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남부여행기
2. 테를찌 공원에서 하루
김 선 구
게르의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었다. 밤새 비가 내린 모양이었다. 빗소리가 자장가가 되었는지 잠을 푹 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넓게 펼쳐진 초원과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들 그리고 맑은 공기.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광경과 폐 속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공기가 문명에 찌든 먼지를 털어 내는 듯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었다. 식당건물 뒤편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니 게르촌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산재해 있는 캠프들이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침 출근하는 말과 소들의 느린 걸음과 떼를 지어 이동하는 양떼들의 잰 걸음. 초원의 아침은 짐승들의 행보로 시작 되었다.
< 바양하드 캠프 >
아침식사는 빵과 쌀밥으로 자유 배식토록 했는데 쌀밥은 풀기가 없었다. 위도가 높은 곳이라 압력이 낮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식사는 훌륭했다. 한국인 방문객이 많다보니 우리 입맛에 맞도록 식단과 요리법이 많이 개선되었음을 느끼게 했다. 어제 저녁에 먹은 쇠고기 찜도 점심에 먹은 양갈비 찜도 모두 먹을 만 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양고기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곤욕을 치러서 고추장을 특별히 챙겼었는데 이번에는 식사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침 식사 후 캠프 뒤편 엉커츠 산 트레킹에 나섰다. 산위에 펼쳐진 야생화의 세계 “천국의 정원”을 찾아서다. 엉커스 산은 밑에서 보면 산이지만 올라가면 다시 평지를 형성했다. 산위에서 내려다보는 초원의 풍경은 마치 스위스의 알프스와 유사 할 만큼 장관이었다.
한동안 힘든 코스를 걸어 오르자 완만한 경사지에 이르렀다. 드디어 야생화들이 피어있는 들판에 이르렀다. 수천 평에 이를 것 같은 너른 면적에 이름 모를 꽃들이 뒤섞여 피어있는 모습은 천국의 정원이라는 표현을 무색케 했다. 꽃무리를 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지 팀 원 중 여성들 몇 명이 꽃밭 속에 그냥 들어 누어 버렸다. 주위에서는 진한 허브향이 진동했다. 한참을 더 가니 커다란 돌무덤이 나타났다. 몽골 민간신앙의 상징이라는 “오보”였다. 병과 재난을 막아주고 가축들의 번성을 돕는 수호신이 존재하는 곳이다. 돌무더기 가운데에 버드나무가지를 세우고 오색 헝겊을 둘러놓았다. 주위에는 평생을 함께 했던 말의 머리뼈며 지팡이, 술병과 돈, 과자도 있다.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며 소원을 빈단다. 몽골초원 곳곳에서 만난다는 오보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 노릇도 하고, 샘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우리도 주위를 세 번 돌고 내려왔다.
오후에는 칭기즈칸 동상박물관, 아리야발사원, 거북바위를 차례로 방문했다. 칭기즈칸 동상은 몽골건국 8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 에르뎀 박물관위에 세워져 있었다. 울란바토르 동쪽 54km지점이다.
이곳은 칭기즈칸이 젊은 시절 황금 말채찍을 발견했다는 곳이다. 몽골 인들에게 말채찍의 발견은 커다란 행운을 의미한다. 높이 40m의 동상은 은빛 찬란하여 멀리서 봐도 장엄한 모습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동상으로 꼽힌다. 오른손에 황금 말채찍을 들고 말위에 앉아있는 칭기즈칸은 고향인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 고향은 굴욕과 영광의 땅이었다. 죽음과 삶의 온갖 고난을 무릅쓰며 그 곳에서 성장하였고, 1206년 오논 강변에서 “칸“의 칭호를 받고 몽골제국의 탄생을 알렸다.
< 칭기스칸 동상 >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천년동안 인류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칭기즈칸을 선정했다. 몽골고원에 흩어진 부족들을 하나로 뭉쳐 대몽골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것과 실크로드의 교역을 확보하여 동서 간의 교역과 문화교류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겠지만 시대의 영웅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동상이 서 있는 건물1층 로비에는 몽골인 기마용 장화 고탈(gutal)을 전시하고 있었다. 칭기즈칸 동상의 발 크기와 같게 만들다 보니 쇠가죽 120마리 분이 소요되었다한다. 지하층 “에르뎀 박물관“에는 몽골의 역사와 유목민들의 삶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어 아리야발사원으로 이동했다. 아리야발사원은 티베트불교사원으로 1810년 몽골과 티베트 예술가들에 의해 지어졌었다. 그러나 1930년 대 후반 몽골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완전 파괴되고, 그 곳에 머물던 승려들마저 학살당했다. 지금은 강과 숲으로 둘러싸인 언덕위에 사당을 짓고 108개의 계단을 만들어 코끼리 코를 형상화 하고, 주변 산비탈 바위에 기도문 글자를 크게 새겨 놓은 것이 특이했다. 사당 건물은 작았지만 사찰경내는 넓고 주변풍광이 수려하여 산책하거나 휴식처로 적당했다. 그러나 관광지가 되다보니 이곳에도 좀도둑이 성행하는 모양이었다. 이동 중에 소지품을 주의하라는 가이드의 거듭된 당부 때문에 엄숙함 보다는 긴장감 속에 사찰 답방을 마쳤다.
다음에 들른 곳은 관광명소로 유명한 거북바위였다. 멀리서 보면 등껍질과 머리가 거대한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닮은 모습에 놀랍고, 오랜 세월 바람과 빗물이 만들어 낸 자연의 조화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었다. 전설에 따르면 17세기 준가르제국의 통치자가 이 곳에서 전투를 치를 때 부인이 갖고 있던 보물을 이 바위 동굴 속에 감추어 보존했다. 그 이후 몽골 인들은 이 바위가 부를 가져다주는 신물로 믿고 신성시 한다고 하였다.
< 거북바위 >
저녁에는 바양하드캠프 식당 홀에서 몽골민속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 내용은 민속악기인 마두금의 연주와 노래와 전통춤이었다. 공연자들은 민속예술대학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들에게 여흥을 제공했다.
마두금 연주에는 말울음 소리와 말이 달리는 소리의 리듬을 차용한 것처럼 들렸고, 노래는 깨질 것 같은 고음으로 우리나라의 아리랑을 부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가 하면, 깊은 저음으로 전혀 다른 창법을 구사하기도 하였다. 목동들이 초원에서 외로움을 토해내던 소리가 아닐까! 춤은 경쾌하고 빠른 리듬과 활발한 몸짓, 그리고 관중을 향한 몸짓으로 웃음을 유도하였다. 함께 박수치며 일체감을 갖게 하기도 했다.
그 밖에 별빛이 밝은 몽골의 밤하늘을 즐겨보라는 의미에서 별자리에 대한 강좌도 있었다. 빔 프로젝트의 화면을 통하여 천체를 관망하며 특정 별자리를 찾아보는 실습도 했다. 그날 몽골하늘의 별자리는 더 선명하였고, 많은 별들이 사이좋게 빤짝인다는 인상을 주었다. 몽골에서 별빛이 잘 보이는 이유는 세 가지. 밤에 다른 불빛이 없어서 방해받지 않는 다는 것과 공기가 건조하여 습기가 적다는 것, 그리고 공기가 맑아서 떠도는 부유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