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물질(螢光物質)의 기원
한국화학연구원 소자나노재료연구센터
정하균
몇 해 전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초래하였다. 이를 계기로 최근 지하철역에는 사고로 인한 정전 등의 비상시 지하철 이용 승객들이 피난구나 피난통로를 어둠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축광(쉬운 표현으로 야광물질) 유도표시 시설을 설치하는 곳이 늘고 있다. 이 축광체는 긴 잔광시간을 갖는 형광물질의 하나이다. 형광체는 가해지는 에너지(일반적으로 빛)를 흡수하여 가시영역의 파장을 가지는 빛을 방출하는 물질(통상 무기화합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더 쉽게 형광물질을 접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우리의 집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적어도 하나 또는 그 이상을 가지고 있을 TV나 모니터의 화면상에서 색(빛)을 표시해주는 성분이 바로 형광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류는 언제부터 형광체를 알게 되었고 이를 이용하게 되었을까?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이야기로 17세기 초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의 연금술사였던 Vincentinus Casciarolo는 귀금속을 추출해내기 위해 화산지대 부근에서 채집한 광석을 가열하였지만, 귀금속 성분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가열한 광석을 일정한 시간 동안 햇빛에 방치해 두었다가 어두운 곳으로 옮겨놓자 붉은색의 빛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 광물을 ‘Bolognan stone’이라고 이름 붙이게 된다. 나중에 이 광물은 황산바륨(BaSO4)이 주성분인 Barite광(鑛)으로, 이 광물의 가열 후 얻어지는 BaS가 빛을 방출하는 형광물질임이 밝혀졌다. 발광(發光)하는 물질에 대한 Vincentinus Casciarolo의 최초 발견 이후로 많은 유사한 발광물질들에 대한 보고가 유럽 전역에서 이어졌고, 그때부터 빛을 방출하는 광석을 그리스어로 ‘빛을 발하는 물질’을 의미하는 ‘형광체(phosphor)’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동양에서는 이보다 약 700년 앞선 10세기 무렵 중국의 송대(宋代) 문헌에 형광 안료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송나라의 수도승이었던 문형(文瑩)이 지은 상산야록(湘山野錄)이라는 문헌에 송나라의 두 번째 황제인 태종(976-998)에게 진상된 흥미 있는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그림은 소를 그린 것이었는데, 이를 낮에 보면 우리 밖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고 밤에 보면 소가 우리 안에서 쉬고 있는 장면을 나타내는 신기한 그림이었다고 한다. 소 그림이 처음 진상되어 왔을 때 어느 누구도 그 현상에 대하여 설명하지 못하였지만, 수도승이었던 찬녕(贊寧)이 고하기를, 밤에만 보이는 잉크(색)는 특별한 종류의 진주조개 껍질이 소량 섞인 것이고 낮 동안에만 보이는 잉크(색)는 화산(火山)으로부터 해안가로 떨어진 암석을 갈아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최초의 형광 안료에 관한 기록에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그림 참조) 가령, 강남 윤주 절도사였던 서지악(徐知諤)이 그림을 오십만 냥에 구입하여 태종에게 바쳤고 조개껍질은 일본 남부의 바닷가에서 수집되었으며, 암석은 회오리 바람에 의해 화산으로부터 해안가로 옮겨져 왔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그 형광 소 이야기가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이 1000년 이상 전부터 형광 안료를 알고 있었고 안료가 조개껍질이나 화산 암석과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 시기에 화산이 많은 일본의 대표적인 대중국 수출품이 황(Sulfur) 이었다는 것에서 오늘날의 황화물 형광물질과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겠다.
연금술의 시대 이래로 유럽에서는 빛을 흡수하여 가시광을 방출하는 형광물질이 익히 알려져 있었으나, 본격적인 형광체의 이용은 전자빔, X-선 및 자외선을 만들어내는 장치들이 특수한 발광 디바이스를 만들 목적으로 형광체와 결합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형광등, 수은등, 음극선관(CRT) 등 다양한 발광 디바이스의 출현에 따라 형광물질의 활용이 대폭적으로 증가되었고 관련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형광체는 이제는 우리가 직접 보고 만지지는 못하지만 이미 우리의 생활 곳곳에 파고들어 없어서는 안 되는 화학물질 중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근에 형광체의 응용분야는 백색 LED, PDP/LCD, X-ray screen 등 조명, 디스플레이 및 의료검사에 이르기까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도 형광물질을 이용하는 새로운 응용분야가 얼마나 더 창출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그림 출처> Phosphor Handbook, 2nd Ed, CRC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