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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장 호방녀**
오늘 진소는 얼굴만 바꿨을 뿐, 입 아래에 매화 씨를 숨기지 않았기에 목소리가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로 들렸다. 그에 걸맞게 흰 옷과 청순하고 깨끗한 얼굴은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아국의 노란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며 당황해하며 인사를 한 후,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진소에게 다가가 차를 따랐다.
이렇게 잠시 후,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왔어요." 아국이 경계하며 말했고, 곧 땀을 뻘뻘 흘린 샤오 지쉰이 들어왔다. 이후 아국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진소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책상 옆에 앉아 차를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문 옆에 서 있는 샤오 지쉰의 얼굴은 약간 푸르스름해졌다. 그는 '아귀'라는 명의의 관직원이 건넨 쪽지를 받고, 그 쪽지에는 향기나는 차관의 주소와 2층의 을자 방으로 가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매우 긴장한 채로, 스승을 만나러 가는 듯한 태도로 이곳에 왔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 했지만, 차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허름한 하인과 남장한 여성이라는 사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순간, 실망감이 밀려와서 표면적인 태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당장 돌아서서 떠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예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왔구나." 진소가 샤오 지쉰을 바라보며 턱을 살짝 들었다. 이는 무례한 행동이지만, 그녀가 하면 더욱 거만하게 보였다.
샤오 지쉰의 얼굴은 갑자기 심각해졌다. 그는 분노를 억누르고 높은 자세에서 진소를 쳐다보며 냉정하게 물었다. "저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그는 진소를 기억하지 못했다. 진소는 일곱 살 때 시골로 가서, 청주에 돌아온 후로는 고결한 상중의 예를 지키며 지내왔으므로, 샤오 지쉰은 그를 기억할 수 없었다.
진소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고, 차를 계속 마셨다.
그녀는 샤오 지쉰의 얼굴에 다시 한번 실수를 하고 싶었다. 전생에서 샤오 가에서 받았던 냉대를 되갚고 싶었다.
샤오 지쉰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불경스러운!" 그는 화가 나서 손을 휘두르는 제스처를 했다.
비록 평민의 옷에는 넓은 소매가 없지만, 샤오 지쉰의 태도는 여전히 훌륭했고, 손을 휘두르는 동작도 멋지게 보였다.
"여사께서 장난을 치고 싶다면, 알아서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문을 밀었다.
하지만 그가 문을 강하게 밀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은 움직이지 않았고, 원래 밖에서 잠겨 있었다.
샤오 지쉰은 놀라며 몇 번 더 강하게 밀었고, 곧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문을 열어줘! 나가게 해줘!"
문 밖에 있는 아국은 매우 성실히 역할을 다하며, 문 근처로 가서 말했다. "군주님, 문을 두드리지 마세요. 저는 밖에 의자 몇 개를 막아놓았으니, 걱정 마세요. 저희 군주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세요."
그녀는 또 생각난 듯, "아, 그리고 이 층에는 군주님의 사람들이 꽤 있으니, 이 샤오 씨 군주님은 좀 조용히 말씀해 주세요. 더 크게 소리 지르면, 군주님이 화를 내실 수도 있어요."라고 상기시켰다.
샤오 지쉰은 주먹을 꽉 쥐며 얼굴이 철렁해지고 다시 붉어졌다.
"이게 무슨 뜻이냐?" 그는 진소를 향해 돌아서며 부끄러움과 분노에 가득 차서, 목소리를 낮추어 화를 냈다. "나는 동릉 선생님을 만나러 온 것인데, 동릉 선생님의 명의를 빌려서 부르셨다면, 나는 애초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사께서 지금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그가 말하며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그는 샤오 지쉰의 얼굴이 거의 찌그러질 지경이었다. 그는 북쪽의 사족 집안 여자들이 남자들 중에서 잘생긴 사람을 보면 강제로라도 얻으려 한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혹시 이 평범한 체격과 거만한 얼굴의 여사가 동릉 선생님의 명의를 빌려 그를 강제로 잡아가려는 것일까? 이 생각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는 본래 잘생겼고, 평민의 옷을 입었어도 그의 얼굴은 여전히 눈에 띄었다. 평성이나 청주에서는 항상 그를 둘러싼 많은 여인들이 있었고, 그들의 시선은 부드러운 물결 같아서 거의 사람을 익사시키기 일쑤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샤오 지쉰의 얼굴에는 한층 더 자부심이 떠올랐다.
그 순간 그는 북쪽 여자들에 대한 상상에 빠져 있었고, 자신이 왜 그렇게 알았는지, 어떻게 샤오 가의 운명에 대해 알았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하하." 진소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샤오 지쉰이 이렇게 행동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이 상황은 그녀에게 놀랍지만, 또 이해가 가기도 했다.
진소가 웃자, 샤오 지쉰은 즉시 부끄러움과 분노로 인해 더욱 화가 나서 소리쳤다. "수치스러운 것들!"
그는 이제 더 이상 평민인 척 하지 않고, 모자를 던지고 두 손을 허리에 대며, 진소를 경멸스럽게 쳐다보았다. "여사께서 왜 웃으십니까? 힘을 이용해 나를 억압하려는 것인가요? 혹시 여사께서 나를 평범한 평민으로 여기시고 마음대로 다루려 하시나요?"
진소는 팔꿈치를 책상에 기대며 미소를 지으며 그를 지켜보았다. 그 모습이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녀가 편안한 표정을 짓고 계속 웃자, 그 웃음은 샤오 지쉰의 눈에는 더 많은 의미가 담긴 듯 보였다.
이 생각이 드니, 그의 표정은 더욱 경멸스럽게 변했고, 그의 허리와 몸매는 여전히 약간 긴 편이었다.
"정말 우스꽝스럽군!" 그는 다시 소리쳤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정의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상경의 여자들이 이렇게 예의가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이니, 여사께서 강제로 대한다면 나는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진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샤오 지쉰은 정말 재미있었다. 똑똑한 얼굴을 하고도 혼란스러운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고, 자신이 그만큼 잘생겼으니 많은 여자들이 그를 차지하려 할 것이라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전생에서 샤오 지쉰을 두고 청주에서 많은 여인들이 서로 싸웠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중 진소와 좌사랑이 가장 치열하게 다투었던 것 같았다.
지금 돌아보니, 그런 날들도 어쩌면 즐거웠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걱정 없이 단순하고 직접적이었던 시절.
진소가 갑자기 무언가에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으니, 샤오 지쉰의 분노는 더욱 커져서 그의 얼굴은 돼지 간 색으로 변했다.
"샤오 지쉰, 침착해라." 진소가 마침내 게으르게 입을 열며, 옆 자리를 가리
켰다. "나는 그렇게 바쁘지 않다. 너 같은 사람은 내가 관심도 없으니, 편히 앉아서 얘기하라."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무관심하게 들렸으며, 눈앞의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 장면에서 샤오 지쉰의 표준 동작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공포에 가득 찬 시선으로 주인공을 바라보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제277장 본무명**
萧继珣(소계순)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돼지 간 색으로 변했다가 철청해지며,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약간의 난처함이 나타났다. 그는 입을 열어 말했다. "여자로서…"
"여자로서? 네가 말하려는 것은 내가 더 멍청해야 한다는 건가?" 진소는 그의 말을 끊고,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청색 머리띠는 바람에 날리며 그녀의 머리 위에 깃발이 나부끼는 듯 보였다. "아니면, 네가 곧 아버지가 될 사람이라면, 말하는 법과 행동하는 법도 모르는 건가?"
진소는 이 말과 함께 느긋하게 옷소매를 다듬었다.
萧继珣은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살짝 눈을 내리깔고 진소를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얼굴이 시뻘겋던 것이 이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넌… 어떻게… 네가 알았어?" 그는 거의 말을 잇지 못하며 진소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강한 의문이 가득했다. "여사님… 혹시 평성 출신인가요?"
"평성?" 진소는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목소리는 담담했고, "이렇게 말하니, 나도 대충 평성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萧二郎(소이랑)의 집안 하인들이 임신한 것은 평성 사람 모두가 아는 일이었나요? 내가 평성 사람이라고 해서,萧郎(소랑) 집안의 사적인 일을 알아야 하나요?"
萧继珣은 그녀의 말에 막혔다.
사실 그는 방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는 이 여자가 자신이 숨기고 있던 것을 정확히 말하는 것은 평성의萧宅(소택)에서 정보를 얻어왔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만약 정말 평성에서 온 정보라면,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그 정보를 알았을까?
평성은 상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빠른 말이라도 반 달이 걸린다.
그렇게 생각하니,萧继珣의 표정에는 의구심이 다시 떠올랐다.
진소는 차를 내려놓고, 테이블 옆에 천천히 서서 무관심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는萧郎 집안의 모든 일, 공개된 것이든 비밀이든, 나는 모두 알고 있다."
그녀의 말투는 매우 담담했고, 상대방의 반응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紫微斗数(자미도수)로 너의 운명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너의 소중한 하인들 중에서 임신한 사람은阿回(아회) 하나만이 아니라 阿来(아래)도 있다."
萧继珣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곧 충격과 믿기 어려운 표정으로 변했다.
그의 가장 소중한 두 하인인 阿回는 연약하고, 阿来는 기품 있는 여인이었으며, 둘 다 그의 곁에서 오랫동안 지냈다. 그가 청주를 떠날 때, 阿回의 임신 사실은 막 진단되었고, 阿来의 소식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진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그의 얼굴에는 의심과 경멸, 분노가 뒤섞여 있었으나, 이제는 사라졌다.
진소는 다시 의자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나는 동릉 선생님의 제자, 무명이다. 스승님께서 오늘 너를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으니, 네가 믿지 않을 것을 이미 예측했기에, 별도로 별자리를 점쳐보았다." 잠시 멈추고, 그녀는 다시 한 번 웃으며 말했다. "별자리를 보고 네 운명궁을 살펴봤으니, 소용이 없겠지만, 말해줄게.萧二郎(소이랑), 네 운명에는 아들이 없고, 阿回의 태아는 딸, 阿来의 태아도 딸이며, 다음 다섯 개의 태아 모두 딸일 거야. 네 운명에는 일곱 여자별이 있어, 북두칠성이 돌아가는 것처럼 흥미롭네."
그녀는 농담하듯이 말하며,萧继珣의 얼굴이 초록색과 붉은색을 반복하는 것을 감상하며 속으로 기뻐했다.
萧夫人(소부인)은 이게 좋지 않다며, 저게 좋지 않다며, 아들을 위해 최고의 부인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그녀의 소중한 아들은 아무 성과 없이 무자(無子)로, 일곱 딸을 낳을 운명이었으니, 그 결과는 더욱 웃기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이 일곱 딸 중 한 명도 정실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을 앞세워, 전생의 진소는 왜 그렇게 그를 보물처럼 여기며, 광적으로 사랑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萧继珣은 얼굴이 완전히 하얗게 질리며, 더욱더 분노와 당황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진소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조심해라, 량군." 진소는 부드럽게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칼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음성으로萧继珣의 말이 멈추었다.
"萧二郎의 예절은 개구리 배 속에 들어갔느냐?" 진소는 그에 맞서 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방 안의 더위마저 외부로 밀어내는 듯했다.
"나는 무명, 동릉 선생님의 제자다." 진소는 테이블에 앉아 차가운 시선으로萧继珣을 응시하며, 말 그대로 차갑고 단호한 느낌이 든다. "너는 나를 선생님으로 존경해야 한다."
萧继珣은 순간적으로 멍해져서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가 보기에 이 어린 여자가 태산처럼 위압감을 주어, 그가 제대로 된 자세를 취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진소는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그녀의 모습은 마치 15년 후의 자신이 된 듯했다.
그곳의 차분한 찻집은 그녀가 15년 후에 생활할 차가운 대전으로 변했고, 진소는 그 대전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담담하게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인물이 되었다.
萧继珣은 진소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점점 회색으로 변해갔다. 그의 눈앞에는 여전히 방금까지 웃고 있던 작은 여자가 있었으나, 현재 그녀의 기운은 너무나 강렬해서 그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앉아라." 진소는 기운을 풀고, 손으로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
이번에萧继珣은 마침내 지시대로 앉았다.
진소는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불편함과 싫증을 감추었다. "스승님의 명령이 아니라면, 너희萧家는 이미 멸족했을 것이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녀는 그를 등지고 말했으며, 목소리는 차갑고, 속도는 일정했다. 그러나 그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너…"萧继珣은 얼굴을 들며 분노에 가득 차 있었으나, 곧바로 냉정한 눈길에 빠지게 되었다.
그 눈빛은 냉혹하고, 차가우며,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며, 마치 아예 보지 않는 것처럼 했다. 그 경멸과 무관심은萧继珣에게 그가 지면의 먼지와 진흙이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萧继珣은 멍한 표정으로 진소를 바라보았고, 원래의 분노 가득한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이 '무명'이라는 작은 여자가 정말 두려운 존재임을 깨달았다.
물론 그
가 이 작은 여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방금처럼 그를 대하는 무명에게는 약간의 기가 꺾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순간,萧继珣은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다양한 감정으로 변하며, 그의 모든 감정이 드러났다.
**(본 장 끝)**
**第278장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萧继珣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푸르고 붉어지는 것을 보고, 진소는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면서도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다.
전생의 그녀가 이렇게 표면만 화려한 인물에게 깊은 감정을 가졌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결국, 그 이름에 의해 그녀는 파멸을 맞이했었다.
비록 그때 그녀가 너무도 어리석었지만, 지금의 진소는萧继珣을 보면서 느끼는 혐오는 아무리 애써도 가라앉지 않았다.
깊이 숨을 쉬며, 진소는 이미 준비해 두었던 편지를 꺼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萧继珣의 눈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이것은… 동릉 선생님의 편지인가요?” 그가 물었고, 눈빛에서 절박함이 거의 넘쳐 보였으며, 앞서 느꼈던 약간의 불편함도 이미 사라진 듯했다.
진소는 고개를 숙이고, 편지를 바닥에 던졌다.
“팍” 하고 소리가 나며 편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일어나서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심각하게萧继珣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가지고 청주로 돌아가서 존귀한萧公望께 직접 전달하라. 스승님이 말씀하시길,萧氏는 매우 어리석지만 자만하며,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말씀이시다. 너는 다행히도 스승님이 너를 구하려 하신다. 만약 내가 있었더라면, 나는 너희들이 죽는 모습을 즐기며 지켜볼 것이다.”
욕설을 하는 것은, 특히 전생에서 그런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는 것은 정말 상쾌한 일이었다.
진소는 마음속으로 큰 만족감을 느꼈고,萧继珣이 분노와 수치심으로 어떻게 표정을 짓는지 보면서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다시 한 번 차분하게 말했다. “스승님이萧氏에게 기회를 주신다. 네가 편지를 가지고 돌아가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누군가가 너를 찾으러 올 것이다.”
그녀는 갑자기 표정을 엄하게 바꾸며, 목소리도 차갑고 무겁게 말했다. “스승님이 말씀하시길,萧氏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지금부터 단 한 가지를 지켜야 한다. 이 다섯 자를 명심하고 존귀한 분께 전달하라.” 그녀는 잠시 멈추고, 다시 강조하듯 차갑게 덧붙였다. “‘勿轻举妄动’이다. 이 다섯 자만 지키면, 생존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勿轻举……妄动?”萧继珣이 무의식적으로 이 몇 자를 반복하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맞다, 바로 이 다섯 자다.” 진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갑자기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외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돌아다니지 말고, 평성에서 조용히 기다리라는 뜻이다.”
萧继珣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편지를 줍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동릉 선생님은 우리萧氏에게…” 그가 말을 멈추고, 다시 진소를 바라보며 눈빛이 점점 두려움으로 물들어갔다. “그렇다면 내가 며칠 전에 보낸 편지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진소는 상황을 보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萧家는 참을성을 잃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리수탕과萧继珣이 만난 것은 그 편지를 위한 것이었고, 그 편지를 되찾거나 파기해야 했다.
진소는 무표정하게萧继珣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이제는薛氏의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소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萧继珣을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해했으니 좋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으로 편지를 가리키며,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편지를 들고, 더 이상 어떤 사람과도 만남을 갖지 말고, 즉시 평성으로 돌아가라. 이 편지는 반드시 직접 존귀한 분께 전달해야 한다.”
그녀의 눈빛은 차가우면서도 집중되어 있었고, 말투에는 묘한 안정감이 담겨 있었다.
萧继珣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지시에 따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억하겠습니다. 즉시 평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진소는 그가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소리쳤다. “문을 열어라.”
“예, 나으리.” 문 바깥에서 아구가 기쁜 목소리로 대답한 후, 물건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진소는 문 쪽으로 손을 뻗으며, 조금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萧씨, 들어가세요.”
그 목소리는 거의 부드럽고, 달콤하며, 마음속 깊은 곳을 스치는 듯했다.
萧继珣의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그는 갑자기 이 젊은 여인이 비록 외모는 어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외모 너머의 매력은 정말로 뛰어나다고 느꼈다.
그 순간, 그는 거의 매혹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세요.” 진소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웃음을 지우고 다시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매력적인 표정은 사라졌고, 그 순간의 달콤한 감정도 두 글자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
萧继珣은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진소를 바라보다가, 자신을 되찾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순간 그는 거의… 유혹당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동릉 선생님.” 그는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편지를 품에 넣었다. 이 동작을 통해 그의 약간의 당혹감을 숨기려고 했다.
편지를 안전하게 보관한 후, 그는 정상적인 표정을 되찾았다.
그때, 아구가 들어와서萧继珣의 모자를 챙겨서 그에게 건넸고,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萧씨, 모자를 잘 챙기세요.”
萧继珣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 하인의 불필요한 칭호를 무시하고, 고개를 들어 진소를 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작별인사드립니다.”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큰 걸음으로 나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진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萧继珣 같은 사람에게는 그녀의 매력이 매우 효과적이었고, 그가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워할 때 그녀는 그의 설득을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앉아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은 후, 아구가 들어와서 그녀에게 이상한 인사를 하며 말했다. “나으리, 아귀가 왔습니다.”
진소는 즉시 정신을 차리고, 차를 내려놓으며 일어났다. “좋다. 문을 닫고, 아귀가 와도 밖에서 기다리게 해라. 나는 금방 돌아올 것이다.”
아구는 약속한 대로 문을 닫고, 밖에서 기다렸다.
진소는 아구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예의가 부족하지만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점에서 아栗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생각을 하면서, 방 안에 있는 두 벌의 남자 복장 중 하나를 입고, 다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눈가의 화장도 지운 후, 아구를 불러서 갈아입은 옷을 포장하게 했다.
(이 장은 끝났습니다)
**第279장 온화한 말투**
아구는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였고, 금세 모든 것을 포장해 놓았다. 추가적인 지시가 없었음에도, 그녀는 다시 밖으로 나가 아귀라는 소년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귀는 약 16세에서 17세 정도로 보였으며,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그의 얼굴은 갈색에 기름기가 흘러내리고, 이마와 코 주변에는 기름진 여드름이 돋아 있었다. 하지만 입을 열면 의외로 부드럽고 달콤한 남방 사투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나으리.” 그는 진소에게 인사를 하며, 행동은 다소 거칠어 보였으나 목소리는 매우 듣기 좋았다.
진소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傅彭이 말한 "아귀의 말투가 이상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온화한 목소리가 이렇게 큰 덩치와 칙칙한 얼굴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귀는 인사의 자세가 아구보다 훨씬 나았다. 그는 인사할 때 항상 고개를 약간 숙이고 주변을 어지럽히지 않았으며, 예의가 바르고 정확했다.
그와 아구는 傅彭의 지시에 따라 진소의 신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존경심은 매우 진실했고 전혀 가식이 없었다.
진소는 “예의를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아귀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귀, 잠시 후에 당신이 필요할 일이 있을 겁니다. 傅 삼촌이 당신에게 알려주셨는지요?”
아귀는 몸을 곧게 하고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나으리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정말로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 목소리만 들으면,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킬 것 같다.
진소는 마음속으로 잠시 감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말이 끝난 후, 그녀는 화면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먼저 안쪽에서 옷을 갈아입고, 아구와 함께 화면을 앞으로 옮기고, 의자 하나를 화면 앞에 놓으세요. 저쪽에 있는 작은 상도 의자 옆에 두세요.”
아귀는 지시에 따라 화면 뒤쪽에서 검은색 긴옷으로 갈아입고, 진소의 지시에 맞춰 아구와 함께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고 화면을 옮겼다. 이로써 방은 내부와 외부로 나누어졌다.
그들이 방을 정리하는 동안, 아래층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여름 바람과 함께 흐릿하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2층 별실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내 성은 두입니다.”
드디어 도착했다.
진소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 혹은 그녀가 오늘 해야 할 두 번째 일이 다가왔다.
그때, 아래층의 종업원이 친절하게 말했다. “손님, 2층으로 가시면,乙字号 방입니다.”
진소는 손을 들어 아구에게 신호를 보냈고, 아귀와 함께 화면 뒤로 이동했다. 아구는 문 옆에 서서 기다리도록 했다.
잠시 후, 계단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아구가 목을 빼고 바라보았는데, 계단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17세에서 18세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바로 아래층에서 자신을 두라고 소개한 그 남자였다.
이 두씨의 외모는 방금 떠난萧二郎와 비교해도 단지 평범한 정도였으며, 전반적으로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모습이었다.
아구는 그를 잠시 쳐다보다가, 두씨가 그녀의 시선을 감지한 듯 갑자기 눈을 들어 그녀를 스쳤다. 특별할 것 없는 눈동자와 날카롭지 않은 시선이었지만, 이유 없이 아구는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녀는 불안해하면서도 다시는 그를 자세히 보지 않으려 했고, 깨끗한 검은 색 나무 신발이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몸을 굽혀 인사하며 정중히 말했다. “나으리,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말하며 문 옆으로 자리를 비켰다.
이 모든 행동은 거의 본능적으로 이루어졌고, 끝낸 후에는 자신도 모르게 두씨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의 기묘한 인사 자세를 본 두광무는 눈빛이 약간 좁아졌지만,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가게에 대한 전해진 소식을 받고 이 자리에 왔다.
지금까지도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동릉 선생에게 이 초대장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사 두 가문의 본가의 사람들마저도, 이처럼 출중한 인재가 아닌 미천한 사생아가 어떻게 동대문 상점에서 비밀리에 돈을 모아 작은 음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지 몰랐다.
초대장은 그 유명한 아귀가 음료를 사러 갔을 때 가게 주인에게 몰래 전달받은 후 두광무에게 전달된 것이었다.
두광무는 눈을 살짝 내리고 스스로를 비웃었다.
동릉 선생의 이름은 상경에서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초대장을 받고 나서 그는 확실히 놀라긴 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이 가라앉은 후, 그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동릉 선생이 자신과 단독으로 만나는 것일까? 자신은 두 가문에서 이미 포기된 사생아로서, 특별히 주목받을 만한 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두광무의 자조적인 미소는 점점 차가워졌고, 그의 안정된 발걸음은 방의 문 앞에서 멈췄다.
거의 동시에, 대나무로 엮인 화면 뒤에서 부드러운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으리, 들어오지 않으십니까?”
온화하고 고요한 음성은 남경의 3월 봄비와 같고, 초록빛 그림자가 흔들리는 물결과도 같아, 듣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이런 목소리를 들으면 그 목소리의 주인 또한 부드러운 외모를 지닌 것처럼 상상하게 된다.
두광무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동릉 선생이 노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목소리를 듣고는 젊은 청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마음을 가라앉혔다.
세상에는 천재가 많고, 두 가문에도 이미 그러한 예가 있으니, 동릉 선생이 뛰어난 청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광무는 몸을 약간 구부리고 웃으며 말했다. “송구스럽습니다. 선생님께서 놀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안정된 발걸음 소리가 다시 들려오더니, 곧바로 화면 밖에서 멈추었다.
“나으리, 앉으십시오.” 아구는 화면 앞의 팔걸이 의자를 가리키며, 차를 제공한 후 물러났다.
문이 닫히면서 아래층의 소음이 차단되었고, 여름의 따스한 바람만이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살랑살랑 불어왔다. 창문지는 바람에 “스르륵”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두광무는 차를 들고 평온하게 앉았다.
그는 이 자리를 한 편의 이상한 만남으로 여기기로 했다. 어쨌든, 동릉 선생과 마주하는 것은 비록 화면 너머로라도 매우 드문 기회였다.
차를 한 입 마신 두광무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차 맛에 담담하게 반응한 후, 차를 탁자 위에 놓고 표정을 더욱 평온하게 유지했다.
(이 장은 끝났습니다)
**제280장 두사郎**
“저는 동릉 선생님의 큰 제자입니다. 나으리께서는 저를 ‘무명’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화면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로 인해 두광무의 생각이 돌아왔다.
그가 목소리를 따라 보니, 화면 뒤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하나는 서 있는 소년, 다른 하나는 앉아 있는 사람으로, 그 체형이 꽤나 위엄이 있었다.
두광무는 약간 놀랐지만, 표정은 여전히 차분하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명 선생님.” 그는 예의 바르게 대답하며, 태도도 정중했다. “선생님께서 저를 여기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직접적이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진소는 한숨을 쉬고 싶었다.
萧继珣이 두광무의 절반만큼 침착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그의 아버지萧公望을 돌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진소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며, 곧 차를 들어 땀을 뻘뻘 흘리는 아귀에게 전달하고, 그의 귀에 조용히 몇 마디를 속삭였다.
화면 바깥에서 보면, 이는 작은 하인이 주인에게 차를 갖다주고 살갑게 대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 이상도 없었다.
사실, 두광무는 그 방향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는 학문과 가문에서 배운 예절이다.
주인이 화면을 세운다면, 그것은 직접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손님으로서, 주인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예의이다. 조금이라도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조차 무례한 것이다.
저명한 진국의 일곱 대 명문 중 하나인 두 가문이기 때문에, 비록 행동이 냉정하더라도 가문의 자제들에게 대한 교육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진소는 말을 마친 후 다시 일어나 한쪽에 서 있었고, 아귀는 목청을 가다듬고 천천히 말했다. “오늘 나으리를 부른 것은 스승님의 뜻입니다. 스승님께서 묻고자 하시는 것은, 나으리께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입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는 여름 바람에 더욱 부드럽게 들려 방 안에 조용히 울렸다.
두광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차를 들고 있는 손도 흔들리지 않았다.
萧继珣이 여기에 있었다면, 아마 얼굴이 굳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두광무는 두광무일 뿐이다. 그는 단순히 겉만 그럴듯한 사람이 아니라, 몇 년 후 자신의 군사적 업적으로 나라를 뒤흔들며, 두방울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두 사郎이다.
가장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네 방향에서 비통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 두 사郎는 결국 병을 핑계로 입경 명령을 거부하고, 손에 쥔 정예 병력으로 중원제의 수족을 묶어버렸다.
두 가문에는 냉혹한 인물이 많지만, 이 두 사郎의 냉혹함은 자신에게만 적용되었다.
자신에게도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의 정신력은, 단지 유흥만을 즐기는萧继珣과는 비교할 수 없다.
현재 진소가 바라는 것은, 이 두 사郎의 냉혹함이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방 안은 잠시 조용해졌고, 두광무는 차를 내려놓으며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남자의 뜻은 늘 홍조새나 큰 새와 같으며, 저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아주 표준적인 대답이자, 매우 신중한 대답이었다.
그는 아마도 함정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말 한 마디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화면 뒤에서 짧은 응답이 들린 후, 종이와 붓의 소리가 들려왔다.
두광무는 시선을 낮추고, 그의 표정은 거의 굳어 있었다.
완벽했다.
진소는 그를 지켜볼수록 그런 느낌이 더 강해졌다.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봄바람에 기운이 넘치는 두 가문의 사생자, 전생에서는吕时行을 대신해 광릉의 수장으로 임명된 두광원은, 아마도 자신의 상대가 두 사郎가 아닌, 바로 이곳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생자—두광무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광무가 앞에 서게 되면, 두광원이 전생처럼 광릉의 수장으로 순조롭게 임명되고 그의 서모가 집안을 번영시키려는 꿈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그녀가 그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하층의 불미스러운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여인 무엇보다 그 여인이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 여부이다.
진소는 단지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할 뿐이며, 나머지 일은 두광무가 처리할 것이다.
그녀는 아귀가 책상에 엎드려 글을 쓰는 척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며, 눈 속의 웃음이 더욱 깊어졌다.
오늘 일을 준비하는 데 꽤나 신경을 썼다. 동릉 선생님의 제자 무명이란 신분은 그녀가 설정한 것이었고, 아귀는 혼란을 주기 위한 존재였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며, 두광무는 침착하게 화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화면 뒤에서 갈색 옷을 입은 소년이 나와, 특징 없는 봉투를 들고 머리를 숙여 전달했다.
“이것은 스승님이 기록하여 전해주신 선물입니다. 나으리께서 잘 보관해 주십시오.” 부드러운 목소리가 화면 뒤에서 들려왔다.
두광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봉투를 전달한 소년은 매우 예의 바르게, 머리를 낮추고 전달이 끝난 후,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갔다. 두광무는 그 소년의 검은 머리 정수리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소년에게 있지 않았다.
봉투를 들고, familiar한 글씨를 보면서, 두광무의 호흡은 약간 급해졌다.
동릉 선생님의 선물이 그의 미래와 관련된 것이라, 비록 그가 두 가문에서 가장 하찮은 사생자일지라도, 가족들로부터 억압과 비하를 받았던 그는, 지금의 상황에서 감정이 복잡해졌다.
“스승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전하셨습니다. 나으리께 드립니다.” 화면 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부드럽고 평화로워서 봄의 좋은 바람처럼 들렸다.
두광무는 몸을 굽히고,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하고 평온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화면 밖에서 그를 존경하는 모습으로 가만히 서 있는 아귀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 긴 옷이 정말로 불편했으며, 진소가 가르쳐 준 문장들을 하나하나 외우는 것도 힘들었다. 지금도 머리카락을 잡고 싶고, 땀을 닦고 싶고, 몸을 비틀고 싶지만, 그는 최대한 참으려고 했다.
그는 침을 삼키고, 진소가 지시한 마지막 말을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유일한 조언은, 필요할 때 힘을 빌려라.’ 잊지 마십시오.”
거의 혀를 깨물며 말을 마친 아귀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문학적인 말은 진소가 직접 가르쳤어도 매우 까다로웠으며, 아귀는 말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겠습니다.” 두광무는 화면 뒤의 앉아 있는 인물에게 존경의 절을 하며 대답했다.
아귀는 이제 완전히 참을 수 없었다.
아무리 무지하다고 해도, 그는 저 외부의 인물이 대문호의 자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은 그저 하찮은 백성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가 여러 번 예를 표한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반복받으니, 만약 진소가 그의 곁에 없었다면, 그는
벌써 도망쳤을 것이다.
(이 장은 끝났습니다)
**제281장 강팔랑**
진소는 아귀를 슬쩍 바라보며 살짝 몸을 굽히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그의 옆에 다가가 속삭였다. 아귀는 기침을 한번 하고 나서 말했다. “그만둡시다. 상님, 안녕히 가십시오. 먼 길 가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예, 후배는 물러가겠습니다.” 두광무는 예의 바르게 대답하며, 신중하게 봉투를 가슴에 잘 간직한 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고 내려가는 두광무의 모습을 지켜본 아국은 그가 드디어 계단을 내려가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며 속삭였다. “그가 떠났습니다.”
아귀는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아 옷깃을 풀고, 손에 땀을 닦았다. “방금 몇 마디 하는 게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것보다 힘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당신 덕분에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어요.” 진소는 미소를 지으며 손에서 돈 뭉치를 꺼내 아귀에게 건넸다. “이 돈은 당신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돈 뭉치를 본 아귀는 얼굴이 환해지며, 행복하게 돈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상님.”
진소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아국에게도 돈을 건넸다. “자, 이 화면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방도 빠르게 정리해 주세요. 제가 후문으로 나갈 테니, 아국, 다음 일은 당신에게 맡길게요.”
아국은 돈을 받고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채 말했다. “상님 걱정 마세요. 앞서 두 분 상님들은 어렵지만, 강씨의 노파는 제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맡겨 주세요, 잘 처리할게요.”
아귀도 덧붙였다. “상님 걱정 마세요. 아국과 함께하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노파는 자주 외출하는 분이니, 우리가 잘 알고 있죠. 이미 몇 마디 나눈 적도 있습니다.”
진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팔랑은, 진소가 그를 도와주고 그의 병을 치료해 주기로 한 인물이다. 나중에 이 은혜를 갚아주기로 했다. 아귀와 아국은 강팔랑의 하인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
지난 생에서, 중원 연도의 15일, 강팔랑은 그의 병이 드러나며 큰 수모를 겪었고, 결국 강씨 가문장에 의해 외곽의 별채로 보내졌다. 진소가 대진으로 돌아왔을 때, 궁중의 여성들 사이에서 강팔랑이 18세도 못 채우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죽을 때, 그 옆에는 단지 하인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진소는 아귀와 아국에게 강팔랑의 하인에게 편지를 전달하라고 지시한 이유는, 그 하인이 충실한 하인이었기 때문이다.
진소는 병을 치료할 능력은 없지만, 상경에 있는 유명하지 않은 거리의 의사, 치명적인 독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알고 있었다. 강팔랑의 병은 만성 독에 의한 것이다.
강팔랑은 성품이 뛰어나고, 지혜로웠으나 강씨 가문에는 많은 여성들이 있어 내부의 계산과 싸움이 치열했다. 강씨의 여성들은 특히 지혜로웠다.
진소가 아국과 아국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 의사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강팔랑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진소는 깊은 생각에 잠기며, 자신이 이러한 정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리비 덕분이라 생각했다.
리비는 지난 생에서 죽기 전, 거의 광란 상태에 있었고, 궁중에서의 억압과 죽음을 인식하며 많은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로 인해 진소는 강팔랑과 관련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진소는 그 시절의 기억이 부족함을 아쉬워하며, 이제는 리비의 입에서 듣던 정보를 다시 듣고 싶어도 그 기회가 없다는 것을 한탄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 진소는 최근 너무 많은 일이 있어 머리가 어지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슬며시 웃으며, 손을 내밀어 검은 천으로 된 작은 주머니를 꺼내며 아귀에게 말했다. “이 주머니를 꼭 잘 보관해 주세요. 나중에 린씨 가문 중 한 사람이 약을 사러 오면, 그에게 팔아주세요. 그는 돈이 많으니, 가격을 조금 더 높게 받아도 좋습니다.”
린씨 가문은 부유하고 잘 사는 집안이다. 진소는 그들이 가진 자원과 돈이 필요했다.
아귀는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예, 상님. 잘 보관하겠습니다.”
진소는 아귀를 보고 웃으며,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전에 부펑에게 쓴 편지로 이미 모든 일을 계획해 놓았고, 시간에 맞춰 그녀의 이모부가 성공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진소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이 계획은 복잡하지 않지만 실용적이다.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면, 시리즈의 계획과 동령의 옛 인물들을 정리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이나 “그 황자”는, 그들이 설계한 계획이 단순히 놀이를 좋아하는 린 이랑에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귀와 아국의 대화가 진소의 생각을 현실로 돌려놓았다. 아귀가 아국에게 “조심해라. 사람들이 보지 않게 대화하라.”고 조언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소는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국은 아귀에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지킬 테니,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귀는 아국의 이마를 가볍게 쳐내며 말했다. “하지만 너도 경각심을 가져야지, 항상 나만 의지하지 말고.”
아국은 불만스러운 듯 했지만, 두 사람은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방 안은 활기차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진소는 그들의 젊고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나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앞으로 나아가며 모든 것을 즐기는 나이였던 기억이 희미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 시절의 기억은 너무 빨리 지나가서,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돌아보니 그 시절의 풍경은 이미 멀리 사라졌다.
진소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 시절의 기억을 되새겼다.
그녀는 지금 하녀의 복장을 하고 있었고, 아국이 방금 입었던 청색의 의상과 비슷한 차림이었다. 그녀의 옷은 몸에 잘 맞았고,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겹쳐진 그레이 색의 직물도 잘 활용했다.
**제282장 무엇이 새인가**
현재의 진소는 서거리 옆의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골목을 나와서 방향을 틀면 향기 찬 차관의 대문이 나타난다.
모퉁이를 돌며 차관 쪽을 힐끗 쳐다본 진소는, 조용한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을 보아 차관의 장사가 그리 좋지 않음을 알았다.
진소는 조용히 시선을 돌려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지금 그녀는 차관의 배후에 있는 인물이 자신이 추측한 그 인물일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만약 그가 오늘의 일을 눈치채고,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연락을 준다면 그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소는 자신이 아는 그 대사건을 감안할 때, 양측 협력이 문제 없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걸으며 태도는 여유롭고 느긋했다. 이 골목길은 꽤 좁고 길었으며, 몇몇 드문 행인들 사이로 양쪽의 회색 벽이 그리 높지 않았다. 벽 위로는 가끔 덩굴이 나와 있었고, 그 푸른 잎 아래에는 큰 노란 꽃이 피어 있었으며, 몇 가닥의 가는 덩굴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 걸은 후, 진소는 벽 위의 해 그림자를 살펴보며 아직 시각이 신초(申初)가 되지 않았음을 추정했다. 그녀의 시간은 아직 여유로웠다.
그녀는 소흔시(蕭繼珣)가 편지를 평성으로 잘 가져갈 수 있을지, 그리고 두 사郎(杜四郎)이 그녀의 바람대로 비밀을 알아낸 후 두광원(杜光遠)을 제거하고, 또 허가(何家)를 모두 멸망시키며, 마지막으로 그 자신의 냉혹함으로 두가(杜家)를 내부에서 무너뜨릴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많은 일이 담겨 있는 진소는 복잡한 생각에 빠져 혼란스러웠다.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 복잡하여 실수할 여지가 없었다.
한 점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대로 계속 가면 마음이 산란해지며, 길가의 소란스러운 모습이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모든 감정을 눌러놓고 시선을 들었다.
동래복대가의 활기는 언제나 볼만하다. 거리 양쪽의 상점들은 문이 맞붙어 있고, 벽이 붙어 있으며, 간판이 연이어 걸려 있고, 거의 빈 공간이 없다. 현재는 한여름이지만, 행인들도 적지 않고 여전히 번화한 모습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진소는 발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하나하나 가게를 돌아보았다. 겉보기에는 여유롭지만, 그 안의 눈은 크게 떠져서 어떤 가게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곧 그녀의 코끝에 땀방울이 맺혔고, 그것을 닦을 시간도 없이 가끔씩 장막의 끝을 살짝 들어 바람을 맞으며 약간의 시원함을 얻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 가량 힘겹게 돌아다닌 끝에, 진소는 결국 눈에 띄지 않는 차수점에서 그녀가 찾던 사람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외모는 차가운 복장에 묻혀 크게 눈에 띄지 않았으나, 자세히 보면 허리를 곧추세우고, 눈빛이 날카로우며, 행동이 민첩한 사람이었다. 허리띠 안에는 무엇인가가 가득 찬 듯했다.
그를 보자마자 진소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차를 들고 있는 직원과, 뜨겁게 대화하는 상인들, 장난꾸러기 아이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피해가며 그 남자 앞에 서서 예를 표했다.
그 남자는 진소가 차림이 소녀이고 어린 나이처럼 보였지만, 그녀가 그렇게 자신감 있게 다가와 예를 표한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그녀는 지금 몇 살쯤 되는지, 차림이 평범하고 가냘퍼 보였지만, 그런 태도로 보아 자신과 오랜 인연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그녀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이분은 누구신지…” 진소는 확신이 없으면서도 묻기 시작했다. “이분은…” 그녀는 깊이 생각하며, 갑자기 번뜩이는 생각을 했다. “생각났다, 당신은… 당신은 새 맞죠?” 그녀는 놀라운 표정으로 말했다.
‘새’!?
그 남자는 순간적으로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무슨 새? 새가 뭔데?
말이 너무 거칠게 들린다!
순간적으로 그 남자의 얼굴이 매우 어두워졌다. 그는 이 대낮에 차를 마시다가도 이렇게 기가 막힌 일을 겪게 될 줄 몰랐다. 상경의 소녀가 그렇게 뻔뻔하게 그를 '새'라고 부르다니, 그의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다.
그를 새라고 부르다니…
그 남자는 점점 화가 나며, 그가 자신의 이름이 사실 새와 관련이 있음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진소는 그 남자의 얼굴이 심각해지는 것을 보고,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아마도 종의 구분을 잘못했을 것 같다. 이분은 아마도 새가 아니라 야수일 수도 있다.
그녀는 사람이 맞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생과 현생 모두에서 그의 출현이 매우 빈번했다.
그래서 진소는 한쪽으로 기억을 되살리면서 또다시 시험적으로 물었다. “이분이 새가 아니라면… 아마도… 뭐… 무슨 동물일까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살기가 마치 산을 무너뜨리는 듯하게 몰려오더니, 다음 순간 “쿵” 소리와 함께 그 남자가 손에 쥐고 있던 차 컵이 산산조각이 났다.
푸른 혈관이 도드라진 손과 시퍼런 얼굴을 보면서, 진소는 자신이 실수로 사람을 모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례를 범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급히 허리를 숙이며,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당신과 잠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요한 일?
말씀드릴 것?
새라고 부르고, 동물이라고 부르다니, 이것이 요청하는 태도인가?
**제283장 설위사**
하영의 머리 위에서 연기가 나올 것처럼 보였다. 그의 큰 주먹이 '딱딱' 소리를 내며 꽉 쥐어졌다.
눈앞의 이 작은 몸뚱이가 몇 대를 견딜 수 있을까? 비록 그는 영웅적인 인물로서 여성을 때려서는 안 되지만, 위협 정도는 괜찮겠지. 그는 이를 악물고 생각하며, 눈에서 거의 불이 튀어나올 듯했다.
그의 표정을 보자 진소는 자신이 이 비행물인지 육상동물인지 모를 호위 대인을 완전히 화나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다시 한 걸음 나아가 아주 가벼운 목소리로 신속하게 외우기 시작했다. “자미천문, 별들이 나열되고, 허상과 실상이 각기 분명하게…”
이것은 그녀가 취선루에서 설윤형과 처음 만났을 때 읊었던 입문시였다. 당시 이 호위는 설윤형의 뒤에 서 있었다.
진소의 목소리가 들리자, 하영의 얼굴에서 검은 기운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의 눈에 담긴 불꽃이 다음 순간, 냉철한 눈빛으로 변했다.
진소가 시를 다 외우자, 그의 기세는 완전히 달라졌고, 살기가 사라지며 강한 무형의 압박감이 대신해졌다.
일반적으로 그가 압박감을 방출하면, 일반 사람들은 두려워하거나 긴장한다.
하지만, 그의 앞에 서 있는 소녀는 일반 사람이 아니었다.
진소는 거의 아무런 감각 없이 시를 외운 뒤 자연스럽게 한 걸음 물러나며 손을 들어 그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대인, 따라와 주시겠어요.”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말한 뒤, 몸을 돌려 앞을 향해 걸어갔다.
하영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를 욕하고, 다음에는 이상한 시를 외우고, 마지막에는 그의 압박감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영의 눈에서 잠깐 빛이 스쳤다.
이 소녀는 참 대단하다.
방금 외운 시는 그가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었고, 지금 이 가냘픈 뒷모습이 이상하게도 낯이 익었다.
진소가 하영의 시야에서 벗어날 무렵, 그는 천천히 일어나 한쪽 손을 내려놓고 눈에 띄지 않게 신호를 보낸 후, 느긋하게 차관을 나와 진소의 뒤를 적당히 따라갔다.
진소는 돌아보며 설윤형의 호위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현재의 그녀는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약간 무거운 상태였다.
그녀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설가와 직접 접촉하게 되면, 그녀와 자미천문과의 관계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것이고, 곧 철저히 조사될 것이다.
그러나 오양연과 이수당, 이 두 개의 암수가 제거되거나 이용되는 것에는 그녀가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양연은 무공을 가지고 있지만, 진소는 신뢰할 수 있는 무공 고수를 가지고 있지 않아, 조용히 제거할 수가 없다.
이수당은 무력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멀어, 진소는 지금의 자신이 대체로 황태자 주변의 관리자를 처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백운관, 진정으로 양날의 검이다.
진소는 천천히 걸으며 손가락으로 옷끈을 만지작거리고, 얼굴은 굳어 있었다.
처음에 그녀가 백운관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첫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둘째는 산 아래로 직통하는 비밀 길이 있어서였다. 게다가 백운관에 거주함으로써 많은 정보를 무심코 알게 되었고, 알 수 없는 황자를 발굴해냈다.
그러나 백운관에 거주하는 것의 단점도 명확하다.
백운관에 있으면서 큰 행동을 할 수 없고, 비밀 길이 있긴 하지만 너무 자주 사용할 수는 없었다.
내일 황태자는 상경을 떠날 예정이다.
황태자가 떠나면, 진소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녀를 도와주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설윤형의 호위들밖에 없다.
그 외에는 설가보다 적합한 인물을 찾을 수가 없다.
그녀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이유는 진소와 설가의 관계와 관련된 비밀이 너무 많아, 한 발짝이라도 잘못되면 모든 것이 엉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차라리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아주조와 그들을 도와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행동하는 것을 선호했다.
부평이 데려온 사람들은 의심할 것이 없지만, 이 문제는 너무 커서 그녀는 그들을 신뢰할 수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먼저 내보내는 것이었다.
진소는 천천히 걸으며, 회색 장막 아래의 표정은 매우 담담했다.
그녀는 최악의 상황을 이미 고려했으며, 만약 나중에 설윤형이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때리거나, 머리를 숙이게 하거나, 또는 그녀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위협하더라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혼자서 여러 복잡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여성으로서의 슬픔이다.
진소는 다소 낙담하며 옷끈을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
진가의 시간이 너무 짧았고, 그녀가 대적해야 할 적이 너무 강력하다. 현재 그녀가 유일하게 기대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설윤형의 인품뿐이었다.
이 생각이 떠오르자 진소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진국 전체를 보았을 때, ‘사’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은 그녀가 아는 바로는 설윤형 한 사람뿐이었다.
진솔하고 정직하며, 인자하고 순수하며, 성격이 직선적이고 열정적이다.
진소는 인정하기 싫어하더라도, 설윤형에게는 그녀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많은 품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설윤형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어두운 마음속에서 자신이 부끄럽다는 감정이 솟아나곤 했다.
그녀는 항상 그를 동경하고 있었다.
진흙에 묻힌 먼지가 하늘을 우러르듯이, 초라한 들풀처럼 별을 향하듯이.
설윤형이 있는 곳은 그녀가 도달할 수 없는 높이로, 그녀를 사로잡고, 질투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런 동경이 있기 때문에, 그녀는 이번 생에서 주저 없이 설가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가 선택한 것은 설가가 아니라 설윤형 그 자체였다.
그 사람이 있기에, 아무리 사건이 드러나고, 심지어 더 대담하고 과감한 일을 저지르더라도, 설윤형은 그녀나 진가를 지켜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소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마음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윤형이 이런 평가를 들으면, 그의 꼬리가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만약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그녀는 반드시 설윤형에게 큰 칭찬을 하고, 그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서 먼저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손을 내밀지 않는 웃는 얼굴을 때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한 시대의 요염한 여제가 이렇게 낮은 자세를 취하는데, 설윤형이 계속해서 그녀와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진소는 미소를 지으며, 머릿속에 또 다른 매력적인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만약 황태자가 좀 더 늦게 떠난다면, 그녀는 설윤형보다 더 나은 협력자를 찾을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그녀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진소는 조용히 머리를 흔들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언제부턴가, 거리에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장막을 살랑거리게 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대가 마
침내 지나갔다.
**제284장 월화비단**
옷끈을 놓고, 진소는 치마의 한쪽 끝을 들어 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가 이전에 찾은 만남의 장소는 두광무의 물건을 파는 가게였다. 그곳은 사람도 적고 조용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이 장소를 이용해 두광무라는 이름을 서서히 서가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려는 의도였다.
진소는 두광무가 두광원의 자리를 대체해 광릉의 방어를 맡을 수 있기를 바랐다. 중원제의 태자에 대한 태도를 보면, 뤄스행의 자리는 지키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진소는 궁중에서 오랜 시간 일한 경험이 있어 이 황제의 마음이 얼마나 좁은지 잘 알고 있었다. 뤄스행을 억지로 지키기보다는, 여전히 전생처럼 두가의 인물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대세를 바꾸지 않는 전제 하에, 두사郎은 놀라운 수로, 적절한 시점에서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진소는 생각을 빠르게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제 그녀는 동래복대가의 동쪽에 도착했으며, 인파가 점점 더 많아지고, 웃음소리와 여름의 특유의 기운이 어우러져 즐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진소는 빠르게 걸으며 사람들 속을 헤치고 지나가고자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한 인물이 그녀에게 뛰어들어 충돌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어서 진소는 깜짝 놀라며 본능적으로 몸을 비켰다.
하지만 그 인물의 속도는 번개처럼 빨랐다. 그녀가 겨우 몸을 피하기 시작했을 때, 강한 힘에 의해 한쪽으로 휘청여 넘어가게 되었다. 그 힘은 매우 강력했지만, 악의가 없었고, 오히려 묘한 부드러움과 기운이 있었으며, 진소를 비스듬히 밀어냈고, 그 결과 그녀는 옆의 비단 가게로 밀려 들어갔다.
진소는 겨우 몸을 가누며 나무 진열대에 의지해 서 있었다. 그녀의 심장은 급격히 뛰었고, 동시에 너무도 이상한 상황에 대해 놀라워했다.
사람이 강하게 밀려서 십여 보 떨어지는 동안, 그 과정에서 넘어지거나 발이 걸려지는 일이 없이, 문턱을 안전히 넘어서 진열대 옆에 똑바로 서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옷자락 하나도 끌어당겨지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가능할까?
진소는 진열대에 손을 대며, 흩날리는 미세한 머리카락을 정리하려 했고, 머리를 돌려서 충돌한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그때, 그녀의 손이 갑자기 차가운 대손에 잡혔고, 곧이어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닿았다. 목소리는 마치 신비로운 선율처럼 진소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따라오세요.”
그 목소리가 말한 후, 진소는 손을 잡히며, 그 손은 강력하지만 부드러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손은 마치 처음 충돌한 힘과 같았고,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 진소는 그 힘에 이끌려 비단 가게의 뒷문으로 향했다.
“고객님, 이곳은 최근에 입고된 월화비단입니다. 이름을 들으면 달이 고민할 정도라니까요. 이 비단으로 옷을 만들면 얼마나 멋질까요, 보세요 보세요…” 가게의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맞이하며, 화려한 비단을 공중에 펼쳐 두 사람의 모습을 가리게 했다.
상황이 맞지 않다면 진소는 웃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 직원의 유창한 말솜씨 때문이었다.
월화비단을 ‘월화의 걱정’이라고 표현하다니, 정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 같았다. 입을 열면 사람을 웃게 만든다.
진소는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손을 잡히고, 비단 가게의 뒷문을 지나 몇 개의 좁은 골목을 빠져 나와, 불과 몇 분 만에 눈에 띄지 않는 좁은 문 앞에 도착했다.
거의 동시에, 진소를 멀리서 지켜본 하영은 손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분명히 그 작은 하인이 얼마 전까지 가까운 거리에서 보였지만, 갑자기 눈을 돌리는 사이에 사라졌다.
그는 당황해 빠르게 걸어가 마지막으로 그 하인을 본 장소로 갔지만, 거기에는 길이 네 방향으로 뻗어 있고, 상점이 즐비했으며, 사람들도 많았다. 그 하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영의 눈빛은 차가워지고,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사람들 속에서 갑자기 네 명의 인물이 튀어나와 각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하영은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고, 갑자기 무언가를 느낀 듯이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는 화려하게 지어진 비단 가게가 있었고, 그곳의 직원은 몇 명의 부유한 상인들을 막으며 비단을 판매하고 있었다.
하영은 그 직원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며, 점점 냉랭한 눈빛을 띄었다.
그 직원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부유한 상인들에게 유창하게 비단을 설명하며, 마치 자신이 지켜보는 사람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듯했다. 가게 안에서, 계산서에 집중하던 회계원은 입가에 아주 미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인사했다.
진소는 그 순간에 입가에 미세한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웃음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세계에서 떨어진 은이 그녀의 머리에 떨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녀는 우선 잠시 기절하고 싶었다.
여름 오후, 기분 좋고 행복하게 잠시 어지럽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문을 올려다보며, 진소는 다시 입가를 끌어 올렸다.
이 작은 문이 바로 그녀가 최근에 떠난 '풍향찻집'의 뒷문이었다!
그녀는 많은 고민 끝에 서가에 드러내기로 결심했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그녀는 길에서 가로막혔다.
풍향찻집의 주인이 직접 그녀를 찾다니!
진소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도 그녀는 미세한 장막을 쓰고 있어, 아무도 그녀의 이상한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옆에 서 있는 큰 인물을 보았고, 그의 어깨가 넓고 다리가 길었으며, 검은 옷과 검은 비단으로 덮여 있었다. 그는 마치 밤의 그림자처럼 고요하고 냉랭하게 여름 거리에 서 있었다.
이 사람은 리시안두, 백마사에 살고 있는 고승 리 고승이었다. 그는 이번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진소는 다시 그 작은 문을 쳐다보며, 리시안두가 말했다.
“이 가게는 내가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약간 높았으며, 듣기에는 미소를 머금은 듯했다.
진소는 다시 입가를 올렸다.
이제 이건 정말 웃기는 상황이 아닌가?
“이 가게는 내가 열었고, 이 나무는 내가 심었으며, 이 길을 지나려면 통행세를 내라.”는 속담처럼,
진소는 “적어도 이 상황에서 그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다시 손가락을 꾹 눌렀다.
그녀는 이틀 전에 손톱을 깎았던 것을 후회했다.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그 얼굴을 움켜잡고 싶은 감정이 다시 가슴에 차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285장 **안개 속의 차가움**
“어서 들어오시오.” 이현도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진소가 저주하는 말을 듣고도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의 분위기는 더욱 부드러워졌다.
진소는 당황했다.
하나는 그녀가 이 큰 놀람에 혼이 나가 있었고, 또 하나는 이현도가 다른 사람의 욕을 듣고도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매우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현도는 진소의 손을 가볍게 놓고 한 걸음 앞서 문을 열었다.
진소는 그를 한번 쳐다본 후 먼저 들어갔다.
이곳은 마치 고향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재생한 이후로 모든 일을 선행했지만, 이 고승 앞에서는 항상 그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이현도는 과연 그녀를 괴롭히고 막는 데에 태어났던 것일까?
진소는 손을 들어보려 했으나, 결국 그만두었다.
그는 그녀가 그 앞에서 더 이상 분노하거나 발버둥 치는 것을 보지 않을 것이다.
잠시 후, 그녀는 당당히 손을 뒤로 젖히고 이현도를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이제 이현도 앞에서 꾸미는 데 지쳤다. 이곳에 도착한 이상, 들어가면 그만이지, 어차피 그는 이미 많은 비밀을 알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제 몇 가지 비밀이 더해지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이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닐까?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그녀는 이현도와의 협력 계획을 세울 시간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었다.
이제 기회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향기나는 찻집의 주인이 바로 이현도인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녀는 시험해볼 필요도 없이 그가 직접 다가왔다. 그녀는 실제로 기뻐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기분은 매우 복잡했다. 패배감이 그녀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현도는 그녀의 뒤에서 잠시 멈추어 있는 듯 보였고, 밖에 무언가를 지시하는 듯했다.
그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진소는 그가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알았다. 아까 그녀가 부딪힌 것부터, 모든 것이 눈이 멀었던 비단 가게와 향기나는 찻집까지, 이현도의 주변에는 많은 도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확실히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이현도가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해서 그녀를 데리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주도권을 잡는 계산과는 달리, 진소는 이런 우연과 의외의 기회에 대해 모호한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녀가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이 더 급해 보였지만, 현재로서는 이현도—향기나는 찻집의 주인, 당나라의 권력자—가 오히려 더 급하게 보였다.
정말 이상했다.
진소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그녀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 끌어올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현도는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서 금세 그녀를 지나쳐서 주인처럼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로 그녀를甲(갑)호 방으로 안내했다.
이 방은 그녀가 방금 사용했던乙(을)호 방 바로 옆이었다.
진소는 두꺼운 겹치마 아래서 눈을 굴렸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고민할 생각이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한 명의 하인이 있었다. 그 하인은 곱슬거리는 눈썹과 둥근 눈, 그리고 날씬한 몸매를 가진 여성으로, 청록색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옷에는 연보라색의 자수 장식이 달린 향낭이 달려 있었다. 진소가 가짜 하인으로 꾸민 것보다 훨씬 더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두 사람이 방에 들어서자, 그 여성은 즉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아안구는 여인님과 주군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부드럽고 여린 목소리는 마치 봄 안개처럼 사람을 감싸고, 물기가 있는 아침 꽃처럼 느껴졌다. 안개 낀 눈처럼 보이는 그 여성의 눈을 보니, 진소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귀여운 소녀라면 ‘아안구’라는 이름이 어울릴 법했다.
진소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머리에 쓰고 있던 겹치마를 벗지 않았다. 아안구는 진소를 섬기기 위해 다가오지 않았고, 인사 후에 다시 이현도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군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홉 가지 신선한 과일은 방금 튀긴 것입니다.”
이현도는 “응” 하고 대답한 후 손을 들어 “가라”는 한 마디를 했다.
아안구는 즉시 몸을 굽혀 인사한 후, 발소리도 없이 조용히 나갔다. 그녀의 우아하고 차분한 태도는 진소가 방금 사용했던 하인 아구보다 백 배는 나아 보였다. 아안구는 철저히 훈련받은 듯, 어떤 고위층의 하인들과도 비교되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 이현도는 처음으로 모자를 벗고 진소를 바라보았다. 그의 회색 눈동자 속에는 불타고 나서 황폐해진 대지가 보였으나, 여전히 타오르는 불길이 꺼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진소는 시선을 돌렸다.
“내가 갑작스러웠다면, 여섯째님을 불쾌하게 해 드렸다면 죄송하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청아했으며, 진소에게 불편한 느낌을 없애주었다.
진소는 머리에 쓰고 있던 겹치마를 벗어 손에 들고 몇 번 돌리며 방을 둘러보았다. “이 고승님, 언제 이 가게를 열었나요?” 목소리는 약간 차가웠다.
이현도는 잠시 멈칫했다.
‘이 고승님’이란 무슨 호칭인가? 그는 그동안 변하지 않던 평온한 눈동자 속에 이 호칭에 대한 의문을 나타냈다.
진소는 그를 힐끗 쳐다본 후, 일부러 무시하고 다른 질문을 했다. “이 고승님은 당나라에서 오신 건가요?”
두 번의 질문이 모두 뜬금없었다.
이현도의 검은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고, 이 고승님이라는 호칭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금세 사라졌고, 그의 회색 눈동자에는 불타고 난 후의 황폐함만이 남았다. 그는 담담하게 “예”라고 대답한 후,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진소는 눈썹을 살짝 치켜들며, 그가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시선을 내리고, 손가락으로 겹치마의 얇은 천을 정리하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진소의 눈앞에 갑자기 검은색의 넓은 소매가 나타났고, 그 소매 끝에는 길고 매끄러운 손이 있었다. 피부는 밀짚색이었지만, 조각된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 손이 테이블 쪽을 가리키며, 곧이어 가냘픈 현악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앉으십시오.” 이현도는 여전히 한 마디만 했고, 목소리는 부드러우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진소는 그의 시선을 마주쳤다. 그의 눈은 마치 고대의 밤처럼 깊어, 사람을 끌어들이는 듯했다.
그녀의 마음이 살짝 떨렸다.
이런 눈동자에 바라보면, 누구라도 무심할 수 없다.
그녀는 시선을 돌리고, 거절하지 않고 지시대로 테이블 옆에 앉았다. 겹치마는 여전히 손에 들고 있었고, 그 깊은 회색의 천은 계속해서 접히고 펼쳐졌다.
이현도는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았고, 그의 회색 눈동자 속에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 있었다. 너무 빨라서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저는 악의
가 없습니다.” 갑자기 흰 현악기 소리가 방 안의 고요함을 깨트렸다. 그는 진소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해명하려 했다.
진소는 그에게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그녀는 그가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가 당나라 사람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진소는 그와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 함께 이곳에 오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그가 그녀를 계산하던 것이 한 가지라면, 지금 왜 먼저 카드를 꺼냈는지, 이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 본 장 끝 —
제286장 **비범한 인물**
“좋습니다. 더는 궤변을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진소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내려놓으며 긴 속눈썹 아래 청명한 시선이 이현도를 응시했다. “이현도,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떤 건지 설명해 주십시오.”
이현도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뒤로 하고 똑바로 서 있었다. 그의 긴 검은 머리카락이 풀어져서 검은 옷과 엉켜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진소는 잠시 기다렸으나 이현도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부채를 내려놓고 다시 고개를 들어 이현도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와 꽤 먼 거리에 서 있었고, 그의 아름다운 얼굴은 그 주위를 은은한 광채로 감싸고 있어, 보는 사람이 그를 쉽게 직시할 수 없게 했다.
진소는 한 번만 보고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정말 볼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손이라도 막을 생각을 해야지,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위협적이어서 진소는 눈이 멀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방 안의 정적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마치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얼마 후, 이현도의 목소리가 드디어 울려 퍼졌다. 여전히 차가운 듯하지만, 그 전의 기쁜 느낌은 사라졌다.
“여섯째님,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 그는 여전히 원래의 자리에서 서 있었고, 시선은 반쯤 열려 있는 문을 향하고 있었다. 진소를 직접 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현도가 그들의 상황을 간파했다는 것에 진소는 놀라지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현도는 잠시 침묵한 후, 고요한 시선으로 진소를 바라보았다. “문제를 알고 있다면, 왜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가요?” 그의 회색 눈동자는 변함없이 차가웠고, 잠시 후 그는 다시 말했다. “그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그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진소는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는 것이 바로 그녀가 물어보려 했던 소년, 즉 강한 적임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소는 놀라서 이현도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란 걸? 혹시 이현도님이 그를 아십니까?”
이현도가 그 사람을 알고 있다면, 그녀는 적어도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었다.
“맞습니다.” 이현도는 짧게 대답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차갑고 깊어 보였으며, 전혀 그를 알아본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저는 예전에 헌도관에서 약 6개월 정도 지냈습니다. 여섯째님이 오늘 만난 사람은 린추의 뢰씨 문하의 시위입니다. 이름은 하이, 뢰 시랑의 오른팔이죠.”
린추의 뢰씨에 대해 이렇게 잘 아는 진소는 깜짝 놀랐다. 헌도관은 대도시 외곽에 위치한 정통 도교의 본산으로, 삼국 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도교 사원 중 하나였다. 이현도가 거기서 지낸 것을 알게 되니, 그가 뢰씨의 사람들을 알게 된 것도 이해가 갔다.
진소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가 정말로 뢰씨의 사람들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녀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그가 정작 중요한 시점에 나타나, 그녀의 계획이 틀어지게 만든 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후 협상할 계획이었다.
이현도가 진소를 도와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잠시 충격에 빠졌다.
이현도가 정말로 그녀를 도와주려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와의 교류가 불편하기 그지없었고, 그와의 대면은 항상 갈등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왜 그녀를 돕겠다는 것일까?
“정말 저를 도와주실 건가요?” 진소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현도님은 왜 갑자기 저를 돕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이현도는 잠시沉思한 후, 그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지만, 그 속에서 약간의 진지함이 엿보였다.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겠소. 하지만 이는 조건이 있을 것이오.”
진소는 그가 제시할 조건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그가 도와주는 조건이 너무 비합리적이지는 않겠지만, 그가 말하는 조건이 어떤 것일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여름 햇살과 바람은 방 안에서 그저 스쳐 지나갔고, 이 둘의 긴 침묵 속에 방 안의 공기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진소는 이현도를 유심히 바라보았고, 이현도는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 본 장 끝 —
**제287장 꿈에 와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이현도의 목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그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에는 이전의 가벼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다시 죽음처럼 차가운 침묵이 감돌았다.
"육낭, 무를 믿으십니까?" 그는 물었다. 순간 그의 인물은 갑자기 회색으로 변해버렸고, 방 전체도 함께 어두워졌다.
"무?" 진소는 중얼거리며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떠올렸고, 마음속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일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당주님?"
이현도의 회색 눈빛은 아래를 향하였고, 그는 앞에 놓인 다과를 어루만지며 목소리를 차갑게 말했다. "우리 당국에는 무가 있습니다. 국사는 대무로서 나라에서 가장 높고 위대한 인물입니다. 국사는 비밀스러운 높은 산의 정점에 거주하며,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마치 갑자기 무엇인가에 영향을 받은 듯 보였다.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표정에는 감회가 담겨 있었고, 마치 추억에 잠긴 듯 보였다. 그의 시선은 다과 위에 고정되어 있었고, 몸은 꼿꼿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마저 조용히 어깨에 흘러내려 마치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처럼 보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 대무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쳐나는 모습을 보았죠. 우리 당국의 아름다운 강산이 한순간에 멸망하는 꿈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 신비했으며, 이현도의 표정은 담담하고 멀어 보였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라의 운에 불행을 가져다줄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진소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과 옆에 서 있었고, 마치 방 안에 맑은 빛이 흐르는 듯 보였지만, 동시에 이 광활한 세상에서 버림받은 듯, 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서 있는 듯했다.
매우 외로워 보였고, 고독해 보였다.
진소는 갑자기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비록 그녀가 한때 그가 죽기를 바랐고 지금도 그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녀는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불행한 존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차라리 괴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걸 믿을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진소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경멸이 섞여 있었다. "단지 허세와 협박일 뿐이에요. 당신이 믿는다면 그건 바보 같은 일이죠."
그녀 스스로가 ‘무’와 비슷한 사람 아닌가? 매일 신기한 이야기들을 하며 예언을 자처하지만, 사실 재생의 혜택을 누린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들이 그녀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일들이 사람이 말로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믿지 않으십니까?" 이현도는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놀라운 표정은 아니었고, 오히려 이해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당신은 술법을 믿으니, 자미도수는 배열과 계산을 통해 결과를 얻는 것이고, 우리 당국의 무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진소는 머리를 숙여 청자 접시에 담긴 구과를 보고 눈을 돌렸다.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무도 하늘의 기운입니다." 진소가 대화를 끊었지만, 이현도의 목소리는 다시 온화해졌다. 이전의 차가움은 사라지고, "우리 당국에서는 무의 예언이 주로 꿈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무의 꿈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잠시 멈추더니, 그는 자조적인 듯 웃으며 말했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진소는 그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까?" 그녀는 물었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온화하여 마치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듯했다.
생각해보니, 이 세상에 그녀의 재생이 존재하는 만큼, 그 신비한 말들도 사실일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다.
이현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요."
진소는 "응" 하며 고개를 돌려 잠시 생각한 후, 다시 물었다. "그래서 당주님은 고향을 떠나 대진으로 피신한 것입니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이현도는 대답하며 긴 다리를 내딛어 탁자의 반대쪽에 앉았다. 그리고 다과를 가리키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거의 얼음을 녹일 만큼 따뜻해 보였다.
"이 과자는 당신이 좋아할 만합니다. 드세요." 그는 정교하게 조각된 손으로 다과 접시를 진소 쪽으로 밀어 주며, 그 미소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부드럽게 사람의 마음을 스쳤다.
진소는 머리를 반쯤 돌려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사람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한 번 볼 때마다 실망만 커졌다. 자신의 외모가 이미 절세라고 생각했지만, 이 사람 앞에서야 비로소 구름과 진흙의 차이를 알았다.
모르는 감정이 담긴 채, 진소는 약간의 투정과 낙담으로 과자를 입에 넣었다.
작고 부드러운 면과자, 입에 넣으면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신선함이 감도는 맛이었다. 새우와 고구마, 밀가루를 섞어 만든 면 공을 기름에 튀긴 것이며, 각 과자는 엄지손톱 크기로, 한 입에 넣기 좋고 맛이 매우 뛰어났다.
"어떠십니까?" 이현도의 맑은 눈빛이 진소의 얼굴에 머물며, 마치 그 과자가 그가 튀긴 것처럼, 그는 요리사로서 진소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질적인 평가를 했다. "정말 맛있습니다."
정말 맛있었다. 적어도 그녀의 입맛에는 맞았다.
이현도의 입가의 미소는 더 깊어졌고, 그 미소는 하늘과 땅을 변색시킬 듯한 밝은 기쁨이 가득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시 봄색으로 물들었다.
봄바람이 머리를 스치며 꽃이 따뜻해지고, 아침의 향기와 이슬이 피어오른다.
진소의 마음에는 의도치 않게 그 시구가 떠올랐고, 그로 인해 다시 마음이 흐려졌다.
그만하자, 그만하자. 그녀가 괴물에게 무슨 대꾸를 하겠는가?
"맛있으니, 육낭께서 좀 더 드시죠. 부족하면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현도는 기뻐서 가슴이 벅차며, 가장 공손한 주인처럼 웃으며 말을 끝냈다. 그리고 옆의 주전자에서 진소의 찻잔에 차를 다시 채웠다.
진소는 거의 깜짝 놀랐다.
아름다움의 은혜가 가장 받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던데, 그녀는 그 진의를 체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에 띄지 않게 시선을 돌려 그를 한 번 바라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지금 자신이 불상하고 존엄한 관음보살이 갑자기 앉아서 그녀와 잡담을 나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격차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다.
"감사합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이현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차의 향은 진하고 부드러우며, 약간의 달콤함이 감도는 것이 기름진 과자의 느
끼함을 잘 풀어주었다.
과연 좋은 것이었다.
진소는 전생에 좋은 것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 차는 당국의 특산품으로 '청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몇 백 냥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특별히 놀라지 않았다.
태어날 때 대무가 꿈을 꾼 사람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진소는 이현도가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대가 되었다. 더 많은 단서를 제공해 주기를 바랐다.
이현도는 천천히 자신에게도 찻잔을 따르고, 주전자를 내려놓은 후, 찻잔을 들고 담백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그 찻잔의 연한 청록색 차를 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내 운명이 불행하기 때문에,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두려워하며, 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무는 내가 운명에 따라 죽어야 하며, 외부의 힘으로는 죽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역행하며 가족에게 해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와 함께 산 속으로 가게 되었고,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무가 또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끝—
**제288장 꿈과 생사**
이현도의 목소리는 꿈속에서 떠도는 듯이 진소의 귀에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과 고독이 깔려 있었다.
“무는 어떤 꿈을 꾸었습니까?” 진소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녀의 맑은 눈이 이현도를 바라보았다.
이현도는 잠시 그를 응시한 후 시선을 돌리고, 조용히 입을 열어 두 마디를 말했다. “악몽.”
진소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것은 단순히 이현도의 운명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는 갑자기 어떤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극히 신비로운 감정이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녀는 그의 매력에 감동하면서도, 왜 이현도라는 인물에 대해 그녀의 전생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겠다.
아마도 전생에 그는 청국에 오지 않았거나, 왔다 하더라도 일찍 사망했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일 것이며, 그렇지 않고는 이현도의 미미한 존재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진소는 머리를 숙이고 고민하다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 생각이 번개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탕국의 그 큰 사건!
순간, 진소는 손을 주저앉혔다가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큰 사건, 또는 큰 재앙은 올해 10월에 발생했다. 그 이후로, 탕국은 끝없는 싸움과 내전으로 빠졌고, 조국은 기회를 잡아 탕국의 여러 군현을 점령했다. 중원 십오 년 무렵에야 탕국은 겨우 회복되었지만, 결국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고, 대진과의 협력도 많이 약해졌다.
혹시, 전생의 이현도가 그때…
진소의 호흡이 급해졌다.
“무가 꾼 꿈은 나에 관한 것입니다.” 그가 말하며, 그 목소리는 다시 꿈처럼 부드러워졌다. 진소는 그의 생각에 빠져 있던 자신을 깨우며,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가 나에 대해 어떤 꿈을 꿨나요?” 그녀는 물었다. 목소리는 평온하게 돌아왔고, 감정의 흔들림은 없었다.
이현도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우아한 자세로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고, 다시 손에 쥔 청자 찻잔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무가 꾼 꿈은, 나의 죽음을 꿈꾸었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을 끝내고, 찻잔을 내려놓은 후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에는 푸른 버드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꿈에서 나를 광야에 서 있게 하고, 갑자기 내 몸이 부서져서 사지가 분리되며, 온몸이 산산조각 나고, 빨간 피가 공중에 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공허하게 여름 오후의 따뜻함과 밝음을 날려버렸다.
이현도는 잠시 멈추고, 진소를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처음으로 약간의 사과가 섞여 있었다. “내가 말한 것이, 혹시 놀라게 했나요?”
진소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녀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부드럽게 웃었다. “계속 말씀해 주십시오.”
이현도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이해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가에 매혹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군요, 여당의 용기는 늘 강하죠. 항상 혼자 행동하며, 외딴 산도 가고, 깊은 비밀의 길도 가며, 이제는 또 쑤시리 가문의 문제를 찾으시네요. 제 이야기가 여당을 두렵게 할 리가 없겠죠.”
진소는 찻잔을 들고 잠시 보고,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이죠, 제 용기는 전혀 작지 않습니다.”
만약 그녀가 두려웠다면, 아마 벌써 죽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두려운 사람이라도, 은당에 열흘 동안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사람이 되거나, 죽을 것이다.
진소는 찻잔을 들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이미 여러 번 은당의 이야기를 담담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은당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 없이, 단지 냉철하게 그곳을 생각할 수 있었다.
아마 그녀가 알고 있는 적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귀족의 자식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은당에 대해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또, 만약 그녀가 은당과 같은 힘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곤 했다.
“음, 알겠습니다. 여당은 항상 용감하군요.” 이현도는 부드럽게 말했다. 진소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고, 그의 얼굴은 태양의 측면에서 비추어져 반쪽은 그림자 속에 있었다. 그의 깊은 눈빛은 재회의 밤의 달빛처럼 부드럽고, 여름의 화려한 색채를 담고 있었다.
이제서야 진소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단순히 처음 만나봤던 그 서두르는 시선도, 두 번째 봤던 그 어두운 분위기와는 달랐다. 이 밝은 빛 속에서, 깔끔하고 우아한 방 안에서, 그녀는 그와 마주 앉아 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의 외모는 극도로 아름다웠다. 높은 코와 약간 들어간 눈구멍 아래, 검고 깔끔한 긴 눈썹 아래에 청명하면서도 슬픈 눈이 있었다. 연한 입술은 부드럽고 윤기 있으며, 마치 촛불 아래의 진주처럼 부드럽게 빛났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얼굴은 중원 사람들과는 다르게 깊이와 강렬함이 있었고, 눈썹과 눈이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의 눈은 검고 길며, 그 눈동자는 사람의 혼을 사로잡을 듯한 신비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이후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진소는 조금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이현도의 얼굴을 보며 기운이 빠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얼굴은 하늘과 땅을 초월한 위엄을 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천상의 힘과 신비로움이 합쳐진 듯했다. 그런 얼굴을 매일 마주하다 보면,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도 자신이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진소는 지금 기운이 빠진 기분이었다.
그녀의 기운 없는 모습이 이현도에게는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이현도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넓어지며 말했다. “여당이 듣고 싶다면, 저는 진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말할 것이 없는 것이 없겠죠.”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여전히 차갑고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무는 꿈 속에서 나의 죽음뿐만 아니라, 나의 삶도 꿈꾸었습니다.”
죽음을 꿈꾸고 삶을 꿈꾸는 것은 이상했다.
진소는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잠시 눈을 돌렸다가, 신중하게 물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요? 무의 꿈에 또한 모호한 순간이 있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현도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의 긴 손가락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고, 그 모양은 조각처럼 아름다웠다. “천기라는 것은 매우 신비한 것이며, 자미도수처럼 별자리에서 보는 것도 항상 확정된 것이 아니라 대략적인 방향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결국 그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끝—
**제289장 생명의 기운을 건너다**
이현도가 말을 멈추고,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안개가 낀 듯한 감정과 약간의 혼란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무는 내 죽음을 꿈꿨습니다. 이것은 큰 그림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큰 그림을 넘어서는 변수가 존재하죠. 그 변수, 바로 내… 생명의 기운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잠시 멈췄다가, 음악의 일시적인 정적처럼 다시 이어졌다. “이 생명의 기운은 바로 이곳입니다.” 그는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그의 표정은 이전의 고요함을 되찾았고, 진소를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청국이 바로 내가 간신히 가진 그 생명의 기운입니다.”
진소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이현도는 고향을 떠나 청국에 온 것이 단순히 재난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기운을 찾으려는 것이었군요.” 잠시 멈추고 나서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불법과 도교를 연구한 것도 이 두 가지 기회의 중심에서 생명의 기운을 찾으려는 것이었겠죠?”
이현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진소는 그를 바라보면서, 왜 항상 이현도에게서 익숙함을 느끼는지 깨달았다. 그와 그녀는 본질적으로 매우 비슷했다.
그들은 모두 생명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을 찾기 위해, 이현도는 먼 길을 떠나 청국에 왔고; 진소는 생명의 기운을 찾기 위해 매일매일 계산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같은 길을 걷고 있었고, 각자의 운명을 피해 이 넓은 세상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현도의 죽음과 진소의 냉담함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그 끝은 유사했다.
이제 진소는 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악연이 있었고, 생모를 죽였으며,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후, 깊은 산속에서 혼자 자라나야 했던 이현도가 어떻게 쉽게 행복할 수 있을까?
진소는 시선을 돌리고, 마음속에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결국 이현도는 왜 자신을 도와주려 하는 것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말한 조언이 이현도의 목숨을 구했다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백운관에서 다친 사람은 많았으나 사망자는 없었다. 진소는 확신했다. 만약 그녀의 조언이 없었다면, 이현도는 여전히 살아 있었을 것이다. 그의 곁에는 지진 속에서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유능한 무장들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진소는 자신의 양심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비록 그녀가 자신의 양심이 평소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공정하게 말해야 했다. 그녀의 조언은 결코 선의의 조언이 아니었으며, 악의를 품고 있었다.
더 나아가, 만약 그 조언이 정말 이현도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왜 이현도는 그녀와의 비밀통로에서 살해 의도를 보였는가?
진소는 몇 차례 생각을 되풀이한 끝에, 참을 수 없어 물어보았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왜 저를 도와주려는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마의 주름이 살짝 잡혔다. “혹시 저를 돕는 것이 선생님에게 생명의 기운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가요?”
이현도는 약간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미소가 담겼고,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내가 당신을 돕고자 하는 이유는, 당신이 곧 나의 생명기운이기 때문입니다.”
진소는 놀라며 잠시 멈췄다. 그녀는 자신이 그의 생명기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의아해했다. 그 순간,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그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말없이 앉아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비웃음을 담고 있었고, 그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이현도는 그녀를 집중해서 바라보며,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여당이 믿지 않으신가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세상의 모든 음악보다도 감미롭고 매력적이었다.
진소는 여전히 그의 말에 속지 않고, 하늘을 향해 눈을 굴렸다. “선생님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직접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어리석지만 말은 알아듣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왜 이렇게 우회적으로 말하십니까? 직접적으로 제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서로 도와가며 하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 기운이 전혀 가라앉지 않은 채, 전혀 부드럽지 않은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현도는 그녀를 보면서, 그의 눈빛에 숨겨진 빛이 살짝 드러났다. 왜인지 모르게, 그는 웃고 싶어졌다.
처음 만났던 초록길에서의 첫인상, 월야의 재회, 비밀통로에서의 세 번째 만남, 그리고 지금의 마주 앉은 모습까지, 매번 그녀는 그에게서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그녀의 생동감과 활기찬 모습에 놀랐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었다.
그의 냉담과 고독에 비해, 그녀는 절대적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깨부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매일매일을 맛있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믿었다. 그녀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녀는 반드시 생명을 쥐기 위해 모든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그녀의 존재는 정말로 신비로웠고, 그녀를 보면 자신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도 빛나고 눈부시게 살아있는 한, 그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현도의 입가에는 점점 더 많은 미소가 번졌다. 그의 차가운 눈빛 속에는 마치 그 밤의 달빛이 부서진 듯한 반짝임이 있었고, 그 빛이 진소에게 흩날렸다.
진소는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이현도와의 대면에서 모든 가식을 벗어버리고, 정직하게 조건을 논의하려고 했다.
그녀는 로씨보다도 이현도가 훨씬 더 적합한 도움이라 생각했지만, 현재로서는 그의 반응이 기대와 달랐다.
“선생님이 말할 것이 있다면, 직접 말씀해 주십시오.” 진소는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서 진지한 태도를 취하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제시하는 조건이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면, 저는 기꺼이 선생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자미도수의 능력은 선생님께서 들으셨을 것이며, 제가 무의 예언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진소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심이었다.
물론, 그녀가 말한 것 중에서 거짓이 포함된 부분은 스스로 무시했다. 어쨌든 그녀는 앉아서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런 태도를 최대한 잘 보여주었다.
—끝—
**제290장 무지개를 그리다**
이현도가 그 말을 듣고는 대답하지 않고, 창가로 걸어가 그곳의 부드러운 버드나무 가지를 만지작거렸다.
“진씨, 내가 백운관에서 어디에 있었는지, 오래된 정보부터 들었겠군요?” 그는 갑자기 말하며,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말에는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진소는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예전에 하녀가 말씀하신 대로, 선생님은 백운관의 장경루에서 서예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진소 씨 말이 맞습니다.” 이현도는 버드나무 가지를 손에 가져다 대며, 그 길고 푸른 잎사귀가 그의 조각 같은 손가락에 어울려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지진이 일어난 그 밤, 나는 단정실의 뒷벽에서 달을 감상하려 했습니다. 원래는 달을 보고 나서 장경루로 돌아가려 했으나, 우연히도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고, 진소 씨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때 진소 씨의 조언을 받았죠.”
그는 손을 풀어 버드나무 가지를 창가로 돌려보내며 약간의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진소 씨, 당신의 말이 정말로 내 목숨을 구했습니다.”
진소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고, 잠시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믿겠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저 우연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차를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생명의 기운에 대한 말도 맞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녀의 말투에는 약간의 차가움이 담겨 있었고, 내면의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이현도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
창가의 바람에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며 “사삭” 소리가 나고, 그 방 밖에는 상경의 여름 날씨가 펼쳐져 있었다. 태양이 모든 거리와 골목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은 전부 사실입니다. 한 마디 거짓도 없습니다.” 오랜 침묵 끝에, 이현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한 곡의 음률처럼 서늘하게 울렸다.
“삼일 전, 나는 무파의 사신이 가져온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진소를 향해 몸을 돌리며, 그의 회색 눈동자 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을 읽었다. “무는 내 꿈을 꾸었다고 말했습니다.”
진소는 그를 바라보지 않고 손가락을 살펴보았다.
이현도는 그녀를 지켜보며 이해한 듯 미소를 지었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 꿈에서, 나는 달빛이 비치는 밤에 높은 소나무 아래 혼자 서 있었다고 합니다. 절벽이 흔들리고 별이 변하며, 거대한 짐승이 입을 벌려 천지를 삼키려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입 주변에 서 있었다고 하네요.”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공허와 풍운이 감돌았다.
“그 짐승이 나를 삼키려는 순간, 갑자기 무지개가 나타나 그 짐승을 물러가게 하고, 별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 징조는 사라졌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하며 옷자락을 살짝 휘날렸다.
햇살이 갑자기 그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고, 그의 눈빛은 이 순간 반짝이기 시작했다. 봄바람과 여름의 맑은 달빛, 가을의 화려함, 겨울의 눈이 모두 담긴 듯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었는지, 혹은 그의 꿈에 대한 설명이 너무 놀라웠는지, 진소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창가를 다시 바라보았다.
언제부턴가 이현도는 창가에서 물러나 다시 테이블 옆에 앉아 있었다. 그의 검은 머리는 바람에 흐트러져 몇 가닥이 이마에 흘러내렸고, 그의 옆얼굴을 부드럽게 장식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진짜인가요?” 오랜 침묵 끝에, 진소는 그에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게감이 없는 듯 했지만, 그 말 속에는 깊은 의심이 담겨 있었다.
“거짓이 없습니다.” 이현도의 대답은 확고했으며, 그는 진소를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내가 당신을 도우려는 것은, 당신을 도우면서 나 자신도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소는 미간을 좁히고, 눈빛을 단호하게 했다.
그녀는 순수한 선의를 믿지 않으며, 오직 이익의 교환만을 신뢰한다. 이현도의 말은 그녀가 예상한 바와 더욱 일치했다.
당나라의 대무에 대해서는 그녀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무는 매우 신비로워서, 그녀가 아는 정보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때, 이현도는 그녀의 속마음을 읽은 듯, 느긋하게 말했다. “당나라 사람으로서, 대진과는 관련이 없으니, 내 도움이 있다면 진소 씨는 제약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나는 대진에서 일정한 인맥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당신이 제기한 몇 명의 서원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인맥 덕분입니다.” 그는 잠시 멈추고,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내 생각에, 이 일은 진소 씨가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진소는 그의 뒷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이현도의 말은 그녀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그가 당나라 출신이라는 점은 그녀가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진소는 솔직하게 인정하며, 얼굴에 얇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진소 씨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현도는 몸을 돌려 몇 걸음 거리를 두고 진소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우선 선생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이 이 찻집과 그 실크 가게 외에 또 어떤 것이 있는지요?” 진소는 얕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현도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술을 약간 열고 두 글자를 뱉었다. “많이.”
그의 말은 대수롭지 않게 들렸으나, 진소가 이해한 ‘많이’와 이현도가 말한 ‘많이’가 같은 의미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진소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저에게는 세 가지 문제—하나의 고민, 하나의 난제, 그리고 하나의 이상한 문제가 있습니다.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예의를 차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 세 가지 문제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녀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끝—
**제291장 봄바람을 품다**
진소의 솔직하고도 거침없는 태도에 이현도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현도는 서두르지 않고, 차 상 위의 다과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급하지 않습니다. 먼저 다과를 드시며 천천히 말씀해 주십시오.”
진소는 잠시 당황했으나, 그가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일반적으로 특별한 사람들은 다소 이상한 취향을 가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시영이의 금전 사랑, 시연의 무서운 얼굴, 혹은 '백환'의 환자청이 피아노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현도가 그토록 뛰어난 사람이라면, 그가 특별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진소는 그의 말에 따라 몇 개의 호두과자와 꿀절임을 먹었다. 이현도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자신은 차를 반 잔만 마셨다.
진소는 전생에 중원제와 같은 괴물과 함께 지내온 경험이 있으니, 이현도의 이런 기벽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다과를 마친 후, 진소는 손을 닦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현님, 미안하지만, 제가 이 과일을 모두 먹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백운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우선 이야기를 먼저 하고, 그 후에 다른 일을 논의해도 될까요?”
이현도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소는 계속해서 말했다. “우선 첫 번째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현님 주변에 장시간 외부에 나가 있을 수 있는 무술 고수가 있는지요?”
“있습니다.” 이현도는 간단히 대답했으며, 표정이 조금은 진지해졌다. “진소 씨는 어떻게 하시려는 건가요?”
진소는 그의 주변에 무술 고수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에게 그런 고수를 한 명 빌려 주시길 바랍니다. 청주 진가로 보내어 진가의 한 시종인 양종신을 찾아주십시오. 양종신은 능력이 뛰어나고, 성격이 매우 교활합니다. 이현님께서 시간 여유가 없다면, 그를 직접 처치해도 좋습니다. 만약 이현님께서 많은 인력이 있으시다면, 그를 감시하게 하여 어떤 사람들과 접촉하는지 알아봐 주세요. 만약……”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멈추고, 투명한 눈빛이 햇살에 비친 물결처럼 이현도에게 향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번거롭다'는 것이 아니다. 대상이 먼 곳에 있고, 즉흥적으로 대처해야 하며, 파견되는 인물은 영리하고 신중하며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좋습니다.” 이현도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진소는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럼, 감사합니다.”
이 일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만약 진소가 자신의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단지 오양염란이라는 여인을 감시하는 일이었으니, 그녀가 누구와 접촉하는지 알아내거나 직접 처치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현도가 단호하게 응답한 것은 예상한 대로였다.
그러나 진소는 유의하여 오양염란의 여인임을 명시하지 않았다.
조금의 정적 후, 진소는 다시 이현도에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두 번째 문제는 정말로 좀 어렵습니다.”
이현도는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았고, 깊고 온화한 눈빛은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그녀를 감쌌다.
“이 어려운 문제는 오늘 내가 만난 사람과 관련이 있습니다.” 진소는 부드럽게 말하며, 차 주전자를 들어 이현도의 컵에 차를 따랐다. 차가 공중에서 물결처럼 흐르며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조용히 흘러갔다. “오늘 내가 만난 첫 번째 사람은 시호라는 성을 가진 사람으로, 강양 시씨의 차남입니다. 이 시이랑은 최근 백운관에서 한 사람을 만나 그에게 편지를 주었습니다. 제가 이현님에게 부탁드리는 두 번째 일은, 그 편지를 훔치는 것입니다.”
차가 컵 속에서 점점 차올랐고, 물결이 멈췄다.
진소는 차 주전자를 내려놓고 이현도에게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 일은 쉽지 않습니다.”
리수당은 태자와 함께 상경하였으며, 태자 별원의 경비는 큰 문제였다. 또한 태자는 내일 상경을 떠나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다.
게다가 지금 편지를 훔치는 타이밍도 이미 늦어 있었다.
편지가 리수당의 손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을 수도 있고, 어떤 장소에 숨겨두었을 수도 있으며, 또는 다른 사람에게 맡겼을 수도 있다.
결국 이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진소가 오늘 무리하게 무영을 찾은 주요 목적은 바로 이 편지 때문이다.
태자에게 이 편지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편지가 실제로 공개된다면, 중원제의 태자에 대한 증오는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이현도는 조용히 진소를 바라보았고, 그의 눈빛 속에는 극히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이 일은 분명히 어렵습니다.” 그는 말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컵에 놓으며, 그의 깊고 회색 눈동자 속에는 감정이 없었다. “이 일의 어려움은 편지를 훔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는 잠시 멈추고 진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소 씨는 똑똑하신 분이니, 아마 시이랑의 편지를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모를 리가 없겠지요?”
그가 이런 말을 할 때, 그의 긴 검은 눈썹이 올라갔고, 그 표정에는 약간의 장난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도 웃음이 섞여 있었다. “진소 씨가 이렇게 숨어서 얘기하다니, 진정 솔직한 태도가 아니군요. 나의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이 이렇게 상처받다니, 내가 정말 안타깝군요.”
그의 말이 끝나자, 그의 눈속에는 약간의 섭섭함이 비쳤다. 그의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진소를 멀리 바라보았다. 마치 진소가 그에게 수백 년의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소는 그의 눈빛을 간단히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은 이런 작은 일에 신경 쓰시는 건가요?” 그녀는 매우 차분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뛰어난 외모와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계시며, 대당의 권력 예언을 받으셨으니, 대당의 권력자와 연결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높은 신분과 지위를 가진 분이 도움을 주신다고 하셨을 때, 모든 일이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로는 좋은 말을 하시면서도, 실제로 일을 요청할 때는 온갖 핑계를 대며 거절하시는군요. 혹시 저를 놀리려는 건가요?”
이현도의 회색 눈동자 속에서 다시 한 번 파문이 일었다.
“진소 씨가 이렇게 말하니, 나의 마음은 참으로 불편하군요.” 그는 말했다. 그의 깊고 온화한 눈빛 속에는 가장 부드러운 봄바람이 녹아 있었고, 가냘픈 음률이 봄의 기운으로 바뀌었다. “진소 씨가 나를 시험하고, 나는 솔직히 답해 드렸는데도 불만이신가요?”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세상의 모든 추위와 눈보라를 녹일 듯했다.
—끝—
**제292장 진아소**
이현도의 말을 들은 진소의 눈은 미소를 띄우며 반달처럼 휘었다.
그녀는 확실히 시험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현도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이현도가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것 같았고, 심지어 태자 측의 작은 관리인 리수당의 존재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랐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녀가 그에게 건넨 그 한 마디가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현님이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진소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현님께서 만약 당신의 비장의 카드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제게는 없는 것 같으신가요?”
이현도는 그녀의 말에 놀라지 않았고, 그의 얼굴에 웃음은 여전히 지어져 있었다.
사실, 진소의 오늘 행동을 알게 된 이후로 그는 그녀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가 언급한 대당의 예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진짜와 가짜가 엇갈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실제로는 믿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소를 더욱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진소의 오늘 행동과 그녀가 제시한 요구를 조합해 보면, 그녀가 계획하고 있는 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비장의 카드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실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좋습니다.” 이현도는 말하며 다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 차가운 음색으로 말했다. “내가 약속한 대로, 편지를 훔치는 일은 내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느새 그는 ‘여섯째 양녀’ 대신 ‘아소’라 부르기 시작했다. 진소는 이를 듣고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으며, 그가 어떻게 그녀의 이름을 알았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이현도의 능력에 대한 높은 평가를 이미 내면에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는 이를 아직 인식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정말입니까?” 이현도의 말을 들은 진소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놀라운 기색은 없지만, 그녀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현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마치 봄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앞에 옮겨놓은 듯했다. “나는 이전에 말했듯이, 당신을 돕는 것이 나 자신을 돕는 것입니다. 내가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아소님이 원하는 것을 다 드리겠습니다. 절대 숨기는 것 없이 다 주겠습니다.”
진소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 이현도는 정말로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만약 그의 능력이 진정하다면, 그는 시연에게서 조롱을 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의 능력을 발휘하여 시연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현님.” 진소는 속으로 불만을 가지면서도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도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이현도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창가의 버드나무 가지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부드럽고 진지했다. “리수당의 신분이 좀 특별하므로, 이 일은 확실히 완수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만약 일이 잘 되지 않는다면 아소님이 저를 탓하실까요?”
그는 리수당의 이름을 언급하며 자신도 상황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진소는 그의 태도에 약간 실망했다.
그의 목숨을 구할 사람인데, 이렇게 인색하게 대한다면, 그는 그녀가 제시한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제안한 일도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서 자신을 구해주겠다는 것은 너무한 일이다.
진소는 그를 쏘아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현님은 신비롭고 뛰어난 능력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벽을 엿보고, 비밀 경로에 침입하며, 도둑질을 하시는 것이라면, 그러한 능력으로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 일에 손대지 않으셨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와 차가운 눈빛, 그리고 그녀의 말과 함께 올려진 섬세한 손가락이 부드럽고 향기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사람의 심장에 스며들었다.
이현도는 그녀를 보며 잠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눈앞의 진소가 마치 만개한 꽃처럼 보였다.
잠시 후, 그는 그 짧은 혼란에서 깨어나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말에 따르면, 대진국의 여성들은 모두 이렇게 변화무쌍하여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인가요?”
진소는 그를 흘긋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그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순간, 그녀의 표정은 엄격하고 불가침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현도의 회색 눈빛에서 미소가 떠올랐다.
“좋습니다. 당신의 말을 들으니, 내가 다시 한 번 실수한 것 같습니다.” 그는 진지하게 진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의 부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 이 일을 해내겠습니다.”
그가 능력이 있다면, 편지를 훔치는 것은 물론, 리수당을 처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진소는 그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말이 되는 것 같았다.
그가 능력이 있다면, 이 일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라면, 그 도움을 받을 때는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도움을 공짜로 받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그녀는 그를 다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진소는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한 가지 번거로운 일, 한 가지 어려운 일이 모두 해결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 괴상한 일입니다. 그 괴상한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이현도의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되찾게 했다.
진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확실히 정리한 후, 이현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 역시 사람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현도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검은 옷에 떨어진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변하게 한 것처럼 보였다.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그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진소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처럼 보였다.
진소는 그를 흘긋 보았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돕기로 한 이후로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예전의 무미건조한 눈빛이 사라지고, 이제는 생동감 있는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이현도가 갑자기 찡그린 얼굴을 하며,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진가에는 한 사람만 파견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끝—
**제293장 자미의 몰락**
진소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현도를 응시했다.
이현도는 살짝 머리를 숙이고, 단목 책상에 고요히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 고요한 표정은 마치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이전에는 진소님이 다루려는 인물이 리수당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리수당까지 다루려 한다면, 양종신 역시 간단한 인물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몇 명 더 파견하여 양종신이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나 진소님의 집안에서 그를 사주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겠습니다.”
이런 태도는 꽤나 정직해 보였고, 진소가 서상엽을 만난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척했던 것도 의외로 점잖은 태도였다.
진소는 망설임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현도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진소님, 계속해서 그 괴상한 일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진소는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 괴상한 일은 꽤나 복잡합니다. 현재로서는 제가 아무런 실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현님께서 인력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전혀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진소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하겠습니다.” 이현도는 눈빛에 약간의 흥미를 담고 말했다.
진소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제가 한 사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고령이고, 그는 검객입니다. 그의 모습은 곧 그림을 그려서 이현님께 보여드리겠습니다. 문제는 그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현님이 그를 찾을 수 있다면, 그를 저에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현도는 관심이 더해진 눈빛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 사람을 찾는 일인가요?”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진소님께서 나에게 세 가지 일을 부탁하시는데, 살인, 도난, 그리고 이번에는 사람 찾기군요. 진소님이 생각하는 일이 정말로 간단하지 않군요.”
진소는 웃으며 차를 내려놓고, 다소 나른하게 의자에 기댔다. “일이 간단하면, 내가 뭔가를 부수러 가지는 않았겠죠.”
이현도의 눈에서 다시 미소가 번졌다. “‘부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네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아마 린구의 설씨도 모르고, 동령 선생의 큰 제자가 진소님이라는 것을 잘 모르겠네요.”
이현도의 말은 부드럽게 들렸지만, 말 속에는 놀라운 정보가 담겨 있었다.
진소는 그의 능력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별로 놀라지도 않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각자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행동할 뿐입니다. 스승님이 여러 차례 설가를 도와주셨으니, 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말을 하면서 진소는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과나무 계곡에서 시연을 도와 고령이라는 사람을 동쪽으로 유인했던 일을 기억하며, 갑자기 생각이 났다. 진소는 몸을 바로잡고, 진지하게 이현도에게 말했다. “이현님이 말씀하신 덕분에 하나 떠오른 게 있습니다. 고령의 뒤에 설가의 사람들이 붙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수색할 때 조심해 주세요. 설가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안 됩니다.”
이현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알겠습니다”라고만 말했다. 그 외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진소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에 종이와 먹이 준비되어 있었으므로, 일어나서 이현도에게 “펜과 먹이를 빌려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이현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어 “어떻게든 사용하시오”라고 했다.
진소는 서서 종이를 펼치고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령의 초상화를 그린 뒤, 먹이 마르기 전에 설명을 덧붙였다. “이 고령의 키는 약 7척 5인치이며, 검술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검의 손잡이에 금박이 붙어 있었고, 말할 때는 약간 강남 사투리를 씁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덧붙였다. “만약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현님은 시연들을 조사하여 고령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이현도는 다시금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가며 말을 마쳤다. 그는 진소의 그림을 살펴본 후, 조용히 일어나 진소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며 고개를 숙였다.
진소의 코끝에는 어느새 달빛 아래 소나무 바늘의 향기가 감돌았다. 그 상쾌한 냄새와 이현도의 따뜻한 숨결이 어우러져 주변의 공기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진소는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미세한 서운함이 스쳤다.
이 세상에서 이현도와 함께 서서 그의 배경이 되기를 기꺼이 하는 사람은 어리석거나 눈이 먼 사람들일 것이다.
진소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이현도는 그녀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한 듯, 그림을 살펴보며 눈빛에 다시금 흥미가 번졌다. “진소님이 그린 그림은 정말…” 그는 한숨을 내쉬며 그림을 받아 양쪽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진소는 “그림이 그럴 듯하다면 좋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사람을 찾으면, 틀림없이 맞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그림 실력은 은당의 엄격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그림이 그리 뛰어나진 않지만, 정확성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있었다.
이현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림을 몇 겹으로 접어 소매에 넣었다.
진소는 세 가지 중요한 일이 해결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가볍지 않았다.
현재의 그녀는 마치 도박꾼처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었고, 이현도는 그 도박에서 자신이 배팅한 상대였다. 그녀는 상대방이 어떤 패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억누르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단지 상반된 감정이 가슴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진소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이현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속에는 현재 적당한 정도의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이현님께서 저를 도와주셨으니, 저는 보답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의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진소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현도는 아무 말 없이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며 진소를 바라보았다.
진소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 마디씩 천천히 말했다. “자미성과 파군성이 함께 자녀궁에 들어가고, 사살, 형, 기제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기夹印格’의 형국이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올해 말, 귀국의 제성…에 몰락의 징후가 보입니다.”
자미성은 제성을 의미하며, 자미성의 변동은 일반적으로 황제에게 영향을 미친다.
방 안은 갑자기 정적이 감돌았다.
이현도의 분위기는 그 순간 극도로 차가워졌다.
진소는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 세월 중원 13년 말, 당나라에서는 대변혁이 일어난 바 있다. 이는 전 세계가 알고 있는 사건이었고, 그녀가 은당에 들어간 후, 이 사건의 음모와 주역에 대한 세부 사항을 알게 되었다.
당나라에 침투할 수는 없었지만, 이 사건은 대규모로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은당의 능력으로 이러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현재 진소는 이 변동의 절반만을 말했다.
이것이 선금이었고, 다음은 그녀가 제시할 카드였다.
진
소는 마음속으로 세심하게 계산한 후, 창가로 걸어가서 창살을 붙잡고 밖을 바라보며, 햇살 가득한 거리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이현님이 당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이현님의 별자리를 설정했습니다. 이현님의 생년월일을 몰라서, 우리가 처음 만났던 오후를 기준으로 별자리를 설정했더니… 귀국의 황제의 별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당나라 황제의 생년월일로 별자리를 다시 설정했더니, ‘형기夹印’의 형국이 나왔습니다.”
—끝—
**제294장 얇은 버드나무**
말을 하던 중, 진소는 갑자기 이현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은 창밖의 강렬한 햇살에 반사되어 더욱 밝게 빛났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약간 오래되었고, 제가 준비한 것도 급히 짜낸 것이니, 이 계산은 여전히 미흡합니다. 이현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는 대략적인 방향만을 제시하는 것이고, 정밀한 시각, 인물, 사건에 대한 확증은 한 달 후에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이현님이 제게 맡긴 일에도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녀의 태도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느낌을 주었고, 그 음성은 따뜻한 바람과 햇살 속에서 어우러져 무형의 공간에 스며드는 듯했다.
이현도는 진소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녀는 역광 속에서 서 있었기에 얼굴의 표정을 명확히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시선은 그녀의 청명한 눈동자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시선은 슬픔도 기쁨도 없었고,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 시선은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마치 그녀의 몸을 넘어 어떤 알 수 없는 곳을 응시하는 듯했다.
진소의 마음속은 확실히 평온했다. 입으로 약속을 한 후에는 결국 결과를 봐야 하며, 그 외의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이서당의 손에 있는 편지 하나는 한 달 후에 분명히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그녀와 이현도가 서로의 약속을 이행하며, 누가 누구에게 어떤 것도 부족함 없이 교환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현도는 진소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며 조용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의 말은 무표정하며, 그의 차가운 기운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였다. 진소는 그에게 한 번 바라보았지만, 특별히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진소는 약간 놀랐다. 이현도의 반응은 그녀의 말에 의해 동요된 것 같았지만, 현재 그는 매우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를 조금 바라본 후, 진소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바람을 타고 오는 미세하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현님은 화가 나지 않으신가요?”
“화가 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현도는 반문하며, 그의 목소리는 더욱 차갑지만 여전히 담담하게 들렸다. “이건 정말 간단한 일입니다. 제가 당신을 도운 것은 제 자신을 위해서이고, 당신이 저에게 준 조언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마음의 안심’일 뿐입니다.”
그의 말은 차분하면서도 진지함을 띠었다. 이현도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미소는 마치 맑은 음률처럼 감미로웠다. “당신이 제게 조언을 주지 않았어도, 저는 여전히 당신을 도왔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약속한 일이 끝나지 않았을 때, 당신이 조언을 주셨습니다. 비록 그것이 짧은 말이었지만,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진소와 함께 창 밖의 한 줄기 버드나무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온화하게, 마치 따스한 바람이 감돌 듯 했다. “진소님, 당신은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하신 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 건가요?”
진소는 자신이 한층 더 부끄럽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조언을 했던 이유가 단순히 마음의 안정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이현도의 진짜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를 스스로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현도의 말은 진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그녀는 자책의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혼란스럽게 생각한 이유가 타인의 선의를 오해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지 않던 방식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인지 불확실했다.
그녀는 자리에 서서 한쪽 발을 들고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며, 손을 길게 뻗어 버드나무 가지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가지는 그녀의 손끝에서 살짝 스쳐 지나갔고, 그녀는 가지를 잡으려는 시도가 계속 실패했다.
이때, 그녀의 뒤에서 낮고 부드러운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맑고 청아하게,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솔잎처럼 들렸다.
곧, 검은색의 넓은 소매와 길고 섬세한 손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손은 마치 섬세한 조각처럼 부드럽고, 가지를 쉽게 잡아 그녀의 손가락에 감아 주었다.
“여기, 잡으세요.” 이현도는 손가락 끝이 진소의 손끝에 살짝 닿자, 손을 살짝 빼면서 그 기운도 함께 사라졌다.
진소는 손에 감긴 버드나무를 보며, 그가 아직도 웃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녀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휩싸여, 손에 감긴 버드나무를 더 감고, 다른 손으로 나뭇잎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지는 비어있는 나무 조각으로 변해버렸다.
진소는 뒤를 돌아보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고, 손에서 나무 조각을 놓아주었다. 나무 조각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며, 예전의 부드러운 모습을 잃었다.
“진소님은 누구에게 화가 나신 건가요?” 이현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투에는 웃음이 담겨 있었다. “방금 전에 내가 화가 나냐고 물어보셨는데, 사실 화가 나신 분은 진소님이셨군요.”
이현도는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지만, 그 웃음은 크지 않고, 낮은 음성으로 이어졌다. 진소에게는 그것이 더욱 견디기 힘든 소리로 들렸다.
—끝—
**제295장 비단 주머니를 전하다 (유중엄과 허시벽 추가)**
진소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눈을 감았다. 방금 전의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고자 하는 듯했다. 다시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며, 목소리는 갑자기 달콤하고 부드럽게 변했다. 그녀의 눈에는 약간의 부드러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오늘 이현님께서 웃음을 주셨으니, 또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이현님께서 거절하실 리는 없겠지요?”
“좋습니다.” 이현도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의 깊은 눈빛이 그녀의 눈속에서 그의 모습이 비치길 기다리는 듯했다.
진소는 그를 바라보며, 소매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그의 앞에서 흔들었다. “이 주머니를 아귀라는 소년에게 전달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방금 드린 물건을 이 주머니 안에 넣어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조용히 덧붙였다. “이현님께서 아귀를 모른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오늘 제가 한 모든 행동이 이현님의 눈에 있었을 테니, 이 일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가 한 모든 행동이 거의 이현도의 눈 아래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진소는 그가 모를 리 없다고 확신했다.
“확실히 어렵지 않습니다.” 이현도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긴 팔을 펴서 비단 주머니를 받아 들고, 상하로 살펴보고 두어 번 들어 보았다. 주머니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진소를 바라보며 미소를 띠었다. “진소, 이 비단 주머니는… 제가 본 적이 있나요?”
진소는 즉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현님이 잘못 기억하신 것 같습니다.”
이현도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세한 빛이 그의 눈속에 반짝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잘못 기억했군요. 이 비단 주머니는 지진이 있었던 밤에 진소님이 사탕을 주셨던 주머니와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진소는 엄숙하게 말하며, 한 손으로 소매를 털어내며 창가에서 물러나 앉았다.
그녀가 한 말에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사실 이 비단 주머니는 그녀가 아곡에게서 찾아낸 것이 맞지만, 안에는 약이 섞인 사탕이 들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자체로는 전혀 다른 두 가지였다.
진소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되새기고 있었다.
이 비단 주머니를 아귀에게 주는 것도 그녀가 생각해 낸 즉흥적인 아이디어였다.
방금 전 고령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그녀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아탁이 직접 바느질한 그 천 주머니.
방금 전에 그녀는 아귀에게 약을 전달할 때 아탁이 준 천 주머니를 사용했으나, 이제 생각해보니 아탁의 바느질 솜씨는 린이랑의 주변에 있어서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진소는 아곡이 남기고 간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그녀는 어렴풋이 기대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기를 바랐다.
원래 아곡이 지니고 있었고, “은면녀”가 준 것이라고 알려진 이 향낭이 린이랑의 손에 전해지게 되면, “그 사람”이 분명 의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행동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소는 비밀을 추적할 기회를 갖기 위해, 이현도라는 강력한 지원이 있기에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예전의 진소는 그저 남들 뒤에서 조용히 난관을 해결해왔지만, 이제는 강력한 지원군이 있었다. 이현도의 지원 덕분에 그녀는 최대한의 안전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사람”이 드러나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진정한 출처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이 진행됨에 따라 진소의 기운은 차갑게 식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매우 차분했다.
이현도는 그녀를 바라보며 점점 미소를 짓기 시작했고, 미세하게 고개를 흔들며 “사람을 부르라”고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리고, 아무우라는 아름다운 시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몸을 낮추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주공님께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이현도는 비단 주머니를 탁자 위에 놓고, 진소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진소는 옆에서 덧붙였다. “‘오륙’이라고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는 제가 보낸 물건임을 알 것입니다.”
이것은 그녀와 아귀가 미리 정해놓은 암호로, 이 두 글자를 들으면 아귀는 이 물건이 진소에게서 온 것임을 인식하고 지시대로 행동할 것이다.
아무우는 조용히 몸을 낮추어 인사한 후, 비단 주머니를 받아 나갔다.
진소의 표정은 이제 매우 평온해졌다.
이제 이현도에게 맡긴 세 가지 일은 그녀가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호관요에 대한 조심이 필요했다.
그녀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고, 탁자 위에 있는 청차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호관 성의 밤 장면이 떠오르며, 남자와 여자의 대화가 회상되어 점점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진소는 차를 들고 손에 쥐었다.
컵 속의 차는 이미 식어 있었고, 손가락을 타고 퍼지는 미세한 차가운 기운이 외부의 여름 더위에 의해 사라져갔다.
“시간이 늦었네요. 제가 돌아다니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이현도의 목소리가 악기처럼 부드럽게 들리며, 진소의 생각을 현재로 돌려놓았다.
그녀는 위를 올려다보며 탁자 위에 놓인 시계를 확인하고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이현님께서는 어떻게 저를 모셔가실 건가요?”
현재 이현도는 아마 그녀를 찾고 있을 것이다. 피향 찻집을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 거리를 벗어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설수의 시위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이현도는 서두르지 않고, 먼저 방의 문을 열어 내려갔다.
진소는 그를 따라 후원으로 가서, 후원의 문이 열려 있음을 보고, 보통의 마차가 문 앞에 멈춰서 문을 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차를 타세요.” 이현도는 몸을 살짝 비켜주며 말했다.
진소는 추가적인 말을 하지 않고, 차에 올라 앉았다. 그가 차 바깥에 서서 조용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사람을 보내서 그들을 돌리겠습니다. 그러니 이 차를 타고 도시를 나가세요.”
진소는 그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사람이 자신을 따라가며 비밀 통로의 출구를 찾으려고 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이현도는 눈을 살짝 움직이며, 갑자기 길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쳤다. 눈에는 미세한 웃음이 담겨 있었다. “너무 나이가 어리다고 너무 성숙하게 행동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차는 큰 도로 근처에 주차될 것이니 진소님에게 문제를 일으킬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진소는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만졌다.
그 순간, 차 문이 닫혔고, 그녀는 마부의 모습도 제대로 볼 새 없이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진소는 가슴속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다 무슨 이상한 버릇들인지, 하나같이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진언백이 여동생들의 머리를 자주 두드리는 것만 해도 그랬지만, 이렇게 무표정한 이현도도 같은 습관을 가진 것
에는 놀랐다.
그녀는 이마를 힘껏 문지르다가 손을 내리고, 차 밖의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도시 소음이 점점 더 커지고, 가끔씩 바람이 차창을 통해 들어와 뜨거운 여름의 공기를 실어왔다. 마차는 약간 기울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를 잡았다.
진소는 차가 좁은 골목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차벽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끝—
**제296장 나는 그녀를 믿는다**
이현도는 문가에 서서 마차가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 다음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갑자기 평범한 중년 남자가 나타나, 검은색 비단 모자를 조용히 건네주었다. 그는 보통의 서민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얼굴은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이현도는 모자를 받아서 쓰고는 문을 다시 닫으며, 앞에 있는 정원의 반벽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준비는 다 되었나?”
“네, 주공님. 서역의 호위병 일곱 명을 모두 다른 곳으로 유인했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대답했다.
이현도는 두 손을 모은 채 문가에 서서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여름 바람이 정원을 스치며, 담 위의 초록이 흔들리면서 빛이 바닥에 가늘게 쪼갰다.
“여름이 거의 끝나가네요.” 이현도가 살짝 탄식하며 말했다. 시간의 흐름을 아쉬워하는 듯한 말투였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한 달 후에 출발합시다.”
“네, 주공님.”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잠시 걱정의 표정이 스쳤다.
“괜찮습니다.” 이현도가 그의 걱정을 감지한 듯, 차가운 목소리로 감정을 담지 않고 말했다. “무당보다 그녀를 더 믿습니다.”
“그녀”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회색 옷을 입은 남자도 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네”라고 대답한 후,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운관에는 남겨둔 인원이 있습니다.”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현도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동쪽의 별채를 향해 걸어가면서, 목소리를 낮춰 덧붙였다. “거기에서는 이상한 일이 자주 발생하니,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움직이지 마세요.”
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주공님, 걱정 마십시오.”
이현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은 별채 앞에 도착했다. 갑자기 이현도가 발걸음을 멈추고 회색 옷을 입은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당의 신탁 중 두 번째 꿈은 올해일 가능성이 있습니까?”
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주공님께서 동릉 선생님의 제자에게서 받은 조언에 따르면, 올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현도는 “흠” 하고 생각에 잠긴 듯 했으나,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문을 열어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 조용한 정원은 다시 고요해졌다. 담 위의 초록이 바람에 흔들리며, 사람들 모르는 사이에 다가올 풍파와 비를 맞고 있었다. 여전히 금빛 햇살 속에서 편안히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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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성의 여름, 푸른 나무가 흔들리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으며, 마치 강남의 섬세한 풍속을 담은 듯했다. 바람조차 물안개와 같은 느낌을 담아내며, 푸른 물결과 향기가 어우러져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주모는 처마 밑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얼굴에 우울한 기색을 보였다.
청주 성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다행히 아침저녁의 안개가 적당히 습기를 공급해 주어, 그렇게 건조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소가 한 말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로 “내년 2월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예언이 정말로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주모는 참을 수 없이 두어 걸음 앞으로 나가, 기둥을 붙잡고 흐릿하게 색이 바랜 하늘을 응시했다.
“어르신,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더위 때문에 불편하신가요?” 곁에서 아푸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으며, 부드러운 손이 어르신의 팔에 닿았다.
주모는 생각에 잠겨 있던 중 깨어나, 아푸를 바라보며 웃었다. “괜찮아. 단지 날씨가 너무 비가 안 오고 있어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아푸는 웃으며,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비가 오지 않는 게 더 좋지 않나요? 비가 오면 길이 좋지 않잖아요.” 아푸는 말하며 주모를 안내해 주며, 조용히 말했다. “대부인께서 어르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르신, 저를 따라오세요.”
주모는 그녀의 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걸어가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 혼자 가면 돼. 너는 네 일이나 해.”
아푸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는 먼저 가겠습니다. 어르신 천천히 가세요.” 말이 끝나자, 아푸는 몸을 살짝 굽혀 인사하고, 흰 돌길을 따라 대문 쪽으로 향했다.
주모는 아푸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본 후, 천천히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얼음통이 없었고, 대신 작은 물항아리 하나가 구석에 놓여 있었다. 항아리 속에는 방금 퍼낸 샘물이 담겨 있었고, 그 안에서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주모는 정방을 지나 서쪽 방으로 들어가, 대부인이 대나무 베개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옆에는 청초한 소녀가 무릎을 꿇고 부채로 서서히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주모가 들어오자, 그 소녀는 부채를 멈추고 대부인의 귀에 무언가를 조용히 속삭였다.
대부인은 천천히 눈을 뜨고 주모를 향해 손짓했다. “왔구나, 앉아라. 쉬고 나서 얘기하자.” 대부인은 소녀에게 손을 흔들어 나가라고 했다.
그 소녀는 즉시 일어나 몇 걸음 물러서서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자, 대부인은 주모를 바라보며 옆에 있는 작은 의자를 가리켰다. “여기 앉아라, 이야기하자.”
주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앉아, 고개를 살짝 숙이고 대부인이 말을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조금 후, 대부인의 목소리가 느릿느릿하게 울려 퍼졌다. “도예 선생님의 거처는 잘 준비되었나?”
“대부인 말씀에 따라,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채색이 마르면 바로 입주할 수 있습니다.” 주모는 예의 바르게 대답하며 의자에 앉았다. “방금 확인해 보니, 모든 가구는 새로 제작된 것이며, 동쪽으로 향하는 중정이 준비되었습니다. 비록 넓지는 않지만, 도예 선생님과 그의 딸이 두 사람만 살기에 충분합니다. 정방은 넓고 밝아, 서재로 사용하기에 적합합니다. 서재에는 큰 책장이 제작 중입니다. 철저히 잘 만들어질 것입니다.”
대부인은 듣던 중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모가 서재를 이야기하자, 대부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물었다. “도예 선생님의 집은 이미 준비되었는데, 종족 학교의 서재와 객실은 제대로 수리되었는가? 최근에 들은 말에 따르면, 서재의 지붕이 누수되었고, 객실의 담장이 2월에 습기에 젖어 곰팡이가 생겼다고 들었다.”
주모는 즉시 대답했다. “서재는 이미 수리되었습니다. 몇 장의 기와를 추가한 작업은 며칠 전에 끝났습니다. 객
실 문제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곧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대부인은 매우 기뻐하며 손목을 스쳐 정리한 후, 다시 웃으며 말했다. “요즘 기억력이 많이 떨어져서 많은 것을 잊어버렸네. 그래도 네가 기억해 주니 다행이다.”
—끝—
**제297장 더위 속의 대화**
태부인이 기분이 좋은 듯 보이자, 주모는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태부인께서도 제 나이와 큰 차이 없으시니, 기억력도 뛰어나신데요. 태부인께서는 중요한 일들만 기억하시고, 이런 작은 일들은 제게 맡기시죠.”
태부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농담을 하시네요. 최근에 날이 좋아서 큰 일이 없었으니, 오히려 큰 일을 기억하고 싶어지네요.” 그러면서 손을 뻗어 옆에 있는 부채를 가져왔다.
주모는 즉시 다가가서 부채를 들고 태부인의 옆에서 서서히 부채질을 하며 웃었다. “진짜 그렇네요. 청주에 돌아온 후, 이렇게 학문이 깊은 도예 선생님이 저희 집에 오시고, 서재도 다시 수리되어서 반달 후면 완성될 것이라니, 참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네요.”
태부인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죠. 당신이 있어 다행이에요. 도예 선생님을 우리 집으로 모시게 된 것도 당신 덕분이에요. 그 선생님이 돌아오셨을 때, 우리 둘째 아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죠. 그가 우리 집에 와서 도예 선생님이 얼마나 학문과 품성이 뛰어난 분인지 매일같이 말했어요. 요즘은 매일매일 저를 찾아와서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하죠.” 태부인은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주모는 웃으며 대답했다. “태부인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단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결국, 도예 선생님을 우리 집으로 모신 것은 태부인 덕분이죠. 게다가 둘째 아들이 학문을 사랑하고 성실히 공부하는 걸 보면,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입니다. 태부인께서는 정말 복이 많으세요.”
칭찬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 태부인도 기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잠시 후, 태부인은 무엇인가를 떠올린 듯 얼굴의 웃음을 살짝 거두며 주모에게 물었다. “맞다, 서울로 보낸 사신은 언제 떠났는지?”
“삼일 전에 떠났습니다.” 주모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태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우리 집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중요한 일을 처리할 만한 남자는 부족해서 큰일이 생길 때마다 늘 부족해 보였죠. 왼쪽 중위가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 같아요. 다행히 두 집안과 좋은 인연이 있어, 종가 주인이 돌아오면, 서재와 집도 잘 정리될 것이니, 그때 제대로 준비해서 개학식을 하고 선생님을 모셔야겠어요. 우리 집의 문화를 잘 이어가야죠.”
秦家가 서재를 개설하려면 남자가 나서야 하는데, 왼쪽 중위의 도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부인은 종가 주인을 서울에서 초청하기 위해 사신을 보낸 것이었다.
주모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말 그렇게 되면 예절이 완벽하게 맞춰질 것입니다. 도예 선생님께서도 우리 가문을 높이 평가하실 것입니다.”
태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동릉 선생님의 조언이 맞았네요. 6째 딸이 백운관에 간 이후로 집안에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네요. 정말 대단한 사람의 예언이었어요.”
태부인의 말에 주모는 대답하지 않고 웃으며 태부인을 위해 부채질을 계속했다.
태부인은 주모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살며시 눈을 감고 명상하는 듯했다.
방 안은 조용하고 시원했으며, 향로에서 연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복도에서 작은 하인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푸가 나타나 조용히 보고했다. “태부인, 도예 대처님이 오셨습니다.”
태부인은 즉시 눈을 뜨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어서 오게 하세요.”
아푸는 대답하고 물러났고, 주모는 일어나 서쪽 방의 문을 열었다. 잠시 후, 아푸가 간소한 옷차림의 도예 문연을 데리고 들어왔다.
“도예 대처님, 안녕하세요. 빨리 들어오세요. 태부인께서 안에 계십니다.” 주모는 웃으며 인사했다.
도예 문연은 그녀가秦府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주모인 줄 알고, 예의를 갖추어 반응했다. 가볍게 몸을 비켜서며 인사하고는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주모님, 예를 차리셨네요.”
주모는 옆으로 비켜주었고, 도예 문연은 우아하게 방으로 들어왔다. 옷은 간소했지만, 품위 있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태부인은 이미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도예 문연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여기로 오세요. 창문이 반쯤 열려 있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요.” 그리고는 하인을 향해 지시했다. “그 옆에 있는 포도 한 접시 가져오세요.” 그리고는 도예 문연을 향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알아요, 젊은 사람들은 더위를 싫어하니까, 시원한 걸 좋아할 테니, 이 포도는 깊은 우물 물에 담가서 시원하게 했어요. 좋아하실 거예요.”
도예 문연은 태부인에게 인사한 후,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저는 태부인께 경서를 전하러 왔을 뿐, 이 과일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에요. 태부인께서 이렇게 신경 쓰시니 오히려 제가 죄송할 따름이에요.”
일주일간의 친분이 있었지만, 도예 문연은 여전히 예의를 지키며 말하고 행동했다. 태부인은 그런 도예 문연의 태도를 보고 더욱 만족하며 손을 잡고 앉게 했다. 주모는 직접 청자 연잎 모양의 접시에 담긴 포도를 가져다 주었다. 포도는 자주색으로 물기가 맺혀 있어 보기에도 좋았다.
포도를 옆의 상에 놓은 후, 주모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태부인을 위해 부채질을 계속했다.
도예 문연은 소매에서 얇은 경전 하나를 꺼내 양손으로 전달하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 “방금 막 필사한 경전입니다. 오늘 전달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늦지 않게 전달하게 되어 다행입니다.”
태부인은 기쁘게 경전을 받고 펼쳐 보았다. 그 위에는 아름다운 소선체로 글자가 쓰여 있었고, 글자 하나하나가 정교하고 바르게 쓴 모습이었다. 도예 문연의 정성과 품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태부인은 매우 기뻐하며 주모에게 경전을 받도록 지시한 후, 도예 문연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예 문연은 최선을 다해 태부인과 대화하며 예의와 태도를 갖추어 대했다. 태부인과의 대화는 매우 즐거웠다.
한 시간 정도 담소를 나눈 후, 도예 문연은 포도를 몇 알 먹고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다.
태부인은 기분이 좋았고, 매우 정교한 작은 대나무 바구니를 꺼내 몇 개의 큰 복숭아와 몇 송이의 큰 포도를 담아 웃으며 말했다. “경전을 필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이 과일을 가져가세요. 포도는 조금 신맛이 있을 수도 있지만, 복숭아는 달고 부드럽습니다. 드셔 보세요. 이 과일은 모두 농장에서 보내온 것이니, 마음에 드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저희 집에는 이런 과일이 많답니다.”
(본 장 끝)
**제298장 청흉무**
태부인이 재치 있는 말을 하자, 도예 문연은 웃으며 큰 바구니를 받아들였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태부인, 감사합니다. 이 과일들은 정말 좋습니다. 집사람에게도 고맙다고 전하겠습니다.”
태부인은 웃으며 손을 내저으며, 갑자기 기억난 듯 부채로 손바닥을 가볍게 쳤다. “내가 기억력이 참 없구나. 약도 아직 드리지 않았네. 저기, 안방의 장에 있는 연꽃 문양의 작은 상자를 가져와 주렴.”
주모는 응답하고는 곧 돌아와 작은 나무 상자를 들고 있었다. 상자는 손바닥만 한 크기로, 평범한 자작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좋은 녹색의 칠이 되어 있어 매우 정교해 보였다.
태부인은 상자를 받아 도예 문연에게 직접 건넸다. “이것은 비파환이야. 예전에는 내가 기침을 할 때 자주 먹었지. 들으니 집사람이 기침이 있다고 하더군. 기침할 때 이걸 먹으면 좀 나을 거야. 가져가렴.”
이 선물과 약은 비싼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마음을 담은 것이었으며, 도예 가문의 형편을 고려한 배려가 엿보였다. 태부인의 태도는 군자다운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도예 문연은 이 모습에 진심으로 감동하여, 여러 차례 감사 인사를 한 후에야 떠날 준비를 했다.
작은 바구니와 상자가 크고 다루기 어려운 탓에, 태부인은 특별히 체격이 큰 하인을 보내 도예 문연의 짐을 대신 들어주게 하고, 미리 소를 끄는 마차도 준비해 주었다. 도예 문연은 하인과 함께 덕휘당을 나서며 정문으로 향했다.
그때는 정오가 되어서, 그때까지 흐릿했던 하늘이 갑자기 맑아졌다. 뜨거운 태양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하늘은 파랗고 눈부셨다. 덕휘당 앞의 넓은 공간은 온통 하얀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늘은 없었다.
하인이 먼저 걸어가고, 도예 문연은 뒤따라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 길은 도예 문연이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른 길이었다. 처음에는 반안원 쪽으로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이쪽 풍경을 보게 되었다. 반안원의 낙엽과 부드러운 경치와는 달리, 이 넓고 텅 빈 정원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고풍스럽고 슬픈 느낌을 주었다. 그 작은 처마와 기와의 윤곽이 그 속의 냉기를 감출 수 없었다.
백 년의 선비 집안이 현재 한 구석에서 서서히 쇠락해 가는 모습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도예 문연은 감회가 깊어지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중, 눈가에 푸른 치마 자락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급히 시선을 돌려 앞을 보았고, 곡각에서 한 젊은 여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청색 의상을 입고, 가늘고 긴 허리를 자랑하며, 그 움직임이 매우 우아하고 매혹적이었다. 그녀의 걸음걸이와 태도는 설명할 수 없는 풍류를 느끼게 했다.
그 여자는 도예 문연과 하인들을 보더니 잠시 멈춰 서서, 다시 길을 떠났다. 도예 문연은 그녀의 걸음걸이가 다소 달라진 듯 보였다. 처음에는 자유롭고 자신감 넘치던 걸음이, 이제는 머리를 숙이고 손을 옆에 늘어뜨려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도예 문연은 그녀의 옷이 동원지의 하인 복장임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도예 문연은 크게 놀랐다.
먼 거리에서 보았을 때는 가문의 여자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매혹적인 여자가 단순한 하인이라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살짝 찡그리며 그 하인의 복장이 약간 과도하다고 느꼈다. 만약 이 하인이 미혼이었다면,秦家의 가풍이 잘 드러나는 셈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녀가 기혼이라면 그 매혹적인 몸매도 지나치지 않다고 여겨졌다.
도예 문연이 생각에 잠길 때, 두 사람은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하인을 지나치는 순간, 도예 문연은 미세한 향기가 코끝에 스쳤다. 그것은 난초와 같은 은은한 향기로, 고급스러운 향료였음을 알 수 있었다.
도예 문연의 얼굴에 미세한 놀라움이 스쳤다. 이 향기는 분명히 값비싼 것이었으며, 심지어 그들의 가문이 좋았던 시절에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백 년의 선비 가문이자 부유한 가문이라면, 하인조차 이런 향료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이었다.
도예 문연은 자신이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하인을 만났을 뿐인데,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던 자신이 우스웠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쉬며,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후에는 특별한 일 없이 정문에 도착했고,秦府의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예 문연은 하인에게 돈을 두 푼 주고 배웅한 뒤, 마차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도예 문연이 임대해 놓은 집은 연꽃이 가득한 동네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고,秦府와는 그리 멀지 않아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도예 문연은 정원에서 푸른 가지가 가득한 장미꽃 덮개를 보고 맞이했다. 장미꽃 덮개는 푸른 잎이 무성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며, 바람에 의해 잎 그림자가 살랑거렸다. 장미꽃은 몇 송이의 연한 분홍과 붉은 색이 어우러져 있었고,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집은 수도보다 훨씬 넓어, 하나의 집 안에 앞과 뒤로 나뉘어 있었다. 장미꽃 덮개 뒤에는 내실이 있었고, 세 개의 큰 방과 각각 작은 방이 있었으며, 장미꽃 덮개 앞에는 조금 큰 방이 있어, 현재는 도예 문연의 서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손님이 오면 이 서재에서 대접하곤 했다.
(본 장 끝)
**제299장 손님이 갑자기 찾아오다**
이때 도예 로휘는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딸의 안부를 걱정하며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도예 문연이 두 손 가득한 물건을 들고 들어오자, 그는 급히 방 밖으로 나와 작은 대나무 바구니를 받아들였다.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렸냐? 혹시 진지한 일이 있었나?”
도예 문연은 먼저 손에 든 물건을 도예 로휘의 책상 위에 놓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웃었다. “별일 없어요,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태부인과 잡담을 좀 했을 뿐이에요.”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날씨가 더워서 그녀의 계란형 얼굴이 더 붉어져 보였다. 그녀의 눈빛은 한층 더 빛나고,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나 도예 로휘는 딸의 밝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바구니를 책상 옆으로 옮기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이마에는 걱정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도예 문연은 그의 걱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더 슬프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일부러 모른 척하며, 서재의 책과 문구를 정리했다.
“나는 들었는데,秦家도 방금 상경에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도예 로휘의 목소리가 낮고 우울하게 들렸다. 그는 저조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도예 문연은 조용히 한숨을 쉬며, 손을 멈추고 도예 로휘를 돌아보았다. 도예 로휘의 얼굴에는 깊은 걱정이 가득했다.
도예 문연의 딸이 무뢰한 후천에게 연루된 일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秦家가 상경에서 돌아온 후, 이 사건을 알고 도예 문연을 낮게 평가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생각에 도예 로휘는 마음이 아파왔다.
딸의 명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리 야망이 있어도 독자녀를 가장 소중히 여겼다. 이 일을 떠올리면 후회가 밀려왔다.
그가 상경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아팠다.
이런 생각에 도예 로휘의 마음은 더욱 어두워졌고,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 모든 게 나의 잘못이구나. 내가 이런 아버지로서 무력해서…”
“아버지, 그만 말씀하세요.” 도예 문연이 부드럽게 말을 막았다. 그녀의 얼굴은 빛나는 미소로 가득 차 있었고, 눈은 맑고 투명했다. “아버지 몸이 좋지 않으니, 딸이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 당연하죠. 그리고 아버지는 아직 많은 열정을 가지고 계시니, 저는 젊은 사람이 더 힘내야겠죠.”
도예 문연의 목소리는 마치 산속 시냇물처럼 부드럽게 흐르며, 그녀가 말하는 모든 단어는 힘이 느껴졌다.
도예 로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그 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닦았다.
“내 딸이 이렇게 대단하다니, 아버지는 정말…” 그의 목소리는 떨리며, 그의 흰 머리와 함께 떨렸다. 그는 참으로 늙어 보였다.
아버지가 이렇게 자책하는 모습을 보니, 도예 문연의 마음도 아팠지만, 그녀는 눈물을 참았다. 그녀는 눈 주위가 붉어진 채로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도예 로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아버지, 차 한 잔 드시고,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저는 잘 지내고 있으며, 그런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이젠 제 모습처럼 힘을 내셔야 합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도예 로휘의 마음에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도예 문연은 잠시 후 기쁜 표정으로 바뀌며 말했다. “아버지, 이야기만 하시지 말고, 제가 맛있는 과일을 가져왔어요. 태부인께서 비파환도 주셨답니다. 태부인께서는 정말 자상하십니다.”
그녀는 바구니와 나무 상자를 열어 도예 로휘에게 과일을 보여주며, 어린 딸처럼 기쁘게 보였다.
도예 로휘는 사랑하는 딸의 위로 덕분에 조금씩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도예 문연은 적절한 시기에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서 ‘제약이 없는 자가 자유롭다’고 말씀하셨죠. 이제 아버지께서도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셔야 해요. 아버지, 이제 적합한 종학을 찾았고,秦家의 몇몇 젊은이들도 훌륭합니다. 잘 지도하시면 훌륭한 인재가 될 거예요. 또한, 우리는 또 다른 친척을 찾았으니, 앞으로는 명절에 친척과 교류하며 더 즐거운 일상이 될 거예요. 이런 기쁜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층 편안해질 것입니다.”
그녀의 말은 여름의 따스한 바람처럼 도예 로휘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는 본래 자유롭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었지만, 상경 사건으로 인해 딸에게 영향을 미쳤기에 이런 고민에 빠진 것이었다. 이제 딸의 위로 덕분에 마음을 내려놓고, 표정도 점점 회복되었다.
도예 로휘가 기분이 나아지자 도예 문연도 안심하고, 다시 바쁘게 움직여 과일을 깨끗이 씻고, 두 개의 큰 도자기 그릇에 담아 서재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과일은 밝고 귀여운 모습으로 서재에 자연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과일을 정리한 후, 도예 문연은 나무 상자를 내실의 정방으로 가져가려 하다가, 갑자기 정문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지만, 여기가 도예 집안인가요?”
도예 문연은 눈썹을 찡그렸다. 상경에서의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며, 과거의 불쾌한 상황이 떠올랐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나무 상자를 옆의 선반에 넣은 후, 앞마당으로 나갔고, 서재에서 나오는 도예 로휘와 마주쳤다.
“아버지께서 문을 열어보세요. 저는 잠시 뒤로 물러나 있을게요.” 그녀는 조용히 말하며, 서서히 서쪽 방으로 돌아가 문과 창문을 닫았다.
도예 로휘는 머리의 장식품을 정리하고, 꽃담을 돌아서서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고, 옷은 비단 재질로 되어 있으며, 깨끗한 얼굴과 둥근 눈썹, 친절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 여자는 도예 로휘가 문을 열자, 뒤로 물러서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실례합니다, 선생님. 제가 무례했습니다.” 인사 후 그녀는 다시 도예 로휘를 보고 물었다. “선생님 성함이 도예인가요?”
도예 로휘는 최근에秦府를 자주 방문했기 때문에, 이 여자가 사족의 하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대단히 겸손하게 몸을 비켜주며 대답했다. “저는 도예라는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 장 끝)
**제300장 설-도 회동**
그 여자는 말을 들은 뒤, 즉시 웃음을 지으며 공손히 다시 인사를 했다. 그녀는 몸을 낮추며 말했다. “도 선생님, 제가 예의가 부족했습니다. 저는 집안의 장군님 명을 받고 왔습니다. 도 선생님께서 귀한 따님을 두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군님께서 먼저 인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모로 불편을 드렸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말투는 정갈한 대도官话로, 우아하고 품위가 있었다. 도예 로휘는 이를 보고 마음속으로 살짝 감동했다.
잠시 망설인 후, 도예 로휘는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장군님의 성함을 여쭙고 싶습니다.”
여자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희 장군님의 성은 설이며, 고향은 린추입니다. 현재 가정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그 뒤에는 매우 평범해 보이는 청록색의 작은 마차가 서 있었고, 차마의 문과 차창에는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장은 정오의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도예 로휘는 그것을 흘끗 보고 마음이 미세하게 놀랐다. 하지만 얼굴에는 변화를 보이지 않고, 공손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앞서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그 여자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사라졌고, 고개를 숙여서 계단을 내려갔다.
도예 로휘는 뒤를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아버지는 잠시 다녀올 테니, 아가씨는 문을 잠궈 주세요.”
“네, 아버지.” 도예 문연은 대답하고 잠시 멈춘 뒤, 또 한 번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아버지, 천천히 다녀오세요. 빨리 오시길 바랍니다.”
도예 로휘는 “응” 하고 답하며, 문을 닫고 그 여인의 뒤를 따라 마차 쪽으로 향했다.
마차 안에서 설 윤연은 도예 로휘가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연한 갈색의 눈썹을 움직였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들고 마차 벽을 톡톡 쳤다.
마차 앞의 근엄한 복장의 하인이 그 소리를 듣고, 명령 없이도 두 걸음 앞으로 나가 마차의 장막을 모두 걷어 올리고, 반쯤 열려 있는 마차 문을 열었다.
설 윤연은 우아하게 마차에서 내려 도예 로휘에게 먼저 인사를 하며, 손을 올려 정중하게 인사했다. “도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고 고요했으며, 마치 서쪽 바람이 퍼지는 듯 조용히 들렸다.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말투와 그의 차분한 태도에 감동을 주었다.
도예 로휘는 놀라지 않으려 애쓰며, 태연히 그 인사를 받아들이고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며 말했다. “설 중승님, 반갑습니다.”
린추 설씨의 예의와 교양은 범상치 않았고, 설 윤연의 인사는 도예 로휘를 존경하며, 도예 로휘의 대답은 설 윤연을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인사 후,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의 실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승님께서도 불편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도예 로휘가 인사하며 말했다. 이는 손님을 집 안으로 초대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였다.
설 윤연은 옷자락을 다듬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먼저 무례한 점을 사과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불쾌하지 않으시다면 좋겠습니다.” 그는 차의 방향으로 손을 내밀며, 진지한 눈빛으로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시죠.”라고 말했다.
도예 로휘는 그의 세련된 태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린추 설씨는 현재 가장 명망 있는 가문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고, 지난 해 설 윤형과 우연히 만났을 때, 도예 로휘는 그가 설씨 가문 중 가장 뛰어난 자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설 윤연을 보니, 그의 통찰력과 세련된 태도는 설 윤형의 직설적이고 진솔한 성격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았다.
도예 로휘는 마음속으로 감탄하며 생각했다.
설씨와 같은 명문 가문에는 여러 인재들이 있지만,秦씨의 젊은이들보다는 그들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예 로휘가秦씨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와 같다.
설씨 같은 명문가에서는 많은 명사와 대儒들이 모여 있을 것이고, 도예 로휘처럼 무명의 학자에게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평범한 가문에서 조용히 제자를 가르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인재를 길러내고, 자신의 야망도 이룰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도예 로휘의 마음은 한층 안정되었다.
차 안에 올라탄 뒤, 설 윤연이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도예 로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설 중승님, 무례하게도 집 안에 필요한 물건이 없어, 저희 집에 두었던 물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군요.” 설 윤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투와 태도는 차분하고 감정을 읽기 어려웠다. 그의 존재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동릉 선생의 부탁으로 도예 로휘의 딸에게 편지를 가져오라는 일이 있었기에 그는 방문한 것이지만, 오늘의 상황이 동릉 선생의 부탁과는 다소 다르다는 것을 알고도 놀라지 않았다.
설 윤연은 옷자락을 드러내며 차가운 찻잔에 따뜻한 차를 따르고, 직접 도예 로휘에게 전해주었다. 도예 로휘의 말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도예 로휘는 차를 마시며, 기운이 빠져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훌륭한 후손을 배출한 린추 설씨는 대단하구나. 그런데 내가 길러낼 제자들 중에도 이들보다 뛰어난 인재가 있을지 모르겠다.
설 윤연은 도예 로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도예 로휘는 얼굴이 단정하고, 태도가 올바르며, 눈빛에 깊이가 있었다.
그는 비밀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도예 로휘에 대해 이미 조사한 바가 있었고, 도예 로휘와 설 윤형의 만남도 알고 있었다. 그는 설 윤형의 태도를 알았기에, 도예 로휘의 집 상황을 고려해 미리 하인으로 인사를 보낸 것이다. 이는 외부 남자가 도예 집안의 여인과 만나는 것을 피하려는 배려였다.
사실 그는 결혼의 의도가 있었고, 결혼 후 집으로 초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재 도예 로휘의 담담한 태도와 그의 고집을 보니, 그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사람은 한 번 결심하면 바꾸기 힘든 성격이기 때문에, 천천히 접근하고, 먼저 친숙해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차 안의 분위기는 조용하게 흘러갔다.
도예 로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릉 선생님이 전하신 편지가 있습니다. 그 편지는 제 사촌 집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아서 가까이 가야 들을 수 있었다.
(본 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