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커피의 나라. 온몸에 얼룩무늬 칠을 하고 사냥을 하는 원시 부족의 땅. 아울러 우리가 에티오피아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이 나라가 아프리카의 여느 나라와 달리 유럽의 지배를 거의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가 점령했던 5년을 제외하면 에티오피아는 3000년 역사를 비교적 그대로 간직해왔다. 덕분에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고유 문자(암하릭어)를 지킬 수 있었다. 율리우스 역법을 지켜 1년에 13개월이 있고, 12시간제를 따라 하루가 두 번 반복되는 나라.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찬란했던 영광의 도시 곤다르(Gondar)에 가면 그 흔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중세 유럽 닮은 전 수도 곤다르 왕가 성채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900m 성벽·궁전·도서관 등 흔적
옛날 목욕탕은 수증기로 몸 데워 우리처럼 임산부 산후조리로 활용
황제의 수영장선 세례 의식 치러매년 1월 19일 강물 채워서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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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실게비의 대표 유적은 파실라다스 황제가 세운 궁전이다. 탑의 지붕 모양이 달걀을 닮았다고 해서 '달걀성'으로 불린다. [사진 최현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가면 과연 아프리카가 맞나 싶은 도시를 만난다. 1632∼1855년 220년 동안 에티오피아의 수도였던 암하라주의 성곽도시 곤다르다. 공항 건물부터 중세 유럽풍의 느낌이 난다. 공항에서 차를 타고 30분 남짓 달리면 곤다르 왕가의 성채 파실게비(Fasil Ghebbi)에 다다른다.
파실게비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전체 길이 900m에 이르는 성벽과 궁전·법원·수도원·연회장·도서관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중에서 압도적인 건 파실라다스 황제가 세운 궁전이다. 탑의 지붕이 달걀을 닮았다고 해 달걀성(Enqulal Gemb)으로도 불리는데, 멀리서도 한눈에 띌 만큼 위풍당당하다.
계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아치형 문을 지나면 넓은 홀과 황제의 침실이 3층까지 이어진다. 견고한 만듦새와 치밀한 구조, 미학적 완성도와 함께 놀라운 건 1600년대에 지었다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보존된 상태다. 꽤 넓은 공간에 드문드문 건물이 자리한 파실게비를 걷다 보면 잘 지은 박물관에 온 듯한 기분이다.
달걀성과 함께 보존 상태가 좋은 건물로는 파실라다스 황제의 아들 요하네스 1세가 세운 도서관이다. 외벽과 계단, 창문까지 잘 보존되어 최근까지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야수스 1세의 궁전은 파실게비에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했던 곳이다. 높은 아치형 지붕의 건물을 금박과 베네치아 거울, 상아 등으로 장식했다. 지진과 영국군의 공격으로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 지금은 괴괴한 모습이다.
파실게비의 목욕탕. 우리의 한증막처럼 수증기로 몸을 데워다고 한다. [사진 최현주]
웅장한 궁전들에 가려 지나치기 쉽지만, 파실게비에서 꼭 한번 둘러봐야 할 곳은 목욕탕이다. 작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야트막한 천장의 동굴이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한증막처럼 안에서 불을 때 수증기로 몸을 데웠다고 한다. 아이를 낳은 여성이 조리를 위해 주로 찾았다니, 우리와 흡사한 에티오피아 문화가 놀랍기만 하다.
파살리디스 황제의 수영장. 매년 1월 19일 탐캇 축제가 열린다. [사진 최현주]
파실게비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파실리다스 황제의 수영장도 곤다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파실라다스 황제가 고르고라(Gorgora)에서 곤다르로 수도를 옮긴 이유가 있었다. 우선 고르고라에 말라리아가 창궐해 도저히 살 수 없었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다. 가톨릭의 영향이 커지자 황제는 에티오피아 정교회만을 믿는 새로운 도시가 필요했다.
해발 2000m 이상 고지대에 자리한 곤다르는 말라리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 말고도 가톨릭을 자연스럽게 배척하고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굳건히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파실리다스 황제의 수영장도 그러한 맥락에서 세워진 시설이다. 마을 입구에 지은 수영장에서 에티오피아 정교회 의식인 세례를 받아야만 곤다르 주민이 될 수 있었다.
넓은 잔디 마당을 지나 수영장 안으로 들어서면 덩그러니 건물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자세히 보면 꽤 넓고 깊게 판 공간 안에 건물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년 1월 19일 팀캇(Timkat) 축제 때 강에서 물을 끌어와 채운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예배를 드리려는 사람들과 서로 물을 뿌리며 축제를 즐기는 인파가 몰려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에티오피아 교회 예술의 진수로 꼽히는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에(Debre Berhan Selassie)도 추천한다. 이야수 1세가 1690년대 지은 교회로 1880년대 남수단의 광포한 공격에도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았다. 당시 남수단의 이슬람 세력이 문 앞까지 쳐들어왔는데, 벌떼가 파도처럼 몰려들어 적을 멀리 쫓아냈다고 한다. 덕분에 곤다르의 40여 개 교회 중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에만 건재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천장에 135명의 아기 천사가 그려져 있는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교회 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명소다. 1880년대 이슬람 세력이 쳐들어왔을 때 벌떼가 몰려들어 쫓아냈다고 한다. [사진 최현주]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하고 엄숙한 분위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장에 135명의 아기 천사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날개를 단 아기 천사들이 행과 열을 맞춰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똑같아 보여도 아기 천사의 표정이 다 다르다고 하니 유심히 살펴보자. 예수의 십이사도를 뜻하는 12개의 둥근 기둥이 교회를 지지하고 있으며 입구에 있는 13번째 기둥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 에티오피아에 입국하려면 반드시 도착 비자가 있어야 한다. 비용은 50미국달러.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에서 현금으로 구매해야 한다. 에티오피아항공이 인천∼아디스아바바 주 4회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12시간 정도 걸린다. 호텔마다 플러그 모양이 다르니 멀티 어댑터가 필요하다.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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