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입구에 지어진 삼성전자 공장은 내가 본 가장 크고 깔끔한 건물이었다. 하노이로 들어서자 서서히 목이 칼칼해져 온다. 매연이 생각보다 심했다. 오후 3시 30분이 다된 시간인데 퇴근시간이라고 한다.
오토바이로 가득메운 길의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많은 오토바이를 탄 일행이 엉켜 있으면서도 마치 물이 흐르듯이 유연하게 빠지는 모습에 감탄을 자아낸다. 모두가 오토바이를 타다보니 버스의 숫자가 생각보다 적었다. 사람들이 무척 날씬했다. 뚱뚱한 사람은 하노이의 부촌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이곳 부촌 아파트는 서울의 아파트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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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들었는데, 향료 탓인지 음식이 늘 거북했다. 음식도 문화라는 말대로 적응해 보려했지만 힘들었다. 내가 글로벌한 인간이 되긴 애당초 틀렸다. 저녁 후에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로 가서 시장을 구경하고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수 많은 서구인들이 모였는데 이곳은 호수와 골목이 집중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수상인형극이 열리는 극장앞 - 서양과 한국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시장을 돌아볼 '트리카'를 기다리는 관광객들
작은 점포들로 가득한 이곳을 서양인들은 무척 좋아 했다. 거리 곳곳마다 단체 관광을 온 한국인들로 북적 댔고, 서양인들은 가족단위로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왜 한국이들이 베트남을 이렇게 사랑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한국의 단체 관광객은 거의 중장년 층이다. 젊은이들도 상당수가 외국에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베트남에서 노인은 좀처럼 보기가 힘들었다. 거의가 젊은 남녀었고 이들은 자유분방하고 발랄했다.

서양인들은 주로 인력거를 타고
성질 급한 한국인들은 트리카를 타고

인력거와 프리미엄 밴과 관광버스가 엉킨 거리
(앞의 두사람은 가이드, 여자는 베트남)

한국의 롯데리아도 진출했다.
호치민
아침. 건기여서 매우 메말랐는데 밤새 비가 내려 산하가 촉촉히 젖어 있어 상쾌했다. 날씨도 쌀쌀해 우비를 입었다. 호치민이 영면한 기념관으로 갔다. 호치민 주석의 생가를 비롯해 그가 거주하며 생활한 곳은 참 소박했다. 그는 당대 영웅의 기질과 모범을 손수 보여준 훌륭한 지도자였다.
이곳엔 베트남 전국의 중장년 층들이 단체 관광을 위해 찾아와 북새통을 이뤘고 수 많은 프랑스인들이 또한 찾아왔다. 프랑스인들은 아마 자신들이 지배했던 역사의 흔적을 찾으러 와서 선조들의 위업에 자부심을 느꼈으리라.

호치민이 영면한 기념관

교대를 위해 행진해 들어가는 경비병들
호치민은 죽어서 신이 되었다. 호치민이 안치된 곳은 하얀 제복의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고, 노란 선을 그어 놓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후루라기를 불며 소리쳤다. 유물론의 세례를 받은 공산주의자들은 인간 지도자를 위한 영면의 처소를 신성한 성전으로 둔갑시켜 영성의 빈 공간을 대신했다. 소련과 중국과 북한과 베트남이 그렇다. 그들은 신이됐다.

호치민 생가에는 베트남 각지에서 온 중장년층이 많았다.

호치민 생가 뒤편의 호수 - 넘 아름다웠다

호치민의 소박한 집무실

호치민 서재에 걸려있는 맑스와 레닌 - 이들은 민족적 자긍심이
강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맑스와 레닌은 이방인이 아니던가?
하노이는 2030년엔 오토바이를 금지시킨다고 한다. 너무 매연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을 대체할 대중교통이 마련돼야한다. 우선 지하철이 떠 올랐다. 지하철이 적어도 서울만큼 총총하게 연결되고, 연계된 버스 노선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만만한 사업이 아닐텐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무지 궁금해진다.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이곳의 속을 들여다 보면 사회주의 국가의 한계를 쉽게 발견한다. 우리가 중화학과 중공업으로 50년의 먹거리를 창출했다면 베트남은 새로운 동력에 올인해야 한다. 그것은 IT와 블록체인 같은 신기술이다. 그리고 관광같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투자와 개발이다. 과연 공산당 엘리트들이 그것을 이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베트남 곳곳에 들어 선 공산당과 관료의 건물은 메우 웅장했지만 단절돼 있었다.
국민은 통장에 일정한 금액이 들어서면 세금을 매겨 거둬가므로 개인들은 모두 금고를 마련해 그곳에 현금을 보관한다고 한다. 자본의 생명인 돈이 이렇게 숨어 있어서야 발전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 들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공안의 권한은 막강하다. 그들은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숱한 부를 갈취해 왔다. 공산당 엘리트들은 이런 부패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 분방한 사람들을 공산당 독재에 순응시키기 위해 공안은 권위로 억눌러야한다. 이것이 통치의 핵심이다. 웬만한 사업은 공산당 간부나 공안이 끼지 않고는 할 수 없다는 가이드의 말처럼 이곳은 이미 부패가 만연해 있다.

공항 가기전에 들른 주유소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만찬 장소인 대형 음식점 - 6시에 오픈

홀을 가득메운 사람들 - 부페 종류가 수백가지나 된다

커다란 복도를 가득 메운 부페음식을 덜어가는 사람들

대형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
굿바이 베트남
순수한 베트남인들의 맑은 눈동자 사이로 우리의 북녁 동포를 생각했다. 시대에 뒤처진 공산당 체제에 바탕한 북한을 사모하는 주사파들과 공존하면서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의 나라로 일으켜 세운 저력이 우리에겐 있다. 비행기가 인천에 내리자 마치 억압에서 해방된 자유인 처럼 나는 이 대한민국에 소속된 일원임이 자랑스럽게 다가왔다.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한 나는 개인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호치민은 베트남을 외세에서 구한 영웅이다. 그러나 부패한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을 해방했다면 베트남은 부패의 과도기를 넘어 중진국에 다다랐을 것이다.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 그것에 대한 의문을 어느 정도 푼 계기가 됐다. 호치민은 베트남을 외세에서 해방했지만 현재는 글로벌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들과 화해해야 했다. 같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과는 불구대천의 적대 관계를 가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시대에 뒤진 수구좌파들의 발호가 만연해 있는지 참 궁금해진다.
열심히 살아내는 베트남인들을 통해 진한 동류애가 느껴진다. 한국과 베트남의 더 많은 교류가 있기를 바란다. 베트남은 분명히 아름다운 축복의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