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성음악의 발달 대략 9세기까지 서양의 종교음악은 모두 단성음악으로, 미사는 성가를 통한 신앙의 단성적 언급이었다. 그러나 기존 성가에 새로이 작곡된 선율을 혼합하는 관행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기존 평성가에 가사나 음악을 첨가하는 트로프(trope)나 마지막 부분에 추가히는 시퀀스(sequence) 방식이였다. 성인 남자와 소년의 목소리가 혼합된 합창에서, 음역의 차이 때문에(성인 남자와 소년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차이가 난다)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일종의 병행적인 음들의 노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의도적인 대선율의 첨가로 이어졌다. 이러한 선율의 첨가로부터 다성음악과 화성 진행의 개념이 서서히 자라게 되었고, 9세기에 이르러 악보로 기록된 다성음악은 오르가눔(organum)이라고 불리는 원시적 형태로 처음 나타났다. 3성 오르가눔 (1240년 필사본)
오르가눔이란 용어는 원래 ‘악기(특히 오르간)’ 또는 ‘논리 체계’를 의미하거나, ‘발성 기관’을 뜻하는 그리스·라틴 단어이다. 왜 오르가눔이라는 용어가 ‘함께 부르는 방식’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르가눔은 가장 초기 형태인 병행 오르가눔으로부터 시작해서, 13세기 중반경까지 다양한 단계의 다성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오르가눔에 대한 최초의 묘사는 9세기 말 프랑스 북동부 지역에서 발견된,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무지카 엔키리아디스(Musica Enchiriadis)〉라는 논서에서 발견된다. 여기에서 묘사되고 있는 오르가눔은 성부들이 병행으로 움직이는 병행 오르가눔으로, 주성부(vox principalis)라고 불리는 그레고리오 성가선율은 오르가눔 성부(vox organalis)라고 불리는 두번째 성부에 의해서 4도 또는 5도 아래에 중복되어 병행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이상의 성부들이 있을 때는 종종 옥타브로 중복되기도 한다.
10세기와 11세기에 오르가눔 성부들은 점차적으로 병행주의에서 벗어나 선율적 독립성을 취득했다. 이제 병행 오르가눔은 성부 사이에 사진행(斜進行)과 반진행이 병진행과 함께 나타남으로써, 두 성부의 선율적 독립성을 주는 자유 오르가눔으로 대치되었다. 그러나 두 성부는 여전히 엄격히 ‘음정 대 음정’ 양식으로 움직이므로, 오르가눔 성부의 리듬적 독립성은 결여되었다. 이런 ‘음정 대 음정’을 묘사하는 라틴 어 표현은 ‘punctus contra punctum’(음정 대 음정)으로 ‘counterpoint’(대위법)라는 용어의 기원이다.
자유 오르가눔에서 음정들은 4도, 5도, 그리고 옥타브가 지배적이었고, 오르가눔 성부는 여전히 주성부인 성가선율의 아래에 첨가되었다. 선율 진행이 보다 자유로워지면서 성부 교차가 가끔씩 나타났고, 점차 오르가눔 성부의 음정들이 주성부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1100년경에는 두 성부 간에 위치 변화가 일어나 오르가눔 성부는 상성부가 되었다.
12세기 초에 이르러 이미 선율적 독립성을 즐기던 오르가눔 성부가 마침내 주성부에의 리듬적 예속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되는데, 이 중요한 변화는 당시 예술의 지도적인 중심지였던 남부 프랑스 리모주의 생 마르샬 수도원에서 일어났다. 이제 주성부인 성가 선율은 아주 긴 음표들로 느리게 움직이고, 첨가된 성부는 주성부 선율의 한 음에 대해 많은 음을 가지는 다음적 오르가눔 양식이다.
이 새로운 타입의 오르가눔은 다음적 오르가눔이라는 명칭 이외에도 장식적 오르가눔, 생 마르샬 오르가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다. 주성부인 평성가 선율은 아래에 위치하며, 아주 긴 시가로 움직이기 때문에 테너(tenor, ‘지속하다’라는 의미인 라틴 어 tenere에서 유래)라고 불렀다. 이제 음악적 흥미는 성가에서 그 위에 새로이 작곡된 선율로 옮겨졌으며, 이 단계에서 다성음악은 마침내 선율적·리듬적 독립성을 성취하게 되었다.
1160~1260년간의 시기에 다성음악의 주도권은 노틀담 악파로 넘어가 레오냉(Leonin,1135경~1200경)은 2성오르가눔을 페로댕(Perotin,1170경~1236경)은 3,4성부의 노래를 작곡하에 이른다.
■ 모테트(motet) 성악곡의 중요한 분야로서 폴리포니에 의한 종교곡(단 세속적인 의식을 위한 축전곡을 포함한 경우도 았다)의 일종인데, 13세기 전반에 생겨난 이래 각 시대에 따라서 그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모테트의 기원은 13세기초에 노트르담 악파의 오르가눔의 일부를 고쳐 쓴 데서 발생한 클라우줄라의 상성부(duplum)에 새로 가사를 붙인데서 비롯되었다. 최초에는 그와 같이 새로운 가사를 가진 성부를 모테투스(motetus의 유래는 낱말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mot)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나중에는 악곡 전체를 가르키게 되었다.
13세기 초기의 모테트는 노트르담 악파에 이르러서 정형화 되었다. 그 전형적인 형태는 테너의 정선율 위에 각기 다른 가사를 지닌 2성부가 동시에 노래되는 것으로서, 이것을 2중모테트라 부른다. 그후에 그런 상성부 3개를 갖는 3중모테트가 나타나게 되는데 , 가사는 처음에는 라틴어였으나 차츰 프랑스오도 사용하게 되었고, 그 내용도 종교적 가사와 세속적 가사의 묘한 공존을 빚어냈다. 이 같은 다가사성(多歌詞性)과 정선율로서 성가가 부분적으로만 사용되는 점이 이 시대의 모테트의 두드러진 특성이다.
14세기에 이르러 아르스 노바(ars nova)의 모테트도 2중모테트가 전형적이었으나, 가사의 내용은 세속적인 것이 우위를 차지하고, 각 성부간의 가사는 서로 내용적으로 관련하는 것이 많게 되었다. 가장 큰 특징은 테너와 그 밖의 성부가 동일 리듬형을 반복함으로써 악곡구조의 동일성을 현저하게 강화시킨 점이다.
<출처 ; 서양음악사 100장면(1),pp.82~97)
◆ 참고 : 트로푸스와 시퀀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