯤 모두 함께 출발하여 역 앞에서 크로아티아 초대 왕인 토미슬라브 동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천천히 걸어서 즈린스키광장까지 숲속을 거닐었다. 참 조용하고 아름다운 거리다. 특히 몇 아름이나 되는 플라타너스는 참 인상적이었다. 이 광장에서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축제 때는 모든 나무를 장식하고 양쪽에 늘어선 창가에는 주민들이 문을 열고 포도주로 축배를 든다고 한다. 끝에 나가니 이 시에서 가장 붐비는 광장이 나왔다. 반 옐라치치 광장(Jelacic Square, Trg bana Josipa Jelačića)은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전과를 세운 옐라치치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1866년에 오스트리아 조각가가 만든 동상이 세워졌는데, 오스트로-헝가리 점령 당시 총독을 맡았던 반 옐라치치 백작의 상이며 말에 앉아 칼을 들고 있다. 광장 이름은 이동상에서 유래됐다. 동상은 여러 번 정치적인 위기를 맞이했는데 1947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1990년에야 그가 국가를 대표하는 민족주의자라는 판단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광장부터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 트램만이 들어올 수 있는데 자그레브에서 가장 복잡하고 번화한 지역이다. 광장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만두 셰바츠 분수가 있는데, 자그레브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분수로 자그레브는 ‘샘’이라는 뜻이다.
이 광장에서 보면 자그레브 대성당((Zagrebačka katedrala)이 올려다 보이는데 성모승천 대성당으로 더 알려져 있다. 왼쪽 꼭대기의 첨탑이 파괴된 것을 2011년에 복원하여 지금 보이는 첨탑을 구성하고 있고 파괴된 부분은 성당 앞 광장의 오른쪽에 시계와 함께 보도록 되어 있다. 아직도 수리 중이었다. 성모승천 대성당은 천년의 세월을 견뎌내면서 변화해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성당 내부도 유럽의 여느 화려한 성당들과 비교해도 예술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광장 동쪽에 유럽이라는 빌딩이 있는데 여기에 은행이 있어 우선 돈을 바꾸었다. 그 건물 서남 모퉁이에 관광안내센터가 있다. 전광판에 각국어가 나오는데 아시아에서는 중국어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로도 ‘여행정보센터’라고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광장 위쪽에는 빨간 색의 파라솔로 뒤덮인 과일과 전통물건들을 파는 재래시장인 돌라츠 시장이 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돌라츠 시장
12시 모임은 시내 한 복판에 있는 도서관에서 있었는데 우리 팀까지 합해 20여명이 함께하였다. 간단한 인사말을 끝내고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로 경제문제가 주된 토론이 되었다. 또한 한국의 에스페란토 운동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1시간 반쯤 진행된 대화는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모임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시내 관광을 했다. 캅톨 광장을 건너 카페가 이어진 스칼린스카 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다가 넥타이 판매점에서 기념으로 넥타이를 샀다. 넥타이는 크로아티아에서 시작된 것이라 한다.
계단을 올라 왼쪽으로 돌면 돌로 된 문(스톤 게이트)이 있다. 1731년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기적처럼 성모 마리아상 만이 타지 않고 남았다. 스톤 게이트에 들어서면 성모마리아의 모습과 기도를 올리는 시민들을 볼 수 있다.
위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성 마르크 성당(Crkva sv. Marka)이 있는 커다란 마르코브 광장이 나타나고, 성당의 오른쪽에는 사보르인 의회의 건물이 있고 뒤에는 대통령궁이 있다. 자그레브 성마르크 성당은 특이하게 지붕에 크로아티아 국기가 그려져 있어 성당이지만 예쁘다. 광장에서 앞을 보고 곧게 가면 자그레브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로트르슈차크 타워가 나타난다. 정오 12시에는 탑에서 대포를 한 방 쏜다. 타워 앞의 건물 아래에서는 통기타 아저씨의 듣기 좋은 음악이 흘러나와 지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탑의 남쪽에 일리차(Ilica)거리로 연결되는 케이블카(푸니쿨라)가 운행되고 있다.
왼쪽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 마토의 동상이 있고
왼편 길에 넓은 테라스가 있는 Saint Catherine Church가 있다.
다시 위길로 접어들어 왼쪽 길을 따라가다가 푸니쿨라를 타는 곳에서 오른쪽 길로 가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편히 쉴 수 있는 의자들과 무료 야외 화장실을 볼 수 있고 계속 길 따라 내려가면 굴 입구가 나타난다.
이 굴은 최근에 정비해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으로 현지인들도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굴속에는 LED조명이 되어있고 식수대와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어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