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연구실(이하 시민연, www.shiminkagaku.org)은 1994년 설립된 NPO입니다.
설립 목적은 1. 과학기술에 관련된 다양한 의사결정이나 정책결정에 대한 시민참가. 2.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지식의 적정한 활용. 3. ‘지속가능하고 생기가 넘치는 생활’을 위한 과학연구나 교육의 실천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시민연이 지향하는 이념은 첫째, Living Science, 즉 ‘생활에 기점을 둔 과학’입니다. 둘째,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과학’을 지향하는 시민과학입니다. 시민연은 전자파, 나노기술, 생명조작, 주거환경, 과학커뮤니케이션 수단, 저선량피폭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민연은 2012년 12월, 시민과학강좌에서 [특집: 방사선교육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오염과 피해의 실태에 적절한 교육을]이라는 주제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이 내용 중 몇 개를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글은 하야시 마모루(林衛, 시민연 감사) 토야마대학 인간발달과학부 교수의 발표입니다. [시민연통신 제16호, 2013년 2월]에 실린 글이며, 방사선교육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내용은 생략했습니다.
방사선교육을 둘러싼 문제들 – 우리는 어느 부분에서 틀렸는가?
국가정책의 홍보물로 전락한 방사선 교육 --- 현실
최신 학습지도요령에 방사선교육이 채택되었다. 그 의도는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직후인 2011년 4월 국회의 문제 제기로 폐지된 문부과학성이 만든 원자력・방사선교육 부교재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원자력에 국운을 걸었다고 할 정도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소의 신규 입지나 방사성폐기물지층처분의 후보지 선정이 어려운 것은 “원자력발전이나 방사선은 과학적으로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위험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의 의식을 개선하기 위해 방사선교육이 도입되었다.
방사선 ‘안전’교육의 담당기관으로 ‘라데이’ 방사선안전교육추진위원회(라데이(らでぃ)는 방사선을 뜻하는 radiation을 줄인 이름이며, 방사선교육위원회의 홈페이지인 동시에 기관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음. 운영기관은 공익재단법인 일본과학기술진흥재단. www.radi-edu.jp-역주), NPO법인 방사선안전포럼이 최근 결성되어 과학실험교육단체 등과 연계하여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들의 주장과 교육내용은 선배격인 재단법인 일본원자력문화진흥재단, 공익재단법인 원자력안전연구협회(원안협)를 이어받은 것이다(1970년대의 내용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외에 보건물리, 핵의학관계자, 생활계몽조직들이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직후에 활동을 강화해왔다.
그들이 주장하는 핵심은 우리 주변에는 자연방사선이 많고, 방사선은 의료나 공업생산에 효과적으로 이용되고 있고,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도 ‘양의 문제’(사실상의 역치가 있다는 논리)에 불과하며, ‘방사선을 올바로 두려워하기’(올바른 지식이 없어서 두려워한다는 뜻)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최근 ICRP의 권고에서 드러나는 본인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피폭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기준, 역치가 없다는 사고에 기초한 의무론적 윤리관이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다.
자연방사선의 존재나 방사선 이용 등 방사선에 관한 사실을 다루는 내용은 얼핏 보면 ‘객관적, 중립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선량 피폭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상세 정보나 정부의 정책을 상대화하는 관점이 빠져있다. 이 때문에 ‘방사선을 올바로 두려워하기’라는 일련의 주장과 해설은 국가정책의 홍보로 직결된다.
시민교육을 위해 정부정책을 상대화하는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정보가 필요하다.
이과계 기피현상이 사회문제가 된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원자력에 국운을 걸었다는 표현이 익숙한 상황이 되었다. 그 당시부터 효고현남부지진(1995년 1월 17일)으로 인해 원자로 내진지침으로 정해진 원전설계기준보다 훨씬 높은 지진움직임 관찰(이미 존재가 알려져 있었으며 일본에서 도시 직하지진에 의해 실측되었음), 고속증식로 몬쥬의 나트륨 누설 화재사고(1995년 12월 8일), 도카이무라 도에이(動燃) 아스팔트 고체화처리시설의 화재폭발(1997년 3월 11일), JCO임계사고로 인한 노동자와 주민 피폭(1999년 9월 30일), 주에스오키(中越沖)지진(2007년 7월 16일)에 의한 가시와자키-카리와(柏崎刈羽)원전 피해 등이 이어져왔다. 시민사회의 차원에서 국가정책을 개선할 기회가 몇 번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가정책에 손댈 수 있는 역량이 취약한 상태에서 2011년 3월 11일부터 시작된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1997년 일본 정부의 에너지연구개발예산의 총액은 3,755억 엔이었다. 그 중 약 90%인 3,386억 엔이 원자력에너지(원자력발전, 핵연료리사이클, 핵융합 등)에 투입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재래식원자력 개발에 대한 정부투자 세계 1위가 되었다(프랑스의 4.7배, 미국의 20배, 독일과 이탈리아의 57배). 핵연료리사이클(고속증식로 개발)에 대한 정부투자는 2억7천만 달러(약 300억 엔)으로 프랑스의 25배에 이르렀다(나머지 국가는 모두 철회). 원자력에 국운을 걸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국가예산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원자력발전은 고비용과 더불어 성숙되지 않은 기술단계에 있다. 연구개발과 함께 새로운 기술적 과제가 드러나고, 이런 과제의 해결을 위해 발전단가가 점점 높아지는 음(negative)의 ‘기술학습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와 도쿄전력이 거대 쓰나미에 관한 최신의 정보를 상정하기 않았기 때문에 원전사고가 발생했다는 판단도, 배상책임을 받아들이는데 소극적 자세를 보이는 것도, 성숙하지 않은 기술을 무리하게 실용화해온 결과이다.
민주주의의 ‘악용’에서 벗어나기 — 문제의 본질
원전 입지나 안전성을 둘러싼 논의에서 국가정책을 추진하는 쪽은 위험성을 정면에서 부각시키지 않고, ‘(절대)안전’과 ‘보조금과 교부금’을 이용하여 과소지역에 다수파 형성을 도모하는 ‘이면의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 위험 소통-역주)’전략을 관철해왔다.(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시민의 네 가지 권리, 즉 안전 추구권, 선택권, 정보권, 의견 반영권의 관점에서 보면 ‘이면의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은 민주주의의 교묘한 ‘악용’이라고 할 수 있다.)
*역주: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란 재해나 환경문제, 원자력시설 등으로 인해 인류나 생태계가 받는 영향과 위험성을 둘러싸고 기업, 전문가, 행정, 소비자, 지역주민 등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정보 전달이다. 이것은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안전대책이나 허용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상호의 의사소통, 공통인식의 형성, 합의 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이면’이란 정부가 사업 추진지역의 특정 집단(주민)이 갖고 있는 취약점을 이용하여 외형적으로는 자발적 선택의 형식을 갖추는 사업추진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방폐장 부지 확보를 위해 3000억 원의 세금을 베팅하고, 여러 지역이 앞 다투어 경쟁했던 방식이나 밀양에서 “다른 주민은 보상금 받겠다는데 당신만 왜 그래”라며 동의서에 사인을 요구하는 한전을 떠올리면 맞을 것 같다.
이에 비해 기존의 이과교육 관계자 대부분은 자연의 훌륭함이나 자연과학을 배우는 목적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과학기술의 정치적 측면을 약화시키고, 가치관과 거리를 둔 ‘객관과 중립’의 교육을 수행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강력하게 추진되는 국가정책과 소수의 반대자 사이의 압도적 격차 속에서 ‘객관과 중립’을 가장한 태도를 살펴보면, 드러나는 정치성도 문제지만 방사선 ‘안전’교육의 추진에 대한 참가와 협력은 기존 이과교육의 ‘객관과 중립’론에서 보더라도 국가정책의 입장에 크게 기울어진 행위이다.
도교전력 경영진도 정치가도 원전사고의 책임을 명확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사임이나 사죄도 없다. 왜 그럴까? 민주주의사회(시민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도쿄전력 경영진은 국가정책을 수행해온 결과이고, 안전대책이 불충분했음을 일정 정도 확인한 이상, 형식적으로는 정부 지시에 따라 사고 대응과 배상을 진행하고 있다. 선거에서 뽑힌 정치가는 주권자의 선택에서 그 정당성을 찾는다. 즉 원전사고의 최종 책임은 주권자에게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그 이상의 책임은 없다. 국가정책 추진자의 정치적 책임, 법적 책임이 불문에 붙여진다. 이 또한 민주주의의 ‘악용’이다.(이하 생략)
다음번에는 문부과학성 발간 부교재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대안적 방사선교육 사례 등을 포함한 ‘방사선교육원론’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