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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 3: 6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살후 3: 8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2. 성도의 규모 있는 생활 ( 3: 6 - 15 )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살후 3: 6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명하기를,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말한다.
명한다는 말은 권면한다는 말보다 강한 뜻이다.
권면하는 바도 순종해야 하지만, 명령하는 바는 더욱 순종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는 말은 이 명령을 인간 바울의 권위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하는 것임을 보인다.
1]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이것은 사도의 명령의 권위를 보여준다. 그는 곧바로 그리스도의 명령을 교회에 전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명령함에 있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근거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진정한 사도적 권위를 나타내 주는 것으로서 그 명령의 절박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하여금 그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기 위함이다(Morris).
그러므로 이 명령은 바울이라는 한 개인으로부터가 아닌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인 만큼 반드시 정중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Calvin).
2] 게으르게 행하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탁토스 페리파툰토스'(*)는 '빈둥거리며 무질서하게 노는 것'을 특별하게 지칭하는 단어이다(Morris).
여기서 '아탁토스'는 원래 군사 용어로 '대열을 이탈한'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Robertson).
따라서 본 구절은 그릇된 재림관과 임박한 종말의 지나친 강조로 인해 불성실하며 무위도식하는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 살전 5: 14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게으르게'란 말은 '질서를 지키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도덕의 내부적 방면보다도 외부적 방면 곧, 단체의 질서나 예의 같은 것을 어김이다.
우리는 이 구절에 있어서, 사도가 이런 질서나 예의 같은 것을 존중히 한 심리를 알 수 있다.
3]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전통'(*, 파라도신)은 문자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넘겨진 것'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교훈', '가르침'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에 대해서는 2: 15 주석을 참조하라.
이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체류할 때 그들을 향해 선포했던 복음을 비롯하여 본 서신을 통해 제시한 교훈과 권면까지도 포함한다.
* 살전 4: 11-12 -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살전 5: 14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게으르게 무질서하게, 무법하게 행한다는 것은 사도들에게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전통이라는 말(파라도시스)은 받은 교훈을 의미한다. 그것은 교리적 내용과 윤리적 내용을 포함한다.
사도 바울은 2: 15에서도 그들이 받은 교훈을 지키라고 말하였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을 지키라.”
신약성경은 사도들의 유전 즉 사도들이 교훈한 내용이다. 신약성경의 교훈을 순종치 않는 것이 게으르게 즉 무질서하게, 무법하게 행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교회 안에는 사도들의 교훈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이었다. 당시에 그들은 교리적 문제에 있어서는 이상이 없었고 단지 윤리적 문제에 있어서 사도의 교훈을 순종치 않고 있었다고 보인다.
4]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여기서 의미하는 '떠남'은 출교(excommunication)와 같은 공적 추방이 아니라 개인적인 교우 관계를 멀리하라는 말이다(Calvin).
즉 이것은 모든 교제의 단절이 아니라 의심받고 있는 범죄자로부터 자신을 멀리 떼어 놓으라는 의미이다(Morris).
이러한 바울의 경고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잘못된 교리에 미혹되어 부패하게 될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떠나라'로 번역된 헬라 원어는 '가까이 사귀지 말라'는 뜻이다.
그 내용은 14절이 점 더 자세히 밝혔으니 곧, 그 사람과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떠나라"는 말은 교회를 분립(分立)하라는 의미가 아니고 그런 규모 없는 자들과 마음의 간격을 두고 경계하라는 것뿐이다.
이것은 말없이 그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처신이다.
그런데 '규모 없이 행하'는 자는 어떤 사람일까? 8-10 절이 가르치는 대로 일하지 않는 자이다. 바울은 이런 자로 하여금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다(10절 하반).
'전통'이란 말에 대하여는 2: 15에 있는 해석을 참조하라. 여기서는 이 말이 성도의 일상생활에 관계된 것으로서 직업을 지키고 근면하게 노동하라는 사도의 교훈을 가리킨 듯하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런 고의적 불순종자들로부터 떠나라고 명령하였다. 떠나라는 말은 교제의 단절을 의미한다.
어떤 형제가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비록 그가 바른 신앙을 가진 형제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와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사도의 명령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권면이 아니고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다.
물론, 이것은 교회를 따로 세우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회 안에 한두 명의 형제의 잘못 때문에 새 교회를 따로 세워서는 안 된다. 성경과 교회 헌법의 규정대로, 교회는 잘못을 행하는 자를 권면하고, 책망하고, 성찬 교제에서 그를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그를 제명, 출교시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권징 순서이다.
칼빈의 말대로, 권징은 교회의 힘줄과 같다. 교회가 권징을 충실히 행할 때 교회는 튼튼한 교회가 되지만, 교회가 바른 권징을 포기하면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권징을 포기한 교회는, 비록 그 교회에 교인수가 많고 재정이 넉넉할지라도, 진리의 수호자와 전파자로서는 무능한 교회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전체적으로 배교적일 때도 있다. 물론, 교회가 전체적으로 배교하고 변질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교회 안에는 참된 신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쉽게 타락하지 않는다. 참된 성도들이 깨어 있기만 하면 그들은 교회의 타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징을 포기한 교회는 서서히 타락할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있기 전에 교회는 전체적으로 배교적이었고 진리를 붙드는 자들은 매우 소수였다.
오늘날 기독교계도 16세기 종교개혁 때와 비슷하게 상당히 배교적이고 해이해져 있다. 세계적으로 역사적 대 교단들은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가 되었고 불신실하고 권징이 없는 교회가 되고 있다.
오늘날 성경적 교회들이 당면한 매우 중요한 한 문제는 교제의 문제이다.
살후 3: 7 본받아야 할지를 -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
헬라원어에는 이 구절 초두에 "왜냐 하면"이란 말이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윗 절의 이유를 보여준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일하지 않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를 경계해야 된다. 그 이유는, 성도가 자기 직업에 충실해야 할 것을 바울이 친히 실행으로 모본을 보였기 때문이다.
1]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이미 알고 있음을 '너희가 스스로'(*, 아우토이)라는 강조적 대명사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Morris).
즉 그들에게 보여준 바울 자신의 삶을 모범으로 삼아 따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로 번역된 헬라어는 '포스 데이 미메이스다이 헤마스'(*)로 문자적으로는 '우리를 본받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의미한다(Robertson).
그렇지만 이것은 선택적인 문제가 아니라 당위성의 문제이기에 개역성경은 명령조의 표현으로 번역했다.
2]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이것은 6절 및 12절에 대조되는 구절로 규모 없이 행함에 대한 바울의 분명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Robertson).
본 구절은 바울의 삶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이고 간결한 표현이다.
따라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의 모범적 삶을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살후 3: 8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는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도의 교훈을 고의적으로 불순종하는 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런 명령을 위해 자신을 예로 들었다.
그는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주야로 수고하고 일했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기술자이었고 친히 그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성도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그가 물질적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연약한 교인들에게 시험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1]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이것은 바울이 친히 손으로 일하여 생활비를 마련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 행 20: 33-34 -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바울의 이 말은 교역자가 교회에서 생활비 받는 것을 반대함이 아니다.
* 고전 9: 7-14 -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이것은 바울이 자기의 특수한 환경에서 필요에 의하여 자급(自給) 생활한 것을 가리킨다.
* 고전 9: 15-18 -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교역자는 교회에서 생활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 마 10: 10 -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 딤전 5: 18 -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손에서 그것을 받는다는 심리를 가지면 안 된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에게서 그것을 받는 것인즉,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복음을 위하여 충성할 뿐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일에 충성한 자를 공수로 돌려보내시지 않는다. 만일 교역자가 생활비 부족으로 곤란을 당한다면, 그는 스스로 반성하여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지 못한 것을 회개할 뿐이다.
그는 그런 곤란한 때에 교회를 원망하면 안 된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기억할 주님의 말씀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신 그 말씀이다(마 10: 8).
이것은 히브리식 표현으로서 단지 식사를 한다는 것뿐 아니라 생계를 계속 유지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 삼하 9: 7 -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여기서 '값없이'로 번역된 헬라어는 '도레안'(*)으로 문자적으로는 '선물로', '선물하는 방식으로'라는 의미이지만 선물 자체가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기에 본 구절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 마 10: 8 -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 롬 3: 24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바울이 그 때에 가졌던 생업(生業)은 장막을 만드는 일이었다.
* 행 18: 3 -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교회가 교역자에게 생활비를 지급할 능력이 없을 때에 교역자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자급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조심할 것은,
(1) 시간적으로 복음 전도에 방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금전을 탐하거나 폭리를 탐하지 말 것이다.
(3) 다른 업자(業者)들과 경쟁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4) 생활비 자급으로 인하여 교만하지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