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사대부가와 의령남씨 선조의 인척관계
의령남씨 충경공 직제학공 목사공파 - 남척(南倜)과 안동권씨 권람의 인척관계
의령 남씨 남척(南倜), 안동권씨 권람, 권걸,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 권람(權擥) 1416~1465,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계유정난의 핵심 중 핵심이며 정난공신, 좌익공신에 올랐고 좌의정을 지냈다.
본관은 안동으로 조선 좌명공신에 녹훈된 권근의 손자이고 세종과 정인지를 가르친 당대의 대학자 권우(權遇)가 그의 종조부이며 1416년(태종 16) 종1품 우찬성을 지낸 아버지 권제(權踶)와 어머니 전의 이씨 이준(李儁)의 딸 사이에서 6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권제가 술과 기생첩에 빠져 어머니와 형제들을 구타하자 이를 말리다가 본인도 폭행을 당했으며 어머니를 버리자 가출하여 방랑하였다. 한명회의 증조할머니가 안동 권씨여서 권람과 혈연관계가 된다. 수양대군을 만나고 한명회를 추천하여 함께 쿠데타를 모의했는데 계유정난이 성공한 후에는 1등 정난공신에 오른다. 세조가 즉위한 뒤 벼슬이 우찬성, 좌찬성,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활을 잘 쏘고 글을 잘 썼지만 비리가 심해서 여러 번 탄핵 받았다. 세조 말년에 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1465년 병으로 죽었다.
▷ 권람의 가계도
◼ 증조부 : 권근(權近) 문충공(文忠公)
◼ 조부 : 권제(權踶) 문경공(文景公)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 부 : 권람(權擥) 익평공(翼平公) 1416~1465, 계유정난 정난 1등공신
- 모 : 영원군부인 고성 이씨(寧原郡夫人固城李氏) 이암(李嵓)의 손녀,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이원(李原)의 딸
∙ 장남 : 권걸(勸傑) 길창군(吉昌君) 봉습 경주부윤 ∙ 부인 : 부인 남씨 - 의령남씨(宜寧 南氏) 홍주목사(洪州牧使) 남척(南倜)의 딸(1녀) 의령남씨 충경공 직제학공 목사공파 남척 8세 |
∘ 장남(손자) : 권헌(權憲) 승문원교리
∘ 차남 (손자): 권유(權愈) 용강현령
∙ 4녀 : 의령 남씨(宜寜 南氏) 충무공 남이(南怡)장군에게 출가(정부인)사별 의령남씨 충경공 의산위공 부사공파 남이 9세 - 1녀 : 남구올금(간신 유자광의 모함으로 홍형생의 첩) |
권람은 계유정난 공신으로 안평대군의 며느리이자, 남지의 차녀 남오대를 노비로 삼았다.
< 정난에 연류된 관료들은 참형되고 그의 재산과 부인, 자식, 노비는 공신들에게 분배되며 관노비가 된다. >
권걸의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7 (능안로 377-15) 안동권씨 문중묘역 선산에 모셔져 계시다.
▶ 길창군 권걸 (吉昌君 權傑 : 1393 ~ 1421)
권걸(權傑)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으로, 양촌 권근(權近)의 증손,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제(權踶)의 손자이며, 길창부원군 권람(權擥)의 아들이다. 1472년(성종 3)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부인은 의령 남씨(宜寧 南氏) 홍주목사(洪州牧使) 남척(南倜)의 딸(1녀)이다.
묘비는 훼손이 심하여 글자를 알아보기 힘드나, 상단을 보면 횡서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 되어 있다. 그 아래 종서로 ‘정부인의령남씨지묘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길창군권걸사일지묘(貞夫人宜寧南氏之墓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吉昌君權傑士逸之墓)’라 되어 있다. 그 옆에는 1990년에 다시 세운 묘비가 있는데, 앞면에 ‘유명조선국자헌대부동지중추부사길창군권공휘걸지묘정부인의령남씨부좌(有明朝鮮國資憲大夫同知中樞府事吉昌君權公諱傑之墓貞夫人宜寧南氏祔左)’라 쓰여 있다. 옆면에는 ‘승정원교리헌용강현령유(承政院校理憲龍岡縣令愈)’라 되어 있다. 묘소는 표주박형으로 쌍분을 이어 특이하다. 신구 묘비 앞쪽에 상석을 두고 장명등, 문인석을 갖추었다.
길창군 권걸과 정부인 의령남씨 묘소 전경
권걸의 묘비
<참고문헌>
의령남씨 대종회 족보
나무위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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