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속성
남자가 일 없이 빈둥거리면 여자가 그럴 때보다 더 암담해 보인다.
남자가 욕설을 할 때면 여자가 그럴 때보다 더 천박스럽게 보인다.
남자가 거짓말을 할 때면 여자가 그럴 때보다 더 불쌍해 보인다.
남자의 웃음은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허파에서 나와서도 안 되며,뱃속에서 우려나오는 것이라야 한다.
남자의 눈물은 일생에 한 번 혹은 두 번 보일 수도 있되, 그것은 전 생애를 짜낸 한 방울로도 족하다.
남자, 무한한 힘과 가능성의 상징.
누가 뭐라 해도 그 이름은 지배자이며 권력자이며 창조자이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베푸는 자이다.
천리를 함께 동행하여도 두렵지 않은 믿음직스러운 남자가 여자 곁에 한 사람쯤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 든든한 일이며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남자다운 남자를 믿으며 존경하며 사랑한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무쇠처럼 질기며 물처럼 담백하고 산처럼 태연한 그 자세. 남자의 패기, 배짱, 용기와 힘은 우리 여자들이 영원히 도달하기 어려운 세계에 있다.
우렁우렁한 음성과 소탈한 식성과 멀고도 입체적인 안목, 조직적이며 과학적인 사고, 정확한 직관, 복잡하지 않은 그 심리적 구조,
든든하고 실팍한 골격, 일 속에 빠져 있을 때의 그 집념의 눈빛을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여권이니 여성해방이니 하는 단어에 대하여 약간은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해방이라는 말은 구속을 전제로 한 것임에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진정한 여권이란 여성의 가정, 사회, 국가, 남성과의 하모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 여자들이 신뢰하고 싶은 남자는 그 수가 지극히 적다. 남자다운 남자가 드물다.
동시에 여자와 대결하려고 하는 남자의 수는 날로 늘어가고 있다.
여자에게 과중한 것을 요구하고 남자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남자가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남자 자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여자들에게도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흰 구두를 신은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내 개인적인 괴벽이라 치고, 얼근히 취하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남자, 허풍을 떨고 고성방가, 방뇨하는 남자,(이런 남자에겐 구슬픈 애교라도 있다 치자) 말끝마다 남자, 남자하는 남자.
남자된 것이 큰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내세우는 남자는 못나 보인다.
그 잘 잘못은 여하간에 사소한 말다툼을 하고도 여자가 사과할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하는 남자도 역시 못나 보인다.
여자를 폭력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남자는 곤란한 남자다.
그는 여자가 폭력에 눌려 미처 발설하지 못한 말의 홍수에 외롭게 표류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 혼자만 유독 처자식을 부양하는 것처럼 공치사하듯 이르는 남자는 지저분하다.
여자의 열 두 가지 속성 중에서도 유독 모성만을 강조하여 밤늦게 돌아와서는 살림에 지친 여자의 연약한 무릎을 베고 자장가나 불러주기를 요구하는 남자는 여자의 미소 뒤에 숨은 그윽한 동경의 불빛을 영원히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밑도 터지고 위도 터져 헤어나올 수 없는 일의 산더미에 여자를 버려둔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때로는 소견머리 없고 미천한 존재이며 어쩔 수 없는 여자의 굴레에 몰아넣었다가도 필요에 따라서는 여자가 완전한 인간이기를 원한다.
친척의 생일에서부터 적금 부을 날, 각종 세금의 고지서 숫자와 가위 단추 장도리 못그릇의 정확한 위치를 기억해야 하고, 남편의 기분과 아이들의 숙제와 가족의식성과 건강에 이르기까지 만전을 기하기를 요구한다.
여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루도 온전히 살아가기 힘들다.
그러므로 정에 인색하고 정을 담은 말 한마디에도 인색한 남자는 여자를 서럽게 한다.
남자의 진실한 말 한마디는 대때로 어떤 어리석은 여자를 한 달, 일년, 혹은 한 평생을 외롭지 않게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남자다운 남자의 고독을 안다.
북구의 음악과도 같은 그의 근심. 온 천하를 안고 싶어하는 그 가슴의 충동을---그러나 알 수 없다.
표박자와 같은 그 편력을 알기 힘든다. 여자의 평화를 뒤흔드는 그의 버릇을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