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북아(北阿)의 유혈소동 4288년 8월 25일(1955년)
북아(北阿) 아랍민족주의자들의 최근에 대불폭동(對佛暴動)은 드디어 전면적인 내전으로 화하게 되었다.
특히 모로코의 유세투왕(王) 석인(席仁) 2년 기념일인 8월 20일을 전후하여 폭발된 대폭동은 모로코 알젠티 내 지역에서 불인(佛人)과 토족양방(土族兩方)을 합하여 일천여명의 희생자가 났다는 사태가 출현케 되었다.
23일 카사부랑타 전(電)은 불당국(佛當國)에서는 이에 대한 보복전이 결행케 되었다. 불령북아(佛領北阿) 일대는 전쟁 같은 감이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불군의 토벌전이 대규모로 되면 그만치 원주민과 불국 측의 희생은 증대될 것으로 될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러한 유혈의 참극은 불란서 식민지인들 격분케 하는 것이요. 따라서 전 세계의 아랍민족과 회교도들을 격동케 될 것이다. 원래 불당국은 문명화 정책이란 일련의 문화식민지정책으로 원주(原住) 아랍인들을 희생하는 동시 불란서령 테두리 안에 있어서의 자치만을 허가한다는 정책을 취하여 왔고 따라서 완전 자유 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운동을 탄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북아(北阿)의 아랍민족주의들은 불란서에 끝까지 반항하는 태도를 취하고 또 그러한 행동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불령(佛領) 북아는 불의 정책과 주민의 반항이 교와 작용되는 중에서 흥정을 보지 못한 채 금일에 이르렀으며 금후 그 어느 쪽이 승리하게 될는지가 아직 예단할 수 없다. 여하간 조속한 타개책이 청구되지 않는다면 북아문제의 전도는 불란서이나 아랍의 세력권 외까지 파급될 수도 있다. 그렇치 않아도 불란서는 북아민족주의자들 대오 속에 공산도배들이 잠입하여 있음을 지칭하여 있고 미국도 북아독립운동에 격화가 장기화되면 적색침투가 있는 만큼 앞으로 자유세계의 공국대책(共國對策)을 수립하여 북아문제의 대처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불란서는 미국을 위시한 자유진영의 견해를 충분히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불란서 문화정책이 현지 아랍인들의 생활 지감수준을 높이고 불모의 사막지대를 현대화하였음을 자유세계가 다 같이 인정하고 있음을 누누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현재의 비극은 장래 역설적인 원인 하나가 바로 이 문화공략을 불인할 수 있는 일이다. 근대교육의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아랍인들에게 주입하였으며 립대(立代) 혹 의료시설과 보건정책이 아랍인들의 인구증식을 금하였으며 민족의 자주독립운동을 직접간접으로 격화하였다는 사실은 불 식민당국자들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독립주의자들에게 인내와 양보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차례로 불당국자의 식민관념 내지 세계관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불(佛) 포르수상은 그 위시한 관료 몇 명이 22일부터 에레벵에서 모로코지도자)들과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물론 이 회의들에서 모로코문제가 완전 해결되리라고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상호간 이해만 있다면 누년(累年)의 진전이 있을 것이다. 불국으로서는 북아영토를 안전히 파기할 수 없다고 실권을 조속히 사여(賜與)하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고로 모로코 24일발 통신은 불수상(佛首相)은 24일 레도이스트를 일개정서(一個圢書)하는데 조력하기 위하여 예비군을 소집하였다. 레도이스트들에 의하여 발기된 폭동은 1,5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였다. 예비군 소집의 발표는 포드수상과 중요한 각장(閣誇) 모로코 지도자들이 비밀회의를 열고 불란서의 에레벵으로부터 입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