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가 겨울로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이었습니다. 입동 전날부터 올가을 들어 처음으로 기온이 0℃ 아래로 떨어지고 서리도 내렸습니다. 이제야 겨울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따뜻하기만 했던 가을이었는데 올겨울은 매우 추울 거라고도 합니다. 시골살이에는 겨울을 맞으며 해야만 하는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간의 따뜻한 날씨 덕분에 이런저런 일들을 미루어오기도 했는데, 그만큼 앞으로 겨울을 맞으며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우선은 가을걷이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올 농사의 가을걷이는 이미 거의 다 마쳤습니다. 겨울을 나서 새봄에 채취할 개성배추, 시금치, 춘채라는 월동 채소, 쪽파, 양파 등 몇몇 작물은 이미 씨앗을 뿌리거나 종구(種球)를 심었습니다. 각종 김장 채소는 오늘 하는 김장을 위해서 며칠 전에 모두 거두어들였고요. 가을 감자도 어제 캤으니 남은 것은 서리가 내리고 한참 후에 수확하는 서리태 콩입니다. 며칠 뒤에 뽑아서 바싹 말린 뒤 털어야 합니다. 겨울을 밭에서 나는 씀바귀가 있지만, 이것으로 올해 농사는 마무리가 됩니다.
10월 말이면 캐야하는 알뿌리 식물이 있어요. 다알리아, 글라디올러스와 칸나입니다. 알뿌리가 얼기 전에 캐서 말린 뒤에 보관해 두어야 내년 봄에 다시 심을 수 있습니다. 토란도 대궁이 얼기 전에 잘라서 껍질을 깐 뒤 말려서 식재료로 쓰고 알뿌리는 캐서 말려둡니다. 성가신 일이지만 오랫동안 훤칠한 키에 수려한 잎새를 볼 수 있는 칸나와 드넖은 잎새의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토란은 그 성가심을 상쇄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다알리아는 백일홍보다도 더 긴 시간 서리가 내리기 까지 꽃을 보여줍니다. 땅콩을 심었던 자리에 심은 쪽파가 예쁘게 싹을 올렸습니다. 수확을 마치고 나면 땅이 얼기 전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먼저 가을 밭갈이 추경(秋耕)을 해야 합니다. 온갖 것들을 키워 올려서 그 힘을 소진 시킨 땅이 숨을 쉬게 하고 땅심을 높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보통은 비닐 멀칭을 해서 작물을 기르는데 그 비닐을 그대로 두면 땅이 겨우내 숨을 쉬지 못합니다. 밭을 갈기 전에 퇴비를 넣어주면 천천히 영양분이 흡수되어 땅이 기름져집니다. 들깨를 수확하고 고춧대를 뽑아낸 곳, 김장 채소를 거두어들인 공간 등 추수를 마친 밭에 땅이 얼기 전에 퇴비를 넣고 갈아줍니다.
밭갈이하지 않는 밭에는 웃거름을 줍니다. 매실, 자두, 살구, 사과, 복숭아, 꽃사과, 배, 아그배, 체리 따위의 과수와 머루에 유기질 퇴비를 뿌려줍니다. 또 겨울을 나는 다년생 작물인 산마늘(명이나물), 섬쑥부쟁이(부지깽이나물), 곰취, 참취, 부추, 쪽파 따위에도 거름을 뿌려줍니다. 내년 농사를 올해 늦가을 또는 초겨울부터 시작하는 셈입니다.
나무 가지치기도 합니다. 과수는 물론 농원 안의 나무들의 웃자란 나뭇가지나 밭에 그늘을 만들고 나뭇잎을 떨구는 것들을 잘라줍니다. 나무들이 낙엽을 떨구고 뿌리 아래로 물을 내리는 지금이 가지치기의 알맞은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봄이면 물이 오르기 시작해서 자칫 동해(凍害)를 입을 수 있고, 바쁜 봄철의 일품을 줄일 수 있습니다.
건사할 것은 밭의 작물과 나무뿐만이 아닙니다.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강아지 ‘산’이 집과 닭들의 집인 ‘큰골꼬꼬홈’의 보온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개나 닭이나 모두 여름 더위를 타지만, 겨울 추위도 많이 탑니다. 개집 안쪽의 벽면과 바닥을 개가 물어뜯지 못하는 단단한 재질의 소재로 둘러주고 깔아 줍니다. 창문은 두꺼운 비닐로 막아 주구요. 닭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망으로 되어있는 바깥 부분은 절반의 높이를 천으로 둘러서 바람을 막아주고, 창문과 출입문도 투명한 소재로 바람막이를 덧대줍니다. 농사용 전기를 끌어서 닭들이 마시는 물도 항시 따뜻하게 해줄 참입니다. 고양이 ‘바다’는 집안에서 함께 지내기에 겨울나기에 별다른 신경을 쓸 일이 없습니다. 닭장 큰골꼬꼬홈의 바람막이도 해줘야 합니다. 다음 차례는 나 자신의 겨울 채비를 해야 합니다. 가장 큰 일은 김장입니다. 이 일은 아내가 주도하는 일입니다.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서 김치를 담그기에 사흘 정도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하던 행사를 올해부터는 이곳 농원으로 그 장소를 옮겨서 하고 있습니다. 그제부터 온갖 준비를 해서 입동 이틀 뒤인 오늘 올해의 김장을 합니다.
김장을 하고 나서는 땔감 준비를 합니다. 집안을 따뜻하게 덥혀 줄 난방 보일러에 기름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서재와 공방을 겨우내 따스하게 만들어 줄 난로용 장작을 패야 합니다. 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장작을 패는 일만큼 즐거운 일도 없습니다. 노동의 보람과 운동의 효과, 몸에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홀가분함 같은 것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작이 가져다줄 따스한 온기에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장작으로 팰 낙엽송 통나무 초겨울에 땔 장작은 지난해 준비해놓은 것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장작을 좀 더 마련해야 올겨울을 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장작을 패서 쌓아둘 헛간 하나를 좀 넓혔습니다. 소형 농기계 따위를 보관하는 곳입니다. 지난해 베어서 쌓아두었던 통나무가 잘 말랐을 것입니다. 틈틈이 장작을 패서 가득 채울 것입니다. 장작을 패고 나서는 그 이듬해에 쓸 나무를 준비해야 합니다. 뒷산에서 줄기가 부러진 나무를 베어오기도 하고 간벌 차원에서 나무를 솎아내서 통나무를 만들어 쌓아둡니다. 통나무는 해가 지나면서 적당히 건조되어 장작으로 팰 수 있는 좋은 땔감이 됩니다. 이어서 넓힌 장작 헛간 좀 성가신 일은 난로 굴뚝 청소를 하는 일입니다. 긴 장대에 솜방망이를 달아서 서재의 화목 난로로부터 바깥으로 나 있는 긴 연통을 닦아 줍니다. 봄에 했으면 좋았을 것을 미루다 보니 난로에 불을 지피기 전에는 해야만 합니다. 불길과 연기가 잘 빠져나가도록 연통의 외부 통풍구를 바꿀 참입니다. 수평으로 설치된 T자형 통풍구를 곧추선 형태의 갓이 달린 것으로 교체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불길이 더 잘 들고 연기가 잘 빠져나가면서 연통 속의 그을음도 덜 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스한 겨울이 기대됩니다. 활활 불이 타오를 난로를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오늘 김장하는 날 날씨가 무척 좋을 듯싶습니다. 아침 기온이 꽤 올라가고 하늘이 맑게 열리고 있습니다. 손수 김장을 하는 분들도 계시지요? 어쨌든 겨울맞이 준비를 서둘러야겠습니다. (2024.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