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이름《반야바라밀다심경》은 있는 그대로 '반야바라밀다심경'일뿐입니다 이 이상도 이 이하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냥 '반야바라밀다심경'이면 되지 마하摩訶maha가 여기에 왜 필요할까요 나는 이 문제를 1980년대 초반부터 35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주장해 왔습니다 삼장법사三藏法師 쉬앤짱玄奘(602~664)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으로 옮겼다면 으레 그 이름 그대로 쓰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삼장법사 쉬앤짱 번역본에는 '마하摩訶' 라는 2글자가 실려 있지 않습니다
삼장법사 쿠마라지바鸠摩罗什kumarajiva는 344년에 태어나 413년에 입멸하기까지 그가 세운 큰 업적은 역경譯經이었습니다 쿠마라지바 역본譯本을 구역舊譯이라 하고 쉬앤짱 삼장의 역본을 신역新譯이라고 합니다 쉬앤짱 삼장이 쿠마라지바 삼장에 비하면 한참 뒷사람이니 분명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쉬앤짱의 신역본《반야심경》은 쿠마라지바의 구역본《반야명주경》을 보고 거기서 '마하'를 생략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그러나 쉬앤짱은 '마하'를 생략한 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 원문에 '마하'가 없었기에 없는대로 정직하게 원문에 충실한 것입니다 쿠마라지바 삼장과 쉬앤짱 삼장을 놓고 볼 때 두 분은 나름대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쿠마라지바가 워낙 유명하기는 하였으나 한족汉族인 쉬앤짱 입장에서 보면 피부가 거무스레한 중앙아시아인이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일 시대가 같았다면 아마 볼만 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쉬앤짱은 열등의식이 배어 있었지요 따라서 쉬앤짱의 마음을 꿰뚫어 본 후학이 구법 소설《씨여우지西遊记xiyouji》를 썼을 것입니다 쉬앤짱은 쑨우콩孙悟空sunwukong의 스승이지요 삼장법사 쉬앤짱은 쑨우콩을 비롯하여 우직한 주빠지에猪八戒zhubajie와 샤우징沙悟净shawujing 등의 호위를 받으며 상상초월의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낸 끝에 티앤주天竺tianzhu(인도)에 이르러 마침내 불경을 구해 가지고 돌아오게 됩니다
쿠마라지바 삼장 이후 가장 뛰어난 역장譯匠은 두말할 필요 없이 삼장법사 쉬앤짱입니다 잘 알다시피 삼장법사 쿠마라지바의 번역본은 어떤 면에서든《반야경》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분명《반야심경》이나《심경》은 아닙니다 경전 이름이《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으로 이른바 경의 핵심인 <마음心>이 없습니다 경전 내용에 뜻으로는 분명 들어있겠으나 이름에는 단 한 자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경명에서 '마하'를 가져다가 쉬앤짱의《반야심경》에 모자를 씌웠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부르짖어왔습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마하'를 얹으면 안된다고 마하를 얹으려면 경전 이름만이 아니라 경전도 쿠마라지바 본으로 바꿔야 한다고 그리하여《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으로 소의경전을 삼아 통째 바꿔야 한다고 말입니다 큰 스님이든 작은 스님이든 다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얘기하고 읽는 것쯤이야 '마하'를 얹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점은 오늘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공인 한글《반야바라밀다심경》입니다 조계종에서 공인한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문화사 적으로 가장 완벽하다고 정평이 난 우리의 국보《고려대장경》에도 없는 그런 이름을 올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고려대장경'이 중국이나 일본의 대장경인가요 우리 선조들이 조각한 나라國의 보물寶이며 세계문화유산UNESCO에 이름을 올린 값진 보석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를 제쳐놓고 흘러流 다니通는 책자本로 소의所依를 삼았습니다 며칠 전 147회로 마친 나의《천수경 강의》도 실제 세간에 흘러다니는 책자流通本입니다 그러나 이 반야심경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조계종 종단 차원에서 공포公布한 경전입니다 포교원장이나 교육원장 이름이 아닙니다 종단의 최고 책임자 총무원장 스님 이름으로 우리말《반야바라밀다심경》을 공포한 것입니다 '마하'를 붙인《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으로ㅡ
이는 총무원장 스님 한 분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교육을 담당한 불교 교육계의 책임인 동시에 포교를 담당한 포교원과 학자들의 책임입니다 이게 뭐 그리 큰 사건이냐고 하겠지만 이는 화엄경이나 법화경 열반경이 아니요 또는 법구경이나 금강경 천수경도 아닙니다 위 경전들은 의식儀式에서 생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금강경을 비롯한 다른 경전은 조계종단 차원에서 공포하지 않았습니다 금강경이 조계종 소의경전이기는 하지만 경전 이름까지 함부로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반야심경》은 완벽한 '의식경전'입니다 반야심경에서 '마하'가 있고 없고는 중요합니다 첫째 쉬앤짱 신역본에 없는 경전 이름입니다 둘째 산스크리트어 경전 이름에도 없습니다 셋째 '마하반야바라밀'이 있기는 있으나 쿠마라지바 삼장의《반야명주경》(줄임)이지 쉬앤짱 삼장의《반야심경》(줄임)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타이완과 그 외 대승불교권에서 유통되는 반야심경으로 '마하'가 든《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 있으나 다른 나라의 있고 없음을 탓할 게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거룩한《고려대장경》이 없습니다
'크다'의 뜻을 지닌 '마하'가 없는 삼장법사 쉬앤짱의《반야바라밀다심경》은 실로 아름다움의 극치極致를 이루고 있습니다 '크다大maha'는 형용사가 없는 까닭에 '작다小hina'는 형용사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크다 작다를 설정하지 않으므로 하여 많다 적다가 없고 길다 짧다를 뛰어넘고 둥글다 모나다를 초월하며 높다 낮다도 찾아보기 어렵고 귀하다 천하다도 여기에는 없습니다 귀하고 천함을 초월하므로 계급caste도 없고 반야심경은 결국 무无에서 무無로 이어집니다
다섯 가지 쌓임五蘊이 텅 빈 세계로부터 여섯 가지 감관六根이 없고 여섯 가지 경계六塵가 없으며 열 두 가지 연기十二緣起 법칙이 없고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도 초월하고 심지어 이들을 비움으로서 얻는 지혜智도 없고 마침내 얻을 것所得도 없는 데 도달합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네 가지 주문 가운데 마지막으로 넷째 주문인 '무등등주无等等呪'입니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无等' 주문이면서 모든 생명 온 누리에 '두루等한' 주문呪입니다
물론 이 '무등등주无等等呪' 방정식 법문은 쿠마라지바 삼장의《반야명주경》에도 '무등등명주无等等明呪'로 고스란히 실려 있습니다 아무튼 쉬앤짱의《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마하'가 없음은 조사의 선계禪偈를 닮았습니다 이토록 군더더기 하나 없는《반야심경》에 본디 없는 '마하'를 굳이 얹어서 읽어가다니요 그렇다고 쿠마라지바 삼장의《반야명주경》이 군더더기 투성이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큰 목련꽃은 큰대로 아름답고 작은 치자꽃은 작은대로 아름답습니다
결코 치자꽃이 작다고 하여 목련꽃을 따서 치자꽃에 얹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름다운 방정식方程式equation이여! 아! 실로 아름다운 방정식 경전이여! 반야바라밀다심경은 비록 짧은 경전이나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장 이름다운 방정식 경전입니다 나는 오늘도 반야심경 말씀을 떠올리며 끝모를 기쁨歡喜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갑니다 아! '무등등주无等等呪'의 거룩한 진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