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각(열왕기하 5:1-14)
2026.2.15 주일
할렐루야!
거룩한 주일 예배의 자리를 지킨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활동하던 때 이스라엘 북쪽에 ‘아람’이란 나라가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시리아에 해당됩니다. 당시 아람은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은 당시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군대사령관) 이었는데,
왕이 아끼는 큰 인물(great man)이었고 아람을 구원한(지킨) 군인이었습니다.(왕하 5:1)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나병, 다시 말해 한센병(leprosy) 환자였습니다.
아무리 크고 존귀한 자라는 소리를 들어도 몸이 아프니 힘들었을테고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때 나아만의 집에는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가 포로로 잡혀 와 나아만 아내의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이사마리아에 사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예언자는주인님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왕하 5:3,)
성경에는 그 소녀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크고 존귀한 자’였던 나아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 정말 보잘 것 없는 이름 모를 소녀입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나아만이 병 고침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를 소개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자기 스스로를 ‘나는 드러낼 것이 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 어디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난 누구하고 얘기하기 하는 것도 싫습니다.’ 라고 생각하고 사는 분 계십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려고 하고 위축되어 계신가요?
잘 들으세요.
나아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사람은 포로로 잡혀와 노예 생활을 하던 이름 모를 한 소녀였습니다.
우리가 비록 능력이 없고, 허물이 많아도 … 하나님은 우리가 치유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 살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합니다. “나도, 하나님의 뜻 안에 사는 사람이다. 나도, 하나님을 전할 수 있다.”
찬송가 620장 2절에 보면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사랑과 말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하니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노라” (찬송가 620장 2절)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넘어질 수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최후에 우리를 승리자의 반열에 두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나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름 모를 소녀는 … 문제의 열쇠가 되시는 /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군대 장관 나아만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만나면 병 고침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노예 신분이었던 소녀가 거짓말을 하면 / 실없는 소리를 하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
소녀는 용기를 내서 자기가 돕는 나아만의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입을 열어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지 말하는 내가 이루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편 33편에 보면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시 33:16)했습니다.
구원은 수가 많음에 있지 않습니다. 힘이 세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7장 10절에
“…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계 7:10)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세상적인 기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소녀처럼 …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만이 구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믿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해결 방법이 없는 영혼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소녀의 말을 들은 나아만은 아람 왕의 허락을 받고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군대 장관이 움직이는 것이니 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나아만은“…말들과병거들을 거느리고 …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왕하 5:9)했습니다.
나아만은 마치 정복자처럼 … 전쟁을 치르러 가는 것처럼 …
말과 병거(전차)를 거느리고 가서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것뿐 아닙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5장 5절에 보면
“나아만이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왕하 5:5)갔습니다.
오늘날로 계산하면 은 10달란트는 은 340kg에 해당되고 금 6천 개는 68kg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요즘 금값, 은값 괜찮지 않나요?
나아만은 치료받으려는 절실함으로 많은 돈도 가져갔습니다.
병이 나으면 감사를 표하려 했는지 … 많은 재물을 줄 테니 병을 고쳐 달라고 하려 했는지 …
돈 많은 것을 과시하듯 … 엄청난 재물(돈을)을 가지고 갔습니다.
당연히 많은 부하들과 종들까지 동반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엘리사는 내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심부름하는 사람을 통해요단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만 전했습니다. (왕하 5:10,)
말, 병거, 돈, 종들까지 동반해서 갔던 나아만은 엘리사의 태도에 황당했던 모양입니다.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는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 5:11)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가면 엘리사가 ‘이렇게 해주겠지’라고 예상했던 게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나와 자기 앞에 서서,엘리사가 믿는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고
나아만의 병든 자리에 손을 얹고 안수하여 고쳐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에 가서 7번 목욕하고 가라고 했으니 나아만이 화가 났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나아만 같은 집사, 나아만 같은 권사, 나아만 같은 장로, 나아만 같은 목사님들 많습니다.
그렇게 나아만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야말로 “내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내 생각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 …
내 판단을 하나님의 뜻인 것마냥 말하는 교만한 사람 … 모두 나아만 같은 사람입니다.
나아만 … 나만 … 그 이름이 우리 말의 뜻과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나아만은 엘리사의 처방(?)을 무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 (왕하 5:12)
단순히 몸을 씻는다고 나을 것이라면 요단강보다 좋은 곳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기가 사는 나라의 강들이 더 좋다고 하며 엘리사의 ‘처방(?)’을 비웃었습니다. 우습게 여겼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의 생각, 자신의 배움, 자신의 경험, 자신의 판단으로 비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비교하기 시작하면 사탄이 그때부터 일하기 시작합니다.(사 14:12~15)
성경은 자기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비교하여 평가하는 사람 …
이렇게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잠언 16장 5절입니다.“무릇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잠 16:5)
살다 보면 미움받을 수 있습니다.
아파트에 살다 보면 애들이 뛰어서 아랫집에 사는 사람이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 중에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미움 하나도 안 받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너무 잘생겨도 미움받고, 너무 예뻐도 미움받고, 너무 잘 살아도 미움받고, 너무 잘해도 미움받습니다.
좋아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미움받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자신을 환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만의 목적이 뭡니까? 병 고침 받는 거예요.
사실 아쉬운 사람은 나아만 자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자기가 생각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아 분노하여 떠나려 했습니다.
분 내는 것(화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장에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했습니다.
성질부리는 사람, 화내는 사람, 분내는 사람의 얼굴을 보세요.
표정이 일그러지고 얼굴이 붉어지며 목소리가 커지며 과격한 행동을 합니다.
그런 모습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겠습니까? 분을 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최초의 살인자 가인도 자기 생각대로 안되었을 때 안색이 변하며 분을 냈습니다.(창 4:5~6)
성질부리면 …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분노하며 떠나려던 나아만에게 종들이 말했습니다.
“주인님, 만약 저 예언자가 그보다 더 큰 일을 하라고 했더라도 그대로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기껏해야 몸을 씻으라는 것뿐인데그 정도도 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왕하 5:13, )
그러자 …“나아만이 이에내려가서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 5:14)했습니다.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이 두 단어가 중요합니다.
나아만은 내려갔습니다.
말을 탔다면 말에서 내렸을 것이고, 병거를 탔다면 병거에서 내렸을 것입니다.
나아만은 뭍에서 요단강으로 ‘내려갔습니다.’ 강에 들어가 몸이 잠기도록 자기 몸을‘낮추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이 고침받았습니다.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엘리사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키지 않았지만 … 아랫사람들의 권면에 못 이겨서 했지만 …
결국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고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 교회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 아랫사람의 말을 듣고 내키지 않았지만
요단강에 몸을 잠갔던 나아만이 깨끗함을 받았던 것처럼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하고 ‘하나님, 응답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다 따르지 않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여행하다 두 갈래 길을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의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지팡이를 중앙에 놓고 쓰러뜨렸을 때 지팡이가 왼쪽으로 쓰러지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쓰러지면 오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런 뒤 할머니는 지팡이를 중앙에 놓았는데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왼쪽 길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쓰러뜨렸습니다.
역시 지팡이는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쓰러뜨렸고 그제야 왼쪽으로 지팡이가 쓰러지자 할머니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가겠습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내 생각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그 길을 가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 5:11)
나아만에게 하나님은 자신과 상관없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 … 즉,‘엘리사의 하나님’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침을 받은 후 나아만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 <왕하 5:15, >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이제야 이스라엘의 하나님 외에는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하 5:15, >
치료받기 전까지 나아만에게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엘리사의 하나님)’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나아만처럼믿음이 작은 사람도 … 아니 없던 사람도 …하나님을 잘 몰랐지만
그저 귀가 솔깃해서 교회에 발을 들인 사람도 … 하나님의 방법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
할 수 없이 / 다른 방법이 없어서 / 남들이 권해서 / 억지로 … 했다 할지라도
순종하는 자에게 변화와 회복의 은혜를 주십니다.
가정에서 … 일터에서 … 교회에서 … 자기 생각 ‘나아만(나만)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생각’대로 / 하나님 말씀대로 해보겠다는 믿음과 순종으로 해야 합니다.
주일성수 하는 것 ‘1년 52주인데 한 주 빠지면 어떤가’하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나아만의 생각입니다.
기도 생활, 특별새벽기도 ‘한두 번 했나, 지금까지 몇 년인데’하는 것은 내 생각입니다.
십일조, 감사 생활, 섬김, 희생, 베풀고 나누는 것보다 ‘이게 더 낫지 않나?’하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순종해 보세요.
힘이 들고 어려워도 내 머리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내려가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길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