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가 말하다_ 『불교음악의 세계』 (윤소희 지음, 동국대학교출판부, 602쪽, 2025.12)
한류의 뿌리
21세기 세계를 물들이고 있는 한류의 화룡정점이 K뮤직이다. 그런데 K팝의 뿌리가 불교악가무인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기에는 불교를 외면하는 외부적 요인과 조선조 억불을 지나며 불교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내부적 요인도 있다.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에서는 “한국전통음악은 불교음악이다”는 말을 늘상 듣게 된다. 실제로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이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불교가 한민족 문화의 토양이자 체질이 된 만큼 일상의 중얼거림까지 불교음악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혼잣말을 하면 “비 맞은 중 중얼거리듯이 한다.”는 말이 있다. 목탁 치며 염불하고 꽹과리 치며 회심곡하며 탁발하던 스님이 비를 피하여 처마 밑에서 염불하던 우리네 옛 일상이었던 것이다.
폄하의 역설
고조선부터 형성되어온 무속음악도 불교가 들어온 삼국시기부터 불교를 흉내 내었으므로 세존굿, 제석굿과 같은 것이 있고, 굿 할 때 사찰 의례 때 도량을 장엄하는 번(幡)으로 장식한다. 일 없이 놀며 민폐를 끼치는 사람을 ‘건달(乾達)’이라 하는데, 인도 신화의 뮤즈이자 불교의 호법신인 ‘간다르바’를 한문으로 표기한 어휘이다. 아픈 사람에게 소마 묘약을 주는 천상의 뮤즈를 조선조 유생들이 놈팽이로 만든 것이다. 승가의 큰 스승을 지칭하는 산스끄리뜨어 ‘아차리야’를 한문으로 ‘아사리(阿闍梨)’로 음차 했는데 한국에서는 엉망진창인 상황을 ‘아사리판’이라 한다. 요즈음도 한심한 사람을 “아이구 이 화상아!”라고 하는데, ‘화상(和尙)’은 왕을 가르치는 대학자 정도의 큰스님이나 종단의 창립자 정도가 되어야 들을 수 있는 높은 호칭이다.
백제의 미마지가 일본에 전해준 기악(伎樂)이 가마쿠라 시기 사찰 교훈극으로 행해졌는데, 그 절차와 내용이 오늘날 한국 각지에서 연행되고 있는 산대극 탈춤의 서사와 거의 같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산대극은 파계승을 놀려먹는 ‘중마당’이 메인이라 안타깝지만 이러한 현상들이 오히려 한국인의 무의식에 녹아있는 불교음악의 뿌리를 말해주는 역설적 현상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말과 범어가 지닌 동질성을 간파한 세종 임금께서 지은 한글이 있으므로 이제는 범어 본래의 음으로 간다르바, 아차리야, 붓다와 같이 하면 불교음악 원형이 우리식으로 살아나는 지름길이 됨을 이 책 188쪽 「한글과 불교음악」에서 설명하고 있다.
심우도가 불러온 인연
우연히 동네 사찰 벽에 그려진 심우도를 보고 거문고 독주곡을 쓰게 되었다. 그 연주를 보러온 스님들이 심우도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불교음악의 세계』를 저술하는 인연의 시작이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대만불교 의식음악 연구」를 작성하면서 중국에 없는 한국의 작법무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의문이 생겼다. 궁금증의 안테나를 따라 티벳으로 가서 참무를 알게 되었고, 불교음악의 원류와 초기불교를 찾아 인도, 스리랑카, 동남아 곳곳을 다닌 여정으로 불교음악의 세계가 지도처럼 그려졌다. 국내에서 불교음악을 전승해온 스님들을 만나 어떤 마음으로 어떤 현실에서 의례를 해왔는지 들어보니, 의례나 음악도 결국은 “살자고 하는 행위”였다. 이렇게 촬영하며 기록한 자료들을 유튜브에 올려 큐알코드를 담아 출간한 『불교음악의 세계』는 종이책에 담긴 동영상 자료집이기도 하다.
붓다의 수행과 음악
붓다는 어떻게 무아와 연기라는 궁극의 우주질서를 꿰뚫어 알게 되었는지, 수행에 비하면 불교음악이 표피적인 것이라, 그간의 연구도 모두 버리고 떠나 보고 싶었다. 붓다와 같은 수행으로 세상 모두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면 여기에 목숨을 걸어도 되겠다 싶던 숲속 수행처에서의 어느 날, 평소에 늘 독송하던 경전과 기도문 율조가 무위(無爲)의 음악임을 알게 되었다. 이후 산스끄리뜨와 빠알리어, 인도 고전 원전 읽기를 하며 고대 인도의 음성행법과 불교의 진언・다라니와 만뜨라 찬팅이 하나로 꿰어졌다. 이렇듯 붓다의 음성을 원음으로 하는 불교음악은 말씀의 율조에서부터 찬탄의 노래까지 선율과 리듬의 폭이 천편만화와 같이 넓고 깊다. 이러한 세계를 망라한 이 책은 현지에서 만난 수행자들과 전문가들의 덕분이었고, 그들을 만나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한 공동 저서이다.
치유와 명상의 세계, 불교음악
고대인들은 질병을 악령으로 인식하여 노래와 춤을 추며 집단 카타르시스를 유발하거나 신이라는 초월적 대상에게 제물을 바치며 치유를 빌었다. 병자를 치유하며 홍법 활동한 의승(醫僧)을 비롯하여 만뜨라 찬팅과 약사불 신행의 저변에는 고대인도 『아유르베다』의 바탕이 있었다. 해부학이 발달한 티벳불교에는 죄인들의 뼈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해온 전통이 있고, 그 전통의 바탕에는 시체를 토막 내어 독수리들에게 먹이로 주었던 자연환경이 있었다. 그 결과 진맥・침술・뜸・소변검사까지 체계화한 사부의경(四部醫經)이 성립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파피루스에 기록된 음악 치료와 그리스의 테라페이아(Therapeia), 이슬람 사원에서 악사들의 연주와 함께 치료해온 전통이 불교음악과 얽혀있음을 이 책에서 실제 사례와 함께 제시하였다.
음악이 치유에 활용되는 원리에는 음악이 지닌 정교한 진동 체계와 인체와의 상호 작용이 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영역에 음악이 해결사 역할을 했던 여러 보고서들이 있다. 폭력적 성향의 청소년과 우울증 환자에 활용된 음악치료, 코마 상태의 장기 환자를 깨어나게 한 사례, 실어증 치료에 특히 유효했던 노랫말 가사, 만성 통증 완화에 쓰였던 음악, 사망 직후의 망자를 위한 불교 의식 시다림 염불과 49재를 통한 불교음악의 치유와 더불어 세계 명상음악과 불교 명상음악의 세계가 미래 연구자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또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숨은 음악 찾기
음악은 형태가 없는 존재이므로 인류사의 기록에서 가장 그 실체를 찾기 어렵고, 연구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신라 향가의 경우, 가사는 있지만 음악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천 곳곳에서 음악의 흔적들이 발굴되고 있다. 사찰 입구에 있는 부도탑 곳곳, 어느 스님 계실 때 어떻게 염불하고, 어떻게 범패를 했는지를 새긴 비문, 고구려의 고분과 가야, 백제, 신라 곳곳의 유적, 신라・고려・조선 사람들이 만든 범종에 우리 조상들이 연주하던 악기들이 새겨져 있다. 『불교음악의 세계』에는 이들을 발굴하는 현장을 통해 연구 가능성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새로 보이는 역사
불교음악이 담긴 무덤, 비석, 탑, 기왓장, 벽화들을 비롯해서 요즈음 발굴되는 고고학 사료들을 보니 고착되어 있는 우리네 역사관에 문제가 많았다. 한국에 가장 먼저 사찰이 지어진 곳이 아유타국의 허왕후와 수로왕이 결혼하며 형성된 가야의 불교이고, 한국전통음악의 대표 악기인 가야금이 있는데, 왜 그간 삼국시대라며 가야를 빼먹었을까?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한국불교음악사를 사국(四國)시대로 설명한다.
또한 통일신라와 동시대에 있었던 발해가 있는데 왜 한반도 이남으로 잘려진 신라만 생각했을까? 일본의 불교음악을 조사해 보니 발해의 불교 유적과 음악적 자료가 많았다. 그중에 범패의 성조를 표기한 발해의 의례집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케데헌으로 국중박에 줄서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몇 번을 보고 또 보았던 발해의 불교의례집과 병좌불상, 발해와 일본이 연결되는 기왓장 무늬는 일본에 영향을 미친 고구려 불교음악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통일신라가 아니라 남북국(南北國)시기로 하여 남쪽 신라와 북쪽 발해 불교음악을 함께 담았다.
서툰 기술
테이프를 기계에 넣어 촬영하던 데서 플로피 디스크와 갖가지 기계들에 적응해오며 촬영해야만 했던 그 현장이 지금은 유튜브만 틀면 한 순간에 펼쳐진다. 어이없고 허탈한 그간의 피・땀・눈물이지만 유튜브에 로딩되는 콘텐츠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전문가의 안목이 필요해졌다. 어느 정도가 일상이고, 어떤 것이 상업성과 과장이 더해졌는지 현지에서 전문가로부터 듣고 배운 내용을 이 책에서 동영상과 함께 가르마를 타고 있다.
대만, 중국, 티벳, 네팔, 동남아, 인도, 스리랑카, 아프리카, 남미와 유럽 일대를 다니며 직접 촬영한 자료와 현지인이 올린 자료들을 큐알 코드로 심었지만 AI 기술이 넘쳐나는 요즈음 미디어들에 비하면 심심한 것도 더러 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는 한계를 넘어 다양한 불교음악의 길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불교음악 키워드를 가능한 많이 담되 세세한 설명은 생략하여 독자들이 길을 찾아가는 출발점이 되도록 했다.
숲과 나무
이 책은 세계불교음악의 숲을 먼저 보고난 뒤에 한국불교음악이라는 나무를 보고, 그리고 음악치료와 명상음악으로 이어지는 미래 비전을 내다보고 있다. 제1부 불교의 성립과 음악 역사, 제2부 한국 불교신행과 음악, 제3부 21세기 음악치료와 명상 음악과 AI 불교음악까지 3부분이다. 이러한 가운데 공명과 인체 구조, 음악의 진동 체계와 뇌에 미치는 영향 등 첨단 뇌과학 데이터를 소개하기도 했다. 선행 연구 자료가 없어 맨땅에 헤딩한 본 책은 구멍이 숭숭 나있는 거친 성과물이다. 그리하여 챕터마다 이 방면으로 어떤 연구가 더 필요하고, 어떤 길이 있는지를 일러두었다. 앞으로 각 챕터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나와서 이 책의 빈 공간을 채워주면 좋겠다. 그때 후학들이 나의 실수와 오류를 지적하느라 와글와글할 하더라도 그런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윤소희 동국대·음악인류학
2009년 7월 북인도 라닥 해미스곰파의 참의식을 촬영하고 있는 필자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대우교수. 한국음악회 편집위원장. 음악인류학자로서 『세계불교음악 순례』(2021), 『음악인류학-불교와 세계종교』(2024) 등 다양한 저술이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및 세종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조계종출판문화 대상, 대원상 특별상, 반야학술상, 묘엄불교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 외 다수의 논저가 있으며, ‘세계불교음악순례, 어장의 계보’, ‘윤소희의 음악과 여행’ 등 신문 연재와 함께 유튜브 채널 ‘윤소희의 음악인류학’ 등을 운영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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