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증례는 90세 남성으로 때마침 제 아버지의 친구분이며, 상당한 재산가로 요코하마에 살고 계시며, 부탁을 받고 왕진을 했습니다. 들어 보니, 허리와 다리가 약해서 걸을 수 없다며 그리고 여러 가지 증세로 허리가 아프다거나 혈압이 높다고 했습니다. 본인은 돈을 아낌없이 쓰며 현대의학 치료는 물론이고 한의학 치료, 침구, 여러 온갖 수단을 다 했지만, 아무래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훌륭한 선생님에게 「나이 탓이니까」라는 말을 듣고 화를 냈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진찰해 보니 전체적으로 힘은 나이에 상응하지만, 특히 아랫배에 힘이 없습니다. 위장은 튼튼하고, 그럼에도 맛있는 것은 먹고 싶다. 그래서 본인이 처방을 써달라고 해서, 편지에 「00000丸에 人003g」이라는 처방을 쓰고 돌아왔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요코하마까지 교통비나 진찰료, 무엇보다 고맙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요 다음에 함께 주려나 생각하며 돌아왔습니다.
1개월 뒤에 갔습니다. 극적으로 좋아졌고, 건강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야, 좋네요」라고 저도 모르게 말했더니, 본인은 「다 좋아. 한약이 이렇게 효과가 있다는 것은 몰랐네. 좀 더 빨리 먹었으면 좋았을 걸. 그렇지만 비싸잖아. 많이 먹을 수 없잖아」. 그래서 「얼마 정도에요?」라고 말했더니,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100엔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약을 보험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은 자네의 태만이야」라며 실컷 혼났습니다. 한약 엑기스제가 보험 적용이 된 것은 이 일이 있고 5년 이후입니다.
메이지 일왕의 한의학 황실의사를 했던 아사다 소하쿠浅田宗伯라는 사람이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 「병에 걸려서 의사의 말보다 승려에게 의존하는 사람」, 「재물을 중시하고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 생명보다 돈이 중요, 그런 사람은 고쳐도 소용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서둘러 도망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좀 더 빨리 이 글을 봤다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이 때도 왕진료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번에 자네는 언제 오나?」「아뇨, 좀 더 좋아졌으니까 이제 안 가겠습니다」「그건 곤란한데, 우리 딸이랑 손자도 여러 가지로 병이 있어서 내가 불러줄테니 또 와 줘」.
음, 그래서 부자가 되었나 생각했습니다.
이 예는 이른바 ( 신허 )腎虚로 생각하여 00丸을 썼고, 제가 극적으로 그 효과를 실감했던 예입니다. 환자의 기분 역시 진단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 최초의 증례입니다.
보행곤란에 0000丸
90세 남성. 1970년. 여행 중 넘어져서 도쿄에 옴. 아버지의 부탁으로 요코하마의 대저택에 왕진. 몸집이 작고 안색이 불량하며, 야위고, 피부가 검은 노인. 몇 년 동안 허리와 다리가 약하고 걸을 수 없다. 여러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었다. 나이 탓이라는 말을 듣고 화를 냄. 요통, 다리에 힘이 없고, 보행곤란으로 정원 산보도 할 수 없다. 야위고 야간 빈뇨, 고혈압, 손 떨림, 신경이 곤두섬. 복진에서 腹力이 없으며, 臍上悸, 臍下不仁. 위장은 튼튼함. 의뢰에 의해 내 준 처방전에 000000000 3.0 처방을 적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데려다 주고 작별함.(사례는 없었다.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1개월 뒤 부탁을 받고 다시 왕진. 극적으로 좋아지고, 요통은 없으며 다리가 튼튼해져서 근처 산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찬사에, 본인은 불만의 말 「한약이 이렇게 효과가 좋은 것은 몰랐다. 좀 더 빨리 복용했으면 좋았을 걸. 그렇지만, 비싸서 많이 먹을 수는 없잖아!」라며 화난 표정.(약값 100엔)「보험 적용되지 않는 것은 자네의 태만이야!」 注) 한약 엑기스 제제의 보험 적용은 이 일이 있고 5년 뒤. 아사다 소하쿠浅田宗伯*「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과 재산을 중시하고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빨리 관둬야 한다.」(栗園醫訓) *아사다 소하쿠浅田宗伯(1815-1894) 막부 말기・메이지시대의 한의사(松田邦夫「活治験録」204b) ☆ 이 예는 이른바 腎虚로 생각하여 0000丸을 사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