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3반 윤지영, 너 나와" 미정은 오랜만에 TV를 틀었다. "요즘 <자유선언> 재방하나 보네" 마침, 학창시저레 한참 재밌게 봤었던 <자유선언, 주목이 운다>가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문득, 미정은 자신도 이 방송에 참여했던 때를 떠올렸다. 미정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정네 고등학교에서는 <자유선언>에 출연했었다. 당시, 미정은 가장 친한 친구인 선아와 다툰 상태였다. 평소에는 둘도 없는 절친이었는데, 좋아하는 남자애가 겹치면서 사이가 틀어졌었다. 그렇지만, 미정은 선아와 꼭 화해를 하고 싶었다. 방송에서 사과를 하면 받아줄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에 사연을 신청했다. "2학년 2반 이선아, 너 나와!" 미정의 외침에 선아는 링 위로 올라왔다. "선아야 미안해..." 처음에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선아의 얼굴을 보니 감정이 봇물쏟아지듯이 흘러나왔고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현재, 미정은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유튜브에도 남아있나? 쪽팔려서 한번도 안 찾아봤었는데" 유튜브에 검색해보자, 숏츠로 미정의 사연이 여러 개 올라와있었다. "와, 진짜 어렸네" 미정은 흐뭇해지다가도 한편으로 슬픈 기분이 들었다. 사실, 선아와 극적인 화해를 하고도 서로 다른 대학에 들어가며 연락이 자연스레 끊긴 상태였다. 선아뿐 아니라 다른 학창시절의 친구들도 보고 싶었지만, 선뜻 전화를 걸기는 어려웠다. 미정은 생각했다. '서로 불편하기만 할 것 같은데...'
미정은 며칠 전에 초등학교 동창의 연락을 받은 적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의 목소리를 들어 반가웠지만, 전화에는 짙은 정적이 여러 번 흘렀다. 아무래도 서로의 삶이 너무도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미정은 사실 전화기를 들기 전에도 걱정이 앞섰었다. "경조사 참여하라고 연락하나, 동창회? 좀 어색한데" 삶이 팍팍해지다보니, 마음이 팍팍해지는 것 같았다. 현재 미정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유선언> 속 미정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보였다.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얘기하고, 그것을 선아도 받아주리란 확신이 있었다. 분명 화면 속 선아는 화가 나보였지만, "응답해줘 선아야"라고 말하면 언제든 미정의 말을 들어줄 것만 같았다.
'전화해보자.' 미정은 무의식적으로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어쩌면 수화기 너머에서 <자유선언> 속 선아가 응답을 해줄 것 같았다. 현재의 미정이처럼 걱정이 많고 팍팍한 선아가 아니라 말이다. 뚜루루루...3초의 정적이 흘렀다. "역시 얘도 이젠 오랜 친구한테 전화받으면 걱정부터 드나보다" 그때 전화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미정이니? 오랜만이다!" 생각보다 선아는 더 환한 목소리로 그녀를 맞아주었다. 선아와 어색해서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할 거란 걱정도 무색하게 시시콜콜한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미정은 사회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에게 벽을 느꼈다.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야 했고, 사람들은 듣고 싶은 얘기만 들었으며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다. 특히, 디자인 회사에서 일할 때는 각자 성과에 신경쓰느라 서로에 대한 견제가 만연했다. 선아는 반복되는 사회생활에서 사람에게 지친 상태였다. 선아가 아무리 진심으로 다가가도 응답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선아는 부르면 언제나 응답해주는 친구였다. 고등학생 때 함께했던 수많은 순간에서도, <자유선언>에서도, 그리고 지금의 통화도. 미정은 문득 저번에 통화했던 초등학교 동창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건, 자신의 진심에 응답을 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미정은 거울을 바라본다. 그리고 현실에 찌든 자신의 모습 안에 순수했던, 그리고 감정에 솔직했던 어린시절의 나도 있음을 깨닫는다. "응답하라, 내 순수했던 시절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