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기 너머로 그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박모(60대)씨는 2006년에 운영하던 빵집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마포구에서 유명 제빵 프랜차이즈 매장을 6년간 운영했다. 30년 가까이 다니던 가구 수입·제조회사에서 은퇴하며 받은 퇴직금을 모두 쏟아넣어 마련한 가게였다. 매장 입지가 교통 요지인 데다 유동 인구도 많았기 때문에 월 매출액이 쏠쏠했다.
그가 가게를 운영한 지 4~5년쯤 됐을 때였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그의 매장에서 300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두 개의 새로운 점포를 냈다. 한순간 박씨 매장의 매출액은 급감했다. 그는 “새 매장이 2년 새 두 개가 생기면서 연 6000여만원의 매출 손해를 봤다”며 “나중엔 월세를 내기가 빠듯해 결국 폐점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처음 계약할 때 영업 보호 지역을 매장 둘레 300m로 합의했었어요. 그런데 2년 전에 갑자기 무슨 약정서를 들고 와 내용도 안 보여주고 사인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영업 경계 지역은 영업보호 범위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어요. 새로 생긴 매장들을 딱 그 경계선에 지어놓고 영업지역 침해한 건 아니라고 잡아떼니까…. 매출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니까….”
그는 결국 한국분쟁조정협의회(이하 조정협의회)에 프랜차이즈 본사에 대해 ‘영업지역 침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분쟁조정신청을 냈다. 조정협의회는 본사 측에 5000만원 상당의 손해액을 배상하라는 권고안을 내놨다. “그럼 뭐해요. 매장은 없어졌고 임대 계약 해지하면서 생긴 손해까지 하면…. 제가 투자한 퇴직금은 이제 한 푼도 안 남았죠. 마누라는 그때 화병이 나가지고 입원하고 그랬거든요. (그때의 일은) 생각도 하기 싫어요, 지금은.” 그는 지난 2월 8일 주간조선과의 전화 인터뷰에 응하면서 매장과 자신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시기나 명칭을 특정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지금 그의 빵집이 있던 자리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들어섰다. 그는 지금도 가끔씩 이곳을 지날 때마다 가슴 한편이 쓰리다.
"본사 심기 건드렸다간…”
김모(40대)씨는 경기도 부천시 번화가에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운영한다. 기자가 지난 2월 7일 이곳을 찾아갔을 때 그는 “절대로 매장 사진을 찍는 것은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얼마 전 가맹점 본사와 분쟁조정을 마쳤다. 김씨는 “겨우 조정합의 했는데 지금 와서 언론에 또 보도되면 다음 계약할 때 불리해진다”며 매장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익명 처리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운영자들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며 가슴속에 쌓여 있던 말들을 꺼내 놓았다.
그는 “본사가 첫 계약할 때 월평균 매출액을 허위로 과장해 제공했다”며 “여기에 매출 부진을 가게 주인인 제 탓으로 돌리며 매장 내부 인테리어 공사 비용까지 무리하게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가게 매출이 본사가 제시한 평균 매출의 4분의 1 수준에 그치자 본사에선 가맹 계약 체결 당시 사용했던 ‘가맹점개설정보확인서’의 ‘매출은 가맹점주가 친절한 서비스 제공과 활발한 활동 여부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내용을 들어 매출 부진의 원인으로 김씨를 지목했다.
본사는 개점 2년 후 매출 진작이라는 명목으로 김씨에게 인테리어 개선을 요구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그는 “본사 담당자가 나와 ‘점포의 이미지를 개선시켜 소비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본사의 말에 따라 인테리어 시공을 했다. 재계약을 앞두고 본사의 심기를 거슬러 불이익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본사 전담 직원이 나와서 벌인 대대적인 공사엔 3000만원가량이 들었고 그 돈은 김씨의 주머니에서 나와 본사로 들어갔다.
공사 후에도 매출은 크게 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본사 직원은 가게 직원들의 유니폼 개선을 요구했다. 그는 “당초 (본사의) 상권 분석이 잘못돼 있는데 자꾸 인테리어나 영업 방식을 문제로 삼았다. 4억원 정도의 초기 투자금에 이어 인테리어·소품 교체 등에만 1억원 정도가 더 들어갔다”며 “심할 땐 월 매출 적자가 1000만원 가까이 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김씨와 해당 프랜차이즈 본사는 분쟁조정을 통해 손해배상 조정에 합의했다. 김씨는 “딸린 애도 있고 저도 먹고살아야 해서 조정합의는 했지만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매출이 너무 적어 요즘도 힘들다”며 체념한 듯 말했다. 그는 예비 프랜차이즈 창업자들에게 “본사가 제공하는 정보 제공서를 그대로 믿지 말고 직접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며 뼈아픈 충고를 했다.
지난해 프랜차이즈 점포 31만개
바야흐로 프랜차이즈 전성시대다. 특히 커피·제빵 프랜차이즈가 팽창세를 선도하고 있다. 이 중 베이비붐 세대는 지난해 전체 창업자 중 29%의 비중을 차지해 전년 대비 2%의 성장률을 나타냈다. 베이비붐 세대의 창업은 주로 커피·제빵 프랜차이즈에 몰려 있다.
서울시 지하철 2호선 신촌역 3번 출구를 나와 연세대 방향으로 걷다 보면 한 집 건너 하나꼴로 프랜차이즈 점포를 만날 수 있다. 신촌역 주변으론 도보 5분 거리에 커피 전문점 카페베네 세 개가 있다. 프랜차이즈 점포의 장점은 전국 어디를 가도 균일한 맛의 커피를 즐길 수 있으며 지역 토속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사람은 제빵 프랜차이즈 업체에 들어가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점주들과 프랜차이즈 업체 본사 사이의 분쟁조정신청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분쟁조정협의회에 따르면 2008년 291건, 2009년 357건, 2010년엔 447건에 이어 2011년엔 사상 최대치인 733건이 접수됐다. 분쟁조정신청 유형은 가맹점 사업지역 가맹 계약 해지 및 가맹금 반환신청(40.5%), 부당한 갱신 거절 철회(3.8%), 부당 이득 반환(3.4%), 일방적 계약 변경의 철회(1.7%), 영업 지역의 보장(1.3%) 등이다.
프랜차이즈 사업 운영을 둘러싼 분쟁 증가는 그만큼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드는 창업 희망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올 초 공정위가 발표한 ‘정보공개서가 등록된 가맹사업 현황’에 따르면 전체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2008년 1276개, 2009년 1901개, 2010년 2550개로 증가 추세에 있다. 2010년 가맹점의 수는 전년에 비해 1만5000개 이상 증가한 14만8719개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11월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모두 2900여개. 점포 수는 31만개에 달하고 고용 인원은 124만명에 달했다.
‘손쉬운 창업’ 유혹에
프랜차이즈업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알려진 대로 ‘손쉬운 창업’에 있다. 투자금만 있다면 프랜차이즈 본사가 쌓아온 경영 노하우를 손쉽게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설비를 갖추는 데서부터 원자재 조달, 점포 분석, 매장 홍보까지 본사에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커피 전문점의 경우 커피 원두 조달부터 시작해 커피 등 음료에 들어가는 우유 등 각종 유제품은 물론이고, 식품 등 부자재에 들어가는 품질관리(QC)까지 모두 본사를 통해 조달한다. 현재 점포 면적 입지 조사와 상권 분석도 프랜차이즈 가맹 본사가 총괄하고 있다. 일부 프랜차이즈의 경우 반경 3㎞ 내의 가구 수와 소득 수준 분석 등의 조사도 들어간다. 개인 매장을 운영할 경우 지속적인 매장 품질 관리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프랜차이즈는 창업주에게 안정적인 선택이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도 프랜차이즈 업체는 편리한 측면이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5000원 이하의 금액도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 신용카드와 각종 포인트카드의 자유로운 사용은 프랜차이즈 커피점을 확산시킨 결정적 계기의 하나가 됐다. 그간 포인트 결제는 물론이고 신용카드 결제마저 손사래를 치던 동네 빵집이나 영세한 다방은 신용카드와 포인트카드를 앞세운 프랜차이즈 커피점과 빵집에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신용카드와 포인트카드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세금 납부가 과거보다 투명하게 됐다. 세원 파악과 추적이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해 한결 더 용이해졌다. 직장인 사이에서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옹호론이 적지 않다. 국내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카드 결제도 편하고 포인트도 쌓이고 그만큼 업주들도 세금을 꼬박꼬박 내지 않느냐”며 “사람들이 동네 빵집이나 다방 대신 프랜차이즈 커피점이나 빵집에 몰리는 심리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베이비붐 세대
국가경쟁력위원회는 강만수 위원장 시절인 2009년 ‘프랜차이즈 산업 활성화 방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가맹점 1000개 이상의 건실한 프랜차이즈를 1000개 이상 육성하고 세계 100대 프랜차이즈에 국내 3개사 이상을 진입시킨다”는 목표를 내걸기도 했다. 맥도날드나 KFC 같은 세계적 프랜차이즈 기업을 한국에서도 배출해보자는 것이 국가경쟁력위원회의 목표였다.
이런 취지와는 달리 최근 커피 전문점·제빵 프랜차이즈 기업들에 대한 여론이 돌아서고 있다. 일부 프랜차이즈 본사가 교체할 필요가 없는데도 부당한 인테리어를 요구하거나 매장 확장·전환 등을 요구했다는 사실들이 알려지며 여론은 갈수록 악화됐다. 급기야 공정위는 지난 2월 3일 커피 전문점 프랜차이즈 본부에 대한 불공정 거래 행위를 대대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대부분의 대규모 프랜차이즈들은 초기 인테리어를 제외한 인테리어 및 내부 소모품 비용을 가맹점주들에게 떠안기고 있다. 이 같은 본사의 횡포 앞에 많은 가맹점주들은 항의할 생각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본사와 재계약을 해야 매장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란 식의 본사의 막무가내한 요구 앞에 속수무책이란 것이다. 공정위에 불공정 거래를 고발하거나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분쟁조정신청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점주들은 ‘최후의 수단’이라며 미뤄두고만 있다.
창업컨설턴트 이형석씨는 “창업 컨설팅을 하다 보면 창업주들이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 앞에 아무 말도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분쟁조정 등의 방법이 있지만 이조차도 신청할 엄두를 못 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본사 횡포? “우리도 억울하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 가맹거래 분쟁조정팀 김도엽 팀장은 “결국 뭐든지 법에 따라 운영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영업지역 보호와 같은 경우엔 법적 근거가 없어 프랜차이즈 본사와 점주가 합의하에 정해야 한다는 맹점이 있다”고 말했다. 현행 가맹사업법에는 가맹점주들의 상권을 보호할 수 있는 조항은 있지만 가맹 본부의 준수사항은 법적 효력이 없다.
이에 대해 일부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프랜차이즈 가맹 본사의 한 관계자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 등 선거철과 맞물려 개별 점주들의 목소리가 확대 재생산되는 측면도 있다”며 “출마자들이 이런 목소리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부실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횡포에 가맹점을 100개 이상 갖춘 건실한 프랜차이즈 기업까지 도매금으로 욕을 먹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보통 메이저급 프랜차이즈 업체는 지역별로 관리 지부가 있는데 일부 하부 관리 지부의 불성실함이 브랜드 전체에 먹칠을 한다는 항변이다.
분쟁조정신청
가맹거래 분쟁조정신청은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을 통해 이뤄진다. 신청이 들어오면 조정원에서 사실관계 조사를 실시한 뒤 분쟁조정협의회를 거친다. 분쟁조정신청의 사유가 합당하면 조정권고를 의결하고, 사유가 미흡하면 분쟁조정신청을 기각한다. 전체 조정 기간은 60~90일 정도가 소요된다. 조정권고안은 강제력이 없으며 가이드 라인 수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첫댓글 이젠 뭔가 새로 시작 하기도 겁이나고 마땅히 할것도 없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