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빈 종원님 안녕하셔요 ? 궁금하신 점 무척 많으십니다.
그럼 하나 하나 설명하고자 하니 참고/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질문1) 왜 ? 우리 선조님들께서 함안에서 엄청 벗어난 섬에 살게 되었는지요 ?
답변1) 현빈 종원님 선조님들 중 아마 조선시대 수군(水軍)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사료 됩니다. 22대 휘(諱)성휘(聖輝)선조님께서는 집안 가장(家藏)에 전해내려오는 구전으로 전남 진도에 처음으로 입도하시고, 처가는 경남 남해였다고 하며, 23대 휘(諱) 증석 선조님의 이력과 행장을 보면 <1718년 무술생(숙종 44년)~ 1788년,무신년 별세: 향년 71세(정조12년) 관직이 수자 통정(壽資 通政)으로만 기록이 전해지고, 배위는 숙부인(淑夫人)- 남편이 정 5품 벼슬을 하면 부인도 정5품의 품계인 숙부인으로 호칭, 김해 김씨, 묘소는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리 옥녀산(玉女山)자좌(子坐)> 이로 미루어 보건데 대대로 전라좌수영에 속한 수군(水軍)벼슬로, 종사하였으며, 그 후손들은 진도를 거점으로 세거 정착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다만 자세한 세거 유래史는 <함안조씨 역사연구회>에서 사료를 고증할 것입니다
* 참고1) 집의공 휘(諱) 삼(參) 무진정선생의 손자 승지공파 파조 휘(諱) 준남의 장자 선전공 휘(諱)계선 선조님의 병자호란시 의주전투에서 이완(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조카)장군의 부장으로 싸우시다가 순절 하셨습니다. 참고; 함안조씨 13충 (함안조씨 역사연구회/ 역사탐방 21번), * 참고2) - 홈페이지의 방명록 150번 항목의 '관매도" 를 참고하셔요.
질문2) 저의 본관, 몇대, 파,등을 알려주셔요
답변2) 현빈 종원님의 본관은 함안(咸安) 입니다. 당연히 자랑스러운 함안조씨 문중(門中)의 일원입니다. 몇대 ?- 현빈종원님은 항렬이 현(顯)이므로 31대입니다. 부친은 30대, 할아버지께서는 29대, '''''
무슨파 ? 함안조씨 21원파로는, 집의공파 <파조: 무진정 선생 집의공 휘(諱) 삼(參)> 76지파 로는 승지공파<파조: 함안조씨 13충신이신 승지공 휘(諱) 준남(俊男)>입니다.
* 좌측 홈페이지 화면창 <검색하기>에 " 무진정 선생 " 또는 "조준남" 으로 검색하시면 본 홈페이지에 게재된 내용의 위치를 알려 줍니다. 질문3) 조상님들중 유명하신분이나, 귀족은 없나요 ?
답변3) 1.우리 함안조씨는 영남의 으뜸가는 충효 가벌이라 유명하신, 훌륭하신 조상님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다만 후손들이 제대로 역사 인식을 못하고 있는 탓으로 겨우 몇분만 알고 있는데, 함안조문중에서 13 충신이 나오기는 어려운데, 자랑스러운 우리 함안조씨 문중 에서 13 충신이 나셨답니다(참고: 함안조씨 13충신) 2. 특히 선대(先代) 조상님들부터 나열하자면 고려시대~ 조선시대~ 임시정부~ 대한민국 까지 열거 할분이 너무나 많아 좌측 화면창<함안조씨 역사연구회>~ 문중자료실까지 7항목 및 우측 화면창 의 함안조씨 역사인물에 관한 자료를 참고 하십시요.
3. 귀족 ? 이건 서양史 에서나 주로 쓰는 호칭으로 우리의 동양史에서는 자주쓰는 용어가 아닙니다. 우리의 동양문화권의 역사를 이야기 할때에는 주로 사대부, 사농공상, 또는양반, 평민, 중인, 상민등으로 이야기 합니다. 아마 고관대작을 지낸 사람을 말하시나 본데, 우리의 역사는 승자에 의한 왜곡된 역사 기록과, 당쟁에 의해 정권을 잡고, 집권한 측의 역사를 이제는 반드시 재검증하여 왜곡 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임진, 정유재란시 구국 충정한 선조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뒤안길에서 왜곡되거나 , 변질또는 미발굴 된 이야기가 너무나 많으며, 옛 족보 기록시 제대로 반영 못한 이야기가 본<함안조씨 역사연구회>자료조사 결과 너무나 많습니다.- 이는 후일 재검증을 거쳐야 할것으로 사료 됩니다. * 함안조씨는 전부다 양반입니다. 질문4) 독거도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
답변4) 진도군 [珍島郡] 요약 전라남도 서남단 해남반도 남서쪽에 있는 군. 면적 430.6㎢ , 인구 4만 1184명(2002년) 인구밀도 96명/㎢(2002) , 가구수 1만 5828세대(2002년) 행정구분 1읍 6면 군청 소재지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64-1 군의 꽃 동백꽃 군의 나무 후박나무 군의 새 백조
면적은 430.6㎢, 인구는 4만 1184명(2002)이다. 동쪽은 명량해협(鳴梁海峽)을 사이에 두고 해남반도(海南半島)로 이어지고, 황해, 남쪽은 제주해협으로 틔어 있으며, 북쪽은 해남군 화원반도(花源半島) 및 신안군의 여러 섬들과 마주한다. 진도읍·군내면·고군면·의신면·임회면·지산면·조도면 등 1읍 6면으로 이루어졌다. 군청소재지는 진도읍 성내리이다.
우리 나라에서 3번째로 큰 섬으로 전라남도 면적의 3.6%를 차지하며, 수리적(數理的)으로는 동경 125°37'∼126°28', 북위 34°08'∼34°35'에 위치한다. 진도·상조도·하조도·가사도 등 45개의 유인도와 185개의 무인도 등 23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해의 관문으로서 극동은 고군면 와도, 극서는 조도면 죽도, 극남은 조도면 병풍도리, 극북은 군내면 나리이다.
전라남도의 군 가운데 구례군·곡성군에 이어 인구가 3번째로 적은 곳으로, 특히 1985~1995년에는 37.5%의 인구감소율을 보였다. 인구는 진도읍에 집중되어 있고 군내면의 인구가 가장 적다.
진도군은 남서방향의 소백산맥 지맥이 황해에 이르러 서서히 침강하여 이루어진 다도해 섬으로서, 동북부는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서남부는 급경사로 인한 침식해안으로서 경관이 빼어나다. 중생층 점판암 토질로 유기질이 많아 비옥하고 해안은 개펄로 이루어져 해산물이 풍부하다. 전체면적의 70% 정도가 산과 구릉지이며, 지질은 백악기의 반암과 응회암이 대부분이다. 특히 진도·상조도·하조도·가사도 등의 섬들은 지질시대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던 섬들이다.
산은 200~400m 정도의 산지가 많은데, 동쪽에는 첨찰산(尖察山:485m)·덕신산(德神山:385m)이 자리하고, 서쪽에는 지력산(智力山:325m)·석적막산(石積幕山)이, 북쪽에는 금골산(金骨山)·설매봉(雪梅峰) 등이 있다. 또 이들 산지 사이에는 좁은 계곡평야와 잔구가 생성되어 있다.
하천으로는 석교천(石橋川)·인지천(仁智川)·이십오천(二十五川)·진도천·의신천 등이 있으나, 대부분 3~6㎞로 짧다. 의신천만이 10㎞ 정도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대부분의 하천이 하상경사가 급하다. 해안선은 총 662.3㎞로서 리아스식 해안이라 양항이 많은 편이다.
계절에 따라 여름에는 태풍,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큰 파도가 많다. 진도 본도의 만입지에는 간석지가 발달했고,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동거차도·서거차도·대마도·관매도·외병도·내병도의 해안을 따라 해식애와 파식대가 발달해 있다. 특히 울돌목으로 부르는 명량해협에는 시속 79㎞의 빠른 조류가 흐르고 있는데, 이 조류는 일본의 나루토[鳴門]해협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조류로 알려져 있다.
기후는 남쪽 해상 부근을 흐르는 난류의 영향으로 온난하지만, 겨울에는 북서 계절풍의 영향을 직접 받기 때문에 인접한 완도군과 부산보다 기온이 낮다. 연평균기온 13.8℃이고, 1월 평균기온 1.7℃, 8월 평균기온 26.4℃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121㎜이며, 봄과 여름에 비가 많다. 특히 봄철에는 짙은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는 부근 해상교통에 많은 장애가 되기도 한다.
진도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졌으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유물·유적, 천연기념물, 기·예능보유자가 많다.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진돗개의 친근한 이미지를 상징하는 '진돌이'가 마스코트이다. * 진도군의 연혁 신석기시대 이전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것이 없으나, 고인돌·석부·선돌 등 청동기·철기시대의 것은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알수있다. 삼한시대 마한의소국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시기를 전후해 바구니섬으로 부르게 되었다. 백제시대에는 인진도군(因珍島郡)이라 하여 현 고군면 고성에 관부를 두고, 영현으로 도산현(현재의 고군면·군내면 방면)과 매구리현(현재의 임회면 방면)을 거느렸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인진도군을 진도현으로 고쳐 무안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매구리현은 첨탐현으로 고쳐 뇌산군에 소속시켰다. 757년(경덕왕 16년) 도산현을 뇌산군으로 승격 독립시키고 매구리현을 담침현으로 바꾸어 뇌산군에 따르게 하였다.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왕건에게 패한 뒤 고려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940년(고려 태조 23)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뇌산군을 폐지하고 가흥현으로, 첨탐현을 임회현으로, 진도현을 외이현으로 고치고, 새로이 진도군을 독립시킨 뒤 3현을 편입시켜 치소를 고성에 두었다. 1018년(현종 9)에 읍성을 고성에서 용장성으로 옮긴 후 남도포에 진을 설치하고 수군을 조련하였다. 1269년(원종 11)에는 경상도 창선현 사고(史庫)를 이전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삼별초의 배중손(裵仲孫)이 왕족 승화후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용장을 도읍으로 정하여 서남해안을 장악하고 대몽 항쟁을 계속하였으나, 여몽 연합군이 삼별초군을 토벌함에 따라 진도가 함락되고 잔여세력은 제주도로 옮아감으로써 1만여 명의 주민이 몽고에 잡혀가는 등 진도는 거의 황폐해졌다. 대신 군마사육장이 설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4천 필 정도의 우마를 방목하는 큰 규모의 목마장이 되었다.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1350년(충정왕2) 한때 섬주민을 육지인 영암의 월악과 명산, 금산으로 옮기기도 하였다. 이후 80년간 진도에는 행정기관을 설치하지 않고 금산에 관부를 둠으로써 공도(空島)가 되었다.
조선시대 1409년(태종 9)에 해남현과 합해 해진군이 되었다. 1437년(세종 19) 해남군과 분리하여 진도군이 복구되었고, 읍터는 고성에 임시로 두었다가 1440년에 지금의 진도읍으로 관부를 옮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의 중심 활동무대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의 명량대첩과 고금도해전이 유명하다.
1662년(현종 3)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71년 군으로 승격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서 많은 인물들이 이곳에 유배되었다. 특히 소치 허유와 미산 허형 등 남종화의 대가들이 다수 배출되어 지금도 그 제자들이 화단의 맥을 잇고 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고종 32) 진도군이라 개칭하고 나주부에 귀속시켰다. 1906년 삼촌(三寸)·명산(命山) 2개 면이 영암군에 이관되고, 1906년(광무 10)에는 육지부의 명산면, 삼촌면을 영암군과 해남군에 각각 귀속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면을 폐합하여 안창면·가좌면·도초면을 무안군에 귀속하고, 진도군은 진도면·군내면·고군면·의신면·임회면·조도면·지산면으로 하여 7개면 101리가 되었다.
6·25 전쟁으로 황해도 출신의 피난민 3천여 명이 진도에 정착하였고, 전쟁중 한때 적군에 함락되었다가 수복되었다. 1963년 1월, 조도면(鳥島面) 마진도리(馬津島里)를 무안군에 이관시켰다. 1966년 조도면 가사도(加沙島)에 가사출장소를, 서거차도(西巨次島)에 거차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3년 군내면의 수역리·수유리·해창리·산월리가 진도면으로 편입되었다.
1979년 5월에는 진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재조정으로 조도면(鳥島面) 가사도리(加沙島里) 일부(고사도·평사도·송도)가 신안군 신의면(新衣面)으로, 역시 조도면 만제도리(晩才島里)가 흑산면(黑山面)으로 이관되었다. 1985년 진도대교 완공으로 비로소 육지와 연결되었다. 1990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안군의 저도 외 5개 섬이 진도읍으로 편입하였고, 1992년에는 의신면 도목리가 도목리와 도항리로, 접도리는 원다리로, 임회면 죽림리는 동헌리로, 지산면 소앵무는 백연동리로, 심동리는 상심동리와 하심동리로 분리되어 236개 이(里)에서 241개로 늘었다.
2003년 현재 진도군의 행정구역은 진도읍·군내면(郡內面)·고군면(古郡面)·의신면(義新面)· 임회면(臨淮面)·지산면(智山面)·조도면의 1읍 6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도면 [鳥島面] 전라남도 진도군에 있는 면. 위치 전남 진도군 인구 4,729명(2001) 면적 56.83㎢ 문화재 동구리 성터 면적 56.83㎢, 인구 4,729명(2001)이다. 23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큰 섬인 하조도(下鳥島)를 비롯하여 상조도·성남도 등 3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에는 무인도도 많다. 상조도와 하조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조도대교라고 불린다.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으로 가사도리(加沙島里)의 일부가 신안군 신의면(新衣面), 만재도리(晩才島里)가 신안군 흑산면(黑山面)에 각각 이관되었다. 군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으며 밭이 논보다 많다. 설을 전후로 하여 무·대파 등이 많이 생산된다. 멸치·낙지·매생이등의 해산물이잡히며, 전복과 김을 비롯한 해조류의 양식도 활발하다.
상조도(上鳥島)∼목포 간 1일 2회, 서거차도(西巨次島)∼목포 간, 하조도 창리(倉里)∼가사도(加沙島) 간 등의 배편이 있다. 면 일대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로는 동구리(洞口里) 성터가 있다. 독거도 [獨巨島]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리에 딸린 섬. 위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리 면적 1.69㎢ 크기 해안선길이 5.8㎞ 면적 1.69㎢, 해안선길이 5.8㎞이다. 진도 남단에서 10㎞ 떨어진 해상에 있다. 독거군도의 중심섬이며, 주위에 있는 슬도·죽항도·청등도·관매도 등과 함께 독거군도를 이룬다. 섬에서 거센 파도 때문에 오도 가도 못 한다 하여 ‘외진 섬’ 이라는 뜻으로, 독고도(獨孤島)라 불리다가 ‘독거도’ 가 되었다 고 한다.
최고점은 독거산(178m)이며, 대부분 200m 미만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은 주로 암석해안이며,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다. 썰물 때는 남쪽에 있는 탄항도와 연결되어 하나의 섬을 이룬다. 1월 평균기온 3℃ 내외, 8월 평균기온 26℃ 내외, 연강수량 943㎜ 정도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근해 일대에서는 붕장어·멸치·도미 등이 잡히고, 자연산 미역과 김·전복 등이 양식된다. 농산물로는 고구마·보리·유채·콩·마늘 등이 소량 생산된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기 여객선이 매일 운항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