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여느 때 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여유로운 마음에 무엇인가 쓰고 싶어졌다. 어제저녁에 몰아 읽은 신문 기사를 접하며 가졌던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요 며칠간 신문 한 면씩을 도배하고 있는 소설가 한강의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다. 신문을 덮고 TV 채널을 틀었는데 여기에서도 한강 이야기. 내가 저녁 시간에 즐겨 보는 EBS TV 채널에서는 정규적으로 방송되는 여행 다큐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한강의 특별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영국의 명망이 있는 문학상이라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즉시 그 책을 주문했다. 2016년으로 기억된다. 영문으로 번역된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이었다. 그가 내게도 잘 알려진 어느 소설가의 딸이라는 이야기에, 또 그는 내가 거의 알지 못하는 작가여서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근데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책을 덮었다. 기대에 못 미쳤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재미, 문학적으로 밑줄을 그을만한 표현, 교훈도 찾지 못했다. 공감하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폭력에 저항한다고는 하지만, 내게는 한갓 연약한 굴종 자, 피해망상 자의 심신박약, 정신이상의 도피와 이상 심리를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소감을 느꼈다.
작가 한강에 대한 기억의 또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하나의 겨레를 외치며 한창 북한과의 평화 타령을 일삼던 시기의 일이다. 한강이『New York Times』 지에 기고를 했다는 기사가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란 타이틀의 이 기고문에서 나는 미국을 전쟁광으로 지칭하는 듯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정은의 핵 위협에 맞서는 미국이나 우리의 입장보다는 김정은의 입장을 보다 두둔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기고문에는 625 참전 당시 미군 폭격기의 폭격으로 희생된 이른바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폭력과 폭정에 신음하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비판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언론 보도를 보니 한강은 그 이후에도 여러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소설을 꽤 많이 썼다. 하나같이 폭력에 항거하는, 폭력의 비극에 맞서는... 등등의 평가를 받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 남한에서 벌어진 현대의 시대에서 발생한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특히 ‘제주 4·3사건’ ‘5·18 광주사태’와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내가 보는 이념적인 시각에서 보면 모두가 좌 편향, 종북 성향의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다분히 왜곡된 역사를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 아닐까?
남북 간의 평화 무드가 곧 실현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문재인 정부 시절 또 한 사람의 소설가로 한강과 비슷한 성향의 정치 사회 참여로 인해 내 눈에 띄었던 소설가가 있다. 공지영 작가다.『봉순이 언니』라는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던 작가다.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소설『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에 버금가는 소설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다. 폭력에 항거하는 소설이라면 이문열의 『일그러진 우리의 초상』이라는 소설도 기억이 난다. 이 두 소설 모두 나의 공감이 컸던 소설이다.
내가 노벨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이라면 한강보다는 공지영이나 이문열에게 이 상을 주었을 듯싶다. 아니 일찍이 대하소설『토지』나 『혼불』을 쓴 소설가 박경리 또는 최명희에게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주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박경리의『토지』는 최근 일본에서도 일본어 번역본이 완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노벨상 발표될 시기가 되면 과거 해마다 황석영이라는 이름의 이념 편향, 종북 행보의 소설가가 거론되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평화라는 미명 아래 남북한 올림픽 선수 단일팀 구성이 추진되고 있었다. 스위스 로잔에 도종환 문화체육부장관이 파견되어 올림픽위원회와 접촉하고 있을 당시 나는 IOC 홈페이지를 통해 토머스 바흐 IOC 위원장에게 남북한 평화라는 사안이 논란이 되는 정치 이념의 이슈이기도 한 상황이므로 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단일팀 구성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답변도 없이 홈페이지에서 내 글을 포함하는 그 칼럼의 탭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이후 토마스 바흐는 2020년 서울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 4·3사건이나 5·18 광주사태와 관련한 한강의 소설은 그녀의 역사 인식에서 본다면 그것은 왜곡된 출발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와 같은 다른 한편의 입장에 서면 문학을 위장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란 말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을 문학으로만 보라는 이도 있지만, 역사를 왜곡하는 창작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 훌륭한 다른 작가의 작품도 많이 있는데 말이다.
노벨위원회의 역사 인식이 부족한 것일까? 그 호들갑을 떨던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그 과정에서 그가 밭은 노벨평화상. 그것이 내가 인식하고 있던 노벨상의 권위에 걸맞은 상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되짚어본다. 한강에 대한 노벨위원회의 수상 결정 역시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의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대한 충분한 인지를 가진 것이었을까? 단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국격이 올라갔다는 등 해서 한강의 수상 소식에 찬양 일색이다. 한국 언론과 입을 꾹 닫고 있는 비평가들의 모습이 ‘광주 민주화운동’이라고 말하는 이른바 성역화되다시피 한 5·18 광주사태에 대한 우리의 언론과 문단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듯해서 좀은 씁쓸하다. 다양한 시각의 제시, 비판적인 평가 또한 문학의 한 영역이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일사불란하게 박 대통령을 몰아세웠던 언론, 30년 이상 구독하던 조선일보를 끊고 그간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듣지 않았다. 지난해 시골로 내려오면서 동아일보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집배원이 배달해 주는 신문이 하루나 이틀 늦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세상살이 소식을 전해 듣고는 했는데, 역시 천편일률의 보도만인 동아일보도 구독을 접어야겠다. 우리 지역 신문으로 바꿔 읽어야겠다.
(2024.10.16.)
첫댓글 노벨 문학 수상자 한강은 금번 작
품소재가 제주 4.3사건에서 경찰
은 학살자, 5.18사건에서 국군을
학살자로 묘사했다는 주장이 있다
문학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
어야지 왜곡ㆍ날조된 역사, 그것
도 대한민국 안보에 치명적인
해악이 될 수 있는것에 둔다면
이는 대한민국전복을 위한 북
한의 대남공작이 될 수 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이 과연 대한
민국 국격을 높일수 있는가?
스위스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과연 한반도 안보상황과 대한민국
역사왜곡실태를 알고 있는가?
참으로 해괴망측한 불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