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1) 가정이 좋은 이유
가정이 왜 좋으냐? 가정에서는 사랑을 서로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어서 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와 형제가 있는 곳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38- 328)
가정, 가정은 좋은 곳입니다. 왜 좋으냐? 엄마 아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누나 오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동생이 있어서 좋은 곳이며, 친척이 있어서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향 땅,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보다도 고향을 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그리워하는 곳은 고향입니다. 대한민국을 좋아하면서 대한민국에 살고 싶어하면서 또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그리워하는 곳이 어디냐? 고향입니다 고향, 고향이예요. (23-151)
2) 부모는 닮은 자식일수록 더 좋아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아무리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뼛속 깊이 그 내정과 하나되었을 때, 그 모든 내용이 자기를 그대로 닮아나뗄래야 뗄 수 없는 입장에서 그것에 대한 무한한 가치를 느끼게 될 때 그 가치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자식도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기를 닮은 자식을 더 사랑합니다. 여러분 그런 것 같아요? 자식 중에도 엄마 닮은 자식, 아빠 닮은 자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자식을 사랑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부모는 자기를 닮은 자식을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애기들을 데리고 살면서 부모끼리 자식이 누굴 닮은지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요? 영감님이면 영감님끼리, 아줌마면, 아줌마끼리, 아저씨면 아저씨끼리 앉아 가지고 애들이 누굴 닮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잘생긴 아들이 있으면 아버지는 '애가 아버지를 닮았구나' 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못마땅해서 '그 애는 나 닮았어요. 아무리 봐도 날 닮았는데' 하는 거예요. 그래도 아버지는 자기를 닮았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닮았다는 것은 뭐냐 하면 소성 (素性) 이 같다는 것입니다. 소성이 같다는 것은 서로가 완전히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임시가 아니고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 비례에 의해서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자기를 닮았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안다는 것입니다. (39- 230)
사람은 싫든 좋든 '저 녀석은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닮았어'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닮은 소성을 비례적으로 얼마만큼 소유하고 있으면 그 기준에 비례하여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141-21)
3)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우리 동양 교훈 가운데에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 참 좋은 말입니다. 집이 화목하면 말이예요…. 집이라 하게 되면 거기는 물론 사람이 중심이 돼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자식 이렇게 해서 한 집이 돼 있는데, 집이라 하게 되면 그것만이 아닙니다. 집 자체는 만물을 축소시켜 놓은 거예요. 여기에 다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집 하면 보통 생각하기를 '거기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곳이고, 처자가 있는 곳이 내 집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집 하면 그것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밖에도 집이 있고, 뜰이 있고, 모든 것을 축소시킨 것 가운데 환경이 잘 어울려 있고, 우리 할아버지가 계시고 할머니가 계시고…. 그래야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환경에, 찌그러진 데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면 기분도 좋지 않다는 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로 마주보면서 웃는 모습은 젊은 부부가 좋아서 '꽥꽥꽥' 하고 '헤헤헤' 하며 웃는 모습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허허허' 하며 주름살 잡힌 할아버지 할머니가 웃는 웃음은 멋지다는 거예요. 몰라서 그렇지 전부 다 화합하는, 서로가 상응하는 입장에서 웃는 그 할아버지 할머니의 웃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화동한다는 거예요. 할아버지 웃음은 깊은 웃음으로 '허허허' 이러는 것입니다. 손짓을 해도 동작이 뜨지만 요렇게 안 움직여요. 움직여도 이렇게 움직인다 이거예요. 넓고, 높고, 깊고, 크게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 두 노부부가 좋아하면 거기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딸은, 그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들딸도 중간 할머니 할아버지라구요. 이게 간격이 있으면 안 되겠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상, 중, 하의 삼단계로 연결되어서 모든 조화가 벌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화(和)'하는 집안,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는데 그 가화면 왜 만사성이냐? 가화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그거 왜 그랬을까요? 말하기 좋아서, 시적으로 읊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라는 거예요. (139- 12)
4) 가족 중에 좋은 사람이란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그 정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나에게서 찾을 것이냐,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그런 문제가 제기된다구요. 내가, 내가 결정하느냐, 전체가 결정해야 되느냐? 이런 문제가 문제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전체 분위기를 중심삼고 이것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보다 가치가 있고 좋은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온다구요.
내가 잘생겼다고 할 때는 말이예요, 눈도 잘생기고 코도 잘생기고 입도 다 잘생겼지만 손가락 하나 요렇게 됐다, 없다 할 때는 어떻게 돼요? 어떻게 되겠느냐구요? 손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요걸 감추려고 해요. 손가락을 감추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모든 몸 전체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전체의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공인된 기반 위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전통적인 이런 기준이 완전한 기반을 대표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그것을 선이라고 할 수 있고, 좋다고 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다' 그럴 수 있지요?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좋아하지만, 누나가 바라볼 때는 '저저-, 이놈의 자식 언제나 짖궂고 말이야, 욕심쟁이고…' 이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집안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제일 좋다'는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구요. 우리 집 전체가 좋다고 하는 주장을,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부정 하지 못해요.
자, 그러면 우리 엄마로부터 전체 열 식구가 있고, 또 식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에서 좋다고 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좋게 해줄 수 있는, 보다 높은 차원을 지닌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좋다'는 결정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거기에서, 공적으로 선하고 좋다고 공인받을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이냐? 이런 문제가 벌어진다구요.
희생과 봉사, 이것이 절대 필요해요. 그것이 필요하긴 필요한데, '희생과 봉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와 전체 식구가 다 함께해야 된다' 그게 좋지요?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이거예요. 「아닙니다」어떻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내가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요」내가, 내가 하겠다는 사람이예요. (105-89)
5)가족 중에 참된 사람이란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은 곧 선한 것인데,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전체가 자기 앞에 굴복하기를 바라는 자리에 선 사람을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선한 사람은 전체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안 그래요? 집안에서도 제일 착하고 귀하고 소망적인 아이라고 할 때-우리 아이들도 많지만 그 가운데 손자도 좋고 아들도 좋아요-그 아이들을 볼 때, 미래에 선을 차지할 수 있는 소망적인 아이라고 할 때는, 할아버지도 '그래' 할머니도 '그래' 어머니 아버지 할것없이 형제 가족 일가친척까지도 '그렇다' 할 수 있는 아이라고 할 때는, 그 아이는 틀림없이 할아버지를 좋게 하는 아이일 거라구요. 할아버지에게 매일같이 '나 좋게 해! 나 좋게 해' 그러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아이지만 나이 많은 할아버지에 대해서 밤이나 낮이나 할아버지가 좋을 수 있는 길을 언제나 생각하고, 그걸 위해 언제나 행동하고, 언제나 모셔 드리려고 하는 아이임에 틀림없다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할아버지에게 뿐만 아니라,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 할것없이 일가친척 전체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활양식과, 혹은 예의범절을 따라 가는 그 아이가 참된 소망의 아들임에 틀림없고, 손자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을 부정할 수 없어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전체를 위해 기쁠 수 있는 환경의 요건을 만들고, 그러한 내용을 제시하려고 하는 사람이 역사시대를 거쳐와 가지고 선을 이어받을 수 있는 참의 자리에 서 있다는 말입니다.
360도 중앙선에 하나의 중심점이 있으면 그 중심점은 어떻게 돼 있느냐? 모든 것이 찾아올 때도 그 점을 거쳐야 되고, 찾아갈 때도 그 점을 거쳐야 돼요. 그게 문제입니다. 여기에 한 중심점 360도를 중심삼고 구형이 갖추어지면 힘의 작용은 어디를 통해서 균형을 취하느냐 하면, 요점이예요. 각도를 달리한 모든 줄이 요 중앙선을 통하는 이 거리는 전부 마찬가지입니다. 천만 개의 작용을 하더라도 거리는 전부 다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 중앙선을 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중앙선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전체에 오고 가는 힘을 지지해 주는 것이요, 지탱시켜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정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고, 혹은 부부가 있습니다. 또 전후좌우에는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어 가지고 하나의 구형을 이룬 일족이 있게 됩니다. 그 일족 가운데 소망적이요 참된 지주, 중심, 지축이 될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어떤 사람이냐? 할아버지 생각도 그 아이와 더불어 오고가고 싶고, 할머니 생각도 그 아이와 더불어 가고 싶고, 어머니 생각도 그렇고, 형님 생각도 그렇고, 누나 생각도 그렇고, 동생은 물론 친척 생각도 다 그렇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참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174-11)
6) 가족 중에 주인이란-제일 위하는 사람
어떤 집안에 열 사람의 식구 가운데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열 사람을 고생시켜 자기 야욕을 충당하려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열 식구를 위해서 말없이 희생하는 사람을 열 사람이 추대해 가지고 중심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게 원칙이 아니냐. 부모까지도 그 앞에는 무릎을 꿇고 천년 만년 축복을 빌어 주는 것이 아니냐. 그게 원칙이라구요. (60- 69)
예를 들어 말하면, 한 가정에 여덟 식구, 부모가 있고 여섯 형제가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막내 되는 동생이 누구보다도 그 가정을 위하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그 어머니 아버지도 그 아들한테는 머리를 숙이는 거예요. 아무리 꼬마 동생이라도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 형님 누나들은 위해 존재하는 동생을 자연히 중심존재로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집의 중심이 누가 되어야 되느냐 하면 자기를 위하는 존재가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동생이 되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러한 존재가 중심존재가 되는 것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일 해라! 좋은 일 해!' 하는 것이예요. 좋은 일이라는 것이 뭐예요. 좋은 일이라는 것이 뭐예요? 위하는 것 아녜요? 위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 중심존재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77- 298)
그러면 여러분들은 여러분 가정의 주인을 누구로 만들고 싶어요? 어떤 사람을 주인의 자리에 앉히고 싶으냐? 아버지나 할머니나 할것없이 전체 식구가 어떤 사람을 상속자로 만들고 싶을 것이냐? 보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할아버지가 제일 그 집안 전체를 사랑한다면 식구들은 할아버지한테 다 보고하는 겁니다, 아버지를 내놓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어떤 집안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위하는 자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보다 위하는 자가 그 사랑의 가정의 전통을 이어받는다는 것입니다. 보다 사랑을 가지고 위하는 자가 영원한 상속계열에 동참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예」그거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젊은 아이들은 이 요사스러운 세상에 대해서 '왜 희생을 해? 눈 뜨고 있어도 눈을 빼가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는 싸워야 살아 남는다'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 생각한 겁니다. 친구 중의 좋은 친구는 자기를 위하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하여 자기가 희생하려고 하고, 시중해 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 본질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지식의 세계에도 없고 권력의 세계에도 없습니다. 돈의 세계에도 없습니다. 상하고저로 무불능통할 수 있는, 방향감각을 초월해서 어디든지 가능한 작용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사랑 외에는 없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가정에서 아무리 철부지한 어린 소녀라고 하더라도 할아버지를 사랑 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간직했다가 할아버지를 주겠다고 한다면 그 소녀는 그 집안의 사랑의 표적으로 등장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니 그 집안의 영원한 상속자가 누가 되느냐면, 전체를 보다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돼요. 보다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 (141- 292)
만약 열 식구가 있다 할 때, 그 열 식구가 다 살면 좋겠지만, 이 열 식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중의 한 사람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면 그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열 식구가 살기 위한 길입니다. 그것은 일반 역사적인 상식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열 사람이 서로 먼저 죽겠다고 싸우면 어떻게 될 것이냐, 싸우면? 하나님이 볼 때 '어서 싸워라. 어서 싸워라' 그러겠어요?「예」 어서 싸워서 때려눕히고, 전부 때려벼눕혀서 맨 나중에 힘센 녀석이 희생하겠다 하는 것을 원해요?「예」 그것도 원하겠어요. 그것도 원할 거라구요.
그 대신 열 형제 중에 아홉 형제가 들이 때려 가지고 '예이, 이 녀석아 너는 제물 되면 안 돼' 하며 그 형제들이 희생하지 말라고 그러는 데도 그저 희생하겠다고 '나 죽습니다. 하나님, 내가 집을 위해서 죽습니다' 이러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우리 가정을 위해서 매를 맞아 죽더라도 전체를 위해서 희생합니다' 그런다면 어때요? 그 형제들이 '넌 희생하지 않아야 돼. 이놈의 자식아, 너는 희생해서는 안 돼. 너는 희생하지마라. 너는 탕감할 필요가 없어. 탕감은 우리 가정 전체가 할께. 이놈의 자식, 너 조그만 녀석이 왜 해' 하는데도 '나는 전체를 위해서 희생합니다' 할 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거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그저 때려눕히고 다 집어치우면서 내가 희생하겠다 하는 녀석이고 한 녀석은 매를 맞고 나 희생되겠다 하는 사람인데, 두 사람 중에 어느 사람이 낫겠느냐 이거예요? 어느 거예요?「두 번째요」 나는 모르겠는데요? 다양하다구요. 첫번째예요?「예」 두번째예요?「예」 어느 거예요?「잘 모르겠습니다」 그거 잘 모르겠다고 하는 녀석은 맘대로 해라 이거예요. 「첫번째입니다」「두번째입니다」 이것을 결정 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느쪽을 좋아하고,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가요? 사탄은 어느 쪽을 싫어하고 어느 쪽을 좋아하겠느냐 이거예요? 어느 거예요?「둘다…」 이런 녀석들 보라구요. 어느 거예요? 그거 중요한 거라구요. 어느 거예요? 첫번째요?「예」 두번째요?「예」
여기 뭐 여자가 좀 낫구만. 중요한 일이예요.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근본문제를 결정해야 됩니다. 근본문제. 이것이 근본문제입니다. 하나는 매를 맞으며 죽어가면서도 내가 탕감하겠다고 하는 사람, 하나는 때려눕히고 내가 탕감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어느 편이 하늘편이예요? 두 종류 중 어느 것이 …. 하나는 사탄편이요 하나는 하늘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다 좋기는 좋지만, 하나는 하늘편이요 하나는 사탄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확실히 대답을 하라구요. 첫번째예요, 두번째요? 첫번째예요, 두번째예요?「첫번째요, 두번째요」 선생님은 어떨까요? 그거 선생님이 얘기해 볼까요? 나는 첫번째다 라고 하는 사람? 여러분들 자신이 없구만, 자신이 없어!「넘버 투 (NUMBER TWO),투, 투, …」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투, 투, 투 하는데, 그것은 보다 희생하겠다는 것입니다. 보다 희생한다는 거예요. 보다 희생한다는 거기에는 보다 큰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보다 희생하는 곳에 보다 큰 하나님적 사랑이 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130-230)
7) 인연권을 위하는 훈련장으로
지금까지 여러분들 뭐 형님 누나하고 싸움하고, 형제끼리 싸움하고 '뺑' 해서 나왔으면 가서 잘 잔치해 가지고 흐뭇하게 해주고 나 용서해 달라고, 이제 우리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듯이 사랑하자고 그래야 돼요. 그거 얼마나 아름다운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 다 영계에 간 다음에 형제들이 남아진 어머니 아버지를 내가 모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나 말이예요. 형제가 어머니 아버지 대신이니까 남아진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말이예요, 형제가 못살면 내가 도와 주고 어머니 위해 주던 것같이 위해 주는 그거 얼마나 아름다워요? 거기서부터 천국이 시작되는 겁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들 할아버지 있지요? 어머니 아버지 있지요? 삼촌 있지요? 고모 누나 다 있을 거예요. 이 삼대권을 중심삼은 그 모든 친척을 중심삼고 태어난 모든 것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보여 주기 위한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보여 주기 위해서 나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자는 사람은 얼마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거기에 펴놓고 가르쳐 주고, 오래 오래 남겨 주기 위해서 자기 죽을 때까지도 위할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그렇게 사는 것이 천국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 말이예요, 앤트(AUNT;숙모)하고 엉클(UNCLE;삼촌) 하고 있으면 여러분들은 아이고, 삼촌은 뭐 어떻고, 아주머니는 뭐 어떻고 그러지요? 그건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여 주는 거예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여 준다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아주머니는 할머니고 말이예요. 그걸 배우는 거예요.
요러한 것을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생각하게 될 때, 요것을 확대한 것이 세계이기 때문에 사회를 보게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연령, 고모 연령, 삼촌 연령, 어머니 아버지 연령, 형님 연령, 누나 연령, 동생 연령, 전부가 그래요, 사회가 크다뿐이지 요게 같다는 거예요. 동그란 것은 마찬가지예요. 서클(CIRCLE)은 마찬가지예요. 나이 많은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로 모시고 위하고 그렇게 사랑하고, 그다음엔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형님과 동생같이 위하겠다고 그래야 돼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아니예요? 세계 사람을 보여 줘 가지고 형제로 사랑하라고 하는 거예요. 불쌍한 거지가 있다면 그 거지가 아버지 나이라면 아버지와 같이 위해 줄 수 있는 마음, 그거 얼마나 아름다워요? 또, 오빠와 같이 동생과 같이 생각하는 마음 ….
자, 하나님으로 볼 때는 전부가 자기 아들딸인데 싸움하는 게 좋겠어 요? 마찬가지 이치예요. 마찬가지라구요. 전인류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찬가지 개념이라구요. 알겠어요? (18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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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참부모님 진심으로 사랑 합니다 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