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곽 수도권55산 종주 11(강북) : 첼봉 ~ 샘내고개
언제 : 정유년(17년) 견우직녀달 7월 스무아흐레 흙날 누구랑 : 초보산꾼 혼자서 어딜 : 부대앞(접속) ~ 첼봉 ~ 한강봉 ~ 호명산 ~ 양주산성 ~ 불곡산 ~ 샘내고개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872 에 있습니다
24절기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를 지나고 장마가 한때를 풍미하고 지나간 자리에 햇볕을 즐기는 매미소리가 아직은 가야할 여름의 향기가 많이 남아 있음을 알려주고 있지만 입추가 곧 손에 잡힐 듯... 희망이라도 가져본다 지금 모두가 무더위를 피해 휴가 중이라 그런지 오히려 시내가 더 한가하다는 생각을 사무실만 나서도 느끼지만 아직 막바지 더위 말복이 남아 있지만 즐기는 사람의 특권, 이 정도 더위는 산속에 들어 묻어 두고 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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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강북 구간
서울 외곽 수도권 55산 종주 11구간 : 첼봉, 한강봉, 호명산, 불곡산 샘내고개
이 번 구간은 양주의 속살로 들어온 한북정맥을 계속 북진하는 구간으로 장흥 부곡리 윗가마골에서 첼봉에 접속 오두지맥 갈림봉을 지나 한강의 그림자도 볼 수 없는 이름만 한강봉에서 경기5악의 하나인 감악지맥을 분기하고 호명산을 지나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양주대모산성을 지나면 양주의 진산 임꺽정의 놀이터 불곡산에 오르게 된다 고려시대에 송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형태의 산이라 충신산이라 불렸던 도락산을 지나 샘내고개에서 마친다
들머리 접속지인 부대앞 버스를 타기 위해 의정부역 5번 출구로 나와 지하도로 들어가 6-2번 출구로 나오니 농협이 보인다. 좌틀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출구로 나오는게 빠르다
의정부역 동부광장 정류장에서 민락동에서 윗가마골로 오고가는 23번 버스를 타고 출발
윗가마골을 지나 23번 버스 종점인 부대앞에서 내려 되돌아 본 모습. 여기에 정류장 표시가 없다.
부대앞 정류장에서 도로따라 출발... 이 곳이 교통이 좋아 한강봉이나 앵무봉등 들머리나 날머리로 삼으면 좋을 듯...
여행스케치 건물이 나오면 건물 계단을 따라 올라 간다.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고비골고개가 나온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건물 좌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화장실이 나오면 도로를 건너 바로 산속으로 진입
길은 조금 가파르지만 넓고 거기에 줄이 안내하고 있어 계속 오르기만 하면 된다.
좌측으로 육안으로는 오두지맥의 말머리 고개가 계속 조망된다
드디어 한북정맥 마루금에 접속한 헬기장... 예전에 있던 정상석이 없어졌다.
조금 더 오르면 환기통이 있는 첼봉 정상에 도착
챌봉 채일봉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석현리, 백석읍 복지리에 걸쳐 있는 산봉우리 봉우리의 생김새가 마치 차일(遮日)을 친 것처럼 생겼다 해서 일부 기록에는 차일봉(遮日峰)으로 나와 있다. 산이 높아 해를 가리는 봉우리라는 의미에서 차일봉이라 부르다가 챌봉으로 변했다고 보는 설이 그럴듯하다. 그러나 원래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하여 제일봉이라고 불렀는데 미군이 챌봉으로 발음하면서 챌봉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챌봉 [챌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길은 넓게 계속 이어진다. 다시 환기통봉을 넘으면 바로 오두지맥 분기봉이 나온다.
오두지맥 분기봉 진행법... 분기봉에서 직진하지 않도록 주의...
조금 더 내려오면 좌측으로 오두지맥이 이어진다
오두지맥(烏頭支脈) * 한북정맥/한강봉 -앵무봉 -개명산622 -월롱산229 -기간봉238 -보현산108 -오두산119으로 도상거리 약 40km
한강봉으로 오르는 길... 계속 좌.우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계속 직진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한강봉
한강봉(460m) (漢江峯) 감악지맥 갈림길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가업리, 장흥면 부곡리에 걸쳐 있는 산봉우리. 맑은 날 올라 남쪽을 내려다보면 한강이 보인다 하여 한강봉(漢江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봉우리에 비가 내려 빗물이 남쪽으로 한강, 북으로 신천과 덕계천을 흘러내려가 임진강이 된다 해서 한강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오랜 경험을 통해 전해졌으므로 믿을만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다 해서 봉화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봉화는 장흥의 송추를 거쳐 한양으로 이어졌다. 자료 : 네이버지식 한강봉 [漢江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강봉은 은봉산으로 해서 감악산까지 이어갈 수 있는 감악지맥 분기봉이다
감악지맥(甘嶽支脈)- 한탄강 지류 산천 서쪽, 임진강 하류 동쪽 분수령 * 한강오두지맥 분기점인 한강봉에서 북쪽으로 은봉산-팔일봉-노아산-노고산-수레미고개-설미치고개- 감악산-마차산-아마니 고개를 거쳐 한탄강으로 맥을 다하는 39.6km의 산줄기이다
한강봉에 어울리게 한강은 볼 수 없지만 전망은 최고다. 첼봉에서 여기까지 왔다. 가운데 오봉이 보이고 첼봉 어깨너머로 삼각산
가운데 오봉을 당겨보면
삼각산은 구름속에 가려있고..
다시 좌측으로 조금 눈을 돌리면... 흥복저수지와 그 뒤로 수락산과 불암산까지 조망
당겨보면
가야할 호명산에서 샘내고개까지 미리 마루금을 이어본다. 화살표가 오늘의 종착역 샘내고개
복지리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감악산까지 구름위에 떠 있다
서쪽으로는 오두지맥의 앵무봉도 조망된다
이제 호명산 가는 길... 계속 흥복약수터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연리지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말처럼 쉽지 않다 서로 양보하며 살면 된다지만 살다보면 어디 맘먹은 데로 살아지던가?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이렇게 합合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데 부부간 혹은 남녀 간의 사랑의 상징이 된 연리지連理枝가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연리지로 다시 태어날 확률이 많지 않다는 사실 가까이서 자라다 보니 어느 한 쪽이 시들어 죽거나 서로 부실하게 자라다 보면 모두 죽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가 되는데 성공하면 몸집이 커진 만큼 더욱 강한 나무로 자란다 두 나무가 합合한 만큼 내실이 튼튼하니 병충해등 외부의 환경에 강해진다나 어쩐다나...
하늘에 올라가서 비익조가 되고 떨어져선 연리지가 되어 세세생생에 부부가 되어야지라고…” 월탄 박종화 선생의 역사소설 ‘다정불심’에 나오는 말이다. 죽어서도 ‘연리지’가 되자며... 이 사랑 영원히 변치 않겠다고 맹세해 놓고는... 그렇게 인간은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지만 연리지에게는 이별이라는 게 없다. 생을 다해 마감할 때도 아마 함께 세상의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뿌리가 완전히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서 마치 나무 한그루처럼 자라는 것을 연리지라 한다 원래 연리는 후한後漢 사람이던 채옹이란 사람의 효심을 기록한 후한서 채옹전蔡邕傳에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연리連理는 효심을 나타내다가 훗날에 남녀간의 사랑 혹은 부부간의 사랑으로 쓰임이 바뀐 것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그린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가 애창되면서 효심은 사라지고 사랑만이 남았다
호명약수터와 흥복저수지로 연결되는 도로가 나온다
후한(後漢) 사람 채옹(蔡邕)은 성품이 독실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으로 앓아누운 3년 동안 계절이 바뀌어도 옷 한번 벗지 않았으며, 70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 옆에 초막을 짓고 모든 행동을 예에 맞도록 하였다. 「그 후 채옹의 집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자랐는데, 점점 가지가 서로 붙어 하나가 되었다. 원근의 사람들이 기이하게 생각하여 모두들 와서 구경했다.(又木生連理, 遠近奇之, 多往觀焉.)」
훗날 이 말이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은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장한가〉는 120구, 840자로 이루어진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장한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었으며, 시가와 소설과 희곡으로 윤색되는 등, 중국 문학에 많은 제재를 제공했다.
도로에서 들어오면 바로 우측으로 해서 올라야 마루금을 이어갈 수 있다. 임도를 따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
묘지가 나오면 묘지 위로 해서 올라간다
아까 임도를 따라오면 여기서 만나게 된다 - 흥복약수터 0.6km. 호명산은 0.8km 남았다
흥복산 갈림봉인데 흥복산 방향으로는 이정표가 없다 홍복산(弘福山463)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와 의정부시 경계에 위치한 산 종루처럼 생겨서 온 겨레를 깨우쳐준다 하여 종루봉(鐘樓峰)이라고도 하고, 이 산이 보이는 곳에는 명필이 많다 하여 필봉(筆峰)이라고도 부른다.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사는 홍씨 선조들은 서울에서 이곳으로 낙향할 때 이 산마루에서 상수리가 제일 적지라고 판단되어 자리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자손도 번성하고 가문도 영화롭게 되어, 홍씨의 번영을 발견한 산이라 하여 홍복산(洪福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홍복산의 한자표기는 조선 성종대를 기점으로 홍복산(弘福山)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홍복산 [弘福山, Hongboksan]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호랑이가 살만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나무 지대를 지나면 호명산(423m)
첼봉에서 여기까지 정말 길은 좋다. 계속 길을 따르면 13번 철탑이 좌측으로 보인다
철탑에서 조금 내려오면 바로 이렇게 밧줄이 나오고...
바로 우측으로 띠지가 보인다. 마루금은 우측으로 해서 들어가야 한다. 주의지점
희미한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12번 철탑을 만나게 된다. 여기 바로 옆 숲에서 멧돼지를 만났던 곳이라 무섭기도 하고... 나는 한북정맥 혼자서 올라올 때 여기까지 우회해서 올라왔기 때문에 여기부터 작고개까지 다시 이어가 본다
접도구역 표시도 있고
좌측으로 전망이 열리는데 직진
사실 작고개에서 올라올 때 마루금에 사유지가 있어 많은 산우님들이 우회하느라 고생한다. 나도 생고생 했지만.. 내려오다 보니 우측으로 무덤이 나오면서 이쪽으로 많이들 우회하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계속 마루금따라 직진해야 한다
나도 무덤으로 해서 다시 ?고생하고 나와 보니 낮익은 풍경....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우회길.. 모르면 역시 쌩고생 하는 법 한북정맥 당시 사유지의 범위를 알 수 없어 청색따라 아주 크게 우회했는데... 다시 내려갈려 하니 물이 있어 건널 수가 없다
다시 마루금으로 돌아 오는데 사유지 개들이 합창으로 짓어데는데... 솔밭에서 우측으로 해서 내려온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마루금으로 내려오면 될 듯하다. 개가 짓어데는 것은 감수해야 하고...
다시 잡목을 뚫고 나오니 개집?... 다행히 개는 없다. 개집 뒤로 해서 내려오면 바로 도로가 나온다
이렇게 제설함이 있는 도로가 나오면서 힘들었던 우회길이 끝이 난다.
작고개로 돌아와 산성산으로 진입한다 작고개(어둔동 고개) 대모산성 서쪽의 고개를 작고개(栢峴)라고 하는데, 여기서 ‘작’은 城(성)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잣’과 같은 것이다. 어둔동(於屯洞)이라는 땅 이름은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호명산(虎鳴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해지는 시각이 빨라 쉽게 어두워지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이 주둔했던 곳이라 하여 애둔지·왜둔치·왜벌이라고도 하며, 조선 시대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하여 와평동(瓦坪洞)·와평·왓벌이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작고개에서 산성산 들머리
철탑을 지나고
다시 18번 철탑을 통과하면
산성 석축이 남아 있는 산성산 정상이 나온다
정상이 좁아 조금 더 진행 되돌아 본 산성산 정상 양주대모산성 楊州大母山城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일대의 산성산(해발 212.9m)에 있는 산성. 사적 제526호.『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석축이고, 둘레가 906척이며, 높이가 5척이라 하였는데, 실제 둘레는 약 410m이다. 명문이 있는 기와를 비롯한 많은 종류의 기와편도 출토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로 보아 이 산성은 삼국시대 이래 사용되어 온 것으로, 현재의 석축은 통일신라와 고려기에 보수를 보아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문지 - 양주홈피에 산성산을 둘레길에 포함시켜 선전하고 있는데... 관리는 전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잡목에 ㅋㅋ
마을에서 가까우니 혹여 학생들이라도 오면...오늘 산성을 걸으면서 할말이 없다. 특히 여기는 고라니의 천국인듯...
아직 자료가 없는 무덤.. 석축으로 봉분도 감싸고 있고 석축 형태도 특이한데...
다시 잡목과 싸우다... 비가 온 탓인지 물이 여기저기 고여 있어 결국 석축 밑으로 우회해서 어렵게 내려왔다
한북정맥 당시 쉽게 통과했던 산성산이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 줄이야... 그래서 산성산 들머리 세심정에서 식후경
임꺽정과 대화하면서...
식후경 후 내려오면서 바라 본 불곡산
도로 삼거리인 백석삼거리로 나와 바로 길을 건넌다
대교아파트를 보면서 가다 보면 여기서 임꺽정봉을 오른다. 한북정맥 하시는 분은 더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어차피 임꺽정 오름길 한북정맥 마루금은 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의미가 없다. 대교아파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오늘은 한북정맥이 아니고 55산이다 보니 불곡산 정상을 들려야 한다. 그래서 바로 악어바위코스로 올라 본다. 불곡산 둘레길을 만나 임꺽정 생가터 방향인 우측으로 진행한다. 직진은 한북정맥길
계곡을 건너면 바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은 둘레길이고 좌측길은 임꺽정봉 오름길이다
한참을 오르다 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직진 방향으로 띠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악어바위 능선으로 가는 길인 듯...
그런데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악어 바위 능선을 포기하고 다시 되돌아 와 오름길...임꺽정 봉 직전 악어바위 능선에 올라 공기돌바위
여기서 가야할 불곡산 정상인 상봉을 향한다
물개바위도 지나고
더욱 가까워진 상투봉과 상봉
북한산에서 걸어온 길이 여기서 잘 보인다. 당겨보면...
부흥사로 내려갈 수 있는 안부
생쥐바위
오늘 걸어온 길...첼봉으로 해서 한강봉 호명산 그리고 산성산...
좀 더 우측으로... 한강봉에서 은봉산으로 이어지는 감악지맥 산군들...가운데 뒤는 오두지맥의 앵무봉
...도 지나고
임꺽정봉에서 가야할 도락산과 그 뒤로 도락산 좌측으로 멀리 감악산.. 우측은 소요산인 듯...
상투봉( 431.8m)
이제 불곡산 정상인 상봉이 지척이고...
지도상 425봉
안부를 지나 불곡산의 정상 상봉
양주시 방향
상봉에서 가야할 마루금을 담아본다
3대의적으로 불리며 장길산 홍길동과 함께 우리에게 소설과 드라마로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던 소설 "임꺽정" 조선 명종임금 당시의 기록인 명종실록에는 임꺽정과 무리들을 약탈과 살인등을 서슴치 않는 인간들로 묘사하고 있는데 일제시대 민중의 결집을 위한 방편으로 사회주의적인 성향의 독립투사였던 홍명희의 손에 의해 1928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면서 명종실록과 역사적 해석을 달리하여 새로운 역사인물로 그려지며 한국문학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재 탄생한 것이다
다시 되돌아 올 때는 우회길로 해서 임꺽정봉(449.5)에 도착하고...
출생연도는 알 수 없고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신분으로 태어나 주로 황해도 구월산 일대의 산악지대를 본거지로 삼았다 힘(力)하면 임꺽정을 떠올리지만 도적만이 아니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따른 것을 보면 지략가이기도 했다 거기에 단순한 도적이 아니고 양반과 토호들의 재물을 빼앗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폭정을 일삼는 관청까지 상대하니 폭정에 시달리다보니 관군을 더 괴롭혀 주기를 바라는 조정에 등을 돌린 민심을 얻는데 성공하며 의적으로 거듭난 것이다
도적때로만 생각했던 조정에서도 턱밑까지 다가오는 좀 도둑을 잡기 위해 을묘왜변의 영웅인 장수까지 투입해야 하고 이번기회에 한건 올리려는 관료에 의해 거짓으로 임꺽정을 잡았다고 상소를 올리는 바람에 두번이나 조정은 기만을 당하고서야 임꺽정은 수배령이 내려진지 3년만인 1562년 1월에 구월산 눈밭에서 한 시대의 영웅으로 산화한다 지배층에게는 흉악무도한 도적이라 불렸지만 수령의 가렴주구에 시달린 농민들에게 희망이었던 것이다
임꺽정이 놀이터로 삼으며 앉았던 의자 바위라는데...이 바위가 맞나? 가운데 자리가 거구였던 임꺽정이라면 가능할 듯...
어머니 문정왕후와 외삼촌 윤원형에 휘둘려 제대로 왕권을 행사해 보지 못한 명종(明宗)이다 보니 중심이 흔들리고 거기에 을묘왜변까지...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시대에 백성들이 몸둘 곳이 어디겠는가? 그렇게 임꺽정이 태어날 수 밖에 없었다. 탐관오리들에게 시달리던 백성들의 맘과 소원까지 담아서... 시대만 다를뿐 세월이 흘러 나라까지 잃고 일제의 식민지하에 백성들이 임꺽정 소설에 빠졌던 이유일 것이다
조금 더 가면 전망대가 있고... 장백저수지와 그 우측으로 가야할 마루금을 담아 본다. 멋진 바위들이 기다리고 있다
일제시대때 집필한 소설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으면 홍명희가 옥중에서도 집필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비록 홍명희가 김구선생과 함께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눌러앉는 바람에 월북작가가 되어 금서가 되었지만 90년대 초반 우연이 접한 임꺽정 소설에 96년말에 인기드라마로 다시 태어나니 몇번이고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드라마 주제가의 가사도 좋지만 우리시대의 진정한 소리꾼 장사익님의 소리로 재탄생하니 가슴을 친다
티끌같은 세상 이슬같은 인생 장 사익
이 나라 이 강산에 이 몸이 태어나 / 삼베옷 나물죽으로 이어온 목숨 / 기구하여라 고단한 세월 / 타고난 굴레는 벗을 길이 없어라
임꺽정봉에서 내려와 임꺽정봉을 보면서 갈증을 막걸리 한 병으로 해결하고...
임꺽정 갈림봉인 한북정맥 마루금에 접속... 갈림길에서 도락산은 부흥사 방향인 우측으로...
바로 멋진 바위들이 있는 전망바위에서 가야할 한북정맥을 조망해 본다
도락산 갈림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제 편안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도락산 갈림봉에서 우틀하여 샘내고개에서 종료한다. 다음 구간에 가야할 데미산에서 천보산라인까지...
데미산에서 가운데 화살표로 해서 상봉 좌측으로 보이는 골프장으로 해서 이어가게 된다
당겨보면... 화살표따라 우로 진행하다 천보산 라인에 올라 어하고개에서 축석령으로 넘어가 죽엽산으로 오르게 된다
옥정지구 뒤로 칠봉산과 그 우로 왕방지맥 라인 - 칠봉산으로 해서 해룡산, 왕방산으로 이어지는 동두천 6산종주도 준비 중이다...
부대때문에 더 이상 진행 불가...우측으로 해서 우회시작
부흥사 갈림길이 나오고... 계속 청엽골 방향
계속 내려오면 도로가 나오고.. 좌측으로
공원도 지나고,,, 저번에 왔을 때는 공사중이였었는데...
청엽골 고개
계속 임도를 따라 오면 직진하면 갈 수 있는 소나무 쉼터인 도락산 갈림길... 마루금은 옥천약수터 방향인 우측으로
지도에 잘 나와 있다. 샘내고개까지..
도락산 쉼터가 나오면 역시 계속 옥천약수터 방향으로
옥천약수터와 헤어져야 할 시간... 작은산대약수터 방향으로 직진
이정표가 아주 친절하다. 샘내고개 버스타는 곳이란다... 계속 마루금이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우측으로 전망이 열리면서 가야할 데미산이 보인다,,, 마루금은 좌측으로 해서 내려가야 한다. 직진은 길이 없다 한북정맥길은 아니지만 천보산은 언제 한 번 가봐야 할텐데...아까 말한 왕방지맥의 천보산과 다른 산이다.
당겨보면
도로로 나와 길을 건너지 않고 좌틀한다. 담 구간에는 도로 건너 계속 이어가게 된다. 몰론 저 산이 마루금이였을 텐데..
바로 중고자동차매매가 나오고 바로 정류장이 있다. 의정부로 가기 위해 25, 31, 25-1 번의 버스를 타고 간다
샘내고개
샘내고개라는 이름은 근처에 맑은 물이 솟는 샘내가 있어 유래되었다. 꽃바위우물, 즉 화암정(花岩井)이라고 하는 유명한 약수도 있었다. 옛날에 서평강(徐平康)이라는 평강군수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악정을 벌이다가 쫓겨나자 짚둥어리를 타고 이곳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서평강은 동네 복판에 큰 못을 팠으며 그 흙으로 못 옆에 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풍경을 아름답게 하였다고 한다. 그 옆에는 큰 뒤주처럼 이상하게 생긴 바위가 있었으며 이 바위를 대감바위라고 불렀고 바위 밑에서 옥수가 나와 이곳을 샘내라고 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샘내고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중국 고사성어에서 나왔다는 말중에 "사람욕심 끝이 없다" 는 말이 있다
아마 이 것은 나의 이야기 일 수도 있고 우리 이웃의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단언컨데 나보다는 우리 이웃이 나에게 주는 교훈이다... 이런 착각속에 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뉴스에 접하는 많은 부정부패는 다 선을 넘는 욕심에서 비롯됐으니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준 달콤한 악마와 같은 권력의 무게가 그들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크다는 얘기 일 것이다
그런데 무게는 다르지만 산속에 들어서도 멈출 줄 모르는 갈망이 나도 모르는 사이 때론 욕심을 넘어 선 욕망이 되기도 한다 방금 전 나에게 자연은 환상적인 경치를 주었는데도 돌아서면 또 다시 새로운 환상을 찾아 갈망하다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우린 더 높은 곳을 향하거나 더 전망이 좋은 곳을 찾아 나의 다리를 시험하기도 한다
나에게 무릎이 준 신호가 있어 최대한 긴 산행은 자제하여 왔는데 덕분에 최근 좀 무릎이 좋아졌다는 핑계로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산행거리 오늘처런 무더위에 생각지도 않은 산성에서의 잡목과의 사투.. 치친 몸으로 불곡산 정상을 다녀오고... 때론 계획은 계획일 뿐... 중간에 멈출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데...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나의 갈망이 마르지 않는 샘물같다는 생각에 끊없는 욕심과 열정과의 경계에서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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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초보산꾼의 발길 닫는 곳 원문보기 글쓴이: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