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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주제: 십자가, 새 시대로 안내하는 하나님의 표지판
설교3.
십자가, 생명을 살리는 나무
에베소서 2:1~10
설교 목적:
십자가가 유대인에게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을 성취하는 증표라면 이방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셨다고 설명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사람들과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 다시 생명 충만한 세상을 만드는 생명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인간을 다시 연결하는 생명의 나무요, 유대인과 이방인, 헬라인과 야만인을 화목하게 하는 평화의 나무다. 유대인은 그 비밀을 맡은 자들이며, 교회도 새 이스라엘로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말씀을 맡은 자들이다. 그 말씀은 사실 생명을 회복하게 하는 비밀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다. 영화 ‘아바타’(2009)는 생명의 나무와 연결되어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설교 개요:
1. 십자가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기쁜 소식인 이유
2. 인간과 세상의 실존에 대한 성경의 설명
3. 세상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 프로젝트
4. 십자가, 생명을 살리는 나무
5.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사람들
…………………………
1. 십자가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기쁜 소식인 이유
기독교 신앙은 2천년 전 유대 땅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전세계 모든 나라에 사는 모든 민족에게 마음의 위안과 삶의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모든 나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유대인이었으며 최초의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 거룩한 도시이며 하나님이 계시는 성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후에 비로소 그분이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을 세우셨는데 그 언약을 성취하실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기 위해서 할례라는 의식을 통해서 남자들의 몸에 표시를 새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면서 예루살렘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할례와 예루살렘 방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어떤 언약을 세우셨는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들려줍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바벨탑 이후로 세상에 사람들이 흩어져 하나님과 끊어진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먼저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 민족이 땅을 차지하게 하신 후에, 그들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 복은 생육, 번성, 충만의 복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그 관리자로 삼으시고 이 세 가지 복에 더하여 관리하고 다스리는 특권과 임무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복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온 세상에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며 그런 세상을 인간이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세상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멀리 떨어졌으며, 사람들 사이에도 더 이상 교류와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서로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고 원수처럼 대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통하여 모든 세상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다시 생명을 공급받아 이 세상을 생명 충만한 땅으로 만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했으며 그 결과 아브라함의 자손은 점점 번성하여 마침내 큰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하나님이 직접 처소를 잡으시고 이제 본격적으로 세상만민을 회복하시는 일을 시작하려고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는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모두 다윗에게 주셨으며 이스라엘 나라는 마침내 강성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약속하시기를, 그의 자손 중에 한 사람을 일으켜 그의 나라를 영원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절정의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은 에덴동산의 아담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먼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서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의 종들인 예언자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통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른 예언자들에게 새로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구원자를 보내실 것이며,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일으키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동안 고난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질 날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약속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유대인들은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이전의 종살이는 끝나고 그리스도의 통치 가운데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언약백성으로서 서로 격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다니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때마다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여든 공동체는 점점 활력을 띠었고 주변에 사는 이방인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며 그들도 이 복스러운 언약에 동참했습니다. 그렇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의 세계로 전파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2. 인간과 세상의 실존에 대한 성경의 설명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의 언약과 다윗의 언약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기쁜 소식이라면, 그 소식은 비유대인들에게는 어떤 점에서 기쁜 소식이었을까요?
이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에베소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의 편지로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일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읽어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우셨다고 소개합니다. 그 계획은 하나님의 복을 인간들에게 주셔서 인간들이 그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깨끗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일을 이루려고 하실 때 인간들은 어떤 형편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을 구원하시고 회복하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처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비참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1~3
사도 바울은 모든 인간의 상황이 죽어 있는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허물과 죄입니다. 허물과 죄는 이 세상 풍조를 따르며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산 것입니다. 그런 삶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삶을 죽은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기 이전에 인간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에베소서 4장에서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에베소서 4:17~19
에베소서 2장에서 인간의 상태를 죽음이라고 설명한 바울은 4장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허망한 것을 좇아 살고 총명이 어두워져 무지와 고집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어 생명에서 떠나 있으며,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삶을 사도 바울은 죽은 상태, 또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상태라고 규정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늘 궁금해합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어린 자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너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단다’라고 하면 자녀는 매우 섭섭해하면서 웁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님과 처음부터 연결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온 곳과 지금의 상태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런 노력은 조상들이 들려준 신화 속에도 담겨 있습니다. 오랜 옛날 수메르인들은 인간이 신들의 일을 대신할 노예로 지음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혼돈의 바다에서 나온 ‘라’라는 이름의 신이 침을 뱉어 신들을 만들고 눈물을 흘려 인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대의 중국인들은 세상이 본래 하나의 알이었는데 그 알이 점점 커지고 그 알에서 반고라는 거인이 나와 알을 쪼개어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세상을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현대과학자들은 온 세상의 기원을 최초의 빅뱅이라는 대폭발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를 따라 살아갑니다. 신화의 신들을 믿는 사람들은 신들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서 제물을 바치거나 조상들을 달래기 위해서 제사를 정성껏 지냅니다. 신화를 믿지 않는 현대인들은 창조의 목적이나 인간의 사명 같은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현대문명이 확장되는 곳마다 자연이 파괴되고 생명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 사상이 그릇된 것이어서 그 사상으로 운영되는 나라들이 번영하지 못하고 패망했다고 말합니다. 만약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현대문명이 지구의 질서와 생명을 해치고 있다면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나 사상에 대하여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것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인간의 활동에 대하여 소개합니다. 그것은 탐심과 욕심, 무지와 고집으로 나타나며, 그 배후에는 강력한 권세를 가진 공중의 영들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얼마나 적절한 설명이며 현실을 잘 반영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과 이 세상을 다시 회복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 오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경륜 이야기입니다.
3. 세상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 프로젝트
성경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어떻게 운영해 오셨는지를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땅은 공허하고 혼돈했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 그리고 하늘과 땅을 나누시고 그곳에 생명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생육, 번성, 충만의 복을 명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바닷속에는 물고기들이 가득하며, 땅에는 초목과 동물들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생명들은 점점 충만하게 자라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며 축복선언으로 된 것이라고 성경은 들려줍니다.
그런데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특별한 점은, 인간의 창조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자기 손으로 직접 흙을 모으시고 인간을 빚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코에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으시고 이 세상 모든 것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권세와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인간은 생명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세계를 관리하여 그 충만한 복을 받으며 충만하게 하는 임무를 맡은 하나님의 대리인이며 공동관리자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욕심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이 계신 동산에서 쫓겨났고 이 땅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 사이에도 단절과 미움이 커져 점점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지만 그 후손들은 바벨탑을 쌓음으로 또 다시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그리고 사방에 흩어져 서로 소통할 수 없는 단절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단절은 인간의 근본문제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단절이며, 둘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입니다. 이 단절을 해소하고 다시 만민이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공급받으며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때부터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으며 그 계획에 동참하기 위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시고 그에게 약속하신 대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의 자손들에게 땅을 주셨습니다. 그 땅은 마치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에덴동산처럼 만국을 소생하게 할 생명의 근원이었습니다. 그 땅의 별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아마 그 땅에서 흐르는 젖과 꿀은 생명수가 되어 온 세상을 살리고 회복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회복하는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겠다는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드디어 구체화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그 땅도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을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좌절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일하시는 분이며(요 5:17),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식어지지 않습니다(고전 13:8). 하나님은 다시 다윗에게 언약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은 다윗의 언약대로 그 백성을 다시 회복하고 그 나라를 다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는 다시 회복될 이스라엘 나라의 기초가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는 새 이스라엘이 되어 세상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경륜 프로젝트의 중요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께서 세우시고 부르신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아담과 같은 대리인이며, 세상에 복을 주는 임무를 맡았다는 점에서 아브라함의 복에 동참한 사람들이며, 세상을 축복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할 임무를 맡았다는 점에서 교회는 옛 이스라엘처럼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교회를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시 회복할 프로젝트를 어떻게 완성하실까요?
4. 십자가, 생명을 살리는 나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의 근본 문제는 단절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그 첫째요, 인간 사이의 단절이 그 두번째입니다. 그런데 단절의 원인은 허물과 죄입니다. 허물과 죄는 인간이 더러운 욕심으로 행하여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는 것이며, 허망한 것을 좇아 사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살았으나 죽은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근본 문제라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문제는 허물과 죄입니다. 인간이 다시 하나님 앞에서 생명 가운데 살려면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씻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벧전 3:18). 그 결과 인간의 죄와 허물은 용서되고 다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과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아담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에덴동산에 거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대리인의 삶을 다시 회복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담을 허물었습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로막는 단절의 벽도 허물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편지에 기록했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왔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로마서 5:1~2, 표준새번역 성경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 마침내 완성되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경륜 프로젝트가 절정에 달한 사건입니다. 그 결과 이제 세상은 다시 회복될 수 있고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로 설명했습니다.
13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려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3~16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 죽음은 모든 인간의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화해된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차별하던 것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은 서로를 용납하고 서로 단절된 것을 풀고 다시 화해하며 연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이 회복되는 첫걸음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경륜 프로젝트는 큰 도약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헬라인이나 야만인을 가리지 않고 이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5.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사람들
사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지성인이며 경건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헬라철학을 공부했으며 유대인의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헬라인들은 철학적인 지혜를 좋아하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표적을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둘다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둘다 생명을 회복하기는커녕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음을 사도 바울은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시작하신 새로운 일을 발견하고 오로지 십자가 복음만을 전해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했음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또한 그리스도의 정신과 모범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화목과 회복이 일어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도 바울 당시 사람들은 십자가를 우습게 여겼지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능력이라고 사도 바울은 굳게 믿었습니다. 경건하다고 하는 유대인들도 사실은 종교를 통해 자기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말하는 헬라인들도 알고 보니 그 안에 온갖 욕심과 부정하고 더러운 일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들도 공산주의보다는 자본주의가 낫다고 확신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보다는 민주주의가 우월하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민낯이 드러날 때 사람이 돈 때문에 얼마나 비열하게 되는지요?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여 파당을 짓고 서로를 저주하면서 공익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사익에 눈이 멀게 되는지요? 오늘날과 같이 발달된 첨단문명과 개화된 세상에서 사는 인간의 실상은 사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2천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말은 2천년 전에 세상에 전파된 복음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인간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과의 단절이며, 인간 사이의 단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단절의 문제는 인간의 죄와 허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것은 탐심의 문제요, 무지와 고집의 문제입니다. 그것을 인간이 자신의 지식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면 이미 세상은 낙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주가 아니며 피조물이듯이, 인간은 더 큰 권세 아래 있는 존재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큰 권세를 가리켜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권세자는 마치 애굽의 왕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종으로 부리고 원치 않는 일을 하게 했던 것처럼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아 죄를 범하게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하며, 모든 사람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종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마귀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마귀는 디아볼로(Diabolos)라고 하며 히브리어로는 사탄(Satan)이라고 부르는데, 둘다 이간질하고 참소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생명의 줄을 끊으려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유월절의 어린양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상 모든 죄를 담당하심으로 인류에게 출애굽의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실 때 우리들도 함께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이 유월절의 사망에서 그 백성을 건져 내신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는 애굽의 왕 파라오처럼 모든 사람을 죄의 종으로 삼고 있던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무력화하시고 승리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애굽의 모든 군대가 홍해 바다에 수장되지 않았습니까?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태어나고 그들에게 열방의 제사장이 되라는 특권과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음으로 이 놀라운 비밀에 동참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후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들을 죄와 허물로 죽은 데서 건지시고, 다시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그리고 친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지위를 가리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6, 표준새번역성경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시고 하나님의 율법은 시온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교회를 자신의 새 이스라엘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리켜 거룩한 나라와 택하신 백성이라고 베드로 사도는 불렀습니다(벧전 2:9). 이제 교회가 하나님의 비밀을 맡았습니다(고전 4:1). 그 비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든 인류의 죄짐이 벗겨지고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은혜의 보좌 앞에 서는 특권을 누리며, 사람들 사이에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이 세상을 회복하셔서 생명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동참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임무는 에덴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생명나무에 연결되어 그 생명을 공급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나무에 연결되게 하는 십자가의 비밀을 사람들에게 소개하여 그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에 다시 접붙임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가 먼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입니다. 무릇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며, 에덴동산은 네 줄기의 강물이 사방으로 흐르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한 성전에서는 지성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가 성전 문지방을 통해서 세상에 흐른다고 예언자 에스겔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시온에서부터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는 모인 이 교회가 하나님의 시온산이며, 애굽에서 구원받은 장자들의 총회입니다(히 12:22~23).
우리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네 가지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며, 서로 교제하면 돌보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의 떡을 떼고, 그리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행 2:42). 이 중에 어느 하나만이라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일을 모두 열심히 하면 교회는 초대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믿으신다면 저와 함께 십자가의 비밀을 간직하고 생명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시금 성령을 불일 듯하게 하시고 주님의 비밀을 맡은 선한 청지기로 그 소임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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