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영혼육으로 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를 갖고 있으며
육체 중에 뇌는 이성과 감성적 작용을 하는 혼을 이루며
이 혼에서 일어나는 이성적 감성적 사고를 인식하며 이끄는 하나님의 생기인 영을 가져 살아있는 혼이 되었다.
짐승은 영이 없고 혼만을 가졌기에 자아가 없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이성적 감성적 사고를 인식하지를 못한다.
사람은 영이 있어 혼을 인식하지만 자신의 영은 인식할 수 없고 오직 혼을 통해 의식하고 작용한다.
반면에 하나님은 모든 영을 직접 인식할 수 있으신 영이시다.
그래서 자연인 상태로서의 사람은
영을 통해 혼을 인식하고 그 혼은 육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기에 혼에 일어나는 육체적 욕구의 작용이 왕노릇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말미암는 사랑의 작용은
그 근거를 알지 못하기에 무시되어
육에 속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사람이 스스로 영의 일을 알 수 없는 것은
혼만 인식할 수 있고 영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을 직접 인식할 수 있는 분은
오직 모든 영을 창조하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영에 속한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고, 종교는 많지만 다 자기 욕심을 추구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찾는 자는 없다.
그래서 육체를 좇아 사는 것이 인간 본성인데
영에 비해 하등한 육체가 영을 만족시켜줄 수 없기에
많은 고민과 고통과 갈망과 죄악의 무거운 짐이 인간에게서 왕노릇한다.
사람을 사랑하여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러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사람이 영을 좇아 살아야 함을 계시하시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육체를 입고 보내주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통해 그 계시를 깨달아 알게 하신다.
인간은 영이지만 인식을 혼을 통해서만 하기에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고 성령님은 우리의 혼에 작용하신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영이 육체의 종노릇한 것을 깨닫고
영을 좇아 살아야 참된 자유와 만족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면, 우리는 영의 진리인 사랑을 좇아 살게된다.
그러면 전에는 혼에서
육체의 욕망이 왕노릇하고 사랑은 눌려 있다가
이제 새로 거듭난 후에는 사랑의 열정이 왕노릇하고 육체는 사랑을 위한 도구가 된다.
결국 우리가 영을 좇아 산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지으신 살아있는 혼임을 알고
우리의 혼을 육체의 본능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영에 속한 사랑의 감격 사랑의 기쁨 사랑의 열정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을 직접 인식할 수 없는 우리는
사랑조차도 혼을 통해 이해하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작용도 혼을 통해 인식되어지기에
그것이 마치 우리에게서 나온 것인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비록 우리 혼 안에서 이해되어지고 느껴지더라도
참된 사랑의 모든 작용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의 감격의 깊이는
혼이 감당할 수 있는만큼만 가능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자극의 세기에 제한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한 순간에는 하나의 감정밖에 갖지 못한다.
구원받은 성도로 인해 기뻐할 때
고통과 멸시 가운데 있는 잃은 자들을 위한 아픔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온 맘으로 기뻐하시면서 동시에
온 맘으로 슬퍼하시어 언제나 완전한 사랑 가운데 계시다.
그래서 우리는 한 시점에는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의
한 부분만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더라도 오직 완전한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어 그 안에서 온전함을 누리게 된다.
비록 우리 스스로는 항상 부분적인 존재이지만
주님 안에 연합하여서는 언제나 온전함 가운데 거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우리를 하나님은 신이라고 부르신다. 할렐루야.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