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살인에 죄값이 있냐?
맛깔나는 영화여행/2009 건방떨기
2009-04-03 20:52:29
<2009년 4월 16일 개봉작 / 18세 관람가 / 130분>
<양익준 감독/출연 :양익준, 김꽃비, 이환, 정만식>
1.
이런 경우가 있단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죄를 짓고 나온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깥생활보다 감옥생활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여 죄를 짓기로 했다. 그리고,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온 다음 사람을 죽이기로 마음먹었고, 그는 그대로 실했했다. 그리고 그가 죽인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3명의 가족이다. 그 사람들이 죄가 있어서 죽인 것이 아니고 그저 감옥에 가고 싶다는 그래서 편안하게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이상한 일념이 그를 살인자로 몬 것이다. 그렇다면, 감옥이 얼마나 편하기에? 가보지 않아서 그건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감옥은 사람을 갱생시키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갇혀 있다는 자체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이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는 오고 싶지 않게 만들 만큼 치를 떨 만큼의 장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인권 인권 운운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감옥에서의 인권이라면 나는 반대하고 싶다. 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2.
상훈은 깡패다. 사채업자의 직원으로 돈 안 갚는 사람 돈을 받아내는 현명한(?) 깡패다. 그는 진짜로 없는 이의 돈을 억지로 뺏지 않는다. 있는데도 없는 척 하는 사람을 귀신같이 잡아내 죽어라 들이대는 그런 깡패다. 그런 그에게는 술만 취하면 어머니를 패던 아버지가 있다. 어머니는 우연한 사고로 죽었고, 그의 동생은 아버지의 실수로 죽었다. 상훈은 딸을 죽인 댓가로 감옥살이를 하다 나온 아버지를 욕하고 패는 게 일상사다. 그는 말한다.
"살인에 죄값이 있냐?"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댓가가 겨우 15년이라면, 살인은 얼마든지 저질러도 되는 것 아니냐? 라는 비판을 영화는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비판보다 더 큰 아픔을 겪는 아버지를 보여준다. 상훈으로부터 시작되는 폭력과 욕설, 그리고 그로 인해 오는 정신적 고통. 결국 자살을 시도하지만, 상훈은 그런 아버지를 필사적으로 살려낸다.
상훈이 받은 상처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상훈이 배운 언어는 폭력과 욕설 뿐이고, 그로 인해 대화하는 방법을 잃은 그는 세상을 쉽게 살아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와의 대화조차 폭력과 욕설만으로 할 뿐이다.
3.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난 연희는 그의 상처를 하나씩 치료해준다. 연희가 그를 상담가처럼 대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희는 자신의 아픔을 보여주지 않으며 밝은 모습으로 상훈을 대한다. 상훈의 험한 태도에도 까지 자기 주장을 해나가며 자신의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상훈에게 늘 당당하기만 하다. 그런 그들은 서로에게 남이 아닌 남이 되어 서로에게 차츰 동화해간다. 그리고, 욕설은 여전히 난무한다. 그리고 그 욕설은 어느 순간 유머로 변질된다. 그것은 마치 상훈이 배다른 누나와 아버지에게 보여줬던 적대적인 태도가 점점 더 유순하게 변해가듯이, 욕설 역시도 그와 같은 궤도를 같이 해 변해간다. 하지만, 영화는 불운하다. 어찌됐든 상훈이 연희 어머니를 죽인 과거의 잘못은 연희 동생 영재에 의해 복수한 듯한 결말이 되어버렸다. 그것이 우연인지 아닌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4.
그런데, 이 영화 줄거리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이 난무하면서도 왜 이렇게 웃음이 자주 나오는지 알 수가 없는.... 지금은 그 많은 웃겼던 상황들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오로지 줄거리만 남아있는, 참 희한한 영화다. 감독은 말한다. 캐릭터 표현에 대한 자유로움을 주었고, 어느 순간 배우들이 그 안에서 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자유로움 때문에 그들의 연기는 모두 훌륭하게 되었을 것이다. 똥파리의 의미는 "곁에 없으면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영어제목의 뜻은 "숨을 쉴 수가 없는"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마디로 <똥파리>다. 그런데, 그 <똥파리>가 자꾸 보인다. 곁에 없으면 하지만, 잡기는 싫다. 그러니까, 정은 가지 않지만 그다지 욕하고 싶지는 않다.
살인은 반드시 죄값을 치뤄야 한다. 죄값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죄값은 분명 그에 상응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똥파리>도 분명 그 댓가를 받은 것이다. 상훈을 죽였던 그 또 하나의 <똥파리>도 분명 그 댓가를 치를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상훈은 죽었어도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현실 속에서 웃음을 짓고 있다. <똥파리>가 죽으면 징그러워 하겠지만, 슬퍼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이 그들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상훈이 받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훈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상처도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이런 혹독한 현실을 정말로 혹독하게 그린다. 정말로 험힌 세상이 이 영화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