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처| 손상률목사
성경 룻기는 열 명의 이름이 나오는 베레스의 계보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22절에는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계보의 특징은 다윗의 조상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베레스의 족보를 마태복음 1:1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한 예수님의 족보와 연관시켜 볼 때 그 의미가 더욱 확실해집니다. 다윗은 아브라함과 예수님을 연결시키는 중간 인물로서 이상적인 그리스도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배경을 생각하면서 베레스의 계보가 주는 신령한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약속에 근거한 계보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창 17:7).
1) 선택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이스라엘 민족을 거룩한 백성(聖民)으로 택하시고 이들을 세상 모든 민족의 표본으로 삼았습니다(창 18:9).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코자 하는 목적에 이들을 들어 쓰신 것입니다. 똑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이스마엘은 제외되고 이삭이 선택되었습니다. 이삭에게서 쌍둥이 아들이 낳지만 에서는 제외되고 야곱은 선택되었습니다(롬 9:13).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넷째 아들인 유다지파 후손들이 족보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입니다. 로마서 9:16에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2) 언약 중심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되는 사람은 모두 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일을 두고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라고 하였습니다(신 7:8).
하나님 나라의 주류가 되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행 13:22).
또 다윗에게는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삼하 7:13).
3) 역사의 증거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선진들이 살고 간 자취는 후세 사람들에게 거울이 됩니다(고전 10:6). 히브리서 12:1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서 말한 ‘증인들’이란 아벨에서부터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구약시대 믿음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들도 모두 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통하여 믿음의 자취를 남겨놓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처럼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자신들과 후손들에게 축복의 유산을 남겨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므로 역사에 오점을 남긴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 왕국의 멸망과 함께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포로시대의 역사가 그런 것입니다(마 1:11).
2. 복음의 특징을 알게 하는 계보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멸망 받게 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나님의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여기 베레스의 계보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거기에 담겨져 있는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1) 메시야의 왕통을 나타냅니다.
마태복음의 경우 유대인의 관념에 따라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을 근거하여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대주의 전통에 따라 그들은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에서 난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고 있었습니다.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과 히브리 왕조의 뿌리가 되는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 족보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족보의 특징 중 하나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를 14대씩 3등분하여 42대로 맞춘 것입니다. 이는 유대적인 기교에 따른 것으로서 3은 하나님의 숫자이고, 14는 거룩한 숫자인 7의 2배로 유대인이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여기에 매이다 보니 왕들의 이름 중에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시아, 여호야김 등 네 명의 숫자가 빠졌습니다.
2) 상식을 뛰어넘는 계보입니다.
혈통과 신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인 통념으로 볼 때, 이 족보에 나열된 이름들 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족보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유대인 최고의 명문을 소개하는 것인데 거기 이방인과 여성들의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그중에도 라합과 룻은 이방인이고, 다말과 우리아의 아내는 비정상적인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라합은 여리고의 기생으로서 비천한 신분이었고(수 2:1). 다말은 야곱의 넷째아들 유다의 자부인데 시아버지와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는 것도 매우 부끄러운 기록입니다. 유대인이 자랑하는 메시야의 족보이지만 이처럼 추하고 어두운 면도 숨김없이 사실대로 밝혀 놓았습니다.
3) 죄인이 의롭게 되는 진리를 말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소망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그 어디에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행 4:12). 예수는 천하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이요,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기독교의 복음은 예수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롬 1:16). 또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사유함을 받고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있던 강도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눅 23:43). 수가성의 음란한 여인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유함을 받았습니다(요 4:25).
3. 축복의 통로가 되는 계보입니다.
룻기의 시작은 시련과 고난이었지만 결국 회복과 영광으로 마치게 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나오미, 룻, 보아스, 오벳 같은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전해주는 통로가 됩니다. 곧 예수님의 모형이며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다윗 왕조의 뿌리가 됩니다.
다윗의 왕조는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의미합니다. 다윗 이전에도 왕이 있었고, 이후에도 여러 명의 왕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다 족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유다 지파 다윗의 자손을 뿌리로 하여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어가고자 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사울왕의 경우 사무엘이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그들이 제비뽑아 세웠지만, 결국 그의 왕권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삼상 10:17-21). 한편 솔로몬 이후 왕국이 분열되면서 북조 이스라엘에도 19명의 왕이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계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앗수루에 멸망할 때까지 왕조가 아홉 번이나 바뀌는 등 악순환이 거듭되었습니다. 그래도 다윗의 후손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도 그 이름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2)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근거가 됩니다.
성경에 “유다 지파” 또는 “다윗의 뿌리”로 표현되는 예언과 약속들은 모두 예수님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야곱의 예언 가운데 “규(홀-笏)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11:10에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들은 유다지파 이새의 아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을 예언한 것입니다. 다윗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자기 민족에게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주었지만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온 인류에게 영원한 평화와 축복을 가져다주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3) 영광스러운 기업의 보장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기 백성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사 43:1-7).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던 나오미도 룻도 다 보아스를 통하여 회복되고 최고로 존귀한 반열에 올랐습니다. 본문 16-17절에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꿈같은 축복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는 잉태해 보지 못한 여인에게 노래하라고 하면서 남편 없는 자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게 된다고 하였습니다(사 54:1).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