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운전
강지수
날 때부터 앞니를 두 개 달고 태어난 아이치고 천성이 소심하다 했습니다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 뭐예요?
종합병원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발가벗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을 때요
그게 기억나요?
최초의 관심과 수치의 흔적이 앞니에 누렇게 기록되었지요 나와 함께 태어난 앞니들은 백일을 버티지 못하고 삭은 바람에 뽑혀야 했지만, 어쩐지 그놈들의 신경은 잇몸 아래에 잠재해 있다가 언제고 튀어 올라 너 나를 뽑았지, 우리 때문에 너는 신문에도 났는데, 하고 윽박을 지를 것 같더란 말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대大자로 뻗었을 때 혹은 동명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그럴 때에는 앞니를 떠올려보곤 하는 겁니다 천성이란 무엇인지, 왜 어떤 흔적은 흉터로서 역할하지 못하고 삭아져버리는지
당신, 당신은 한 번 죽은 적 있지요
아뇨 아뇨 하고 뒤돌아 도망치다 보면
잔뜩 눌어붙은 마음에 칼질을 해대는 것
한 가지 알려줄까요
무 이파리가 시들해서 죽은 줄 알고 뽑아보면
막상 썩지는 않은 경우가 많답니다
싱싱하지 않을 뿐
살아는 있어요
매운 향을 뿜으며
가끔 손등을 깨물어요 그러면 삐죽 튀어나온 앞니 두 개가 찍힙니다 나는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어요
내가 어딘가에 남길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자국이거든요 벌겋게 부풀어 오르는 피부까지도
저 멀리 보이는 친구를 피해 길을 돌아갈 때 혹은
다시 태어나서도 나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할 때
그럴 때에는 앞니를 떠올려보곤 하는 겁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천성
나와 분리된 조각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워하는 겁니다
발가벗고도 이를 내보이며 웃었던 날
출처: 매일신문
https://www.imaeil.com/page/view/2023121515001633336
[2024 신춘문예 당선작] 시운전
일러스트 : 손노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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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달을 정독해 주세요
박동주(본명 박현숙)
출처 : 농민신문
https://www.nongmin.com/article/20231226500363
[신춘문예-시 당선작] 상현달을 정독해 주세요-박동주(본명 : 박현숙)
[시 당선 소감] “나의 시로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수 있었으면” 당선 전화를 받는 순간 명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습니다. 그동안 반짝거리며 다가왔던 시들이 부옇게 지워졌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슬픔의 정수리에서도 시는 늘 든든하게 저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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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극빈
김도은 (본명 김정미)
그 많은 소란과
발걸음과 악다구니들을 겪고도
골목은 여전히 휑하다
그늘이 묻은 소매 끝에
삶은 돼지머리 냄새가 가득하다.
이마를 풀어헤친 나무의 복선사이로
저기, 좁은 골목 끝으로
환한 끝이 보인다.
그 끝으로 얼마나 많은 이쪽을
저쪽으로 끌어들였나.
기울어진 지붕 끝으로 끌어 내린
저 어둑한 그늘들은 누구의 뒤끝들인가
더는 새것이 찾아오지 않는
양쪽을 둔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이쪽 또는 저쪽에 속지 않는다
한때 유일한 재산이었던 포물선들은
조금만 펴거나 휘어도 뚝 부러지고 말 것 같은데
군데군데 구멍 난 혁명가를 입은 노인은
질긴 옛날 노래를 잇몸으로 부른다
극빈은 출렁이는 극한의 자세
팔꿈치에 휘감은 불안은 바짝 마른 저수지보다 컷다.
여전히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은 아름답지만
이 극빈도 조만간 헐릴 것이라는 말들
그래, 함께 헐리면 편하지
지탱이 지탱을 업고 하는 말들은 그마저도
죄다 빌려온 말들이란 것
돌려줄 곳도 없는 말들이라는 것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어둑한 한 평의 미궁들엔 다행히도
무더위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
들어올 것도 없이 여미는 겨울보다는 낫다는 것
홀로, 깊은 안쪽이 되는 것이다
출처: 영주신문
http://yeongjunews.co.kr/front/news/view.do?articleId=ARTICLE_00027484
[영주신문] 영주신문 2024년 갑진년(甲辰年) 역동적인 신춘문예 수상작 발표
영주신문 2024년 갑진년(甲辰年) 역동적인 신춘문예 수상작 발표 - 영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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