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 퍼플섬을 걷다
나비의 날개짓은 다름아닌 나의 목감기였다.
목만 안아팠다면 간밤에 술도 조이 마셨을테고, 술김에 다들 잠도 잘 잤을테고, 에어컨을 켜도 덜 추웠을테고..그리하여 다들 꿀잠을 잔 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7시 20분 버스를 탔을 수도 있고, 덜 더울때 섬을 둘레 둘레 가볍게 걸어다녔을 테고, 택시 기사와의 불편한 심리전도 없었을테고..등등
원래 플랜 A는 일일 버스이용권 인당 5,000원 권을 끊어서 하루종일 단돈 5,000원으로 목포- 신안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시간상 농어촌 버스를 탱자탱자 기다릴 형편이 안될 경우에 대비한 플랜 B는 <읍동>에 내려 콜택시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것.
하지만 여행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체력도 바닥이고 시간도 빠듯하니 ..덜 힘들게 택시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원래 돈을 쓰면 신간이 편해진다. 이건 만고의 진리다.
회비의 장점은 내가 돈을 냈으되 내돈 아닌 듯 한 느낌이나 쓰기에 부담이 없다. 물론 총무는 다를 수 있다.
이건 내가 총무를 해봐서 아는데 ㅎㅎ 휴게소에서 비싼 커피 사달라는 지인들에게 편의점 1+1커피 맘껏 고르라고 한 적도 있다.
어쨌든 택시타고 출발.
시원하고 편하고 다 좋은데..좁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 1시간 이상을 가는 것이 조이 불편했다.
우리만 불편했겠나.
분위기 띄우려 노력하는 택시기사님의 노력에 부응하려 덩달아 말도 많아졌는데..
우리 셋은 졸지에 <여사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여사님이라..극존칭인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이 느낌적인 느낌.
그래도 <어머님>이라고 안 부른게 어딘가.
소실점인가. 팽팽한 평행선이 한 점에서 만나는 곳.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이니 차안에서 하늘과 바다와 다리의 양 끝이 만나는 곳을 볼 수 있다.
서해는 남해와 또 다른 느낌이다.
그냥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남해의 해안도로와는 다른 울컥한 뭔가가 있다.
파란 하늘아래 나즈막한 섬들이 드문 드문 있는 서해바다를 보며 눈물이 날 뻔 했다. 이 기분, 뭔지 모르겠다.
바닷물이 누래서 황해라고도 불리는데 하늘빛 때문인가. 시리게 파란 바다빛이다.
도착했을 때는 바닷물이 들어차 있었고, 두어시간 뒤에는 물이 빠져서 갯벌이었다.
달의 인력이라..보이지 않는 힘들. 묘하다.
퍼플섬에 오기전에 수없이 들여다본 그림. 두 개의 섬이 육지와 연결되었으니 모두 세 개의 다리가 있다.
바닷물이 만조가 아니라 부교는 움직이지 않았고, 더운 날씨에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섬 트래킹은 엄두도 못냈다.
무더위에 걷기에는 무리다. 많이 무리다.
반월도에서 방향을 틀어 바로 박지도로.
박지도가 더 작은섬이라 좀 만만했다.
박지도 안에 있는 포토존 같은 곳. 플라스틱 향이 가득한 포토존이다.
플라스틱 조화로 보랏빛 꽃을 늘여놓기 보다는 차라리 제철 덩쿨 식물들이 더 낫지 않나 싶다.
이런 무더위에는 수증기 분무 뿜어져 나오는 터널을 만들어도 좋을 듯..발 씻을 펌프 시설이라도.
신안군 담당자들, 혹시 실수로 이 글 보시면 참고 해주시라.
그래도 사진찍기는 참 좋았다.
박지 호텔..내내 아쉬운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인터넷에서 숙소를 찾을 때 검색된 곳이지만 선택을 안한 이유는 ,
인터넷 예약이 안된다는 것. 전화로 예약하고 입금하는 과정은 어딘가 피곤하다.
그리고 화장실 공용이 무슨 뜻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애매했다.
무엇보다 참 웃기지만 <마을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라는 말이 마치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으로 읽혔다는 것.
사회주의국가인 쿠바의 호텔시설을 티비에서 보고 편견이 너무 팍팍 생겨버린 탓이다. 나는야 편견 덩어리.
다시 퍼플섬을 찾게 되면 (아마도 그럴 듯 하다) , 이 곳에서 일박을 하며 섬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을 보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대목이다.
누가 누군지 구분 안되는 방탄 소년단의 누군가가 만든 말이란다.
보라색이 무지개의 마지막 색이라..I PURPLE YOU는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해>라는의미라고.
개인적으로 보라색은 가장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다.
환갑이 가까운 여사님이 보라색 겨울 오리털 점퍼를 입고 다니는 것은 좀 희귀한데..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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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니 참 아름답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더위에 지치고 체력은 바닥이라 힘들고 짜증도 났겠지만..나는 참 좋았다. ㅎㅎ
그리고 스스로 반성한다.
이동거리 자심한 뚜벅이 여행이라 여러가지 변수를 예상하고 플랜 비와 플랜 씨 까지 생각했지만..
정작 <상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장마 끝 무더위가 이미 극성인데 왜 나는 이 뻔한 더위를 감안하지 않았을까.
깊이 반성..그리고 성찰..아쉬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목포와 신안을 떠올리면 그곳에서 본 장면과 스쳐 만난 사람들이 떠오른다.
머릿속에 뭔가 풍성하게 들어있는 이 느낌이 좋다.
친구들과 함께 였으니 이렇게 좋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