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짠돌이카페에는 두번째 쓰는 글입니다.
일전에 한 번 글을 쓸 때 세부적인 가계부도 같이 쓰고 싶었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너무 단순하게 쓴건 아닌가 해서 다시 한 번 글을 써봅니다.
우선 저는 87년생 30살 신랑이고, 와이프는 85년생 32살입니다.
뭐, 대부분의 자수성가 혹은 짠돌이 카페 올라온 훌륭한 분들 글만큼
특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번 써볼까합니다.
저는 경북 영주 시골에서 태어나서 강원도 삼척대를 나와서
지금도 강원도 강릉에서 직장생활 하고 있습니다.
우선 흙수저라고 다 불행하거나 불운한건 아니고
그냥 가난해서 남들보다 조금 불편하게 살아온것 뿐이라 생각하구요.
8살때까지 영주 시장통 사글세방에 살다가 9살때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갔는데
뭐 부모님쪽에 일이 잘못됐는지 갑자기 아파트를 팔고 또 시골에서도 외각인
사글세 방을 1년마다 옮겨다녔습니다. 그 중에 6개월은
건물 옥상 콘테이너에 살기도 했고요.
그래도 저 혼자가 아니라 한살어린 남동생이 있어서
둘이서 의지하면서 지냈었네요. 결국 아버지는 이혼하시고
새어머니랑 새출발하시면서 저희도 같이 그나마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그게 고2때까지 이야기입니다.
그때부터 대학문제 이야기 나왔는데, 아버지는
공무원 공부해서 대학가지말고 9급 준비하라 했었지만
역시 머리가 딸려서..라기 보다 당시에 꿈과 비전이
영상방송쪽이라 그걸 하고싶다고 빡빡 우겼었네요.
그러기엔 또 인서울 할 실력도 안돼..
집안 사정상 사립 인서울 등록금 대줄수가 없어..
하여튼, 대학을 지방으로 밖에 갈 수 없었는데
때마침 할머니집이 강원도 삼척에 있어서
방을 잡지 않아도 된다고 아버지가 추천하셨던 곳이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그래도, 제가 하고싶은 걸 배우는 방송영상학과 들어갔네요.
아무래도 경쟁률 낮은 대학이라 그런지
수학포기하고 국어,영어만 열심히 파서 내신 2등급 정도로
수시전형으로 합격하고 갔습니다.
이때부터 좀 경제관념이나 뚜렷한 신념?
이런게 생겼던거 같아요. 아버지도 늘 입버릇처럼
스무살엔 독립시키겠다. 넌 이제 독립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셨구요. 실제로도 반 독립 했었습니다.
(등록금은 알아서 하기, 용돈은 졸업할때까지만 보내주나
원하는건 알아서 돈벌어서 마련해야하기 등등)
지잡대 타이틀이라고 제가 나온 모교를 폄하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실력 등은 평균이하라 조금만 노력해도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학점은 잘 받을 수 있어서 학기마다 장학금 받으려고
열심히 공부했었고 다행히 등록금 대출같은거 없이 꾸준히 장학금은
적게든, 많게든 받아왔던거 같네요.
용돈은 딱 폰비+책값+용돈으로 한달 30만원 주셨는데
그걸로는 모자라서 알바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부터 돈 모으기를 시작했던거 같습니다.
군대 다녀오고 복학하면서 술집 서빙알바, 공연장 인력노가다 알바,
주물공장 알바, 편의점 야간알바 하다가 사장님이 잘봐주셔서
사장님 자녀들 과외알바 까지 정말 운좋게 하면서 돈을 모아갔는데
이게 처음 100만원 정도 생겼을때는 노트북이나 데탑이나
이런거 갖고 싶은거 사고싶어졌다가 타이밍 놓쳐서 못사고
한학기 지나니까 300정도가 모였더니 함부로 못쓰겠더라고요.
영상편집도 혼자 독학으로 배웠는데
좋은 장비 비싼 장비로 안만들어도 재밌기만하면
좋아했고 학점도 나왔으니 싼 장비로 만들어서
좋은 평가 받으면 가성비가 좋은거 같아 그걸 더 즐기는
변태같은 영상학도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학점 1점, 1점 다 돈이라 생각해서
챙겨듣고 또 듣고 다시 듣고 해서 4.5점 만점에 4.44
올 A를 받아 수석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중에는 1,300만원 모아서 대학 졸업했습니다.
그리고는 막연한게 이제 취업을 해야하는데
사실 수석에 학점 좋아도 지잡대에 영어 점수 하나 없어서
취업이 쉽진 않았죠. 대기업? 서류광탈.
눈높이를 낮춰야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어차피 여태 살아온
고생 생각하면 돈 좀 받아가며 고생하는건 감사한 일이라
생각해서 결국 근처 지방 영상프로덕션에
월급 150만원 받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이것도 겨우 수업 들어오던 초빙교수님이
꾸려가던 자영업 수준의 광고회사였는데 강도는 빡셔도
그래도 하고싶은 일 하면서 다닌다고 생각해서 감사히 다녔네요.
모아놓은 1300만원으로 다 쓰러져가는 여관방 반전세를 구했고
월세가 7만원 밖에 안하는 곳이라서 월급 150만원 받으면
그걸로 100만원 적금부터 하고 50만원으로 살았습니다.
인센이나 상여들어오면 10원 한푼 안빼고 다 추가적금하고
그렇게 28살까지 5000만원 정도를 모았습니다.
그래도 마티즈 한대 130만원짜리 중고로 뽑았고
아버지 명의로 보험을 들어서 1년 보험비 20만원에
기름도 얼마 안먹는 경차라 그것도 차라고 유지하면서
다녔고, 물론 연애도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어릴때 어머니 없이 자란 경향이 있는지 애정결핍?
그런게 있어서 여자친구 없이는 너무 외로워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좀 잘 표현을 잘하는 스타일이라 그랬는지
고2 때부터 지금 와이프를 만나기 전까지는
4-5개월 텀으로 솔로였고 늘 여자친구는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러니 손으로는 셀수없을 정도로 많이 만나긴 했었지만..
뭐 상쓰레기 정도로 바람피고 그랬던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연애는 첫 연애 (중3때) 부터 원칙이 있었는데
돈쓰는 연애는 하지말자 였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연애하면서도 도서관 데이트 아니면
놀러가거나 밥먹어도 더치페이, 대학 들어와서는
늘 데이트통장을 만들었죠. 다행힌지 아니면 당연히
코드가 맞았으니 연애가 시작됐을테니 당연한건지 몰라도
제가 만난 여자들은 모두 데이트통장에 선듯 흔쾌히 허락했었습니다.
뭐.. 지금 생각하면 그런것들이 이별의 이유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여자, 저런 여자 진짜 다양한 사람들 만나면서 사람보는 눈은 조금씩 생겨나니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어떤 여자다 하는 주관도 생겼고..
지금의 와이프가 마지막에 소개받은 여자였는데 진심으로
뻥안치고 첫만남에 눈을 보자마자, 아.. 이여자다.
해서 그냥 제가 밀어붙여서 결혼했습니다.^^;
말이 일단 잘 통하고 돈은 솔직히 제가 너무 극한의 짠돌이 기질이나
와이프는 순둥이라 제 말을 잘 따라줬고 지금은
같이 으쌰으쌰 돈을 잘 모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의 와이프는 첫직장 다닐때 소개받았는데
두번째 직장 옮길때 큰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영상을 좋아했으나 특기는 원래 대학 다닐때부터
말하기나 발표같은걸 잘했었고 또 붙임성 같은건
꽤 있었던 편이라서 2년 뒤에는 제가 다니던 회사에
수주를 주는 본청인 CJ헬로비전 마케팅 쪽으로 정규직 채용에
도전했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혹은 업무에 특별히 적용하기로하고
특기를 살려서 직업을 다시 구해보자 했었네요. 아무래도 절실했기도 했고
신입공채는 학벌도 보겠지만 저는 특별 채용이고
경력사원 같은 신입 지원이라?
대학생 친구들보다는 경쟁력이 있었는지.. 아니면,
몸 건강하면 된다는 영업관리, 현장 마케팅 직이라
경쟁율도 낮고 지금도 하라면 아무도 안할것 같은
드럽고 치사하고 힘든 직업이라서 (다녀보니..ㅋㅋ)
어쨋든 합격했습니다. 와이프도 정말 옆에서 내조 잘해주었구요.
학벌없이, 영어성적없이도 합격 가능하다면 했던
정말 이 회사 역사상 유래없었던 특별채용일까? 싶지만
어찌됐든 학벌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고 들어온거 같아
기쁜것도 잠시; 진짜 잠시잠깐 느꼈네요.
그래서, 급여는 전 직장 대비 한 1,000만원 인상됐고
적금도 그래서 60% 더 늘렸습니다. 생활비는 더 줄었는데
그건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회사에 있다보니까
돈 쓸시간도 없고 주말에도 출근해야 해서
주말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저축했습니다.
그래서 1억 모았습니다.
대기업 하니까 주위 친구들은 따뜻하게 일하고 인정받는 일하고
누구나 꿈꾸는 대기업 직원인줄 알지만, 그래서 더 하소연도 못하지만
진짜 어휴 진짜 하.. ㅋ 겉만 아니겠지만 반대로 중소기업,
박봉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그런 위치도 아닌
중간에 어정쩡하지만 그래도 지금껏 맨손으로 일궜다 생각하구요.
결론은 여하튼 겉은 번지르르한 CJ그룹 임직원이지만
아버지가 공부하랄때 안해서
여기서 영업관리나 하는 현장 마케팅직이다... 생각하게되는
현실성 있는 결론입니다.
우리회사는 SK로 인수합병 소식 있다가 망했고
이제는 그룹 자체가 안좋은 일에 휘말리고
그래봐야 말단 사원인 저와는 연관이 없겠지만
위태위태한 상황이라 볼 수도 있고..
협력업체는 역갑질? 하고 이건 업체문제라기보다
시스템의 문제인데 중간 관리자인 제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풀리는 일도 없지만
그래도 직장내에서 인정받고 입사 3년만에 발탁으로
대리 승진합니다. 여태는 연봉 실수령 기준 3800만? 했었나 싶고요.
박봉인듯한데 원래 CJ가 박봉이긴합니다.
그래도 즐겁게 다니고 있습니다...ㅋ..
강릉에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2년 연애+동거 끝에 올해 결혼 성공했구요
부모님 도움없이 전세임대 6000만원짜리 14평 신혼집 구해서 살고 있고
스드메 포함 총 지출 700만대로 일반 예식장 뷔페식 결혼식 올렸고
푸켓으로신행 다녀왔네요.(메이크업,드레스,리허설촬영,식장대여,신혼여행,혼수 싹포함)
다녀와서 우리수중에는 보증금 빼고 딱 1억이 있었구요
축의금이 1300만원 정도 들어왔고 아버지가 독립자금 1000만원을
27살때 한 번 주셨고 결혼할때도 1000만원 딱 잘라 주시고
이제 큰 아들 영원히 독립시킨다고 좋아..하셨네요;
그리고, 우리 부부는 저 230만원 실수령 + 수당 25만~30만 수준,
와이프는 160만원 정도 실수령 총 도합 420만원 정도 수입이 있습니다.
그마저도 제 수당 20이 유동적이라 그냥 400만원 수입 잡습니다.
그리고 매달 300만원씩 저축하고 있습니다.
한달에 100만원으로 살면서 여기서도 좀 남깁니다. 20~30씩.
그러니 평균 한달 70만원으로 산다고 봅니다.
제가 2년 정도 주식을 하고 있는데 벌었다 잃었다 결국 힘들어서
잠깐 빼면서 스쳐가는 예금 계좌입니다..
요기에 정기적금+주택청약 합쳐서 2100만원, 집 보증금 6000만원 하면 얼추 2억이네요.
이렇게 30살이 저물어갈때 2억까지 모은 후기입니다. 한달만 지나면 31살이니까
그냥 31살에 2억모은 후기라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현실은 아직 30살이니까ㅋ
먹을거 다 먹고 놀거 다 놀고 여행도 두루두루 다니면서 너무 돈돈 거리고 안살았어도
결국 과잉소비 하지 않고 지출만 꼼꼼히 관리해주면서 허튼데(안마,노래방)만 안가도
솔직히 1억정도는 금방 모으지 않나.. 하는 사견도 남겨봅니다;ㅎ
서울살았으면 2억 있으니 대출 1억 받아서 3억짜리면.. 어느정도 자리잡았겠죠?
글 초반에 등장했던 제 동생도 지 혼자 고생해서 돈벌더니 서울에서 IT개발자로(금융권)
용산구에 지 명의로 집을 마련했네요.
진짜 울 아버지가 제일 부럽습니다^^ㅎㅎ..
저도 제 자식이 더도말고 덜도말고 딸은 와이프같고, 아들은 저 같았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ㅎ
쓰다보니 옆으로 자꾸 세어가는데
결론은 안돼는 환경보다 그 속에서 그래도 가능한 방법, 차선책을 찾으려 연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면 그것도 길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부부의 목표와 비전은 하나입니다.
1. 하루 뽀뽀 100번(초과달성)
2. 닥.치.고.현.금.확.보
3. 예찬이 예솔이(아이들 이름 벌써 미리 지어놨음) 만나기...ㅎ
지금 집이 너무 따뜻하고 살기 좋아서
주위에서 좁다 뭐다 해도 그냥 아랑곳 않고
컨테이너 박스에서도 살았던 저에겐 천국이 따로없으니
가진거 만족해하면서 계속 현금을 확보시켜 나가려고합니다.
언젠가 분명한 기회가 찾아왔을때 그것이 종잣돈으로
아주 더 크게 팽창할지,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 부부가
꿈꾸는 비전에 큰 힘이 될 거라는 믿음은 있으니까요^^
저는 지금은 마케팅을 하지만 이 경력을 쌓아서
영상컨텐츠 제작 능력도 함께 포함하여 브랜드마케팅 쪽으로
전향하여 제가 가진 재능을 좋은 일에 재능기부하면서 살수있고
와이프도 그림그리기, 아이들 가르치기를 너무 좋아해서
접목시켜서 함께 꾸려나갈 꿈이 있습니다.
꿈이 있고, 사랑이 있고, 행복이 있는 가정속에서
돈 모으기는 이 모든것을 지켜주는 착실한 미션이지
방해요소가 아닙니다. 다들 그리 빡빡하게 살면 불행할거다
뭘 그리 포기하고 사냐 지금을 즐겨라 하시는데
저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고
저와 제 와이프의 행복은 소비랑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오기 때문에 돈을 쓰는데서 오는 만족이
꼭 행복이랑 연결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다들 화이팅하시고, 긍정적으로
오늘 하루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