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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체인 성경 읽기(3월 16일부터 22일)
3월 16일(일)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27장, 요한복음 6장, 잠언 3장, 갈라디아서 2장
출애굽기 27장에 말씀은 제단과 성막을 두르는 울타리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그런데 제단을
만드는 재료로 아카시아 나무를 쓰라고 하시면서 제단 네 모퉁이에 뿔을 만들어라. 라고
말씀하는 이유는 어떤 뜻으로 하는 말씀일까요?! 이는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들을
알게 하는 뜻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아카시아 나무는 찌르는 가시가
있고, 뿔은 들이받는 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여기에 놋쇠를 입히라고 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섭취해야만 영혼이 살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만일 놋쇠를 매일 사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녹슬어서 시커먼 상태로 변합니다. 이는 주기도문
내용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말씀과 같은 뜻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매일 먹을
양식을 먹으면서 참부모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네모 난 모양으로 만들게 하는 것은 방향으로, 하나님께서 하는 일을 깨닫게 하는
일로서 시간의 흐름과 계절과 때를 알게 하는 일이 됩니다. 또한 이런 모든 것을 만드는
실과 실의 색은 남자와 여자가 부부로 한 몸이 되어서 살아가는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하여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말씀하는 일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성 삼위일체에 대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제단의 속을 비어 있게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는데, 이는 제단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옮길 때, 자녀들을 배려하는 하나님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막 안에 등불을 항상 켜두라고 하시는데, 그 위치를 증거궤 앞에 쳐놓은 휘장 밖에
켜 두라고 하십니다. 이곳에 위치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말씀하는데, 이는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죄가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 대한 말씀이며, 올리브기름을 사용하여 불을 밝히라는
것은, 삶을 사는 동안에 지속되어야 하는 죄와 싸워야 할 일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또한 등불을 관리하는 일은 아론의 자손들만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죄의 값을
하나님께서 직접 치러주는 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와
제사장으로 믿음의 삶을 사는 성전이 되는 일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옛 언약, 곧 구약과
새 언약, 곧 신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나누고 계시는데, 이는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두 이루실 일을 보여 주십니다.
이어서 살펴본 요한복음 6장에 말씀은 오병이어에 기적으로 남자 어른만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으로, 어린아이와 여자에 수를 더 하면 최소 일만 명 이상을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먹이신 말씀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는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하심으로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광야 사십 년 동안 먹었던 만나와
다른 양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썩어지는 육체의 양식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 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잠에서 깨어나서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의미에 사람이라고 말씀한 사람이 자신의 근본을 찾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이정표에 역할을 하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말씀은 영혼의 양식을 말씀하는 것이지, 육체의 양식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한 말씀을 63절에서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이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삶으로 사는 사람은 심판에 이르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서, 비록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영혼의 옷, 육체를 벗더라도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흰옷을 입고 함께 이 세상으로 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생명의 말씀을 듣고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향하여 하는 말씀은 사탄의 자식이라고 하십니다. 즉 악령을 받은 악마라고 하셔서,
가롯 유다가 열두 제자이었더라도, 회계를 맡아보면서 회령을 밥 먹듯이 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생명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에 자신을 구원하실 분을 팔아넘기는 배신을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부터 시작되는 불 심판과 하나님 아버지의 백 보좌 심판으로
사탄과 함께 영원한 불바다에서 영원히 고통 가운데 살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어서 살펴본 잠언 3장에 말씀도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면서 영혼의 안식을 누리고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되는 길을 알려 주십니다.
그런데 영원한 삶을 살게 하는 길은 좁은 길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는 육체의 고난이 함께
하는 삶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합니다.
“인자와 진리를 저버리지 말고, 그것을 목에 걸고 다니며, 너의 마음속 깊이 새겨 두어라.”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가 영혼과 육체로서, 이 세상에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사탄으로부터
배반을 당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시는 배반하는 일이 없는 세상을 이루시기 위하여
순종하게 하시려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중심을 항상 살피고 계시면서 성령과 악령을
보내셔서,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을
가지고 선과 악을 판단하여, 자유의지로 자신에 삶을 선택하게 하도록, 순종과 불순종의 길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하늘나라에서 이루심과 같이 이 세상에서도 이루셔서, 만왕의
왕 예수님으로 우편에는 순종한 사람을 세우시고, 왼편에는 불순종한 사람을 세우셔서, 상과
불 심판으로, 선과 악을 가르실 것이라고 성경 말씀의 기록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말씀은 육신에 할례와 마음에 할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즉 죄의 권세는
율법이라는 말씀으로, 죄가 죄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기준이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 스스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죄의 값을 치러 주셔서, 이를 믿는
사람과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사시면서 율법 위에 사랑의 법을
실천하는 믿음으로 살게 하셔서, 죄와 상관이 없는 삶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게
되어서 성 삼위일체가 되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썩어지는 육체에 소욕을 따라서 살았던 삶은
예수님께서 죄의 값을 치러주신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삶으로 성령의 열매, 곧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에 구세주로 영접한 삶을 사는 사람은 죽음에서
영생으로 이사를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살아 있는 자에 하나님이시라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시며, 살아 있는 자에
하나님이시라고 죄를 드러내는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모세에게 시내 산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내 산은 불순종을 상징하는 산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도성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셔서, 예루살렘의 뜻이 “평화의 도시”,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창세 이후로 모든 영혼을 살리시는 십자가를 지셨고,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는 평화의 도시에서 살게 하시는 일을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3월 17일(월)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28장, 요한복음 7장, 잠언 4장, 갈라디아서 3장
출애굽기 28장에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 입어야 하는 예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예복을 만들 때, 재료는 믿음과 신랑과 신부가 연관되는 청색 실과 홍색
실로 예복을 만드는 재료로 쓰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금실과 모시 실을 쓰라고 말씀하는
것은, 믿음과 청결이 연상되게 하며, 홍색 실은 석류 열매를 말씀하고 있으며, 이는
겉옷 자락을 돌아가며, 금방울 하나 석류 하나를 번갈아 가면서 달라고 하셔서, 믿음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죄와
관련한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라는 명패를 머리에 쓰는 관에 앞쪽으로 달아서 누가
보더라도 “주님의 성직자”, 라는 명패를 보면서 주어진 직분을 충실하게 감당하라 하십니다.
그래서 맡겨진 직분을 감당할 때, 죽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에봇의 양쪽 멜빵에 홍옥수 두 개를 달되, 각각 하나씩 양쪽으로 나누어서 달되,
각각 여섯 지파에 이름을 새겨 넣으라고 하시며, 앞 판결 가슴받이를 만들어서 다른 보석을
네 줄로 달되, 각줄 마다 세 개에 다른 보석으로 달라고 하십니다. 이는 새 예루살렘 성을
하늘나라에 건설하시는 것과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뜻과 계획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살펴본 요한복음 7장에 말씀은 유월절 때, 예수님의 육신에
동생들이 예수님의 공생애를 지켜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일과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지혜를 놓고, 예수님께서 세상의 학문을 배우신 것도 아닌데, 의문을 가지는 말씀으로
의견이 나누어지고 있음을 말씀하면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말씀합니다. 이는 이 세상에 지식을 하나님은 하찮게 여기신다.
라는 고린도전서 3장에 말씀으로 연결되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태도를 알게
하시며, 말씀은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성경의 저자와 동행하시면서 감동과 감화하심으로
기록되어 졌기에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성령 하나님으로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일을 명확하게 말씀하신 말씀이 37절과 38절에 말씀하신 성령에 관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의 배에서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들에게 모두 자유의지와 책임을, 가지는 삶을 허락하고 계신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에 심판하셔서, 선과 악을 가르시기 위한 것이며, 이후로
다시는 선과 악이 공존할 수 없게 하셔서 서로가, 서로를 배반하는 일이 없게 하시려는
계획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을 위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허락하시는
것이며, 완전한 사랑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성 삼위일체에 관한 일이며, 요한복음 17장에
말씀을 성취하는 일이 됩니다.
잠언 4장에 말씀은 교육에 대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질서를 지켜서, 사는 길로 향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영생에 이르는 길은 지혜의 근본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부터 상으로 보답하여
주실 것이라고 6절부터 13절까지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내기 위하여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삶을 살라고 23절에서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로 선과 악을 잘 분별하여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살펴본 갈라디아서 3장에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향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살게 된 것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서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서인지?!를 놓고,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를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은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간증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믿음을 통하여 함께 살고 계시면서 중보의 기도와 조력자로서 동행하는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열매를 맺게 하셔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일이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생겨난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율법은 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죄를 없애주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신본주의적으로 믿으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사시면서 예수님과 같은 삶으로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를 아브라함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살피면서 다시 되새기게 되는 마음은 함께 살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을 살필 때, 주시는 감동과 감화하심에 순종해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겨
보면서, 저의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3월 18일(화)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29장, 요한복음 8장, 잠언 5장, 갈라디아서 4장
출애굽기 29장에 말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죄로 가로막혀 있는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여 주는 제사장 위임식을 하는 방법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주의할 말씀은 수송아지를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고르고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누룩 없이 기름만 섞어 만든 과자와 누룩 없이 기름만 바른 속 빈 과자를 고운
밀가루를, 가지고 만들어서 한 광주리에 넣어서 수송아지와 두 마리의 숫양과 함께 광주리째
바치라고 하십니다. 제물의 조건을 이와 같이 말씀하는 것은, 죄를 없애는 일에 한 마음으로
하라는 말씀이며, 누룩을 넣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도, 죄를 연상하는 거짓말, 곧 부풀리는 삶,
행위가 없이 순수한 마음 상태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회막 어귀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목욕을, 하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만든 의복을 갖추어 입으라고 하십니다. 특히 대제사장직을 맡은 아론의 머리에는 직분을
알게 하는 성직패를 붙이라고 말씀하며, 그의 아들들의 머리에는 두건을, 감게 하라고 하는
것은, 마음에 생각을 하나님께 두라는 말씀으로 이해되며, 제물을 잡기 전에 제물을 회막
앞으로 끌고 와서 아론과 아들들이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서 자신들의 죄를 전가하는
의식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물론 출애굽기 29장 말씀에는 죄를 전가하는 내용을 기록하지
않으셨지만, 레위기 말씀 중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물의 피와 거룩하게 하는 기름을
제단과 제사장 복에 뿌리라고 하는 말씀은 예수님이 하늘나라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초림하셨던 일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직을
주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죄가 없어야 하기에 제물의 피와 정하신 거룩한
기름을 의복에 뿌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옷은 사람의 행위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제단과 제단 뿔을 제물의 피로서 정결하게 하라고 하시면서, 두 번째 숫양을 잡은 뒤,
그 피를 아론과 그에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라는
말씀은 제사장직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있는
주인과 종에 관한 말씀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형편이 안 되어서
다른 이스라엘 사람의 집에 혼자서 종으로 들어간 사람은 6년 동안 충성되이 일을 해주는
가운데, 주인이 결혼시켜 주어서 처와 자식이 있을 때, 그들을 두고 혼자 자유의 몸으로
풀려날 수 있지만, 처와 자식을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종으로 있기를 원할 때는 그 사람을
그 집 기둥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가 그의 오른쪽 귓불에 구멍을 뚫어서 종이라는 증거로
삼으라는 말씀으로 연관되는 말씀으로 두 번째 숫양의 피를 귓불에 바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제, 즉 흔들어서 바친 제물의 넓적다리와 가슴 부분에 고기를 삶아서 주님의 성막
어귀에서 먹으라고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의 제사장 직분으로 육신에 양식으로 취하되, 항상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과 같이 항상 거룩한
삶을 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에 다 먹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남은 양식은
모두 제단 위에서 불태우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썩은 양식에 손대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고, 완전하심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도 거룩한 말과 삶을 살아야 함께 사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있다는
말씀하여 주시면서 영원히 썩지 않을 몸을 입고 함께 살자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에 말씀을 살피면서 보게 하신 말씀은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라는 말씀으로
말씀을 시작하시면서, 이른 아침에 성전에 가시니, 많은 백성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다는
말씀과 함께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실 때,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로 데려와
예수님이 어떻게 하는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이는 사탄의 깊은 흉계에 들지 않으려면,
항상 기도해야 하는 말씀이며, 또한 죄와 싸워야 하는 인생을 말씀합니다. 곧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으로만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교훈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죄인이 죄인을 심판할 수 없음을 말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즉 심판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두고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 앞에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은 어떻게 보면 이해하기 힘이 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의 자격을 함께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는
오감으로 받아들여진 감정을 하나님의 뜻을 거울삼아서,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으로 자신들이 가지는 감정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감정인지를 판단하여 행동하라는 말씀을, 하시려고 이성에 호소하기 위하여
잠시 시간을 끄셨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말씀이 그다음에
예수님을 향하여 재촉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는
말씀이었으며, 예수님의 이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그 자리를 떠난 일로
알 수 있게 하십니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부터 떠났다는 말은 그들이 인생을 살면서
양심으로 무엇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를 더 분별할 수 있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남지 않았는데, 이는 어른에 의견을 존중하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젊은이를 교육할 수 있었음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신 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할 때, 용서하여 주신다는
말씀이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부터는 용서가 되지
않는 일을 말씀하는 것으로, 성령을 거스르는 일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에 은혜를 우습게 여기어 가볍게 받아들이는 믿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어서 하시는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면서
어둠 속에서, 나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유대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자아(自我)의 생각이 그들 가운데 가득 차 있기 때문이며,
이는 교만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살리는 말씀에 귀담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탄의 자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이 됩니다.
오늘날을 살고 있는 믿음에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유대 사람들과 같지는
않은지?! 항상 말씀을 거울삼아서 자신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황금률에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저와 삶을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과연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을
하는 삶으로 섬기고 있는지?!를 늘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삶을 살아가려고 힘씁니다.
사탄은 항상 깊은 흉계로서 썩어지는 것을, 좇아서 사는 것이 옳다고 거짓말로 속이면서
한 번밖에 없는 인생 실컷 즐기면서 하고 싶은 것은, 주저하지 말고 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혼의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영생을 주는 말씀을 유대인처럼 여기는 삶으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시는 일방적인 구원에 은혜를 흘려버리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잠언 5장에 말씀은 쉽게 얻을 수 있고, 육신의 안락과 즐거움을 주는 일은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아직도
기회가 남아 있을, 동안에 훈계와 책망을 듣고, 돌이키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생명을 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사는 길을 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날부터 있을 심판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라는
조언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하여 얻은 본처만을 사랑스럽게 여기며, 살아야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셨기에
참부모로서 하는 말씀입니다. 즉 같은 자식이 서로 싸우거나, 불협화음을 내는 삶을 살지
말고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 말씀은 율법을 따라서 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며,
언약의 백성답게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를 본처와 첩에 자녀의 비유로 말씀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하심을
이루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무엇보다 사도 바울이 처음 갈라디아 교회에 자신을 드러낼 때,
자신의 질병으로 연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고, 사랑으로 돌보아 준
것을, 되새겨서 곁길로 가도록 하는 사람을 조심하고, 복음의 본질 안에서 순종하여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미 마음의 소리를 따라서 바울에게
행한 일이기에 바울은 그 이야기를 자신에 약점이지만, 갈라디아 교인들에 첫 사람을 회복
시켜 주려고,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똑바로
서 있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를 알게 하며, 믿음의 사람이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일입니다.
3월 19일(수)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30장, 요한복음 9장, 잠언 6장, 갈라디아서 5장
출애굽기 30장 말씀에 시작은 분향 단을 만드는 방법과 사용 용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법궤에 이어서 아카시아 나무를 재료로 쓰고, 순금을 입히라고 하시며, 분향단은 오직
지성소 앞에 항상 켜 놓는 등불을 손질할 때 향을 피우는 용도로만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향은 요한계시록 8장에서 성도들에 기도와 함께 드리는 향기를 의미합니다.
이어서 하신 말씀은 인구조사와 목숨값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인위적으로 사용할 때, 사용하는 값으로 내야 하는 값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하나님을 항상 경외해야 하는 일을 알게 하시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가 하나님 앞에서
사랑의 관계로서 관계해야 하는 일을 말씀함으로 자녀들이 서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인구조사를 하여 목숨값으로
받은 돈은 성전 세로,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은
성막과 제단 사이에 있는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은 상태에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가지실 때 일과 연관이
되고 있으며, 목욕한 사람은 손과 발만 씻으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성령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삶을 그날을 넘기지 말고, 회개하여 거룩한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여 믿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어서 말씀하는 향 품과 향수에 대한
말씀은 믿음의 사람에 삶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존재라는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사적으로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씀하는 것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거나,
개인의 취향을 만족하게 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다는 말씀으로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사람이 어디에서 나왔으며, 어느 분께서 함께, 하고
계시기에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에 대하여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살펴본 요한복음 9장에 말씀은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사람에 대한 말씀과 함께 죄의
근본이 누구로부터 시작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실 때, 침을 뱉어서 흙을 개어 눈에 바르신 다음에 실로암(보냄을 받았다)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고, 눈을 뜨게 된 일을 가지고, 바리새파 사람과 눈뜬 사람이 예수님에 대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냐?, 죄인이냐? 하는 것을 놓고 언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일을 놓고 하신 말씀은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세상을 심판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눈이 먼 사람은 눈을 뜨게 하고, 눈뜬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눈을
뜬 사람이 바리새파 사람들로부터 쫓겨났을 때, 만나셔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향하여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과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것을 알게 하십니다.
잠언 6장에 말씀은 보증을 서는 것에 대한 말씀으로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은 부지런히 일하여 자신이 살아갈 동안에 필요한
양식을 스스로 해결할 것을 주문하십니다. 이어서 악인과 건달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악은
분명히 재앙을 만나서 순식간에 멸망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을 열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버이를
공경하여, 그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여, 어버이의 교훈을 달게 받는 사람이 누릴
복을 말씀하시면서 그 길은 생명의 길로 연결된다고 하십니다. 이는 오 계명에 관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받게 될 복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눈으로 좋아
보이고, 화려해 보이는 것을 좇아서 교만하게 욕심을 부리면 패가망신을 당할 것이라는
뜻으로, 창녀와 간음하는 일을, 비유로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썩어짐의 종살이를 하는
인생살이에서 영생에 이르려면 영혼의 잠에서 깨어서 생명의 말씀에 귀 기울이라는
말씀으로,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을 좇다가 죽음의 권세에 잡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를 살리시려고 참부모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님으로 성경을 기록한 저자와
동행하시면서 하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 죄의 값을 치러주셔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자신에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있는 일들을 말씀합니다.
즉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그러한 사람에게
진정한 은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면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살리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완성이며,
선지자에 강령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사람 스스로 할 수 없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동행하고 계시기에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17절에서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하여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으로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썩어지는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살지 말고, 영혼을 살리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육체적인 소욕을 일으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생으로 인도하지만, 사람은 연약하여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을
좇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잠에서 깨이기 위하여 영의 호흡 기도와 영의 양식 성경을
매일 살피면서 자신의 현재에 모습을 살피는 삶은 살아야 할 것입니다.
3월 20일(목)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31장, 요한복음 10장, 잠언 7장, 갈라디아서 6장
출애굽기 31장에 말씀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뜻하시고, 계획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 하나님으로 사람과 함께 하시면서 직접 일을 이루고 계심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은 겸손해야 하며, 성령 하나님을 거스르는 말과 행동을 하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실 때, 꼭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하셨기에 예수님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 가운데, 영혼의
옷, 몸을 입지 않으셨고, 남자를 모르는 처녀의 몸을 통하여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오셨으며,
30년에 평범한 인생을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셔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사시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 주셨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신하게 하는 말씀이 십계명을 주실 때, 손수 돌판에 쓰신 증거 판 두 개를
주셨다는 18절에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에서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 좁은 문이며, 구원의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십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함께 사시며 구원으로 이끌어 주고 계시는 말씀이 됩니다. 이는 자유의지로서
선과 악을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으로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로 갖게 되는 오욕칠정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를
판단하여 선한 양심으로, 성령 하나님께 응답하여 순종하는 삶으로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뜻과 계획을 이루시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영혼이 깨어 있어야 믿음에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선한 양심으로 판단하여 알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이 구분되는 것은, 양을 사랑으로 돌보는가?!, 아니면 삯꾼이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양을 돌보는 척하는가?!로 알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양을 돌볼 수 있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를, 인한 것이라고 15절 이하에
말씀으로 확인하여 주고 계십니다. 그 이후에 스룹바벨 성전을 헤롯 대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46년 동안 증축하였고, 그 예루살렘 성전 봉헌 절 겨울에 유대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신들의 답답한 마음과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일 때문에, 예수님께 분명하게 정체를 밝혀
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질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하며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양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선한 일을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덧붙여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신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말씀으로, 성도들이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선포한 말을 되새겨 본 사람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이스라엘의
역사로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할 때이며, 삶의 회개로 갈라지는 이 나라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잠언 7장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기에 마음속 깊이 간직하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지켜서, 잘 살고
하나님의 교훈을 눈동자처럼 여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는 말씀은 음녀, 곧 창녀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창녀는 자신의 본래에 얼굴을 가리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화장을 짙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음녀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이신
지혜와 명철을 친구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빛이 십니다. 하지만 음녀는 어두움이고
활동하는 때도 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낮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는 생명의
말씀을 그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 말씀은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따라서 사는 사람답게 서로를 돌아보면서
특히 약한 지체를 돌아보고, 권면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구원의 은혜를 받아서 영원히 사는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아무도
스스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이는 좋은 씨앗을 심고 가꾸는 농사꾼과 같은
일을 믿음 안에서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실한 열매를 맺고 풍성하게 추수하여 넉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형제, 자매가 실족할 때 바로 잡아 주어서 죄 가운데 살지 않도록 하여, 같은
믿음에 소망을 끝까지 간직할 수 있도록 하여, 사랑의 공동체로서 기능을 잃지 않게 하라고
바울을 통하여 강권하십니다. 그래서 모두가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새 사람에 삶을 끝까지
살아내라고 하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이지만, 이 구원이 자신에게서 이루어
지게 하는 것은, 자신에 삶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3월 21일(금)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32장, 요한복음 11장, 잠언 8장, 에베소서 1장
출애굽기 32장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말씀입니다. 출애굽 시에 이웃에게 귀중품을 비롯해
많은 물품을 빼앗아서 나오라고 하셨을 때, 생필품은 이해가 되었지만, 우상을 만들 수 있는
귀금속까지 빼앗아서 나오라고 하신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본
출애굽기 32장 말씀을 살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귀금속을 빼앗아서
가지고 나오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막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는 기구를 만들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내 산(가시나무 무성한 곳)에서 죄를 드러내는 십계명, 율법을
모세를 통하여 주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시내 산, 언저리로 불러 모으셨을 때,
불과 구름 가운데서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때 자신들이 죽을까 봐. 모세로 하여금 말씀을
받아 오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론을 비롯한 장로 일흔 명은 시내 산에 올랐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먹고, 마셨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을 송아지 틀에 부어
인위적인 기술로 하나님의 형상을 멋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레위지파가 삼천 명에
일가친척을 죽여서 하나님의 진노가 끝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34절, 35절 말씀으로 후에
재앙을 내리셔서, 죄의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알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모든 사람이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산 삶으로 책임을 묻는 심판을 하실
것인데,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을 때, 사흘 동안 죽음의 세상에 내려가셔서 하늘나라에 복음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 죄의 값을 치러주심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예수님과
함께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기 전에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하여,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발을 씻어 주었던 말씀을, 서두에서 말씀하고 말씀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믿음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나사로 일가가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고, 섬겼는지?!를 알 수 있는 말씀이 5절에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인정하고, 믿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살면서
받은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삶입니다. 그렇지 못한 존재를 짐승이라고
하며, 이는 짐승은 감정을 다스리는 양심이 사람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심, 곧 감정을 다스리는 이성은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바로 이 마음을 하나님은 깨우고 계셨으며, 이러한 일을
창세기 4장 7절과 히브리서 9장 9절과 14절에 기록하여 명확하게 말씀하시며, 다윗의 삶과
믿음의 사도들, 특히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하여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임하는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을
말씀하시며, 낮과 밤이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9절, 10절에서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을 공존하게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빛 되시는 예수님께서 삶의 본을 초림에 삶으로 직접 보여 주셔서, 어떠한 믿음으로
삶을 살아야 이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밝힐 수 있는지?! 를 보여 주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나사로가 죽음에서 부활하는 사건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셔야 했던 일을 당시에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말에 의미를 49절부터 52절까지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값을 치러주심으로 창세 이후로 모든 영혼을 살리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놀라운 참부모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베풀어 주신
구원에 은혜가 세상에 충만할 때, 영혼의 잠에서 깨어나서 말씀에 선한 양심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영원한 삶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선용할 수 있을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지혜가 함께 하였고, 창조의 명공이 되었다고 하며, 지혜를 얻는
사람은 죽음에서 해방되고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여, 지혜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믿음의 고백이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베드로가 자신에 믿음을 고백한 말로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하고 있으며, 믿음에 사람이 땅에서 매면, 하늘나라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자신을
세상에서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순종하는 삶으로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이며,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집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게 하셨고, 이집트의 모든 생명에 맏이를 치실 때,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의 집을 넘어가신 말씀을 잠언 8장 34절부터 3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34 날마다 나의 문을 지켜보며, 내 문설주 곁에 지키고 서서,
내 말을 듣는 사람은 복이 있다.
35 나를 얻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주님께로부터 은총을 받을 것이다.
36 그러나 나를 놓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해치는 사람이며,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잠언 8 : 34 ~ 36절 - 새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에 구세주로 영접해야만 죽음에서 영생으로 옮겨지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구원에 감사하여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썩어지는 것이, 썩지 않을 것을, 입게 되며, 천사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하게 대리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참부모가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말씀으로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을 말씀하고 있지만,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재가 유산을 물려받는 이치와 같은
일이 되기에, 인생이라는 자격증을 시험하는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매를 맺어야
받을 수 있게 하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7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8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10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11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자기의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는 분의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입니다.
12 그것은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에베소서 1 : 7 ~ 12절 - 새번역성경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시험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삶과 대속의 제사가
하늘나라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있었던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에
구세주로 영접하여, 죄에서 떠나서 삶을 사는 사람과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사시면서 중보기도와 조력자가 되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세상으로 알게
하는 거룩한 모임이 교회를 통하여 존재하게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생각 곧
자아(自我)가 살아있는 사람은 하늘나라와 세상을 화평하게 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서 삶을 살 수 없도록 마음의 눈이 먼 상태에 있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동참하는 삶을 살 수 없게 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삶이 힘들며, 이는
삶을 살면서 장차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세상의 소망을 볼 수 없기에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성취되고 있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자신에 마음의 생각, 곧 자아(自我)의
생각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차지할 마음의 공간이 없기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서 삶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내게 하시려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22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
에베소서 1 : 22 ~ 23절 - 새번역성경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와 몸이 되며, 나머지 모든 사람은 지체가 됩니다. 그래서
성도(聖徒)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믿음의
사람과 동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스르는 말과 행동은
현 세상에서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라고
강하게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성도가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있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수님께서 초림하시기 약 480년 전에 스가랴(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6 내가 다시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이 사람들을 이웃 나라와 그 이웃 왕에게 넘겨주겠다. 이웃 나라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쳐부수어도, 내가 그들을 이웃 나라의 손에서 구출하지 않겠다."
7 나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돌보았다. 특별히 떼 가운데서도 억압을 당하고 있는 양 떼를
돌보았다. 나는 지팡이 두 개를 가져다가, 하나는 '은총'이라고 이름을 짓고,
다른 하나는 '연합'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나는 양 떼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8 나에게는 목자 셋이 있는데, 나는 그들이 하는 일을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었다. 그들도
또한 나를 미워하였으므로, 나는 한 달 안에 그 세 목자를 다 해고하였다.
9 그런 다음에 나는 양 떼에게 말하였다. "나는 더 이상, 너희를 돌보는 목자 노릇을 하지
않겠다. 죽을 놈은 죽고, 망할 놈은 망하여라. 그러고도 남는 것들은 서로 잡아먹어라."
10 그런 다음에 나는 '은총'이라고 부르는 지팡이를 가져다가 둘로 꺾어서,
내가 모든 민족과 맺은 언약이 취소되게 하였다.
11 그 언약은 바로 그 날로 취소되었다. 양 떼 가운데서 괴로움을 당하던 양들은
나의 행동을 보고서,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12 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좋다고 생각하면, 내가 받을 품삯을 내게 주고,
줄 생각이 없으면, 그만두어라." 그랬더니 그들은 내 품삯으로 은 삼십 개를 주었다.
13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것을 토기장이에게 던져 버려라."
그것은 그들이 내게 알맞은 삯이라고 생각해서 쳐 준 것이다. 나는 은 삼십 개를 집어,
주의 성전에 있는 토기장이에게 던져 주었다.
14 그런 다음에 나는 둘째 지팡이 곧 '연합'이라고 부르는 지팡이를 꺾어서,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형제의 의리가 없어지게 하였다.
15 주님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번에는 쓸모없는 목자로 분장하고, 그 구실을 하여라.
16 내가 이 땅에 한 목자를 세우겠다. 그는 양을 잃어버리고도 안타까워하지 않으며,
길 잃은 양을 찾지도 않으며, 상처받은 양을 고쳐주지도 않으며, 튼튼한 양을 먹이지
않아서 야위게 하며, 살진 양을 골라서 살을 발라 먹고, 발굽까지 갉아 먹을 것이다.
17 양 떼를 버리는 쓸모없는 목자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칼이 그의 팔과 오른 눈을
상하게 할 것이니, 팔은 바싹 마르고, 오른 눈은 아주 멀어 버릴 것이다.“
스가랴 11 : 6 ~ 17절 - 새번역성경
스가랴서 11장 6절 이하의 말씀에서 ”은총“은 교회를 ”연합“은 솔로몬이 외국 여자를 좋아
하였고, 처를 300명, 첩을 700명을 두었으며, 이들이 믿는 신을 허용하였고, 노년에는 신당도
지어 주면서, 솔로몬 자신도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북이스라엘을 여로보암에게 주셨고, 유다를 르호보암에게 주셨습니다. 이후로
세상에서 나라가 AD 70년경에 사라지고, 다시 나라가 AD 1948년 5월 14일(금) 오후 4시에
UN 결의 33표 찬성을 힘입어서 독립을 선언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형제의 의리가 끊어진
상태로 적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부터 이스라엘과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시면서, 세상의 만왕의 왕으로서 순종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스라엘의 역사서가 되게 하시는 것은, 세상의 모든 나라가 말씀이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이
되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탄과 함께 불 가운데서 영원한
고통 가운데 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월 22일(토)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33장, 요한복음 12장, 잠언 9장, 에베소서 2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시내 산, 곧 호렙산을 떠나서 언약의 땅으로 가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함께 가지 않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직전에 있었던 금으로 송아지 상을
만들어서 우상숭배를 하였기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중심을 살피고 계시면서, 성령께서
말씀 가운데 함께 하시는 것을 느끼거나 못 느끼게 하십니다. 이는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말씀과 같습니다. 즉 ”보아라,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이 말씀을 되새겨서 출애굽하는 삶을 끝까지 순종하여 열매를 맺고, 언약하신 땅에 이르는
구원의 은혜에서 떠나서 살지 않도록 항상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순종하는 가운데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사는 사람은 죄로부터 출애굽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동행하시는 성령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
곧 있을 삶을 결산 받을 날을 준비해야 후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는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세가 화가 났을 때, 선한 양심, 곧 이성으로 자신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여, 믿음이 없는 행동, 곧 망령 된 말을 므리바 샘이 터질 때, 하였기에
아론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교훈으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마주하여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는 말씀을 21절, 22절에 기록하여 알게
하십니다. 즉 바위는 예수님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기록하여 깨닫게
하시는데, 이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시는 독생자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또 구름을 타고 승천하신 일도 출애굽 때,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함께
하였던 것이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는 창세 이후로 모든 사람의
영혼을 살리시는 죄를 대속하는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 앞에 두고 살 때 부지불식, 중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말씀으로,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바르고, 자신에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린 일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에
두 귀를 기울여,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을 받고 있을 때, 마리아의 언니 마르다는 자신의
생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섬기는 일로 분주하였고, 급기야 마리아가 미웠으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동생 마리아를 예수님 앞에서 비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과 같은
생각을 마리아로 하게 하여서 언니 마르다가 하는 일을 돕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르다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인본주의적인 마르다와 상반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41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42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누가복음 10 : 38 ~ 42절 - 새번역성경
요한복음 12장 말씀에는 위의 누가복음 10장에 말씀이 생략되어 있지만, 마리아가 향유
옥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준비하였던 일이 있었던, 같은 시기와 장소라는 사실을
요한복음 12장 1절부터 3절에 말씀으로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당시에 일을
더 자세하게 말씀하여, 왜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마음을 갖을 수 있었는지?! 와
가롯 유다가 왜 예수님을 배반하였는지?! 를 알 수 있는 말씀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떠한 삶을 사는 것인지?! 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적인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육체에 소욕을 따르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신본주의적인 믿음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믿는 믿음으로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죽음에 이르는
삶을 살게 하고, 영원한 삶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감사함으로 살게 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바리새파 사람과 대제사장들과 율법 학자들 곧 예수님 초림 당시에
유대의 지도자들이 예수님뿐 아니라 부활한 나라로까지 죽이려고 하였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의 하수인들에게 핍박받게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삶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고집이 센 사람을 죄로부터 살리시는 일을 보여 주십니다. 즉
고집이 센 짐승을 길들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사시면서 고집을 순종으로 고쳐주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예수님을 자신에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과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보내주실 일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말씀으로 깨닫게 하실 때,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 나귀를 타신 것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하는데
이는 어린 나귀는 아직 어미 나귀에 비하여 세상을 많이 살지 않았고, 어미로부터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상태라서 고집을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과,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을 가지고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로 갖게
되는 오욕칠정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를 판단하고, 이성으로 다스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같은 동물군과 다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사람이 죄를 지어서 죽음에 이르게 된 것
같이 모든 만물이 죽음의 권세 잡은 사탄에게 잡혀서 죽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죄의 값을 치러 주셨기에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삶을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면,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예수님께서 부활하심과 같이 부활하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게 된다고 요한복음 11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부활은 모든 만물
곧 사람이 다스리는 모든 생명체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쳐서, 모든 피조물도 구원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로마서 8장 19절부터 22절까지 말씀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로 재림하실 때는 48절에 말씀과 같이 구원하시려고 오신
초림과 다르게 심판하시려고 오실 것이며,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순종할 때까지
순종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이 순종하는 천 년이 지날 때, 하나님 아버지가
백 보좌에 심판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계획하신 모든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후로는 죽음이 사라지고 영원한 삶이 죄로부터 왔던 온갖 고난과 환난이 사라진 상태에서
모두가 사랑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랑의 완전한 공동체가
되어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요한계시록 20장부터 22장까지에 말씀으로, 말씀합니다.
잠언 9장 말씀의 시작은 창조의 일곱 날에 말씀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뜻하시고 계획하신
일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고 계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알 수 있게 하는 말씀이
사람을 지으신 여섯째 날을 의미하는 6절에서 ”어수룩한 길을 내버리고, 생명을 얻어라.
명철의 길을 따라가거라" 하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값을 치러 주셨기에 믿음의
사람이 거룩해져서,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사시는 일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모든 인생 가운데서 함께 하고 있기에, 겸손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 곧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만 꾸짖고, 훈계하라고 8절과
9절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이 고난과 환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찾고,
만나게 하는 일이 되기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인생은 삶의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각자에 믿음을 따라서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면
그러한 말이, 때가 이르면 그 사람을 얽어매는 올무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없이 겸손하게 삶을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는 것은 12절에서 ”네가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하지만, 네가 거만하면 그 거만이 너만 해롭게 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
예수님의 재림 때부터 심판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 이어서 13절부터
18절까지에 말씀은 어리석은 여자가 하는 말을 따라서 사는 사람에게 닥쳐, 올 끝 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람으로서 최초로 하나님을 배반한 하와에 대한 말씀이며, 음녀 바벨론
곧 악의 근원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현실 가운데 존재하고 있음에 대해
에베소서 2장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선과 악, 곧 하나님의 영을 따라서 사는 사람과
사탄의 영을 따라서 사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어떠한 삶이 사탄의 영을 따르는
삶이며, 어떠한 삶이 하나님의 영을 따라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거룩한 삶을
살게 하셔서, 성 삼위일체가 되는 삶으로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부모가 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를 살리시려고 보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신에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에 순종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영원한 가족으로 회복하시는 일방적인 은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