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우리 의지가 어디 있는가 / 빌립보서 3:13-14
의지는 우리 삶의 근간이다. 가옥에 기둥이 없다면 집이 무너지듯이, 의지가 없다면 우리 삶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의(意)란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이고, 지(智)란 마음이 가고자 하는 바를 가르치는 것이다. 사람의 의지는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 흘러간다.
첫째는 물질에 대한 것이다. 물질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물질 얻기에 일생을 바쳐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노력만 허비하게 된다. 이는 물질의 주인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을 천하게 여기고 물질 이상의 귀한 것을 찾는 이들도 있다. 옛 헬라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고목 밑에서 거주하며 내뱉는 말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주겠다 하자, 그는 왕이 햇살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주기만 해달라고 답했다. 동양의 허유 같은 이도 요임금이 천하를 사랑한다는 소리를 듣고 더러운 귀를 씻었다. 이들은 물질 이상의 것을 추구한 이들이다.
둘째는 학식을 갈망하는 것이다. 학식에는 철학, 문학, 과학, 공학, 의학, 신학 등 여러 분야가 있다. 그런데 이런 학식을 바르게 활용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으니, 이는 학식의 근본을 모르기 때문이다. 한 식물학자가 교실에 들어와 식물은 태양으로 살아간다고 하자,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이 "식물은 누가 만들었는가?"라고 물었는데, 그가 "태양이다"라고 대답하다 "그렇다면 태양은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셋째는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다. 의지를 이 방향에 두고 노력했으나, 자신의 야심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타락하게 된다. 히틀러의 명예심은 절대적이었으나, 국민들에게 자신에게만 절하라고 독재하다 결국 실패하여 죽고 말았다.
중세기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횡포도 모두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우상숭배이므로 하나님께서 멸하시고 다시 민주주의로 변화시키셨으나, 아직도 그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자기중심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 감리교에서도 '보수파'니 '진보파'니 하며 자기편만을 주장하고, 장로교에서도 '고신파'니 '조신파'니 하며 자파를 내세운다. 이런 우상숭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참된 교회가 되기 어려우며,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죄인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정신과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이 가르침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의지는 이런 방향으로 움직여야 공명과 학식, 경제 등이 바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