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1949년 11월 19일 조 경성 초전
지금 여년(余年)이 77이라 세상에 무슨 희망이 있으리오. 나의 신체, 나의 생명, 나의 영혼, 나의 사업 나의 생사 전부를 다 하나님께 위임하고 적위(的謂) 나의 것이란 하나도 없다. 몸조차 생명조차 내 것이라 하지 않고 나의 생활은 공수(空輸)뿐이니 무엇을 염려하리오.
이렇게 생각되기는 1945년 8월에 소군(蘇軍)이 청진(淸津) 상륙하던 날 포화가 빗발같이 쏟아지는 고로 할 수 없이 산을 넘어가는데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줄 알았더니 다행히 살아났고 그 후에 병으로 죽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때 또 살아났으니 이 몸과 생명은 나의 것 아닌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것 나의 무달(無怛)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가. 나의 죽음은 주께서 맡았으니 두려운 죄까지도 주께서 맡으셨으니 내 어찌 두려워 하리요. 나의 여행을 예컨대 빙산을 지냄 같으니 빙산을 지내면 저 건너편 나라는 젖이 흐르고 꿀이 흐르는 세상을 목도하면서 갔다. 빙산 지나는 동안 괴롬이 불무(不無)하나 믿음으로 보이는 세상을 보며 나아갈 것이다. 오는 세상의 영광이 나로 하여금 용기 있게 하고 또 무달(無怛)로 들어가게 한다.
그리하여 청진 보안서에 검거 되여 소위 조선형사가 권총으로 쏘려고 하는데 나는 어쩐지 일절 공포가 없고, 소군(蘇軍) 사령부로 넘어가서 소장이 역시 권총으로 쏘려하나 나는 조금도 공포치 않고 도리어 웃으며 심문을 답하니 소장이 말하되 왜 웃으냐 한다. 그러면 무서워하면 좋으냐 하였다. 그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고 집에 나와 생각하니 주의 은혜 감사할 뿐이었다. 그런 고로 믿음의 결과는 무달(無怛)이다.
정일형(鄭一亨) 박사는 어디 혼례식장에서 양복 상하의 외투와 모자 전부를 쓰리가 가져가고 웃도리도 없이 집에 돌아왔건만 그 심경이 태연자약하였다. 우리는 무달(無怛)의 생활을 금생과 내생에 계속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