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취미의 종교 / 골로새서 3:12-17
믿음은 취미로 얻는 것입니다. 취미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됩니다. 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해당됩니다. 배워서 익히면 즐거워지듯이, 유교에도 이런 취미가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오묘한 종교야말로 그러할 것입니다.
믿음에는 참으로 많은 취미가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하늘의 새로운 소식을 듣고, 마음에 새 소망을 품게 되며,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되니 그 즐거움이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지성이나 도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취미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 취미생활에 들어간 후에는 세상 것들을 쓰레기같이 여기게 되었습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도 바로 이 취미생활의 일부이며,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맹자가 양해황에게 현자라야 즐거워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런 취미의 도를 말한 것입니다.
무엇으로 취미를 삼든 항상 새로운 발견이 있습니다. 익숙한 세계에서는 발견할 것이 없지만, 신을 만나는 미지의 세계에서는 무한한 발견이 있습니다. 신을 따라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본 계시와 바울이 본 셋째 하늘이 그 예입니다. 비록 그들과 같은 계시를 보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믿음에 따라 새로운 계시를 얻게 됩니다. 경건한 이에게는 이런 오묘한 경험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깨닫는 때에 무한한 취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신성한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아에는 거룩한 자아와 죄 많은 자아가 있습니다.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이들은 불교의 인과설에 매여, 죄악이라면 오직 죄뿐이고 죽음이라면 오직 죽음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종교에는 죄인도 성인으로 만들 수 있고, 죽음에서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자아를 발견할 때, 그보다 더 큰 지식도, 더 큰 복도 없습니다. 이에 서로 취미를 나누게 됩니다.
또한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를 찾게 됩니다. 세상과 인간에게 있는 것들은 변화무쌍하지만, 주님께서 옳으시다면 그것은 영원히 옳습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이런 진리 안에 거하게 되면 비애, 후회, 눈물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종교는 때로는 옳다 하다가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교리는 맞지만 내 양심에 허락되지 않아 겉으로만 지키고 내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떤 취미가 있겠습니까?
진리가 옳다면 나도 옳다 하고, 옳지 않다면 나도 그렇다 말하여, 성경 말씀이 내 양심에 비추어 보아 결코 괴롭지 않을 때, 이것이 진정한 취미의 종교입니다. 취미에는 모험도, 기쁨도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소유하게 될 때,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바울의 간증처럼 그것을 끊을 자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